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마침내 법을 유창하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너무나도 기쁘다. 자비로운 보살핌을 내려주신 사부님께 마음 깊이 감사드리고, 무사(無私)하게 포용하고 도와준 동료 수련생들에게 감사하다.
올해 예순두 세인 나는 1999년 봄에 법을 얻었으니 나름 노(老)수련생이라 할 수 있다. 법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의 몸과 마음은 완전히 새로워졌고 온몸의 고질병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정말로 진흙탕 속에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법을 얻은 지 불과 몇 달 만에 사악한 공산당의 박해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공산당의 무신론 주입을 받았기에 불법(佛法)이나 도법(道法)이 무엇인지 몰랐고, 이것이 우주의 무량한 중생을 구도하러 온 우주 대법이라는 것은 더더욱 알지 못했다. 그저 몸이 좋아졌기에 이 법이 정말 좋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진상 자료를 배포하곤 했다. 그러다 2002년 여름, 진상을 모르는 사람의 무고로 경찰에게 집안이 발칵 뒤집히는 가택수색을 당했고, 현(縣)에서 운영하는 세뇌반에 한 달 넘게 갇혀 박해를 받았다. 그 일 이후로 나는 집에서만 법을 배우고 공을 연마하며 발정념을 했고, 물건을 살 때 진상폐(真相幣)를 조금 쓸 뿐 감히 진상 자료를 돌리지는 못했다. 세 가지 일 중에서 기본적으로 두 가지 일만 해온 셈이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는지 내게 심각한 말더듬증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내가 처음 말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는 다른 아이들처럼 발음이 정확했다고 한다. 그러다 네 살 되던 해 여름,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갑자기 말을 심하게 더듬기 시작했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늘 두려워했다. 법을 배울 때도 마음속으로만 묵독(默讀)을 했다. 마음속으로 읽을 때는 아무리 매끄러워도 입 밖으로 소리를 내면 바로 말을 더듬었고, 혼자 집에서 큰 소리로 법을 읽을 때도 예외 없이 더듬었다. 말더듬증은 늘 나를 떠나지 않는 거대한 그늘이었다.
십여 년 전,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딸이 결혼하여 아이를 낳으면서 나에게 아이를 돌봐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나는 딸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다행히 고향의 수련생이 딸의 집 근처에 사는 장(張) 자매라는 수련생을 소개해 주었다. 처음 만났을 때 장 자매는 너무나 온화하고 친근하여 마치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얼굴이 하얗고 깨끗해 주름 하나 없었다. 장 자매는 내 손을 잡고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잘됐네요, 나 혼자 살고 있으니 우리 집에 와서 같이 법을 배웁시다.”
장 자매는 오전에 나가서 진상을 알렸고, 오후에는 둘이서 《전법륜(轉法輪)》을 배웠다. 당시 내가 법을 읽을 때 얼마나 당황스럽고 무안했는지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한 글자를 내뱉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특히 사부님을 부르는 ‘노(老)’ 자는 혀를 깨물다시피 해도 발음이 나오지 않았다. 오후 내내 함께 읽어도 많은 양을 읽지 못했다. 그런데도 장 자매는 단 한 번도 나를 타박하거나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늘 미소를 지으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조급해하지 마세요. 조급해하는 것도 집착심입니다”라고 말했다. 사부님께서 장 자매의 입을 빌려 나를 깨우쳐 주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점차 법을 읽는 것이 훨씬 수월해졌고, 당시 장 자매는 나보다 더 기뻐해 주었다.
우리가 함께 법을 배운 지 2년 남짓 되었을 때 장 자매가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 힘들면서도 아름다웠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감동과 행복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장 자매는 떠나기 전, 나를 지금의 동료 수련생인 손(孫) 자매에게 소개해 주었다. 예순이 넘은 손 자매 역시 소탈하고 얼굴 가득 인자함이 묻어나는 분이었다. 손 자매도 혼자 살고 있었기에, 오전에 그녀가 진상을 알리러 나가면 나는 시간제 일을 하면서 틈틈이 진상 자료를 돌렸다. 그리고 매일 오후에는 둘이서 법을 배웠다. 손 자매는 예전의 장 자매처럼 여전히 나를 배려하고 맞춰주었다.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마음을 써서 읽으라고 반복해서 말해주었다. 법을 마음속에 새기기만 하면 되니 체면을 차리지 말라는 요량이었다. 그렇게 법을 읽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내 마음은 점점 편안해지고 안정을 찾았다. 법을 읽는 것도 훨씬 매끄러워졌고 말을 더듬는 횟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전법륜》을 다 배운 후 우리는 사부님의 《각지설법(各地講法)》을 공부했다. 지난 2025년 가을부터 지금까지 짧은 기간 동안 우리는 사부님의 《각지설법》을 이미 두 번이나 완독했다. 다른 수련생들에게는 법을 읽는 것이 쉬운 일이겠지만, 내게는 그야말로 수많은 산과 강을 넘는 장정이었다. 나는 마침내 말더듬증을 이겨내고 유창하게 법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후 다른 수련생 두 명이 더 합류하면서 지금은 총 여섯 명의 수련생이 법학습 소조를 이루고 있다. 그중에는 1980년대에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일흔이 넘은 노(老)수련생도 있다. 그분이 불법으로 감옥에 갇혀 공산당의 박해를 받을 당시, 교도관들은 그가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경력을 듣고 “이런 사람까지 파룬궁을 연마하는 것을 보니 파룬궁은 분명 좋은 것이 틀림없다”라며 모두 그를 존경했다고 한다.
우리는 여전히 매일 오후 법을 함께 배우고 있으며, 전체 대조(大組) 법학습은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 두 차례 진행한다. 내가 이토록 많은 수련생 앞에서 법을 읽을 수 있게 되다니, 과거에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나중에 소조에 들어온 수련생들은 내가 과거에 얼마나 심하게 말을 더듬던 사람이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내가 법을 읽는 것을 듣고는 다들 글자 하나하나가 또박또박하고 명확하다며 잘 읽는다고 칭찬한다.
지금까지 나는 《전법륜》을 다섯 번 외웠고, 정성 들여 두 번을 필사했으며, 여섯 권의 《홍음(洪吟)》을 모두 한 번씩 필사했다. 법을 외우고 필사하면서 대법을 수련하는 무한한 즐거움을 체득했고, 내면 깊은 곳은 갈수록 맑고 깨끗해지고 있다.
이제 나는 집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직접 대면하며 편안하게 진상을 알릴 수 있게 되었다.
이 자리를 빌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가없는 감사를 드린다. 아울러 오랜 세월 동안 릴레이 하듯 무사하게 나를 포용하고 도와준 동료 수련생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전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9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