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정효련(雲程曉蓮)
【정견망】
세월이 살며시 내 옷자락을 붙잡고, 때로는 선명하고 때로는 희미한 그 옛일들을 다시 눈앞으로 데려온다. 20여 년을 되돌아보니, 역사 속의 많은 순간이 마치 꿈결 같으면서도 가슴 떨릴 정도로 진실하다.
1999년 7월 20일,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그 후 첫 번째 맞는 ‘5·13’인 2000년 세계 파룬따파의 날, 나와 동수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버드나무 언덕으로 아침 연공을 하러 나갔다. 낭랑한 연공 음악은 마치 맑은 시냇물처럼 주변 공간을 정화했고, 우리의 심태는 평소처럼 담담했다. 유일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순찰하는 공안이 좀 더 많아졌다는 것이었다. 제2장 공법을 막 마쳤을 때 귓가에 “아직도 연공 하는가?”라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떠보니 주위가 공안들로 가득했다.
그렇게 나는 동수들과 함께 경찰차에 태워졌다.
현지 파출소 안에는 다른 파룬궁 수련생들도 있었다. 한 공안이 등을 돌린 채 머리에 쓴 모자를 벗어 가슴에 받쳐 들고는 창밖을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이 5·13이구나!” 그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눈물이 그득한 내 눈과 마주쳤다. 알고 보니 그는 법을 얻은 적이 있는, 수년 전부터 알고 지낸 공안이었다.
그는 다소 어찌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모두 마당으로 나가세요. 이미 식사 시간입니다.” 그러고는 손짓하며 우리더러 함께 나가서 밥을 먹으라고 신호했다.
이에 나와 동수들은 마당으로 나왔는데 정문이 열려 있었다. 그것은 분명 우리가 그 문턱을 지나 후원을 떠나라는 뜻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오성(悟性)의 차이로 인해 어떤 이는 “온 이상 나갈 생각을 안 했다!”라고 말했다. 그녀에게 정념(正念)이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 자신의 안위만 돌보고 타인의 안전을 돌보지 않을 수는 없다’는 이 한 생각이 드는 순간, 갑자기 대문이 “덩” 소리를 내며 닫혔고 우리는 모두 그 안에 갇히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단체 단식 평화 청원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사부님의 홍대하고 무량하신 자비는 경계가 다른 모든 파룬궁 수련생을 보살펴주셨다.
나는 심문실로 끌려갔다. 현장의 공안이 신문하며 기록했다.
“당신이 소장인가? 아니면 보도원인가?”
내가 대답했다.
“우리에게는 관직이 없으며, 모든 헌신은 자발적입니다.”
공안이 물었다.
“하지만 정부에서 못 하게 하는데 당신은 왜 하려는 건가?”
내가 말했다.
“파룬궁은 잘못이 없으며, 모두 사람들에게 선을 향하도록 가르칩니다.”
그는 화가 치밀어 “당신은 텔레비전도 안 보는가? 살인하고 자살하는 것도 선을 향하는 것인가?”라고 했다.
내가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연공인은 살생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으며, 자살도 살생입니다. 텔레비전과 방송은 모두 비방이며 거짓말입니다.”
그러자 공안은 말이 없었다.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파룬궁은 고덕대법(高德大法)이며 우주 대법으로, 억만 명이 연공하고 있습니다.”
공안은 여전히 말이 없더니 중국 법률이라는 글자가 적힌 두꺼운 책을 내 앞으로 밀어 놓았다. “이 안에 사교(邪敎) 취소에 관한 법률이 있으니 한번 보시오.”
내가 말했다.
“볼 필요 없습니다. 그저 중공 강택민 권력자 한마디에 취소될 수 있는 것입니까? ‘3개월 내 소멸’이 어느 나라 법입니까? 도대체 누가 무법천지입니까? 누가 정부를 대표할 수 있습니까? 누가 감히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려 합니까?” 그러면서 책을 다시 밀어주었다.
“우리는 법을 어기지 않았으니 볼 필요 없습니다.”
“그럼 서명하시오.”
내가 말했다.
