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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가 물고기만 낚는다고 말하지 말아야

경주(輕舟)

【정견망】

날씨가 따뜻해지면 강가에는 낚시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난다. 그들은 표정이 전념하고 숨을 죽여 정신을 집중하는데, 마치 물아양망(物我兩忘)의 경지에 도달한 듯 보인다. 이것이 바로 외인(外人)인 내가 사람들이 낚시하는 것을 볼 때 느끼는 감정이다. 이것은 어쩌면 중국 전통의 어부 이미지가 무의식중에 투영된 것일지도 모른다.

중국 역사상 각계각층에는 고인(高人)이 숨어 있었다. 노자는 일찍이 도서를 관리하는 관원을 지냈고, 장자는 칠원리(漆園吏)를 지냈으며, 온종일 강호의 물고기나 새우를 벗 삼아 지내는 어부들은 은일(隱逸), 지혜, 도덕적 고결함의 또 다른 대명사가 되었다.

어부 중의 의자(義者)

춘추시대 초평왕(楚平王)이 무도하여 참언으로 오자서(伍子胥)의 부친과 형을 살해하자, 오자서는 추격을 피하기 위해 사방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소관(昭關)을 지날 때 불행히도 병사들에게 발견되어 오자서는 다급히 강가로 도망쳤다. 절망에 빠져 있을 때, 한 어부가 노를 저어와 오자서가 위협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었다.

오자서는 어부에게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몰라 몸에 차고 있던 보검을 풀어 이 생명의 은인에게 증정하려 했다. 하지만 어부는 오자서의 보답을 거절하며 그에게 말했다.

“초나라 법에 오자서를 잡는 자에게는 쌀 오만 석을 하사하고 제후에 봉한다고 했는데, 어찌 백금의 가치가 있는 보검 한 자루에 비하겠는가?”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은 한 어부가 손에 닿을 듯한 오만 석의 쌀과 봉작의 하사를 마주하고도 이토록 담담할 수 있었다. 반대로 국가급 수배자를 보호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 어부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하늘이 내린 부귀를 기꺼이 포기했고, 심지어 자신을 위험한 처지에 있게 했으니, 이 고결하고 무사(無私)한 마음은 역사 속에서 밝게 빛나기에 충분하다.

어부의 달자(達者)

굴원(屈原)이 비방을 받고 강호를 떠돌 때, “온 세상이 다 흐린데 나 홀로 맑고, 모든 사람이 다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 있노라”라며 개탄한 적이 있다. 분노와 답답함 속에서 그는 생을 마감할 생각을 했다. 아마도 하늘이 가련히 여겼는지, 또 다른 어부가 달려와 권유했다.

“성인은 사물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과 더불어 옮겨갈 수 있습니다.

삼려대부(三閭大夫)여, 성인은 외물에 구애받지 않으니 세상 도리와 함께 변해야 합니다.”

하지만 나라를 보답하려는 마음이 가득하고 초나라가 어지러워질 것을 예견한 굴원이 어찌 이런 권고가 귀에 들어올 수 있었겠는가? 때로는 살아가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큰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어부는 빙그레 웃으며 굴원을 권유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는 노를 저어 노래하며 떠나갔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을 수 있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을 수 있네.”

이 어부는 이미 천하의 정세를 통찰한 듯하다. 이 세상 일은 본래 사람의 기호나 관념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니, 지나친 추구는 도리어 일종의 집착이자 망상일 뿐이다. 누구든 부국강병과 천하태평을 원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는 단지 아름다운 염원일 뿐이다. 천지에는 스스로의 도(道)가 있고 성쇠에는 스스로의 이치가 있으니, 본심으로 돌아가 자연에 따르는 편이 낫다.

어부 중의 입세자(入世者)

천하에 도가 없으면 은거하고, 도가 있으면 나타난다. 굴원과 다른 점은 똑같이 적극적으로 세상에 들어갔으나, 강태공(姜太公)의 입세(入世)는 초연함과 소탈함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조가(朝歌)의 백정 노인이 적진(棘津)을 떠나, 여든 나이에 서쪽 위수 가에서 낚시하네.”

주왕(紂王)의 무도함을 보고 강태공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조가성을 떠났다.

그는 위수(渭水) 가에 와서 낚싯대를 잡았는데, 위에는 곧은 낚싯바늘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 낚는 듯 마는 듯했다. 사실 그는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백성을 고해에서 구해낼 명군(明君)을 기다리며 서두르지도 조급해하지도 않았으니, 이 기다림이 십 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 멀리서 주문왕(周文王)이 당당한 행렬을 이끌고 공손히 다가오고 있었다…

이천여 년 전 위수 가에서는 군신이 만나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상연되고 있었으며, 이 이야기는 천 년 동안 끊이지 않고 노래 될 것이다.

