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여(劉如)
【정견망】
관우: 당당한 풍채와 늠름한 위풍(威風)
유비와 장비가 만난 후, 이어지는 것은 관우의 등장이다. 장비의 목소리가 거대한 천둥 같고 기세가 치닫는 말과 같았다면, 관우는 마치 신장(神將)과 같은 모습에 신위(神威)가 서려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경외심을 갖게 한다. 관우는 “키가 9척이고 수염 길이가 2척이며, 얼굴은 익은 대추 같고 입술은 연지를 바른 듯하다. 단봉안(丹鳳眼 봉황의 붉은 누)에 와잠미(臥蠶眉 잠자는 누에와 같은 눈썹)를 가졌으며, 풍채가 당당하고 위풍이 늠름했다.”
그야말로 ‘당당한 풍채와 늠름한 위풍’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을 경악게 하는 관우의 천인(天人) 같은 용모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온몸에 정기(正氣)가 서려 있고 위엄이 절로 배어 나온다. 이런 인물은 일생 동안 충의를 지키고 무력에 굴복하지 않으며 천성적으로 고결한 기개를 지닐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당당하고 늠름한’ 외모는 유비의 눈을 통해 묘사된다.
본래 그날 유비와 장비가 만나 주막에서 술을 마시며 거사를 논의하고 있을 때,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대장부가 수레를 밀며 주막으로 들어와서는 점소이에게 급히 술을 내오라고 재촉하며 곧 군에 입대하러 갈 것이라 말하는 것을 보게 된다. 유비는 이를 눈여겨보고 관우를 합석하도록 청했고, 그제야 그의 성명과 내력을 알게 되었다.
관우는 자가 운장(雲長)이고 하동(河東, 지금의 산서 일대) 해량(解良) 사람이다. 5~6년 전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해 백성을 위해 해를 끼치던 지역 호강(豪強)을 죽이고 강호를 떠돌다 이곳까지 흘러왔다. 마침 관부에서 도적을 토벌할 군사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응모하러 온 것이었다.
의심할 바 없이 관우는 영웅호걸이다. 불의를 보면 의리로 돕는 성품이기에, 의병을 모집해 백성을 위해 도적을 친다는 소문을 듣고 마음이 급해 술과 밥을 먹는 대로 바로 군에 가려 했던 것이다. 때마침 유비, 장비와 만났으니 세 사람의 덕(德)과 지(志)가 같았음을 알 수 있다. 세 사람은 뜻이 투합하여 함께 장비의 장원으로 가서 의병을 모집하고 도적 토벌을 공모하기로 했다.
도원결의는 맹세가 핵심
이에 장비가 자기 집 뒤편에 복숭아꽃이 한창인 과원이 있으니 내일 그곳에서 천지에 제사를 지내고 세 사람이 형제의 의를 맺어 대사를 도모하자고 제안했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가장 잘 아는 도원결의 이야기의 유래다. 세 사람이 복숭아밭에서 의형제를 맺었기에 이 이야기를 도원결의라 부른다.
하지만 이것은 가장 표면적인 함의일 뿐이다. 도원결의의 진정한 깊은 내함은 그들이 천지 앞에 발한 맹세(誓言)에 있다. 이 맹세야말로 세 사람이 공동으로 끝까지 수호해야 할 ‘의(義)’다. 즉, 그들이 형제가 된 목적은 맹세 속에 담긴 공동의 염원을 실현하기 위함이다. 이 점이 고사의 가장 관건적인 부분이다. 만약 우리가 이 맹세를 간과한다면, 그것은 책 전체의 영혼을 빼버리는 것과 같다.
책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다음 날, 복숭아밭에 검은 소와 흰 말 등 제물을 차려놓고 세 사람이 향을 피우며 거듭 절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생각건대 유비, 관우, 장비는 비록 성은 다르오나 이미 형제가 되었으니, 마음과 힘을 합쳐 곤경에 처한 이를 구하고 위태로운 이를 붙들어 주며, 위로는 국가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기를 원하나이다.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나기를 구하지 않으나, 다만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죽기를 원하나이다. 황천(皇天)과 후토(後土)시여, 진실로 이 마음을 굽어살피소서. 의리를 배반하고 은혜를 잊는다면 하늘과 사람이 함께 죽일 것이옵니다.’ 맹세를 마치고 현덕을 형으로 삼고, 관우가 그다음이며, 장비가 아우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세 사람이 천지 앞에 발한 맹세다. ‘마음과 힘을 합쳐 어려움을 구제하고 위로는 국가에 보답하며 아래로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겠다’는 것인데, 이것이 세 사람이 맺은 가장 큰 ‘의’이며 그들이 형제가 된 최대의 목적이자 소원이다. 앞으로 반드시 이를 위해 동심협력(同心協力)할 것을 ‘황천후토’가 감찰하게 했다. 옛사람이 천지에 맹세하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천지를 증인과 감찰자로 삼았기에, 만약 ‘의리를 배반하고 은혜를 잊는다면 하늘과 사람이 함께 죽일 것’이라 했다. 어느 날 누구든 맹세를 저버리고 공동의 보국안민(報國安民)의 뜻과 상호 부조의 은의를 잊는다면 천신과 세인이 그들을 토벌할 수 있다는 뜻이다. 즉, 맹세를 어기면 생명의 대가를 치르겠다는 의미다.
손견이 독한 맹세를 했다 화살에 맞아 죽다
옛사람은 신을 믿었기에 ‘신의 눈은 번개와 같다(神目如電)’고 여겼다. 하늘을 속이고 신의를 저버리는 짓은 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므로 맹세를 매우 엄숙하게 대했다. 장각은 이 때문에 악보를 받아 목숨을 잃었다. 사실 《삼국연의》에서는 장각뿐만 아니라 동오의 손견(孫堅)도 그러했다. 당시 조조가 의리로 제후들을 연합하여 의군 동맹을 맺고, 사직을 바로잡아 국적인 동탁(董卓)을 토벌하자는 맹세를 세웠다.
