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본선생
【정견망】
“37만 년 후? 장가만(張家灣)이라고요?!” 요곤이 경악하며 말했다.
“그렇다.” 낭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경악한 채 현궁을 바라보더니 무언가 깨달은 듯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며 머릿속을 빠르게 회전시켰고, 문득 색다른 감회에 젖어 들었다.
장주몽접(莊周夢蝶)이라 나비가 장주가 되고 장주가 나비가 되니, 저 몸이 지금의 나요 지금의 내가 저 시대의 나로구나. 꿈속과 꿈 밖, 환상과 가짜 그리고 진짜……
“곤아, 무엇이 잘못되었느냐?”
모후의 부름을 듣고서야 그녀는 고개를 돌려 이 아름다운 여신을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으나 얼른 눈물을 거두며 물었다.
“모후(母后 어마마마), 37만 년 후의 장가만에서 오라버니의 이름이 혹시 장우인(張友仁)인가요?”
모후의 눈에 약간의 놀라움이 스쳤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하셨다.
“그렇단다.”
그녀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녀는 간신히 평정을 되찾고 심장의 떨림이 목소리에 묻어나지 않도록 억제하며 한 자 한 자 물었다.
“그럼 혹시 제 이름이 양회(楊回)인가요?”
모후는 요곤이 명확히 말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는지 교정해 주었다.
“너는 양혜혜(楊惠兮)라고 한다.”
그녀의 가슴 속 혈액이 요동쳤다. 이때 그녀의 마음은 파도치듯 일렁이며 백만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그녀는 자신이 천계의 37만 년 전으로 오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자신이 사칭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 요곤 공주가 바로 과거의 자신이었던 것이다.
“부황(父皇)께서 모두 말씀해 주시더냐?” 모후가 물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부황께서는, 부황께서는 줄곧 저에게 진상을 말씀해 주고 계셨습니다.”
그녀의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누이야, 네가 눈물을 흘리는구나.” 현궁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
모후는 요곤이 눈물을 흘리는 까닭을 몰라 막 물으려는데 현궁이 먼저 말했다.
“저는 아직 37만 년 후 장가만의 안배를 모르는데 동생이 저보다 먼저 알았군요. 이토록 감동하는 것을 보니 혹시 그 생에 겪기 매우 힘든 겁난이라도 있는 것입니까?”
요곤은 잠시 무어라 답해야 할지 몰랐다.
모후께서 웃으며 말씀하셨다.
“원래 그것 때문에 우는 것이었구나. 곤아, 지난번 일세(一世)에 네가 정곤유리검으로 오라버니 마음속의 정환수(情幻樹)를 단칼에 베어 버렸으니, 다음 일세(一世)에는 네가 마땅히 그에게 갚아야 한단다. 이렇게 오고 가며 너희의 정(情)을 모두 수련해 버리는 것이니 이는 좋은 일이 아니냐!”
현궁이 이 말을 듣더니 길게 탄식했다.
“휴……”
요곤은 현궁이 다소 수심에 잠긴 것을 보고 물었다.
“오라버니는 아직 인간 세상에서 사람이 되어 본 적이 없죠?”
현궁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곤이 다시 말했다.
“천상의 신은 사람에게 칠정(七情)인 희노우사비공경(喜怒憂思悲恐驚 기쁨 분노 근심 생각 슬픔 공포 놀람)이 있음을 압니다. 하지만 천인(天人)은 정이 옅어서 인간 세상의 고통을 겪어 보지 못한다면 결코 공감할 수 없으며, 정의 무서움을 진정으로 알 수도 없습니다.”
(여기서 ‘천상의 신’은 삼계 내의 신을 가리킨다.)
이때 그녀가 겪어온 온갖 인생 역정이 눈앞에 선하게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이어서 말했다.
몸은 신이 주관하지 못하고 마음은 구렁이에 감긴 듯하네.
미혹 속에 연유를 알지 못하고 실타래에 이끌려 스스로를 묶는구나.
