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춘
【정견망】
속담에 “천상에는 머리 아홉 달린 새가 있고 땅에는 호북(湖北) 놈이 있다”는 말이 있다. 만약 초문화(楚文化)를 하나의 구체적인 형상으로 상징한다면 아마도 구두조(九頭鳥 머리가 아홉 개인 새)보다 더 적절한 것은 없을 것이다. 이 익숙하고 유행하는 속담에 대해 사람마다 평가가 엇갈리고 이해하는 바가 다르지만 적어도 초나라 사람과 봉황이 참으로 깊은 역사적 연원이 있음을 나타낸다.
모두가 알다시피 용과 봉황은 중국 고대에서 가장 숭배하던 두 가지 토템이다. 북방은 용을 존중했고 남방(특히 초나라 지역)은 봉황을 숭배했다. 오랫동안 남북의 두 토템은 용봉정상(龍鳳呈祥 용과 봉이 상서로움을 드러냄)이라 하여 나란히 어깨를 견주어 왔다.
음양오행설에 따르면 봉(鳳)은 색이 붉고 오행 중 화(火)에 속하며 남방 칠수(七宿)인 주작의 형상이다. 몸에는 오색 깃털을 둘렀고 우는 소리는 퉁소나 생황 같으며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않고 예천(醴泉)이 아니면 마시지 않으며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고 하여 백조(百鳥)의 왕으로 존숭받았다. 역대 제왕들은 봉명조양(鳳鳴朝陽 봉황이 아침 해를 향해 울다)이나 백조조봉(百鳥朝鳳 온갖 새들이 봉황을 조현한다)을 성세태평의 상징으로 여겼다.
왕이 위로 황천(皇天)을 감동시키면 봉황이 이르고 효제(孝悌)가 지극하여 신명(神明)과 통하면 봉황이 둥지를 튼다는 말이 있다. 그러므로 봉황의 출현은 흔히 천하가 어지러움에서 다스림으로 쇠락에서 흥성으로 변하는 상서로운 조짐이었다. 또한 《금경(禽經)》에 이르기를 “조류는 360종인데 봉황이 으뜸이라 날면 무리 새가 따르고 나타나면 왕의 정사가 공평하며 나라에 도가 있다”라고 했다. 이는 명군(明君)의 위엄과 덕망 성인이 운세에 응해 태어남을 상징하며 세상에 드문 상서로움이기에 왕도인정(王道仁政)의 가장 좋은 체현이다.
고대에 덕행이 있는 제왕인 소호(少昊)나 주성왕(周成王)이 즉위할 때 모두 봉황이 날아와 축하한 적이 있다. 《사기》에는 “온 세상이 순(舜)임금의 공로에 감복하여 구소(九韶)의 음악을 연주하니 봉황이 천하에 노닐었다”는 기록이 있다. 《상서•익직》 편에서는 대우(大禹)가 치수를 마친 후 축하 성전을 거행할 때 기룡(夔龍)이 음악을 주관하자 “소소(蕭韶)가 아홉 번 연주되고 봉황이 와서 춤추었다”고 했다. “봉명기산(鳳鳴岐山 봉황이 기산에서 움)”은 황음무도한 은상(殷商)이 하늘에 의해 멸망하고 어질고 덕을 겸비한 서주(西周)가 신의 도움으로 흥기할 것임을 예시한 상서로운 조짐이었다.
봉황은 온몸의 깃털이 매우 아름다우며 전설 속에서 부위마다 서로 다른 함의를 지니고 있어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을 한 몸에 모은 길상(吉祥)의 새다.
《포박자》에 따르면 “목(木)의 행실은 인(仁)이 되고 청색이 된다. 봉황은 머리 위가 푸르므로 인을 머리에 이었다고 한다. 금(金)의 행실은 의(義)가 되고 백색이 된다. 봉황의 목이 희므로 의를 목에 걸었다고 한다. 화(火)의 행실은 예(禮)가 되고 붉은색이 된다. 봉황의 부리가 붉으므로 예를 짊어졌다고 한다. 수(水)의 행실은 지(智)가 되고 검은색이 된다. 봉황의 가슴이 검으므로 지혜를 숭상한다고 한다. 토(土)의 행실은 신(信)이 되고 황색이 된다. 봉황의 발아래가 노라므로 신의를 밟는다고 한다”고 했다.
