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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 생강을 모르는 초나라 사람

고암(故岩)

【정견망】

사람은 누구나 집착하는 바가 있다. 어떤 이는 재물에 집착하여 목숨을 버릴지언정 재물은 버리지 못하고, 또 어떤 이는 명예에 집착하여 재물과 목숨을 다 버릴지언정 자신의 명예만큼은 버리려 하지 않는다.

명대 소설가 강영과(江盈科)는 《초인유불식강자(楚人有不識薑者, 초나라 사람 중에 생강을 알지 못하는 이가 있었다)》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겼다.

초나라에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생강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생강이 당연히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라고 굳게 믿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생강은 땅속에서 자라는 겁니다”라고 일러주었다. 그러나 그는 완강하게 자신의 의견만 고집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열 사람을 데려와 증인으로 삼고, 내가 타고 있는 나귀를 걸어 내기를 합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물었고, 열 사람 모두 “생강은 땅속에서 나옵니다”라고 답했다.

그 사람은 그 말을 듣자마자 벙어리가 된 듯 아무 말도 못 하고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러면서도 끝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귀는 당신에게 주겠소. 하지만 생강은 여전히 나무에서 열리는 것이오.”

모든 사람이 사실의 진상을 지적했을 때, 이 초나라 사람은 사실 더는 변명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자신이 틀린 것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틀린 것일까? 아마도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답이 있었을 것이다. 결국 그는 생강이 실제로 자라는 환경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은가. 어쩌면 그는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이미 진작에 알았으면서도, 그저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이제 더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에게는 체면이 가장 중요했을 뿐, 진상이 어떠한가는 오히려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 제2강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는 자신의 명성을 잃을까 두려워, 자기가 이 병을 얻지 못함을 한스러워한다. 그는 이 명성을 잃을까 봐 몹시 두려워하는데, 명성을 추구하는 마음이 얼마나 강렬한가! 그가 이런 소원을 내보내기만 하면, 그럼 좋다, 그 병은 단번에 그의 몸으로 전화해 온다. 정말로 이런 작용이 일어나, 그는 집으로 돌아가서 병에 걸린다. 다른 사람은 나았지만 남의 병을 봐주고 자신은 집으로 돌아가서 괴로워한다.”

많은 기공사들이 차라리 자신이 병에 걸릴지언정 자신이 병을 치료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인정하려 하지 않는데, 그 근본을 따져보면 결국 ‘명(名)’이라는 한 글자를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와 같은 일은 현실 생활 속에서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얼마 전, 나는 이러한 성향의 고객을 한 명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나에게 몇 가지 글귀와 사진 자료를 제공하며 홍보판 제작을 의뢰했다. 그런데 이후 고객이 제공한 원문 자체에 오류가 있었던 탓에 완성된 홍보판에 문제가 발생했고, 결국 새로 제작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치대로 따지자면 모든 자료를 고객 본인이 제공했으므로 이 상황의 책임은 우리에게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객은 우리가 내용을 제대로 검수하지 않고 그대로 제작했으니 여전히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 완강하게 주장했다.

결국 나는 “그렇다면 좋습니다. 저희가 다시 한 부 제작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고객은 뜻밖에도 이렇게 덧붙였다.

“비용은 내가 지불하겠소. 하지만 당신들은 반드시 당신들의 잘못이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최종적으로 우리는 고객에게 다시 제작하는 비용을 부담시키지도 않았고, 그와 더는 시시비비를 따져 묻지도 않은 채 홍보판을 새로 만들어 주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고객이 진정으로 걱정하는 것이 돈이 아니라, 회사로 돌아가 상사에게 책임을 추궁당하고 질책을 받는 것임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떻게든 책임을 외부로 전가하여 스스로 변명할 구실을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그에게는 금전적 손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책임을 지지 않는 것, 즉 체면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이와 유사한 일들은 사회에서 결코 보기 드문 일이 아니다. 물론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도 존재하는데, 이들은 명예에 집착하기보다 이익과 재물에 과도하게 집착하곤 한다.

인간 세상에 살면서 무언가에 과도하게 집착한다는 것은 수련인의 관점에서 보면 누락이 있는 것이며, 속인 사회에서는 흔히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불린다. 명예를 구하든 이익을 쫓든 간에, 그것은 모두 건강하지 못한 집착일 뿐이다.

우주에는 스스로 운행하는 법칙이 있으며, 얻음과 잃음, 복과 화(禍)는 대개 그에 상응하는 인연과 안배가 존재한다. 사람이 어느 한 가지 사물에 과도하게 집착하게 되면, 가볍게는 사소한 이리에 얽매여 외고집을 부리게 되고, 무겁게는 천리(天理)와 자연의 법칙을 위배하고 흐름을 거슬러 행함으로써 결국 자신에게 커다란 고통과 손실을 초래하게 된다.

그러므로 진정한 지혜란 악착같이 무언가를 손에 쥐는 것이 아니라, 얻고 잃음의 갈림길 앞에서 맑고 청성(淸醒)한 정신과 평온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명리를 담담하게 바라보고 집착에 이끌려 다니지 않을 때 비로소 더욱 여유롭고 자재(自在)한 삶을 살 수 있다.

[저자 소개]

강영과(江盈科, 1553~1605)는 자(字)가 진지(進之)이고, 호는 녹라산인(綠蘿山人)이며 호남 도원(湖南桃源) 사람이다. 명 만력(萬曆) 20년 진사에 급제하여 장주현령, 대리사정, 호부원외랑 등의 관직을 역임했으며, 사천제학부사 재임 중에 생을 마감했다. 그는 명말 문학 유파인 ‘공안파(公安派)’의 중요 구성원 중 한 명으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의 영성과 본성을 독창적으로 표현해야 한다(獨抒性靈, 不拘格套)”고 주장하며 이 시기 문학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