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사자 그림”으로 병을 고친 기적

사운(謝雲)

【정견망】

많은 사람의 인식 속에서 질병이란 신체에 병변이 발생한 것이므로, 신체를 대상으로 치료를 진행하기만 하면 된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상에는 불가사의해 보이는 병치료 이야기가 수없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이는 마치 사람들에게 질병의 원인이 반드시 우리가 육안으로 보는 수준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며, 치료 방법 역시 때로는 일반인의 이해를 뛰어넘는다는 점을 일깨워 주는 듯하다.

고서 《팔조궁괴록(八朝窮怪錄)》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고광보(顧光寶)는 그림을 잘 그렸다. 건강(建康)에 육개(陸溉)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학질(말라리아)을 앓은 지 여러 해가 되어 이름난 의사를 두루 찾아다녔으나 오랫동안 치료해도 낫지 않았다. 하루는 고광보가 그를 찾아갔고, 육개는 그를 병상 앞으로 청해 들이며 말했다.

“내가 이 병을 앓은 지 오래되었는데, 어떻게 치료해도 좋아지지 않으니 당신이 그 원인을 아십니까?”

고광보는 이전에 육개가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이렇게 대답했다.

“만약 진작 알았더라면, 어찌 당신이 이토록 오랫동안 방 안에 누워 지내게 했겠습니까?”

말을 마치고 사람을 시켜 필묵을 가져오게 하더니 먹으로 사자 한 마리를 그렸고, 육개에게 그 그림을 문밖의 패방 위에 붙여 두라고 당부했다.

고광보가 그에게 말했다. “이 사자 그림을 붙여 놓으면 저절로 영험함이 있을 겁니다. 당신은 그저 경건하게 기도하기만 하면 되니, 내일이면 효과가 있을 겁니다.”

육개는 그가 시키는 말에 따라 그림을 문밖에 붙였을 뿐만 아니라, 가족들을 시켜 향을 피우고 절을 올리게 했다. 그날 밤, 사람들은 문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을 문득 들었고, 그 소리는 한참 동안 지속되다가 점차 사라졌다.

다음 날 아침, 사람들은 문밖에 붙여 둔 사자 그림의 입안과 가슴 앞에 핏자국이 선연하고, 주변 바닥에도 핏방울이 점점이 흩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육개를 여러 해 동안 괴롭히던 학질이 깨끗이 나았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를 기이하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었다. (《팔조궁괴록》)

얼핏 보기에 이 이야기는 황당하고 기괴하여 믿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질병과 생명에 대한 고대인들의 이해는 본래 현대인들의 인식과 달린 한 바가 있었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전법륜(轉法輪)》 <제7강>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우리가 가장 보편적인 것을 말하자면, 사람이 어디에 종양이 자랐고, 어디에 염증이 생겼으며, 어디에 골질증식이 생겼다는 등등이다. 다른 공간에서는 바로 그곳에 한 영체가 엎드려 있는데, 아주 깊은 공간 중에 한 영체가 있다. 일반 기공사는 보지 못하고, 일반적인 특이공능으로는 보지 못하며, 다만 사람의 신체에 검은 기가 있는 것을 볼 뿐이다. 어느 곳에 검은 기가 있으면 바로 그곳에 병이 있다는 이것은 맞는 말이다.”

이러한 인식에 따르면, 질병의 배후에는 단지 육체적 수준의 변화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공간의 어떤 생명 요소와 대응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본다면 고광보가 그린 사자 역시 결코 평범한 그림 한 장에 불과한 것은 아닐 것이다. 고인들은 흔히 “정성이 지극하면 신령하다(誠則靈)”고 말했는데, 어쩌면 사람 마음의 경건함과 그림이 담고 있는 특수한 요소가 결합했기에 일반인의 이해를 초월한 작용이 나타났을 수 있다.

사자 그림에 나타난 피 자국 역시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다른 공간에서 변화가 일어난 후 우리가 사는 이 물질 공간에 나타난 대응하는 반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고인은 흔히 “만물에는 영이 있다(萬物有靈)”고 말했다. 신전문화(神傳文化)의 각도에서 보면 천지 만물은 단순한 물질적 존재가 아니라 모두 그 생명과 내함(內涵)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고인은 하늘을 공경하고 신을 믿었으며, 자연 만물에 대해 늘 경외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근대 이후 인류는 갈수록 물질적 수준의 관찰과 연구에 의존하게 되었고, 이것이 과학의 발전을 이끈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생명, 도덕, 그리고 신성(神性)에 대한 전통문화의 인식을 점차 소홀히 하게 만들었다. 사실 고서에 실린 수많은 유사한 기록들은 인류에게 끊임없이 일깨워 주고 있다. 우주와 생명은 어쩌면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오할지 모른다는 것을 말이다.

고광보가 그림으로 병을 고친 이야기는 겉보기에는 신기해 보이지만, 실상 고대인들이 생명과 우주를 이해했던 또 다른 방식을 반영한다. 사람들이 이러한 설명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천 년 동안 전해 내려온 이 이야기들은 우리로 하여금 마음을 가라앉히고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생명의 진상이 과연 우리 눈으로 보이는 세계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일까?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