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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심령(福至心靈)

주정도(走正道)

【정견망】

‘복지심령(福至心靈)’이라는 성어의 현대적인 해석은 ‘사람에게 운이 트이면 마음도 영리하고 기발해진다’는 것이다. 현대 한어에서는 ‘복(福)’을 그저 운수로 해석하지만, 고대 한어에서 ‘복’은 복분(福分)과 복덕(福德)을 뜻했다. 운수란 단지 ‘복’의 일부분일 뿐이며, 복이 없으면 운수라는 말도 성립되지 않는다.

‘복’은 덕(德)이 가져다주는 것이다. 전생이나 현생에서 선을 행하고 덕을 쌓지 않았다면, 이번 생의 복분도 존재할 수 없다. 사람이 손재주가 좋고 마음이 영리한 것 역시 복분이 초래한 결과다.

여기에 ‘복지심령’의 의미를 잘 설명해 주는 전통문화 이야기 한 편이 있다. 오늘날 자녀 교육을 중시하는 부모들에게도 큰 깨우침을 주는 이야기다.

남송 시대 사람인 조웅(趙雄)은 천성이 소박하고 후덕했으나, 글을 배우는 데는 그리 총명하지 못했고 말솜씨도 어눌했다. 훈장 선생님이 가르쳐 준 고사(故事)도 대부분 기억하지 못했던 그는, 오직 한 가지 이야기만을 가슴 깊이 새겨두었다. 그것은 북송의 명재상 왕증(王曾)의 아버지가 평생 글자가 적힌 종이(字紙)를 공경하고 소중히 여기며 덕을 쌓고 선행을 베풀었다. 그러자 어느 날 꿈에 공자가 나타나 “네가 평생 글자 종이를 아끼고 덕을 쌓아 그 음공(陰功)이 크니, 귀한 아들을 점지해 네 가문을 일으키게 하겠다”라고 말했다는 이야기였다. 과연 그 후 태어난 왕증은 과거 시험에서 삼원(三元, 향시·회시·전시에서 모두 수석)을 차지했다.

조웅은 생각했다. ‘내가 이토록 우둔한 것은 필시 전생에 글자와 종이를 아끼지 않고 선을 쌓지 않은 탓이다. 앞으로는 반드시 좋은 일을 많이 해야겠다.’ 과연 그 선한 마음이 간절하니 자연히 보응이 따랐다. 그의 문장력은 갈수록 매끄러워져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어느 날, 조웅이 과거 시험을 치르기 위해 임안(臨安 남송의 수도)으로 가려 하자 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를 비웃었다. 과거를 보러 가던 길에 그는 숲속에 유골 한 구가 노출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이에 하인을 시켜 괭이를 빌려오게 한 뒤, 둘이서 유골을 정성껏 묻어주었다. 시험 결과가 발표되자 조웅은 뜻밖에도 향시(鄉試)에 합격해 거인(舉人)이 되었다.

이어진 회시(會試) 때가 되자 조웅은 ‘내 실력으로 거인이 된 것만도 요행인데, 어찌 회시까지 바라겠는가’라며 시험장에 가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하인의 권유로 마지못해 시험장에 들어갔다. 그런데 마침 옆방에 있던 응시자가 갑자기 병이 나 소리를 지르며 도움을 청했다. 조웅은 급히 건너가 그를 위로하고 보살펴 준 뒤, 돌아와 서둘러 답안지를 작성했다. 그런데 시험관은 그의 글에서 도리어 고풍(古風)이 느껴진다며 높이 평가했고, 발표 날 조웅은 다시 한번 합격의 영예를 안았다. 이어 임금 앞에서 치르는 전시 날, 조웅은 예전에 읽었던 몇 편의 대책문(策文)이 기억나 필력을 매끄럽게 발휘했고, 결국 제5갑(第五甲)로 급제했다.

소식이 고향에 전해지자 부모님은 물론 향리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라며 수군거렸다. “조웅의 문장이 원래 뛰어났는데 우리가 알아보지 못했던 모양이다. 황도(皇都 도성)에 가고 나서야 비로소 안목 있는 시험관을 만난 것이야.” 사람들은 그저 시험관이 문장이 좋은 자를 뽑았다고만 여겼으나, 남몰래 신명(神明)이 주관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이것은 모두 응시자의 운명과 덕행이 가져다준 결과였다.

