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북 대법제자
【정견망】
정견 교류 문장 《수련 깨달음: 원한이 없으면 고통도 없어》에 “원한이 없으면 고통도 없다는” 내용이 있었다. 당시 나는 왜 고통이 없어지는 것일까? 도대체 누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어제 설거지를 할 때 물이 매우 차갑다고 느꼈고, 어제 낮에 외출했을 때는 날씨가 매우 덥다고 느꼈다. 나는 도대체 누가 차갑고 뜨겁다고 느끼는 것인지 생각했다.
사람은 사람 속에서 많은 경우 육체의 느낌을 통해 이 세계를 감지한다. 여기에는 육체 표면의 느낌과 정신적인 느낌이 포함된다. 정신적인 것으로는 기쁨, 희열, 즐거움, 고통, 어찌할 수 없음, 번뇌, 화남 등이 있고, 표면적인 것으로는 통증, 피로, 무력감, 가뿐함, 힘이 남, 차갑고 뜨거움, 시고 달콤함 등이 있다. 사람들은 느낌에 의지해 이 세계를 이해하고 사물의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판단하고 분별한다. 음식이 맛있는지는 맛을 보아야 하고 미각의 반응에 의지해 평가한다. 어떤 사람이 당신을 화나게 하면 당신은 그를 싫어하고, 당신을 기쁘게 하면 그를 좋아하지만, 도대체 이 사람이 정말 좋은지 나쁜지에 대해서 당신은 사실 명확히 알지 못한다.
사람은 이 느낌 자체의 본질이 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육체적인 느낌이 사물의 본래 모습일까? 이것은 우리가 한 가지 문제를 분명히 파악할 것을 요구한다. 느낌은 어떻게 오는 것인가?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가령 내가 지금 사무실 책상 옆에 앉아 물을 마시고 싶어 한다고 하자. 사실 나는 전혀 목이 마르지 않다. 나는 이것이 물 마시기를 좋아하는 습관이 작용하고 있음을 안다. 신체 자체가 물을 마시든 마시지 않든 상관없지만, 자신이 이때 물을 마시는 것은 물 마시기를 좋아하는 이 습관을 만족시키는 것이며, 하나의 욕망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겨울에 춥다고 느끼고 여름에 덥다고 느끼는 것도 오랫동안 형성된 관념이다. 겨울은 추워야 하고 여름은 더워야 한다는 것이 대뇌에 반응하여 조성된 것이다. 만약 이런 관념들이 없다면 당신은 이런 느낌이 없을 것이며, 비록 육체가 정말로 차갑거나 뜨겁더라도 당신은 여전히 느낌이 없을 것이다. 또 정신적인 고통과 즐거움은 우리의 그 사람마음(人心)의 집착이 만족을 얻지 못하거나 만족을 얻었을 때의 반응이다. 그 인심 집착의 느낌이 대뇌에 반응하여 조성된 것이지, 당신 주원신(主元神) 자체는 이런 느낌이 없다.
이것은 한 가지 문제를 설명한다. 육체는 단지 각종 정보의 가공 공장일 뿐이다. 인간 세상의 산전수전과 사랑과 미움 등의 정 등 당신이 느낄 수 있는 것은 육체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모두 당신의 사람마음의 집착, 관념, 습관이 건드려진 후의 반응이다. 이런 것들이 느끼는 것이며, 진정한 당신(주원신)은 이 물질세계에 대해 일반적으로 아무런 느낌이 없다. 물론 당신의 사람마음의 집착과 관념의 느낌 외에도 일부 외부 요소가 당신의 대뇌를 이용해 반응하는 것도 있다. 이것도 세심하게 체득하면 분별할 수 있는데, 결론적으로 그것은 당신이 아니다. 예를 들어 공산사령(共産邪靈)의 교란으로 당신이 원망하고 다투게 하는 것은 바로 이 물건이 장난을 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은 자신이 자신을 주재하고 있고, 내가 무엇을 하려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즐기는 중에서 후천적으로 양성된 습관과 집착으로서, 느낌을 추구할 뿐이다. 진정하게 작용을 일으켜 무엇을 하고자 하는 배후의 요소는, 사람의 습관, 집착, 관념, 욕망 이러한 것을 이용해서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진정한 인체는 바로 이러하며, 단지 생활과정 중에서 가져온 느낌을 향수하고 있을 뿐이다. 당신에게 단 것을 주면 당신은 단 것을 알고, 당신에게 쓴 것을 주면 당신은 쓴 것을 알고, 당신에게 매운 것을 주면 당신은 매운 것을 알고, 당신에게 고통을 주면 당신은 괴로움을 알고, 당신에게 행복을 주면 당신은 기쁨을 안다.”(《각지 설법 11》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
이 세계에 대해 느낌이 없게 하려면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육체 자체에 고장이 생기는 것인데, 예를 들어 뇌성마비나 기타 질병으로 인해 이 가공 공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이는 미각이 미뢰를 통해 반응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소위 미뢰라는 것도 가공 공장의 부속품 하나일 뿐이다. 또 하나는 바로 수련이다. 모든 사람마음의 집착과 관념을 깨끗이 정리하면 그 과정에서 느낌은 점점 적어지고, 마지막에 아무런 느낌이 없을 때 바로 원만(圓滿)하게 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의 감각은 아무것도 아니며, 감각에 의거해 수련해서는 안 된다.”(《전법륜》)
층차에 한계가 있으니 부적절한 곳은 동수들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9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