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춘
【정견망】
3. 악비에 대한 역대 평가
1) 소흥 2년(1132년), 남송의 저명한 애국 명신 이강(李綱)은 조정 신료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악비는 나이가 젊고 군 기강이 엄숙하며 기이한 공을 세울 수 있으니 근래에 보기 드문 인재입니다. 머지않아 반드시 중흥의 명장이 될 것입니다”라고 지적했다.
2) 남송 조정이 소흥 초년 악비에게 관직을 높여주며 내린 조서 중 일부:
“(악비는) 적을 예상함에 기이하고 병법의 깊은 오묘함을 꿰뚫어 보며, 앞장서서 승리를 결정짓고 화살과 돌의 위험에 몸을 먼저 던진다.”
“(악비는) 천 리 길 군대를 이끄나 털끝만큼의 민폐도 끼치지 않으며, 백 개의 성을 다스려도 개 짖는 소리에 놀라는 일이 없다!“
“(악비는) 정성스러운 충성으로 나라에 헌신하고 굳센 의지로 군의 으뜸이 되었으며, 백 번의 전투에 앞장서고 만 명의 적을 압도하는 기개를 가졌다. 임기응변에 밝고 결단력이 있어 도모하고 움직이면 공이 있고, 위엄과 신용이 분명하여 군대가 지나가도 농부들이 일손을 바꾸지 않는다. 변방에서 오랫동안 노고를 세웠으니 실로 국가를 지키는 보루다. 공손(公孫 춘추시대 정나라의 어진 재상 자산)처럼 겸손하여 뽐내지 않는 풍모가 있고 숙자(叔子, 서진의 명장 양호)처럼 귀순한 자를 포용하는 지략이 있다.”
소흥 11년(1141년) 남송 고종 조구의 행서 《사악비비찰권(賜岳飛批剳卷)》 타이베이 난첸산관(蘭千山館) 소장
3) 소흥 6년(1136년), 악가군이 북벌에서 휘황찬란한 전과를 거두고 파죽지세로 양한(襄漢) 6군을 수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송 고종 조구는 조서에서 기쁘게 평가했다.
“경(卿)은 병법의 지략이 깊어 움직임이 시의적절하도다. 완(宛), 엽(葉) 사이에 군사를 더해 송백의 요새를 빼앗았구나. 갑옷과 말을 사로잡고 세 차례의 승전보가 들려오니 실로 만 명의 용맹 중 으뜸이로다!”
4) 금나라 군대 사이에서는 악비에 관한 유명한 평판이 전해졌다.
“산을 흔들기는 쉬워도 악가군을 흔들기는 어렵다!”
5) 소흥 10년(1140년), 남송 조정이 악비에게 ‘소보(少保)’ 관직을 수여할 때 내린 제사(制詞) 공문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무승정국군(武勝定國軍) 절도사,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충호북경서로充湖北京西路 선무사(宣撫使) 겸 영전대사(營田大使), 무창군 개국공, 식읍 4천 호, 식실봉 1천 7백 호 악비는 지략이 병법에 부합하고 영험함은 산천에 모였으며
기개는 강한 오랑캐를 삼키니
장하도다 한(漢) 장수의 위엄이여.
뜻은 중원을 맑게 하려 하니 떨치는구나
분발함은 진(晉) 신하의 충절과 같구나.
군대가 여러 번 경락(京洛)에 임하니
이름이 멀리 오랑캐 땅까지 떨치도다.”
6) 소흥 12년(1142년), 악비가 화를 당한 직후 금나라 사신 유도(劉祹)는 악비를 이렇게 평가했다.
“강남의 충신 중 병법을 잘 쓰는 자는 오직 악비뿐이다. 가는 곳마다 기율이 매우 엄격하여 털끝만큼의 범함도 없었다. 이른바 항우에게 범증이 있었으나 쓰지 못해 우리에게 사로잡힌 것과 같으니, 악비와 같은 이는 강남(남송)의 범증이 아니겠는가!”
