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익걸(益傑)
【정견망】
우울[抑鬱]은 사실상 ‘정(情)’을 너무 무겁게 보아, 진아(真我)의 본성(집착이 없음)을 미혹되어 잃어버린 것이다. 여기서 집착이 없다는 것은 사상이 없거나 생각할 줄 모른다는 것이 아니며, 반대로 매우 지혜로워서 하나를 가리키면 바로 꿰뚫어 보고, 한 번 생각하면 곧바로 이해하며, 논리가 매우 좋고 바르며 건강하여, 약간 대지약우(大智若愚, 큰 지혜는 어리석어 보임)의 느낌을 주지만 실제로는 조금도 어리석지 않다.
반면 집착이 있으면 흔히 매사 대사에 무감각해지고 사상도 없어지며 생각도 할 줄 모르게 되어, 더 나은 사유 층차와 논리가 없이 일 그 자체에만 매몰된다. 연애 뇌(戀愛腦)라기보다는 연정 뇌(戀情腦)라고 하는 편이 나은데, 집착이 있다는 것은 모든 것이 ‘정’을 중심으로 돌고 ‘사(私)’를 중심으로 돌며, 그 외의 것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신의 영혼이 승화될 기회를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것이다. 수련이라고? 됐다,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다, 차라리 ‘정’ 속에서 이리저리 학대당하는 것이 더 실속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렇다, 고통과 기쁨이 교차해야 비로소 자신이 아직 살아있다고 느끼고, 끊임없이 번민하고 꺾여야만 살아가는 것이라 여기니, 도대체 누가 권할 수 있겠는가.
우울이란 증상은 주로 두 가지 방면에서 오는데, 주요한 한 방면은 심각한 타격을 받아 정을 매우 무겁게 보았으나 인정받지 못해 심리적 감당이 너무나 크고, 감정의 부면(負面)적인 상해 요인을 짊어진 것이 너무 무거워 상처가 점점 가중되는 동시에 상처의 치유가 따라가지 못해 줄곧 고통 속에 있는 것이다. 흔히 아주 아주 선량한 생명이 우울해지는데, 타인을 공격할 줄 몰라 내상(內傷)이 되며, 심리적으로 속세의 홍진(紅塵)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고 영혼이 다시 상처받는 것을 최대한 회피하려 한다.
다른 한 방면은 자아(自我)에 너무나도 집착하는 것인데, 자아는 진아가 아니지만 이 역시 정을 매우 무겁게 보는 것이다. 자아는 자신을 실증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인정과 찬동을 얻기를 갈망하며, 자신과 타인에 대한 기대치가 모두 매우 높거나, 심지어 타인이 자신과 같은 정도로 정과 의리를 중히 여기길 바란다. 자아는 교만함 속의 자신감이 충격을 받고 외부의 감정이 가져다주는 만족을 찾아내지 못할 때, 소극적이고 극단적으로 부면적인 내상(內傷 내면의 상처)이 생겨나 다시 극도의 자괴감으로 변하는 것이니, 모두 극단 위에서 노니는 것이다.
우울은 극소수만이 진정으로 자가 치유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진정으로 심신이 건강한 정상인은 사실 매우 보기 드물며, 게다가 대다수 사람은 폭발하려는 마성(魔性)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마성이란 단순히 모두 사회에 보복하는 것만은 아니며, 가장 큰 마성은 흔히 ‘자살’이고 심각한 것은 타인을 살해하기도 한다. 여기서의 살해는 육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심리에 타격을 주고 자극하며 공격할 때도 타인을 살해하는 작용에 도달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이전에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상황과 완전히 같아지며, 똑같이 희생자이자 가해자가 되어 사마(邪魔)의 올가미에 이끌려 들어가게 된다.