“이 서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만약 당신이 그 책에서 ‘파룬궁’ 세 글자를 찾아낸다면 내가 보지요. 그렇지 않다면 당신들은 우리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공안은 책을 뒤적였으나 근거를 찾지 못하자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말했다.
“상급자에게 지시를 받을 테니, 당신을 다스리지 못하나 보자!” 말을 마친 그는 씩씩거리며 떠났다. 그 순간, 방금까지 사람을 억누르던 기세가 오히려 연기처럼 흩어졌다.
우리는 습하고 검은 방에 갇혔다. 예순 혹은 일흔쯤 되어 보이는 노공안이 빗자루를 들고 들어왔다. “좋은 사람은 이런 곳에 갇히면 안 되는데. 파룬궁 하는 사람들은 다 좋은 사람들이야. 내 가족도 연공을 하고 있네.”
그러고는 한숨을 쉬며 바닥을 쓸었다.
“내가 전부터 이런 일을 해왔지만, 수십 년 동안 착한 일을 해서 갇히는 건 본 적이 없어.”
그는 고개를 저으며 문밖으로 나갔고, 어쩔 수 없다는 듯 다시 문을 잠그며 혼잣말을 했다.
“에휴! 공안(公安), 공안이라니, 무엇이 공안이란 말인가?! 변했어! 변했어! 모두 변해버렸어!”
구류소에서도 우리는 평소처럼 연공하고 법을 외웠으며, 법을 홍보하고 진상을 알리며 법을 실증했다. 그리고 단식의 방식으로 평화 청원을 했다. 보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 구류소 소장이 간수에게 감방 문을 열게 했다.
“그들을 나가서 바람 좀 쐬게 해주어라.”
나는 감방을 나와 기지개를 켜고 제1장 공법인 ‘불전천수법(佛展千手法)’을 연공했다.
소장이 다가와 “여기는 연공 하는 곳이 아니니, 하고 싶으면 나가서 하시오”라고 했다.
나는 웃으며 그에게 대답했다.
“그럼 우리를 내보내 주어 연공 하게 해주십시오.“
20일 가까운 시간 동안 어떤 동수들, 특히 남자 동수들 중 일부는 단식으로 인해 일어나 용변을 볼 수도 없는 상태였다. 모든 것은 최선의 안배였다. 다음 날 직장 동료와 가족들이 와서 식사를 권했고, 알고 지내던 공안도 나를 데리고 나가 밥을 사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일일이 거절하며, 집으로 보내주면 밥을 먹겠다는 일관된 요구를 했다.
공교롭게도 다음 날, 나와 이름이 같은 동수와 나는 서로 부축하며 ‘벤츠’ 승용차에 태워졌다. 나의 첫 생각은 사부님께서 우리를 구하러 사람을 보내셨다는 것이었다. 동수의 두 번째 생각(내게 벽에 머리를 부딪치는 동작을 해 보였는데, 흉한 일이 많고 길한 일이 적다는 뜻이었다)은 달랐다. 조수석에는 정부 관리처럼 보이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는 차 문 잠금 버튼을 누르더니 내 이름을 불렀고, 함께 있던 동수가 대답했다. 일면식도 없던 그 관리는 뒤를 돌아 나를 보며 말했다.
“당신을 부르는 거요. 이번에 당신을 보내주는데, 하고 싶은 말 없소?”
내가 대답했다.
“우리는 잘못이 없습니다. 파룬궁은 잘못이 없습니다. 제가 더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굳이 말해야 한다면, 이 박해는 정부가 잘못한 것입니다.”
관리는 말이 없었다. 갑자기 차 안은 적막에 휩싸였고 ‘벤츠’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고개를 들어 보니 다시 그 파출소였다. 조수석의 관리가 차 문을 열었다.
“됐다, 저들이 당신들을 집으로 데려다주게 하시오.”