7) 소흥 31년(1161년), 남송의 태학생 예박(倪樸)이 송 고종에게 상소해 악비의 억울함을 빨리 씻어줄 것을 요구하며 이렇게 썼다.
“신이 듣기에 고(故) 장수 악비는 충의가 비길 데 없고 뜻은 우주를 맑게 하려 했으나 하루아침에 권신(權臣)에게 해를 입었습니다. 천하가 그 원통함을 아파하여 지금까지도 대소인들이 수군거리고 있습니다! 효부의 원한을 풀어주지 않아도 여러 해 동안 비가 오지 않거늘, 하물며 충신 의사의 공렬이 천지에 빛나고 정충이 일월을 꿰뚫는데도 한 뼘의 봉토는커녕 도리어 큰 죽임을 당했으니 그 원한의 기운이 어찌 천지 사이에 가득 차 있지 않겠습니까? 신은 바라건대 고 장수 악비의 봉작을 회복시키고 그 자손에게 녹봉을 주어 그 억울하고 억눌린 기운을 펴주소서.”
8) 악비가 화를 당한 지 20년 후, 금나라 황제 완안량(完顏亮 해릉왕)이 다시 송나라 침공을 일으켰을 때 금나라 군중에는 이런 말이 돌았다. “악비가 죽지 않았다면 대금(大金)은 멸망했을 것이다!”
9) 송 효종 재위 기간에 악비의 원한이 풀렸다. 송 효종은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악비의 셋째 아들 악림에게 말했다.
“경의 집안 기율과 용병술은 장준이나 한세충도 훨씬 미치지 못한다. 경의 집안이 억울함은 짐이 모두 알고 있으며 천하가 함께 그 원통함을 알고 있다.”
10) 건도 6년(1170년), 호북 전운사(轉運司)가 무창에 악비의 사당을 세우며 올린 공문에서 평가했다. “엎드려 보건대 고 소보 악비는 지난날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악주와 한구에 주둔할 때 기율이 엄명하여 털끝만큼의 민폐도 없었으며 나라를 위해 몸을 던져 백전백승의 공을 세웠습니다. 지금까지도 악주의 군사 중 정숙하여 쓸만한 자들은 모두 악비의 힘입니다. 가신 지 이미 30년이 지났으나 남겨진 풍모를 나라 사람들이 잊지 못해 그 초상화를 그려 제사 지내는 집이 열에 아홉입니다.”
11) 순희 5년(1178년), 남송 조정이 악비에게 시호를 내리며 발표한 공식 공문 《충민시의(忠湣諡議)》에서 평가했다. “고 악비는 병사에서 일어나 몇 년 되지 않아 장상의 자리에 올랐으나 충성으로 임금을 섬기고 법도로 대중을 다스렸으며 여러 번 공을 세우고도 스스로 뽐내지 않았으니 남겨진 풍모가 지금까지 없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중흥의 공을 논하여 봉작함에 마땅히 제일이라 한다.“
12) 또한 악비의 시호를 정하는 공식 공문 《무목시의(武穆諡議)》에서 남송 관리들은 악비의 청렴함과 헌신적인 정신을 칭송했다.
“아아! 장수가 되어 눈치를 보며 회피하고 부귀를 보전하며 적을 길러 스스로 풍족해지려는 자가 많도다. 공(악비)은 홀로 그렇지 않아 평소 청렴하고 재산을 모으지 않았으며 비록 하사금과 녹봉이 있어도 아낌없이 나누어주어 자기 집이 있는 줄 몰랐도다. 진중에 임해서는 직접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군사들 앞에 섰으며 정예병을 쳐부숨에 승리하지 않으면 멈추지 않았으니 자기 몸이 있는 줄 몰랐도다. 충의로 순국함이 사책에 실려 있으니 이보다 더한 것이 어찌 있겠는가!”
