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생(道生)
【정견망】
유가(儒家)의 《논어(論語)》에는 사람들이 잘못 이해하는 장구(章句)가 적지 않다. 잘못 이해된 일부 장구들은 기억하기 쉽고 익숙하다는 이유로 때로는 사람들의 입버릇이 되기도 하며, 유가 학설을 어느 정도 접해본 중국인들에게 은연중에 사상적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마귀는 이러한 오해를 이용해 성자(聖者)의 본래 의도에 부합하는 지혜를 인식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사람들이 전통과 선량함으로 돌아가는 것을 방해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장애를 타파하여 대법(大法)의 법정인간(法正人間)을 위해 정법(正法)의 힘을 보태는 것이 필요하다.
성자의 지혜를 배우는 데 있어 중요한 기점은 ‘선(善)’이다. 이는 《대학》에서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힘에 있고, 백성을 친근히 함(親民)에 있으며, 지극히 선한 곳에 머묾에 있다”라는 구절에 함축되어 있다. 이는 사실 성인과 각자(覺者)의 지혜를 배울 때 선(善)으로 가늠해야 함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즉, 우리가 성인과 각자의 지혜를 배울 때 깨달은 도리가 ‘선’한 생각에 위배된다면, 이는 흔히 잘못된 것이고 이미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본문에서 필자가 논의하고자 하는 “유여자여소인난양야(唯女子與小人難養也)”가 바로 전형적인 사례다. 오늘날 많은 이들은 이 문장의 의미를 “공자는 오직 여자와 소인만은 가르치고 기르기 어렵다”라고 여긴 것으로 해석한다. 그리하여 유가 사상은 남자만 중시하고 여자는 무시하며 여성을 차별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만약 10억 인구가 있다면 남녀가 각각 절반이라는 비율로 계산할 때, 5억 명의 여성은 색안경을 끼고 전통 유가 문화를 바라보게 될 것이며, 만약 반대하기 시작한다면 그 결과는 너무나 나쁠 것이다. 그러나 이 문장이 워낙 간단하고 글자 그대로 이해해도 실제로 그러하기에, 오늘날 많은 사람이 이런 의미라고 믿고 있다. 확실히 현재의 규범 어휘와 문법 논리로 이해하고 오늘날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남녀평등의 기준으로 가늠한다면, 이는 명백히 성차별이 존재한다.
문제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읽어내는 이런 의미가 반드시 공자의 본의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왜 그런가? 이는 사람들이 저자 당시의 역사적 배경과 용어 습관, 용어 규범에서 벗어나 사후에 자신이 처한 시대의 용어 습관과 규범을 채택해 공자의 원문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사람들의 용어 습관과 규범이 변했기 때문에 오해가 생긴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변했다면 어떻게 이해해야 공자의 본래 의미에 부합할 수 있을까? 방법은 당연히 원문의 함의 속에서 체득하는 것이며, 공자가 《논어》에서 두 번이나 반복하여 강조한 “나의 도는 하나로 꿰어져 있다(吾道一以貫之)”라는 일관성의 원칙을 운용해 합리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그러면 ‘지선(至善)’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오해가 발생한 핵심 원인은 《논어》에서 ‘여(女)’와 ‘자(子)’라는 두 글자의 운용에 있다. 본문의 용법은 훗날 사람들의 용법 습관과는 다르다. 내가 보기에 이러한 용법의 변화는 아마도 진시황 시기에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수레바퀴나 문자 등을 통일한 천하 통일의 중대한 역사적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전문을 통독해 그 안에 담긴 용어 습관을 귀납하고 요약해 보자. 그러면 ‘여(女)’와 ‘자(子)’란 두 글자가 《논어》의 인물 대화나 발언 중에 나타날 때, 흔히 인칭 대명사로 사용됨을 발견할 수 있다. 본문의 ‘여(女)’는 그 함의가 현대 중국어의 ‘니(你)’, 혹은 고대의 ‘여(汝, 너)’와 유사하다. ‘자(子)’ 자는 통상적으로 ‘그(他)’ 또는 ‘너희들’, ‘제자’, ‘아이’, ‘딸’, ‘스승’ 등을 표현할 때 쓰인다.