나는 뒤돌아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동수의 부축을 받으며 다시 두 경찰에게 인도되어 파출소로 들어갔다. 달라진 점은 우리가 그 작은 흑방에 갇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침 업무 시간이었다. 대청에서 나는 그들 사이에 앉아 있었는데, 마치 의도적으로 안배된 것 같았다. 그중 한 공안이 “우리 중에도 파룬궁 하는 사람이 있고, 나도 연공합니다”라며 다른 경찰을 가리켰다. “이 사람도 해요.” 그러면서 계란 몇 개를 건넸다.
“먼저 밥 좀 드세요. 이따가 우리에게 제5장 공법을 어떻게 하는지 좀 가르쳐주세요.”
나는 뜻밖의 일에 기뻐하며 말했다.
“밥은 먹지 않아도 좋지만, 이 파룬궁은 반드시 가르쳐드리겠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가부좌를 틀고 제5장 공법 ‘신통가지법(神通加持法)’의 수인(手印)을 했다. 마치 99년 7·20 중공 강택민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이전, 대법이 널리 전해지던 시기의 자비롭고 상화(祥和)하던 나날들로 돌아간 듯했다.
파출소 입구에는 동수의 귀가를 마중 나온 가족들로 가득했다. 우리 회사 동료와 상사들도 이미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경찰의 협조 속에 나를 부축해 승용차에 태웠다. 회사의 사무실 책상 위에는 과일과 물이 가득 쌓여 있었다.
보위과장이 말했다.
“집에 왔으니 먼저 과일도 좀 들고 물도 좀 마셔요.”
내가 말했다.
“집에 가서 먹겠습니다. 우리를 위해 그렇게나 애써주셔서 모두 감사합니다.”
회사 매니저가 물었다.
“이게 또 어찌 된 일인가?”
보위과장이 대답했다.
“누군가 110에 신고했답니다.”
경찰이 말했다.
“그럼 서명하시오.”
과장이 주저하며 나를 보았다.
“우리는 원수진 일도 없는데 말이오.”
내가 그를 대신해 말했다.
“이 일은 과장님을 탓할 수 없습니다…….”
경찰이 말했다.
“그럼 그 110 신고한 사람이나 찾으러 가야겠소. 나도 이런 일은 하고 싶지 않소. 보시오, 이게 얼마나 큰 번거로움인가.”
그러면서 우리 집 대문 열쇠를 건네주었다.
“됐어요! 이제 집에 가서 밥을 먹어도 됩니다.”
나는 가장 먼저 동수(란 아주머니)의 집으로 갔다. 아직 구류소에 갇혀 있는 동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란 아주머니가 방문을 열자, 식탁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계란 국수가 내 앞에 놓여 있었다. 그것은 마치 구류소 단식 기간 중 꿈속에서 사부님이 내게 주셨던 그 국수처럼 향긋하고 달콤했다. 나는 그만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눈물 속에 감사의 말 목이 메는데
하해와 같은 자비 사부님의 은혜로구나
오직 정진하고 다시 정진하여
사명 완수하고 서약을 이행하리
泪涌感恩语哽咽,
浩荡慈悲师恩典。
唯有精進再精進,
完成使命兑誓言。
너무나 많은 지난 이야기들이 자주 영화처럼 눈앞에 떠오른다. 글로 다 표현하기는 어려우나, 마치 책상 위에 쌓인 서간(書簡)들이 세월의 온후하고 강인함을 머금은 듯하다.
“지난날 서원(西園)에 들렀더니, 매화 꽃망울이 막 피어났더구나……”
버드나무 언덕이 다시 나타난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많은 장면이 세월의 깊은 곳으로 숨어버렸지만, 그날의 버드나무 언덕, 경찰차, 흑방, 구류소,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던 그 계란 국수는 여전히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나는 이제 그 시절 천진난만하던 소년이 아니라, 성숙을 향해가는 당당한 대법제자다.
다시 정진하리! 유암화명(柳暗花明)이라 바람 타고 춤추는 소리 들리고, 한 폭의 봄 풍경이 화면에 펼쳐지니 봄날의 꽃향기가 정원에 가득하다. 새로운 하늘 새로운 땅이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었다. 수많은 나이테가 하루와 같으니, 이 영원한 날 ‘세계 파룬따파의 날’ 5·13으로 고정되리라.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