여기서 공산사당(共產邪黨)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데, 모두들 중국 대륙에서는 우울하지 않고 불안하지 않으며 무력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말하며, 이는 사당 문화(邪黨文化)와 분리될 수 없다. 사당 문화의 체제 구조와 선전은 바로 사람이 사람을 정죄하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며, 마음과 육체를 전부 통제하여 이리저리 뒤흔들어 사람을 붕괴시키려는 것이다. 이치가 있어도 말할 곳이 없고, 선량함은 둘 곳이 없으며, 왜곡되고 사악한 것이 큰 도가 되고, 흑백은 전환될 수 있으며, 가면을 쓴 사람 얼굴은 잠재적 규칙이 제창하는 바이다. 사람과 귀신을 수시로 전환하는 것이 사악한 당 안에서 정수(精髓)를 살아낸 것이라 할 수 있으니, 마치 저 백골정(白骨精)과 같다.
오늘날 속인 사회에서도 어떤 이들은 기대와 염원 역시 실제로는 통제라고 지적하는데, 타인이 자신의 염원에 따라주기를, 자신의 생각에 따라주기를, 자신의 발걸음을 따라주기를 희망한다면 그것 역시 일종의 은폐된 통제이다. 통제가 있으면 목적이 있기 마련이며, 속인 사회의 모든 목적은 위사(爲私)한 것이지만, 사악한 당의 통제 목적은 반드시 사악하고 은밀하며 남에게 말 못 할 살인 음모가 있다.
개인적으로 이해하기로는, 한 생명의 변이(變異)는 상술한 두 가지 방면이 사실 동시에 출현하는 것이며, 집착이 다르고 비중이 좀 다를지라도 결말은 같은데 바로 정에 얽매임(情結)이다. 자아를 실증하려 하고 집착의 팽창이 있으면 자심생마(自心生魔)하게 되니, 그렇다면 여기서 수련(修煉)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음이 죽어야 도가 살아난다(心不死則道不生)는 말이 있지만, 사실은 마음이 죽는 것이 아니라 정(情)이 죽는 것이다. 물론 속인의 마음은 곧 정 속에 잠겨 있는 것이므로, 여기서의 마음은 사실 ‘정’을 가리킨다. 정에 완전히 둘러싸인 사람 마음(人心)이 죽지 않는다면 진정한 도심(道心)이 어떻게 나타나겠으며, 어떻게 마음을 바로잡겠는가. 만약 정법(正法)을 알지 못하고 안으로 자신을 찾지 못한다면, 어떻게 진아(真我)를 찾겠는가.
그러나 본인 역시 수십 년의 긴 세월을 걸어오고 나서야 이제야 근본적인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발견하게 되었다. 그동안 줄곧 개인 수련의 각도에서 대법을 실증하는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할지 알지 못했다. 다른 사람은 신체상의 문제가 수련 후 나았다고 하지만, 나는 어떠했는가? 알고 보니 나는 영혼의 문제였으며, 사령(邪靈)에게 완전히 삼켜져 소멸당할 뻔했으면서도 스스로 알지 못했고, 처음 법을 얻었을 때는 자신이 대단하고 모든 것이 좋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사존(師尊)께서 목숨을 구해주신 것이었다.
지옥에서 건져 올려졌다는 것은 과연 어떤 개념인가. 사상에서 영혼까지, 언행에서 신체까지 온통 순정(純淨)하지 못하고 모두 지옥 속에 있었던 것이니, 일찍이 순정한 진심(真心)을 능동적으로 ‘정’에게 바쳤기 때문이다. 정은 모두 자사(自私 이기적)한 것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자녀 간의 사사로운 정, 가족 정, 우정, 애정 등 끊임없이 갈구하고 찾아 헤매며 정 속에서 금을 캐내려 했다. 문제는 정 속에 어찌 진금(真金)이 있겠는가, 그저 스스로를 속이고 남을 속이는 심신이 피폐해지는 게임일 뿐이지만, 단지 자신이 머리를 돌려 깨닫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정의 독(情毒)에 중독되어 무력하게 고독(蠱)의 일원이 되었던 것이다.
오늘 개인의 진실한 경험과 감수를 써서 여러분이 거울로 삼도록 제공하며, 아울러 현재 나의 수련에 하나의 답안지를 제출하고자 한다. 만약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지 않았다면 영혼은 진작에 죽어 사마의 일원이 되었을 것이고, 마성을 능동적으로 받들어 ‘주(主)로 삼았을 것이다.
사존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함께 걸어온 동수들에게 감사드리며, 함께 노력합시다. 허스(合十).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9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