선한가 선하지 않은가, 정에 집착한 일념이 악한 인연을 만들고
진실한가 진실하지 않은가, 고통을 삼키며 마음을 바꾸려 하네.
깨달았는가 깨닫지 못했는가, 피눈물을 허공에 뿌려 정뿌리에 물을 대고
어렵고도 더 어려워라,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다시 마음이 서늘해지네.
괴롭고도 더 괴로워라, 애간장을 태우며 가던 길을 되풀이하고
묶이고 또 묶여라, 인과가 그치지 않아 얽히고설키네.
身不由神主,心似被蟒纏。
迷中難知故,牽絲又作縛。
善不善,情執一念造惡因。
真不真,齧檗吞針爲換心。
悟不悟,血淚空灑灌情根。
難更難,百孔千瘡再心寒。
苦更苦,掛肚牽腸重蹈覆。
束更束,因果不休縛捆縛。
사람들은 정이 보배라 하고 정이 중하다 하지만, 어찌하여 본래 선(善)한 내가 정으로 인해 선하지 않게 되고, 본래 진실한 내가 정으로 인해 진실하지 않게 되며, 본래 고통 속에서도 즐거울 수 있었던 내가 정으로 인해 고통 위에 고통을 더하게 되는 것입니까.
공명을 위하고 이록을 위하며, 백년해로를 위하고 마음과 외물을 위한다지만, 결국은 모두 정을 위해 일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사람의 일생에서 정으로 인해 즐거운 때는 손에 꼽을 정도이지만, 정 때문에 겪는 고통은 도도히 흐르는 강해(江海)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만약 단 두 생만에 정의 뿌리를 베어 내고 정이 없는 곳으로 해탈할 수 있다면, 저는 기꺼이 한시의 지체도 없이 만족할 것입니다.”
요곤이 이 말을 마치자 모후와 현궁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낭랑이 입을 열었다.
“곤아, 네가 혹시 몰래 정겁(情劫)을 겪고 온 것이냐?”
요곤이 고개를 들고 막 모후께 실상을 말씀드리려 했다.
“모후, 사실 저는……”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소리가 들려왔다.
“폐~ 하~ 납~ 시~ 오~”
여러 선시(仙侍 시중드는 신선)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었고, 낭랑도 자리에서 일어나 가냘픈 손을 오른쪽 사타구니에 대고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현궁도 무릎을 꿇고 몸을 굽혀 부황을 뵈었으나, 오직 요곤만이 멍하니 서서 머릿속이 하얘진 채 있었다.
그녀는 오직 강력한 에너지에 휩싸인 기분이었는데, 매우 따뜻하고 안락하며 지극히 감동적이었다.
요곤이 휙 고개를 돌리니 부황께서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곤아, 네가 돌아왔구나. 오랜만이로다.”
순간 그녀의 눈시울은 둑이 터진 듯했다. 눈물이 샘솟듯 쏟아졌고 그녀는 부황의 발치에 무릎을 꿇었다. 마음속에는 부황께 드리고 싶은 수만 가지 말이 있었으나, 그 모든 말은 짠 눈물의 바다 속에 잠겨버렸고 오직 흐느끼는 한 마디만 남았다.
“부황(父皇)!”
부황은 인자하게 그녀를 부축해 일으키며 머리를 쓰다듬고 말씀하셨다.
“곤아, 아무 말도 하지 말거라. 돌아가 푹 쉬고 있거라. 자연히 너를 찾으러 올 사람이 있을 것이다.”
부황이 말씀을 마치고 모두를 일어나게 한 뒤 내전으로 들어갔다.
요곤과 현궁도 물러 나왔다. 현궁에게 갑자기 일이 생겨 요곤과 함께 가지 못했고, 요곤은 혼자 몽롱한 기분으로 자신의 침전으로 향했다……
침전으로 돌아온 요곤은 밤잠을 이루지 못한 채 인온지(氤氳池)에서 밤새 별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별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건곤은 끝없고 별은 하늘에 가득한데
별 하늘 가로세로 건곤에 두루 퍼졌네.
