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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수필: 당신 눈에 비친 타인

신우(新雨)

【정견망】

이 세상의 많은 사람은 자신에 대해 대략적인 인지와 평가를 하고 산다. 어떤 이는 내면에서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판정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외부의 시선에 근거해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바라보는지에 의지한다. 그런데 최근 나는 또 다른 설을 보았다. 그것은 바로 ‘당신 눈의 당신은 당신이 아니고, 타인 눈의 당신도 당신이 아니며, 당신 눈의 타인이 바로 당신이다’라는 말이다. 처음 이 구절을 보았을 때는 말장난 같아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 의미를 읽어낸 후 안으로 자신을 찾아보니 갑자기 조금 당망한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타인과 접촉하고 왕래하며 내 눈에 비친 타인은 어떠했는가? (여기서는 사회 전체의 도덕적 타락에 대한 평가는 제외한다. 무신론과 사악한 당 문화의 침투로 인류 도덕 수준이 낮아진 것은 모두가 목도하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내가 본 것은 타인의 교활함, 이기심, 계산속, 거짓말, 탐욕, 호색, 뒤에서 남 말하기, 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사소한 나쁜 짓, 나쁜 짓을 저지르고도 그럴듯하게 꾸며대는 모습 등이었다.

만약 내 눈에 비친 타인이 바로 나 자신이라면, 나는 그런 사람인가? 한참을 괴로워하다가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본 타인의 부족함은 내게도 모두 있었다. 다만 아주 깊이 숨겨져 있어 스스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기에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깊었을 뿐이다. 대만의 어느 작가가 말했듯, “당신이 나를 백 가지로 해석하고 읽어내는 것은 나의 만분의 일도 구성하지 못하지만, 당신 자신은 남김없이 드러낸다”라는 것과 같다. 《성경 마태복음》에도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생각하지 않느냐”라는 구절이 있다.

예전에 한 법공부 소조의 어느 동수가 기억난다. 나는 그가 유독 눈에 거슬렸지만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그가 자주 휴대전화를 지참하고 법공부에 오거나 법공부 장소를 속인에게 누설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장 본질적인 원인은 그 동수가 자주 희희낙락하며 장난스러운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공경심이 없고 엄숙하지 못하며 대법제자다운 침착한 모습이 없는 것이 내가 그를 싫어한 이유였다. 동수의 모습은 사실 나를 직접 비추는 거울이었다. 나를 돌아보니, 나 역시 때때로 환희심으로 인해 침착하지 못하고 이성적이지 않으며 심지어 조금 미친 듯한 모습이 있었는데 동수와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단지 나는 깊이 은폐하고 함축적으로 표현했을 뿐이었다. 몇 년이 흐른 뒤 안으로 찾아 나의 부족함을 보게 되자, 동수에 대한 간극은 즉시 연기처럼 사라졌다.

《정진요지》 〈시간과의 대화〉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신: 이러한 문제는 이미 몹시 심각합니다. 상대방이 어떠어떠하다고 그들이 본 것으로 반대로 자신을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이미 20여 년 전에 타인의 모습을 통해 어떻게 자신을 닦아야 하는지 알려주셨다. 그런데 나는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이제 나는 우리 법문이 속인 사회에서 수련하는 이점과 의미를 진정으로 깨달았다. ‘主意識(주이스)가 공을 얻는'(《전법륜》) 이점 외에도, 우리는 사회와 가정에서 타인과 접촉하며 세상 사람이나 동수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닦을 수 있다. 깊은 산속에서 수 백 수 천 년을 수련하는 이들은 자신의 집착심을 건드릴 사람이나 사건의 갈등이 없기에 수련이 느릴 수밖에 없다.

사부님께서는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에서 “남들의 좋은 점을 많이 보고 남들의 좋지 않은 점을 적게 보라.”고 말씀하셨다. 예전에 나는 어떻게 남의 좋은 점을 볼 수 있을까 하며 늘 괴로워했다. 눈을 뜨면 보이는 것이 나쁜 점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늘 남의 나쁜 점을 보는 것은 나의 관용과 인내가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남의 나쁜 점이 나에게도 있거나 혹은 더 심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6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