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견망】
유명무실한 한헌제(漢獻帝)가 장기간 재위한 것이 천하에 정해진 주인이 있는 상황과 없는 상황이라는 두 가지 사상적 기점을 병행시켜 ‘의(義)’의 내함을 드러내기 위함이라면, 잔인하고 포악한 동탁을 이용해 헌제를 황제로 올리는 것은 일종의 필연이다. 악인(惡人)은 자신의 무지와 파멸적인 오만방자함 속에서, 이미 정해진 역사의 격국(格局)을 만들고 가동하는 도구로 쓰인다.
동탁의 악행을 이용해 ‘연의’의 격국을 움직여
“역사는 하늘이 정하고, 문화는 신이 전한다(曆史天定, 文化神傳)”는 것은 《삼국연의》의 창작 시각이다. 즉, 5천 년 신주(神州 중국)는 하늘이 정한 무대이며, 신이 각 시대의 역사를 안배하여 서로 다른 왕조를 연출함으로써 인간에게 각 단계의 문화를 남겨주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5천 년 중국 역사는 안배된 것이며, 문화는 신이 역사를 통해 인간에게 전해준 것이다. 저자는 바로 이 시각으로 삼국의 문화적 실질을 해석하고, 이 역사가 인간에게 ‘의’의 문화를 남기려는 목적을 소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중화민족의 정통 역사관이자 문화관이다. 이런 각도에서 보아야만 옛사람과 그들이 남긴 문화를 이해할 수 있고, 소설 속 각 이야기와 인물이 등장하는 목적을 읽어낼 수 있다.
동탁의 음란함과 잔인함은, 마치 악한 세력이 무법천지한 것처럼, 권력을 휘두르고 신하들을 겁박하며, 노식을 내쫓고 여포를 매수해 정원을 살해하여 소제 주변의 군사적인 힘을 제거한 것은 표면적으로는 악인의 승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이는 한헌제 즉위라는 결과를 달성하기 위함일 뿐이다. 동탁의 성공은 명의상 한헌제의 천하를 공식적으로 기동시키고, ‘의를 연기하는(演義)’ 역사 대극의 서막을 여는 역할을 한다. 겉으로는 헌제가 수모를 당하는 듯 보이지만, 진상은 악인 동탁이 아무리 기고만장해도 결국 헌제의 천하를 열기 위해 존재할 뿐이라는 점이다. 헌제가 ‘황제 같지 않은 황제’라는 격국을 정립하고 나면, 동탁은 존재 가치가 사라져 역사 무대에서 퇴장해야 하며, 그뿐만 아니라 하늘의 징벌을 받는 참혹한 악보(惡報)를 당하게 된다.
따라서 옛사람들은 “악에는 악보(惡報)가 있으니, 응보가 없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미 정해진 역사의 목적이 달성되면 응보가 시작된다. 우리는 이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하며, 현대의 권모술수 역사극에 현혹되어 악인을 본보기로 삼거나 음모궤계(陰謀詭計)를 지혜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역사의 주된 흐름과 선을 놓치면 자신의 인생을 망치게 된다.
동탁의 포악하고 음란함: 황제를 죽이고 군주를 능멸
동탁은 금은보화와 적토마로 여포를 매수해 정원과의 결의 관계를 끊게 하고, 가장 강력한 대항 세력이었던 정원을 살해했다. 원소마저 쫓아내어 외부 지원과 궁중 무력을 모두 제거한 뒤, 소제를 손쉽게 폐위시켜 홍농왕(弘農王)으로 강등시키고 감금했다. 이후 동탁은 권력을 쥐고 아홉 살의 새 황제(헌제)를 조롱하며 조폭과 같은 잔인무도함을 마음껏 ‘연기’했다.
“동탁이 상국(相國)이 되어, 배례(拜禮)할 때 이름을 부르지 않고, 조정에 들 때 치달리지 않으며, 칼을 차고 신발을 신은 채 전각에 오르니 위세가 비길 데 없었다.”
동탁은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하는’ 헌제 시대의 첫 테이프를 끊은 권신이 되었고, 헌제는 그가 조종하는 장식품이 되었다. 그는 상국이라 불렸으나 실상은 나라를 훔친 도적(竊國賊)이었다. 폐위된 소제가 비참한 처지에서 시를 지어 한을 달래자, 동탁은 심복인 이유(李儒)를 보내 독주로 소제를 살해하고 태후와 비자들도 잔혹하게 죽였다. 소제 일가는 풀만도 못한 처지로 죽어갔다.
소설은 동탁이 “매일 밤 궁에 들어가 궁녀들을 겁탈하고 용상에서 잠을 잤다”고 묘사한다. 또한 군사를 이끌고 나가 성묘를 지내던 무고한 백성들을 학살하고 부녀자와 재물을 약탈한 뒤, 적을 물리치고 돌아왔다고 허위 보고를 하며 효수된 머리들을 성문 아래서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는 토병(土兵)이나 악패(惡霸)가 권력을 잡았을 때의 추악한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제왕과 신하, 백성 모두를 인질로 잡고 생명을 초개와 같이 여기며 포악한 악행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 어떤 이들은 질문할 것이다. 동탁이 이렇게 대단했다면 왜 스스로 황제 자리에 앉지 않았는가? 그것은 아직 천하를 완전히 통제하여 각 주군이 한실을 버리고 자신을 주인으로 섬기게 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조 황제가 자리에 있으면, 비록 실권이 없더라도 그 명의로 내리는 조령(詔令)은 권위를 가진다. 이를 어기면 반역이 되므로 동탁은 이를 이용해 다른 제후들을 통제하려 했다. 만약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면 모든 제후들이 서로 연합해 자신을 토벌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사악한 본성은 감춰지지 않았고, 소제를 살해한 뒤 보여준 하늘을 속이는 폭행은 그가 곧 이 역사 대극의 주도자에게 버림받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동탁이 멋대로 구는 것은 하늘이 눈이 없어서가 아니라, 악인을 도태시키는 하늘의 방식이다. 한 사람을 미치게 하여 일시적인 성공을 주어 천하의 공분을 사게 함으로써, 그의 죄악을 만천하에 알리고 버림받게 만드는 과정이다. 이로써 충의(忠義)의 깃발을 들고 군주를 수호하는 전쟁의 격국이 형성되고, 천하가 분열되어 각자 자신의 주인을 위해 충의를 바치는 ‘연의’의 무대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충의지신(忠義之臣)들은 동탁을 제거하기 위해 각자의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이로써 장엄한 ‘의(義)’를 연기하는 역사가 정식으로 시작된다. 먼저 월기교위(越騎校尉) 오부(伍孚)가 목숨으로 충의를 실천하며 충신의 정견(正見)을 남겨 천고에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계속)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548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