알알이 점점히 삼계에 가득 차 있으니
윤회하며 도대체 무슨 일을 찾으려 하는가.
乾坤無垠星滿辰
辰空橫縱遍乾坤
粒粒顆顆盈三界
輾轉爲把何事尋
그녀는 별하늘을 바라보며 인온지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지지배배!”
“지지배배 짹짹!”
즐거운 새소리와 함께 천궁의 아침이 밝았다. 요곤은 못에서 나와 화원을 산책하려 했다.
그녀가 뜰로 나가니 칠채 연못 위로 엷은 안개가 감돌고 있었고, 만 장 높이의 청죽림이 멀지 않은 곳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홍보석 정자의 자수정 탁자 위에는 궁녀가 막 끓여온 차가 놓여 있었고, 대금전 지붕 위의 청란새는 하늘을 향해 기지개를 켰다. 모든 사물과 이곳의 모든 사람, 그리고 그녀의 온몸까지도 은은한 빛에 휩싸여 있었다. 이때 뜰 남쪽의 향로에서도 보랏빛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요곤은 생각에 잠겼다.
이곳이 내가 예전에 살던 집인가? 이것이 천상에 있던 나의 궁전인가? 나는 왜 인간 세상으로 가서 윤회를 거듭해야만 했는가? 또 왜 이 만(萬) 년 전의 옛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는가……
내 아버님은 무소불능하신 천상황(天上皇)이신데, 당신께서는 왜 이 37만 년의 먼지를 들추려 하시는가? 당신께서는 도대체 이 아이에게 어떤 천기(天機)를 알려주려 하시는가……
요곤은 뒷짐을 지고 멀리 날아올라 가벼운 몸을 천지 사이와 구름 안개 속에 맡긴 채 한가로이 거닐었다……
갑자기 그녀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 참으로 오랜만인 이름을 들었다.
“양회!”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 이름은 정말 오랫동안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양회! 내가 당신을 1억 3천만 년 동안 찾았는데, 뜻밖에도 37만 년 전 천계에 있었구료!”
(여기서 정말 다른 공간에서 1억여 년이나 수십만 년을 머물렀다는 뜻이 아니라, 책장을 넘기듯 찾는 과정이 그러했다는 것이며 대략 한 달 남짓 걸려 찾은 것이다.)
양회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눈앞의 이 사람은 현궁이기도 하고 현궁이 아니기도 했다. 옛사람이기도 하고 지금 눈앞의 사람이기도 했다. 이에 그녀는 웃으며 물었다.
“오라버니, 양회가 누구죠?”
그는 멍해져서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천목(天目)으로 그녀의 몸을 비추어 보고는 확신하며 말했다.
“그대는 바로 양회이오.”
그녀는 짐짓 의아한 표정으로 손등을 그의 이마에 대어보고 다시 자신의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오라버니, 어찌 헛소리를 하세요? 나는 요곤이예요!”
그가 다시 급히 말했다.
“나는 장우인이다! 내가 나의 과거 그림자를 빌려 쓰고 있는 것이란 말이다!”
그녀는 다시 깊은 생각에 잠긴 척하며 말했다.
“장우인? 이름만 들어도 고루하고 점잖은 척하는 게 좋은 사람 같지 않군요. 나는 모르는 사람이에요.”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하더니 혼잣말을 했다.
“원신(元神)이 과거의 그림자로 오면 기억을 잃는 것인가? 그럴 리가 없는데, 환생한 것도 아니고 기억을 잃을 리가 없는데……”
“오라버니, 나는 조반을 먹으러 갈래요.” 요곤은 말을 마치고 돌아서서 날아갔다.
요곤이 침궁에 도착해 보니 뒤에서 그가 쫓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그가 이미 예전의 현궁이 아니라 바로 장우인임을 확신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