그러나 손견은 동탁이 불태운 낙양 궁전에서 잃어버린 옥새를 발견하자 이를 사사로이 감추고 황제가 되려는 반역의 딴마음을 품어 제후 연합군이 함께 세운 맹세를 배반했다. 그는 발각된 후에도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원소 등 대중 앞에서 하늘에 독한 맹세를 했다. 만약 자신이 옥새를 감췄다면 훗날 제명에 죽지 못하고 칼과 화살 아래 죽으리라는 내용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정말로 유표의 군사들이 쏜 화살에 맞아 뇌수가 터져 죽었으니, 그때 나이 겨우 37세였다. 과연 옥새를 감추고 하늘을 속이며 거짓말을 하고 신의를 배반한 탓에 독한 맹세가 응험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유비가 한때 대의를 잃고 마찬가지로 목숨을 잃다
유비가 결국 70만 대군을 이끌고 동오에 패하여 백제성(白帝城)에서 죽은 것 또한 맹세와 관련이 있다. 그는 평생 충의의 마음으로 보국안민의 맹세를 이행하고 한실을 보필했기에 민심이 귀부하여 날로 강성해졌고 촉국을 세웠다. 헌제가 조비에게 핍박받아 제위에서 물러나자 유비가 촉에서 대통을 이은 것 역시 한실의 부흥을 위함이었고, 위나라의 찬탈 행위를 토벌하기 위함이었다. 조자룡과 제갈량 등 신하들은 유비에게 사적인 일보다 공적인 일을 앞세워야 한다고 간언했다. 먼저 헌제의 원수를 갚고 한실을 부흥시킨 뒤에 동오에 참수당한 관우의 원수를 갚으라는 것이었다. 하나는 국가의 대의이고 하나는 형제의 사적인 정인데, 유비는 형제의 정에 치우쳐 잠시 대의를 잊고 말았다.
당초 도원결의의 근본 목적을 잊고 충언을 듣지 않은 채, 끝없는 비통 속에서 오직 죽은 관우의 복수만을 생각하며 국력을 기울여 동오를 토벌했다. 이는 국가의 공적인 인력과 재력을 사적인 일에 쓴 것이니 맹세를 어긴 셈이다. 결국 병력은 패퇴했고 충신과 양장들을 볼 면목이 없어진 그는 백제성에서 병사했다. 평생에 이 일념의 차이로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장비 역시 복수에 급급해 대의를 돌보지 않다가 목숨을 잃었다.
비록 천의(天意)가 그러하여 한실(漢室)의 기수(氣數)가 다했다 할지라도, 저자는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후인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다. 사람이 비록 정해진 안배나 세상의 흐름, 왕조의 교체를 바꿀 수는 없지만, 사람 됨됨이에는 도리가 있다는 것이다. 성공과 실패는 아쉬울 것이 없으나 그 과정에서 자신의 마음을 어디에 두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공(公)과 사(私) 앞에서, 선(善)과 악(惡) 앞에서, 신(信)과 의(義) 앞에서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하다.
역사는 끊임없이 사람마음을 점검하고 고험하는 과정이다. 최종 결과는 바뀌지 않을지 모른다. 한 왕조의 대본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며, 이것이 저자가 줄곧 드러내고 있는 진상이다. 하지만 과정 속에서 사람마음을 검증하며 인의, 충의, 신의를 지켜낼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므로 한조(漢朝)의 운수가 다했든 아니든, 황제가 폭군이 아닌 이상 신하로서 나라에 충성을 다하겠다고 세운 맹세는 실천해야 한다. 행동으로 옮겨야 하며, 성공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마음과 힘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족하고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것이다. 결국 ‘일은 사람이 꾸미나 이루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다(謀事在人 成事在天)’는 말과 같다. 이것이 바로 제갈량이 왜 안 될 줄 알면서도 끊임없이 중원을 북벌했는지에 대한 이유다. 선주 유비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천지 앞에 발한 맹세는 곧 천지와의 약속이며 반드시 응험한다. 유비가 비록 대의를 배반하고 사적인 소의(小義)를 행했을 뿐 남몰래 양심을 속이는 악행을 저지른 것은 아니나, 응보가 따르는 것은 마찬가지니 결코 가벼이 여길 일이 아니다.
유비 등 세 사람은 의형제를 맺은 후 병마를 모으고 병기와 갑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유비의 쌍고검(雙股劍), 관우의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 장비의 장팔점강모(丈八點鋼矛)가 모두 이때 만들어졌다. 그들은 500명의 의군을 이끌고 태수 유언에게 투항했다. 이후 그들은 30여 차례의 전투를 치르며 황건적을 소탕해 혁혁한 전공을 세웠고, 영웅으로서 처음 위명을 떨쳤다.
그러나 환관들이 권력을 잡고 임금을 속이며 기망한 탓에 유비는 겨우 안희현(安喜縣) 현위(縣尉)【주1】라는 작은 관직만을 얻었다. 더욱이 이들 환관은 도적을 토벌해 공을 세운 많은 이를 모함해 관직을 회수하려 획책했다. 이것이 다음의 고전적 이야기인 ‘장비가 분노하여 독우를 매질하다’를 낳게 된다.
(계속)
【주1】 안희현: 지금의 하북 정주(定州)시 동남쪽.
현위는 고대에 현령을 보좌하는 관직. 권한과 책임은 대개 도적 체포, 치안 유지 등을 포함하며 ‘무관직(武職)’에 속한다. 대략 오늘날의 현 경찰서장과 비슷하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545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