예를 들어 〈위정(爲政)〉에서 【자왈(子曰): “유(由)야, 너(女)에게 아는 것을 가르쳐주랴!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다.(子曰:“由,誨女知之乎!知之爲知之,不知爲不知,是知也。)”】에서 여(女)는 바로 너(你)라는 뜻이다.
《논어》에서 ‘여(女)’라는 글자가 여성을 나타내는 데 쓰인 적이 있는가? 물론 있다! 흥미롭게도 내가 찾아낸 곳은 단 한 군데뿐이다. 【〈미자(微子)〉편에 제나라 사람이 여자 악공(女樂)을 보내오자 계환자가 이를 받고 사흘 동안 조회를 열지 않았고 공자는 떠났다(齊人歸女樂,季桓子受之,三日不朝,孔子行。)】 여기서 여(女) 자는 대화 중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사건에 대한 묘사에서 나타났다. 여기에 “계환자가 이를 받고 사흘 동안 조회를 열지 않았다”라는 내용이 더해졌으므로, 여기서의 여(女)는 여성으로 이해해야 한다.
‘자(子)’는 어떠한가? 앞서 말했듯이 반드시 남자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공야장(公冶長)〉에서 【공자가 공야장을 평하기를 “사위로 삼을 만하다. 비록 포승줄에 묶여 있었으나 그의 죄가 아니었다”라고 하시고, 그 자식(子,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可妻也,雖在縲絏之中,非其罪也!”以其子妻之。)】 여기서 “이자처지(以其子妻之)”의 ‘자(子)’는 공자의 딸(자식)을 의미한다.
즉, 우리가 《논어》 자체에서 나타나는 본래의 자의(字義)와 실제 용법을 채택해 이해한다면, “유여자여소인난양야(唯女子與小人難養也)”라는 구절의 함의는 “오직 너(女) 같은 제자(子)와 소인은 가르치고 기르기 어렵다”라는 뜻이지, “오직 여자와 소인이 기르기 어렵다”라는 뜻이 아님을 발견하게 된다. 중요한 점은 이렇게 분석된 의미가 명백히 더욱 선량하며, 통상적으로 여겨지는 것처럼 여성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구절 참뜻에 더 가까운 해석은 “오직 너 같은 제자와 소인은 가르치고 기르기가 어렵다!”이지, 오늘날 보편적으로 오해하는 것처럼 “오직 여자와 소인만이 기르기 어렵다!”가 아니다.
만약 우리가 《대학》의 “친민(親民)” 장구, 즉 사람을 대함에 있어 친부모나 친자식처럼 대한다는 원칙과 결합한다면, ‘자(子)’를 아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이렇게 하면 “오직 너 같은 아이와 철들지 않은 소인들은 가르치고 기르기가 어렵다”라는 한 걸음 더 나아간 함의를 얻게 된다.
문맥을 끊어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관련된 전체 장구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는 〈양화(陽貨)〉에 나온다.
【子曰: “唯女子與小人爲難養也, 近之則不遜, 遠之則怨.”】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오직 너 같은 아이와 철들지 않은 소인들은 가르치고 기르기가 어려우니, 가까이하면 공손하지 못하고 멀리하면 원망하느니라.”】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만약 이 문장이 진시황 시기부터 오해받기 시작했다면, 성자(聖者)의 지혜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이 오해받고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마치 지금 투계처럼 싸우기 좋아하는 공산당이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진선인(眞善忍) 파룬따파(法輪大法)에 대해, 당신은 왜 그들이 그토록 사악하게 선량함을 반대하는지 진심으로 이해하려 해보았는가? 아니면 생각지도 않고 마귀의 거짓말을 맹목적으로 따랐는가?
더욱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 《논어》에서 ‘여(女)’를 너(你)의 의미로 사용한 장구들을 특별히 정리해 두었으니, 관심 있는 독자들은 읽어보기 바란다.