조웅은 먼저 현위(縣尉)를 거쳐 서촉(西蜀) 태수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관직이 음덕(陰德)을 쌓아 얻은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단 한 가지도 천리에 어긋나는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 촉군에 머문 5년 동안 그는 어진 이들에게 겸손하게 가르침을 구하고 현능한 인재를 등용했으며, 재물을 탐하지 않았다. 또한 제방을 쌓는 등 백성에게 혜택을 주는 정책을 많이 폈다.

당시 효종(孝宗) 황제는 현명한 선비를 존중했기에 조정에서 관직에 새로 임명하거나 사직을 허가하는 법이 아주 엄격했다. 천거된 사람은 효종이 반드시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어 보고, 대답을 잘해야만 취임할 수 있었다. 그때 견룡우(甄龍友)라는 유명한 재주꾼이 천거를 받아 효종의 부름을 받았다.

효종이 물었다. “경의 이름이 용우(龍友)인데, 무슨 뜻인가?” 그런데 견룡우는 금란전 위에서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했고, 마치 목이 쉰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효종이 두 번이나 연달아 물었으나 답이 없자, 시종에게 명해 그를 조정 문밖으로 부축해 나가게 했다.

그런데 문을 나서자마자 견룡우는 갑자기 답이 떠올랐고 목도 더는 쉬지 않았다. 그는 후회하며 말했다. “‘폐하께서 요나 순과 같은 임금님 이시니 신이 기(夔)와 용(龍)과 같은 벗이 되고자 합니다.’ 이 한 마디가 어찌 그리 대답하기 어렵단 말인가! 정말 부끄럽구나.” 사람들은 이를 보고 운명의 힘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조웅 역시 임기를 마치고 경사에 들어와 조정을 나서기 전 황제를 알현하러 오다가 견룡우의 전말을 전해 들었다. 그는 생각했다. ‘견룡우는 당대 최고의 재주꾼으로 하나를 물으면 열을 답하는 자인데 황상 앞에서 한 마디도 못 했거늘, 학식이 얕고 말주변도 없는 내가 어찌 대답하겠는가.’ 관복을 다 차려입고 보니 시간이 너무 일러 그는 탁자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황홀한 가운데 천신(天神) 한 분이 내려왔는데, 오채 금실로 수놓은 곤룡포를 입고 허리에는 여덟가지 보배로 장식한 백옥대(白玉帶)를 맸으며 두 명의 시자가 뒤따르고 있었다. 조웅이 급히 절하며 맞이하자, 그 신선은 자신을 문창제군(文昌帝君)이라 밝히며 이렇게 말했다.

“상제(上帝)께서 네가 글자와 종이를 공경하고 소중히 여기며 음덕을 잘 쌓았으며, 관리가 되어서는 백성을 사랑하고 만물을 불쌍히 여긴 것을 아시고 지금 특별히 너를 도우러 왔다. 네가 조정에 들어갈 때 황제가 ‘경은 삼협(三峽)을 거쳐 왔는가? 풍경이 어떠하더냐?’ 하고 묻거든, 그저 ‘양쪽 산에는 나무들이 우거졌고, 날이 저물도록 소쩍새가 우옵니다(兩邊山木合,終日子規啼)’라고만 답하거라.” 말을 마친 신선은 동자들과 함께 구름을 타고 사라졌다. 조웅이 깜짝 놀라 깨어나 허공을 향해 절을 올리니 그 여운이 여전했다.

조정에 들어간 조웅이 하직 인사를 올리자, 효종이 정말로 물었다.

“경은 삼협을 거쳐 왔는가? 풍경이 어떠하더냐?”

조웅이 급히 아뢰었다.

“양쪽 산에는 나무들이 우거졌고, 날이 저물도록 소쩍새가 우옵니다.”

효종은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고개를 거듭 끄덕였다.

그 후 효종은 재상 왕옥산(汪玉山)에게 말했다.

