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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

중국 대법제자 성금(成金)

【정견망】

나는 1998년 5월 대법 수련을 시작했다. 2004년 현재 사는 곳으로 이사했는데, 입주한 뒤부터 매일 아침 연공할 때면 맞은편 건물의 한 집 방에 등불이 항상 켜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새벽 3시쯤부터 시작하여 켜져 있는 시간은 나의 연공 시간과 거의 비슷했다.

사람 그림자의 움직임으로 보아 동수가 연공하는 것은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었다. 20여 년 동안 중단된 적이 거의 없었다. 점차 이것은 나에게 연공을 독촉하는 작용을 형성했다. 게으름을 피우고 싶거나 연공하기 싫을 때마다 맞은편 등불의 주인을 생각하고, 그 켜져 있는 등불을 보며 이 구절의 법을 생각했다. “한신은 필경 속인이고 우리는 수련하는 사람이라, 우리는 그보다도 훨씬 나아야 한다.”(《전법륜》). 그러면 잠기운과 나태함이 싹 사라지고 의연히 일어나 연공했다. 20여 년간 아주 특수한 상황(타지 출장 등)을 제외하고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연공을 해냈다. 매일 연공을 잘 마치면 정신이 맑아지고 기운이 충만해지며, 세 가지 일을 견실하게 잘하여 게을리하지 않고 정진하게 된다.

그렇다, 한 속인도 취미나 다른 원인을 위해 이토록 감당할 수 있고, 또 어떤 이들은 소위 신앙과 가짜 진리를 위해 죽어도 굴하지 않으며 생명을 아낌없이 바치기도 한다. 그들 중 일부는 무신론과 진화론에 속아 죽음을 진짜 죽음으로 인지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속인조차 이런 생사(生死)를 내려놓을 수 있는데, 파룬따파 수련생이 겪지 못할 고생이 어디 있으며 내려놓지 못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수련인이 속인만 못해서야 되겠는가? 연공이라는 수련의 기본 요구, 최소한의 요구에 대해 어찌 엄숙하게 대하지 않고 나태하며 게으름을 피울 수 있겠는가?

물론 우리가 정진하는 동력은 근본적으로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굳건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우리 연공인이 만나는 일은 우연한 것이 아니다. 이 등불 한 줄기는 확실히 나에게 매일 상기시키고 수시로 재촉하는 작용을 했으며, 점(點)에서 면(面)으로 이어져 나의 정진하는 의욕을 자극했다.

주인은 의도가 없겠지만 등불에는 가치가 있다. 이것은 우리가 가져야 할 바른 믿음과 바른 깨달음이며, 사실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는 하나의 체현이자 성과다. “만고의 일은 법을 위해 왔나니”(《홍음2》 <연극 한편>), 어쩌면 이것은 사부님의 불은호탕(佛恩浩蕩)과 불법무변(佛法無邊)의 한 층 함의가 나타난 것일지도 모른다. 즉 속인의 표현을 이용해 나더러 정진해야 한다고 일깨워 주신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