노자는 “내가 듣기로 남방에 새가 있으니 그 이름이 봉황이라 ⋯⋯ 봉황의 무늬는 성스러움을 머리에 이고 인자함을 가슴에 품으며 오른쪽에 지혜를 두고 왼쪽에 어짊을 두었다”고 했다. 그것은 동방 군자의 나라에서 나와 사해 밖을 날아다니며 길상(吉祥)한 의미가 풍부하기에 일본인들이 성냥 상표 그림에 많이 선택하여 민간의 기복(祈福) 마음을 맞추기도 했다. 중화민국 초기의 국기인 오색기는 봉황의 다섯 색에서 취했다는 설이 있으며 동시에 인 의 예 지 신 오덕(五德)을 대표한다.
초나라 사람이 봉황을 존중하는 것은 먼 조상의 태양 숭배와 봉황 숭배라는 원시 신앙에서 유래한 것으로 지금까지 7천여 년이 넘는 유물로 고증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초나라 사람의 조상 축융(祝融)은 화신(火神)이자 뇌신(雷神)이었다.
한대의 《백호통•오행(五行)》에는 “축융은 그 정수가 새가 되고 리(離) 괘에서는 난새와 봉황이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변아(卞鴉)•강조(絳鳥)》 주석에는 “봉황의 무리”라고 했다. 이로 보아 초나라 사람의 조상 축융이 바로 봉황의 화신임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초나라 백성의 마음속에서 봉황은 토템 숭배이자 지극히 참되고 선하며 아름다운 화신이며 사람의 정혼(精魂)을 이끌어 구만리 상공에 오르고 팔방을 주유하게 하는 매개체였다.
초나라 사람들은 흔히 자신을 봉황에 비유하곤 했는데 춘추오패 중 한 명인 초장왕(楚莊王)은 자신을 대봉(大鳳)에 비유하여 “3년 동안 날지 않았지만 한번 날면 하늘을 찌를 것이요 3년 동안 울지 않았으나 한번 울면 사람을 놀라게 할 것이다”라고 했다. 나중에 과연 한 번의 울음으로 사람을 놀라게 하며 초나라를 남쪽 땅을 휩쓸고 중원의 패권을 다투는 극강의 국가로 만들었다.
봉황은 신조(神鳥)일 뿐만 아니라 초나라 종족과 국가 존엄의 상징이었다. 춘추전국시대에 초나라 사람들은 봉황 문화 신앙을 절정으로 끌어올렸다. 초나라의 예기(禮器), 병기, 건축물, 문학예술, 생활용품과 혼상가례(婚喪嫁娶)에 이르기까지 봉황이 없는 곳이 없다. 봉황 문화는 초문화의 기원이며 초문화 발전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한다. 대시인 굴원(屈原)은 《이소(離騷)》에서 천국을 노니는 부분을 쓸 때 첫 구절에 “내 봉황을 날아오르게 하여 밤낮으로 이어가게 하니 산들바람 모여 서로 떨어져 구름과 무지개 거느리고 마중 나오네”라고 했다. 또한 “봉황이 이미 다스림을 받았으니 고신(高辛)씨가 나보다 앞설까 두렵다”고도 했다.
또한 《장자•인간세》에는 “봉황이여 봉황이여 어찌 덕이 이리 쇠하였는가, 오는 세상은 기다릴 수 없고 지난 세상은 쫓아갈 수 없구나! 천하에 도가 있으면 성인이 공을 이루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성인이 생을 보존할 뿐이다”라고 했다.
고증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봉황열반(鳳凰涅槃)” 이야기는 가장 먼저 굴원의 《천문(天問)》에서 나왔다. 전설 속에서 봉황은 인간 세상 행복과 길상의 사자이며 500년마다 인간 세상에 쌓인 모든 고통과 은원정구(恩怨情仇)를 짊어지고 하늘 불이 타오르는 제단 위를 날아가 생명과 아름다움의 종결로 중생을 위해 감당한 업력(業力)을 없애고 인간 세상의 안녕과 행복을 바꿔온다. 동시에 맹렬한 불길의 단련과 고통의 시련을 겪은 후 다시 윤회에 들어 새 생명을 얻고 다시 태어나는 속에서 승화된다. 이것이 바로 “욕화중생(浴火重生)”의 유래다.

용봉호문수라(龍鳳虎紋繡羅)
초나라 지역에서 출토된 각종 유물 중에서도 봉황을 주제로 한 형상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그중 특히 칠기(漆器)와 실크 제품에서 가장 선명하게 두드러진다.