13) 악비가 화를 당한 지 60여 년 후, 금나라 황제는 조서에서 직접 악비의 탁월한 전공과 명성을 인정했다. 금 태화 6년(서기 1206년, 남송 개희 2년), 금 장종은 남송의 대장 오희(吳曦)를 유혹해 배반하게 하려는 조서에 썼다. “또한 경은 스스로를 돌아보매 돕는 공이 악비와 비교해 어떠한가? 악비의 위명과 전공은 남북에 떨쳤으나 하루아침에 시기를 사 마침내 죽임을 당했으니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14) 주희(朱熹)가 문하생들과 악비를 논하는데 문하생이 묻기를 “악후(악비)가 일을 함에 장준이나 한세충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하니 주희가 답하기를 “장준과 한세충이 미치지 못하니 이는 모두 그가 도리를 알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다시 묻기를 “당시 악후보다 나은 자가 누가 있었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아무도 대신할 사람이 없다”라고 했다.
15) 남송의 학자 조언약(曹彥約)이 악비를 찬양했다.
“지략이 적을 예상하기에 충분하고 식견이 사람을 등용하기에 충분하며, 기율이 엄하여 아랫사람들이 원망하지 않고 군량이 다해도 무리가 배반하지 않으니, 죽은 지 80년이 되어도 풍모를 듣는 이들이 오히려 기뻐하니 오직 악비뿐이로다! 옛사람이 말하는 명장이 이보다 더할 수 없다. 그러나 남북의 나뉨과 합함에는 정해진 때가 있고 충과 사, 삶과 죽음에는 정해진 운수가 있으니 어찌 권신 한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슬프도다!”
16) 문천상(文天祥)의 악비에 대한 평가 (1):
“악 선생은 우리 송나라의 여상(呂尙 강태공)이로다.
공적을 세워 사책에 실렸으니 천백 세(世) 후에도 살아 계신 듯하구나.
필법(筆法)에 이르러서는 구름 속 학이 하늘을 노닐고 기러기 떼가 바다에서 노니는 듯하니, 나라를 지키는 재목이자 문학의 장점까지 겸비했음을 충분히 알 수 있으니
우리 세대에 누가 따를 수 있겠는가.”
17) 문천상의 악비에 대한 평가 (2) (악비의 증손 악적에게 보낸 답장 중 발췌):
“중흥 초기에 선조이신 무목왕(武穆王 악비)께서 직접 창을 들고 충의(忠義)로는 일월과 빛을 다투셨으니 이름은 깃발에 남고 공은 사직에 있도다. 하늘이 그 공로에 보답하여 후손을 번창하게 하시니 비록 백세 뒤라도 알 수 있을 것이로다.”
18) 《송사(宋史)》를 편찬한 원조 사관들의 평가:
“서한 이래로 한신, 팽월, 주발, 관영 같은 장수는 대대로 끊이지 않았으나, 문무(文武)를 겸비하고 인지(仁智 사랑과 지혜)를 함께 베풂이 송의 악비와 같은 사람을 구한다면 일대(一代)에 어찌 많이 볼 수 있겠는가!”
19)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의 악비에 대한 평가:
“순정(純正)하여 굽지 않으니 글씨가 그 사람과 같도다.”
20) 명 신종 주익균(朱翊鈞)의 악비에 대한 평가:
“아, 송 충신 악비는, 정충(精忠)이 해를 꿰뚫고 대효(大孝)는 하늘을 밝혔으니
정강의 치욕에 분개해 북쪽 사막의 오랑캐 군대를 쓸어버릴 것을 맹세했도다.”
21) 만청(滿淸) 건륭제의 악비에 대한 평가:
“오직 공만이 충성스러운 본성을 가졌고 지혜와 용맹이 뛰어나도다.”
22) 손중산 선생의 악비에 대한 평가:
“악비의 혼은 중화민족 정신의 대표이며 바로 민족의 혼이다.”
(전문 완결)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11067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