어부 중의 출세자(出世者)

입세한 어부는 조복(朝服)으로 갈아입으면 군왕을 위해 성을 공격하고 땅을 점령하며 천하를 평정할 수 있다. 반면 출세한 어부는 조복을 벗으면 산수 사이에서 노닐며 도를 품고 속세 밖에 높이 깃든다.

수많은 사람의 찬송을 받는 어부 엄자릉(嚴子陵)은 옛 동창인 후한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의 소환을 여러 번 사절하고, 동려(桐廬)의 청산녹수 사이로 숨어들어 낚시를 즐겼다. 그에게 공명과 이록은 손으로 털어낼 수 있는 먼지와 같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그의 옛 동창인 유수를 만났다. 그들은 과거를 추억하며 즐겁게 대화했고, 학창 시절처럼 밤이 깊자 한 이불을 덮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자유분방함이 습관이 된 이 늙은 어부가 황제의 배 위에 발을 얹어 놓았다. 이 일로 밤에 천문을 살피던 관원들은 “객성(客星)이 제좌(帝座)를 범했습니다”며 큰일이 났다고 소동을 피웠다.

광무제가 웃으며 말했다. “괜찮다, 그것은 내 동창의 다리일 뿐이다.”

이렇게까지 했음에도 광무제는 이 늙은 어부를 붙잡아 둘 수는 없었다. 그는 결국 떠났고 조정에서 멀어졌으며, 현명한 군주에게서도 멀어졌다.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이었을까?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팔선 중 한 명인 여동빈(呂洞賓)은 시를 남겨 찬양했다.

“홀로 신선 뗏목 타고 도옹(道翁)을 찾아가니,
낚시터 높이 솟아 영롱하게 통하네.
가을 강 가없는 바람과 안개 풍경이,
모두 선생의 낚시질 한 번에 들어 있구나.”

아, 알고 보니 이분은 속세를 버리고 전심으로 수도(修道)하는 사람이었다.

어부 중 득도자(得道者)

“서새산 앞에는 백로가 날고,
복숭아꽃 흐르는 물에 쏘가리 살찌네.
푸른 삿갓에 초록 도롱이 입고,
비껴 부는 바람 가랑비 속에 돌아갈 필요 없으리.“

西塞山前白鷺飛,桃花流水鱖魚肥。
青箬笠,綠蓑衣,斜風細雨不須歸。

이것은 단지 한 수의 사(詞)일 뿐만 아니라 한 폭의 산수화이기도 한데, 이를 묘사한 이는 바로 득도한 어부 장지화(張志和)였다.

그는 명실상부한 천재 소년으로 열여섯 살에 진사에 급제하여 당숙종(唐肅宗)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그의 이름 ‘지화(志和)’ 두 글자도 황제가 하사한 것이다. 후에 일로 좌천되자 장지화는 아예 조복을 벗어 던지고 고향으로 돌아가 ‘연파낚시꾼[煙波釣徒]’이 되었다.

그가 언제 법을 얻어 수련을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삶에 대한 그의 소탈한 태도는 곳곳에서 수련자의 비범한 기개를 보여주었다. 그는 매번 시냇가에서 낚시했으나 낚싯바늘에 미끼를 끼우지 않았다. 친구 안진경(顔眞卿)이 그의 배가 낡은 것을 보고 새것으로 바꿔주려 했으나 그 역시 정중히 거절했다. 황제가 노비 두 명을 하사하자 그는 두 사람을 부부로 맺어주었다. 명예니 이익이니 정이니 하는 것들이 그의 눈에는 수련을 방해하는 속세의 물건들로 보였을 뿐이다.

그는 참됨을 지키고 기를 길렀으며 신통(神通)이 매우 강해, 눈 위에 누워도 춥지 않았고 물속에 들어가도 젖지 않았다. 한번은 안진경과 술을 마시다 흥이 나자 사람들을 위해 수상 게임을 선보였다. 자리를 물 위에 펴고 작은 배를 운전하듯 이리저리 움직였으며, 그 위에 앉아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불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물 위에서 안진경에게 손을 흔들더니 백일비승(白日飛升)하여 떠나갔다…

물론 현대인들에게는 신화 같은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그가 저술한 《현진자(玄真子)》라는 책을 통해 우리는 여전히 득도자로서의 깊은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맺음말

“외로운 배 위 도롱이 입은 노인, 홀로 차가운 강의 눈을 낚네.“
孤舟蓑笠翁,獨釣寒江雪

수천 년 동안 어부들의 활달하고 명리에 움직이지 않는 형상은 역대 인물들에 의해 형성되고 고착되었다. 어쩌면 세속을 간파한 고수는 강가에서 낚싯대를 든 노인들 속에 은거하며 당신과 나의 대화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시사(詩詞) 속에서 노래한 것과 같다.

“해변의 삿갓 쓴 노인,
굽은 등에 학의 형상이니
필시 범인이 아니로다.
예부터 어진 이들은 대개 어부로 은거하였으니..”

海濱蓑笠叟,駝背曲,
鶴形攀,定不是凡人。
古來賢哲,多隱於漁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