“어제 촉중 태수 조웅이 조정에 들어와 대답하는 것을 보니, 시(詩)를 참으로 잘 알았소. 그에게 중앙관청의 핵심 책임자인 시승(寺丞)이나 시부(寺簿)의 관직을 내리도록 하시오.”

왕옥산이 나와 조웅에게 말했다.

“당신이 답한 두 구절은 두보(杜甫)의 시인데 참으로 잘 맞추었소. 진정 재치가 뛰어납니다.”

이에 조웅은 문창제군이 도와준 사실을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그러자 왕옥산이 말했다.

“과연 그랬구려! 성상(聖上)께서 당신에게 요직을 주려 하시니 앞으로 자주 대답을 올려야 할 텐데, 매번 어찌 답하겠소. 차라리 그냥 다시 촉군으로 돌아가는 편이 낫겠소.”

조웅도 이에 동의했다. 이튿날 왕옥산이 황제에게 아뢰었다. “신이 어제 성의를 전했으나, 그는 이곳에 머물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효종이 말했다. “그 사람이 이토록 명리를 탐하지 않고 담담히 물러설 줄 아니, 참으로 가륵하도다.” 그리하여 그를 절헌사(節憲使 제형안찰사)로 봉했다.

몇 년 후 조웅은 재상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나, 스스로 학식이 부족하다고 여겨 누차 재상직을 사양했다. 그러나 효종은 그의 겸손하고 담박한 태도를 볼수록 더욱 사직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느 날, 식(息) 씨 성을 가진 태수가 하직 인사를 올리는데 문지기가 물었다.

“당신의 성씨는 어찌 그리 괴이합니까?”

식 태수가 대답했다.

“춘추 시대에 식규(息媯)가 있었고 한조 때 식부궁(息夫躬)이 있었으니, 예로부터 있던 성씨인데 어찌 괴이하다 하는가?”

마침 곁에서 이 말을 들은 조웅은 이 말을 마음속에 새겨 두었다. 이어 조웅이 황제에게 정사를 아뢸 차례가 되었을 때, 효종이 물었다.

“방금 식 씨 성을 가진 태수가 물러갔는데, 세상에 어찌 그런 괴이한 성씨가 있는가?”

조웅이 아뢰었다.

“춘추 시대에 식규가 있었고 한조 때 식부궁이 있었으니, 이는 예로부터 있던 성씨이지 괴이한 것이 아닙니다.”

효종이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경의 학문이 이토록 해박하니, 진정 ‘재상은 모름지기 독서인을 써야 한다’는 말이 맞는구려.”

그러자 조웅은 방금 문밖에서 전해 들은 이야기일 뿐이라고 솔직하게 고백했고, 효종은 그의 정직함에 더욱 기뻐했다.

이 일 이후로도 황제의 질문이 있을 때마다 늘 미리 징조와 예보가 있어 단 한 번도 틀림이 없었으니, 이야말로 진정한 복지심령(福至心靈)이었다. 조웅은 재상으로 있으면서 늘 효종에게 정강의 치욕과 중원 백성들이 겪는 고초를 잊지 말 것을 간해 중원 수복을 주장했고, 주전파를 중용하고 충신들을 보호했다. 성품이 관후했던 그는 수많은 인재를 추천하고 발탁하여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훗날 관직을 사임하고 시골로 돌아가 노년을 보낼 때, 사람들은 그를 두고 인간 세상의 모든 복을 누린 전복(全福)이라 일컬었다.

조웅의 이야기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큰 깨우침을 준다. 우리가 비록 온갖 심혈을 기울여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온갖 기술을 가르쳐 영리하게 만들며 사회에서 발붙이게 하려 애쓰는 것은, 아이의 덕성(德性)을 기르는 것만 못하다. 자녀에게 인과를 명확히 알게 하고, 선한 마음으로 사람과 사물을 대하며, 선을 행하고 덕을 쌓도록 교육한다면 자연히 복지심령이 되어 복보(福報)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인위적으로 강요하는 방식은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으며, 오늘날에는 이러한 반면교사의 사례가 너무나도 많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8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