1949년 장사 진가대산(陳家大山) 고분에서 출토된 ‘인물용봉백화(人物龍鳳帛畫)’는 갈색 비단을 바탕으로 화면 왼쪽 상단에 하늘로 치솟는 용과 날개를 펴고 날려는 봉황이 그려져 있다. 1963년부터 1964년 사이 호북 강릉 갈피사(葛陂寺) 초나라 무덤에서 호좌봉가고(虎座鳳架鼓)가 출토되었다. 이후 잇따른 고고학적 발견에서 이러한 호좌봉가고가 빈번히 나타났다. 이 외에도 1973년 출토된 초나라 채색 석편경(石編磬 돌로 만든 편경)의 회화 도안 역시 봉황을 주제로 삼았다.
초나라 사람이 남긴 각종 공예품에서 봉황 무늬를 도처에서 볼 수 있다. 봉룡호수라선의(鳳龍虎繡羅禪衣)는 바로 봉황을 주체 도안으로 제작한 의복이다. 이러한 봉황의 형상은 모두 날개를 펴고 높이 울며 기운차게 위로 향하여 율동미와 선의 미가 넘치며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사람의 최초 원시 생명은 도대체 어디서 왔으며 사람은 무엇 때문에 태어났고 사후에 혼백은 또 어디로 돌아가는가? 중국 고대 선민(先民)들은 만물에 영성이 있고 영혼은 불멸하며 생사가 윤회한다고 믿었다. 토템과 토템 숭배의 출현은 바로 세계 각 민족 고대 선민들이 자신의 생사에 대해 내린 해석이다.
봉황은 초나라 사람의 조상이기에 자연히 초나라 사람들에 의해 본 씨족의 토템으로 숭배되고 존경받았다. 사실 오늘날 무신론과 진화론의 당문화(黨文化)에 세뇌된 중국인들이 알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점은 초나라 사람이 봉황을 숭배하고 존중한 진짜 원인이 봉황이 초민족이 천상의 서로 다른 층차에서 전생할 때 지녔던 형상을 대표하며 이 세상에서 초나라 땅에 내려와 인연을 맺고 사람을 제도할 대법(大法)이 널리 전해지기를 기다린 것 외에도 봉황이 하늘과 땅 사람과 신을 소통시키고 사람을 다시 천상으로 돌아가도록 이끄는 호법(護法)의 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령 《이소》에서는 “난새와 봉황이 나를 위해 먼저 경계하고 뇌사(雷師)가 나에게 미비한 것을 알려주네”, “봉황은 날개로 깃발을 받쳐 높이 훨훨 날아가네라”고 했다.
초나라 사람들은 오직 봉황의 인도 하에 사람의 정령(精靈 원신)이 구만리 상공에 올라 팔방을 주유할 수 있다고 믿었다. 초나라 사람의 관념 속에서 봉황은 인혼승천(引魂升天) 즉 혼을 이끌어 하늘로 올리는 신비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굴원의 《이소》 속 서정적 주인공 영균(靈均)은 일찍이 봉황에게 자신의 영혼을 인도하여 구만리 상공에 오르게 했다. “내 봉황을 날아오르게 하여 밤낮으로 이어가게 하니”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한묘에서 출토된 귀순(龜盾)
호북 강릉 봉황산 한묘에서 출토된 귀순(龜盾 거북 등껍질 모양의 방패) 한 점은 정면 칠화(漆畫)에 위에는 사람이 있고 아래에는 봉황이 그려져 있다. 이를 초나라 사람의 백화(帛畫)나 실크 제품 속의 봉황 도안과 비교해 보면 뾰족한 부리 날카로운 발톱 둥근 배 긴 다리 등 초나라 사람이 봉황을 묘사한 작품에서 나타나는 기본적인 특징을 갖추고 있다. 귀순 칠화가 표현하는 내용은 바로 한 수련인이 봉황을 타고 하늘로 날아가는 정경이다.
이는 《사기》에 기록된 과거 황제(黃帝)가 수련 원만(圓滿)해서 도를 얻었을 때 천문이 크게 열리고 황룡 한 마리가 하늘에서 내려와 황제와 후비 근신 72명이 용을 타고 승천했다는 이야기와 부합하며 비슷한 내포가 담겨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80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