단, 원문과 원글자에서 직접 체득해야 참된 의미를 얻기 쉬우며, 타인의 이해가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님에 주의하라. 특히 현재 무신론적 가짜 유학 전문가들이 하는 헛소리는 더욱 그러하다. 자신의 이해가 정확한지 판단하는 비결은 《대학》에서 제시한 가늠 기준인 선(善)이다. 또한 대법제자로서 나는 더욱 높은 가늠 기준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파룬따파(法輪大法)에서 온 것이다. “真(쩐)ㆍ善(싼)ㆍ忍(런)은 좋고 나쁜 사람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이다”(《전법륜》) 真(쩐)ㆍ善(싼)ㆍ忍(런) 정토(淨土) 안에서 선량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가(假)·악(惡)·폭(暴)의 중공 사당이 투쟁의 사설로 가르쳐낸 나쁜 자들이 종일 불안해하며 사는 것보다 훨씬 더 행복하고 즐겁다!
《논어(論語)》에서 여(女) 자를 너(你)로 표시한 장구는 다음과 같다.
〈爲政篇第二〉【子曰:“由,誨女知之乎!知之爲知之,不知爲不知,是知也。”】
〈八佾篇第三〉【季氏旅於泰山。子謂冉有曰:“女弗能救與?”對曰:“不能。”子曰:“嗚呼!曾謂泰山不如林放乎?”】
〈公冶長篇第五〉【子貢問曰:“賜也何如?”子曰:“女器也。”曰:“何器也?”曰:“瑚璉也。”
子謂子貢曰:“女與回也孰愈?”對曰:“賜也何敢望回?回也聞一以知十,賜也聞一以知二。”子曰:“弗如也,吾與女弗如也!”】
〈雍也篇第六〉【冉求曰:“非不說子之道,力不足也。”子曰:“力不足者,中道而廢,今女畫。”子謂子夏曰:“女爲君子儒,無爲小人儒。”
子遊爲武城宰,子曰:“女得人焉爾乎?”曰:“有澹台滅明者,行不由徑,非公事,未嘗至於偃之室也。”】
〈述而篇第七〉【葉公問孔子於子路,子路不對。子曰:“女奚不曰:其爲人也,發憤忘食,樂以忘憂,不知老之將至雲爾。”】
〈先進篇第十一〉【子畏於匡,顏淵後。子曰:“吾以女爲死矣!”曰:“子在,回何敢死!”】
〈衛靈公篇第十五〉【子曰:“賜也,女以予爲多學而識之者與?”對曰:“然,非與?”曰:“非也,予一以貫之。”
子曰:“由也,女聞六言六蔽矣乎?”對曰:“未也。”“居!吾語女。好仁不好學,其蔽也愚;好知不好學,其蔽也蕩;好信不好學,其蔽也賊;好直不好學,其蔽也絞;好勇不好學,其蔽也亂;好剛不好學,其蔽也狂。”
子謂伯魚曰:“女爲《周南》、《召南》矣乎?人而不爲《周南》、《召南》,其猶正牆面而立也與!”
宰我問:“三年之喪,期已久矣!君子三年不爲禮,禮必壞;三年不爲樂,樂必崩。舊穀既沒,新穀既升,鑽燧改火,期可已矣。”子曰:“食夫稻,衣夫錦,於女安乎?”曰:“安!”“女安則爲之!夫君子之居喪,食旨不甘,聞樂不樂,居處不安,故不爲也。今女安,則爲之!”宰我出,子曰:“予之不仁也!子生三年,然後免於父母之懷。夫三年之喪,天下之通喪也,予也有三年之愛於其父母乎!”】
〈陽貨篇第十七〉【子曰:“唯女子與小人爲難養也,近之則不遜,遠之則怨。”】
《論語》中用“子”字表示孩子(女兒)的章句,如:
〈公冶長篇第五〉【子謂公冶長:“可妻也,雖在縲絏之中,非其罪也!”以其子妻之。子謂南容:“邦有道不廢;邦無道免於刑戮。”以其兄之子妻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