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베이성 대법제자
【정견망】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는 1997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이다. 처음 법을 얻었을 때의 기쁨과 흥분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생명이 진짜 법(真法)을 얻었다는 그 체험은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단번에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세상의 그 어떤 마난(魔難)도 나를 가로막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나에게는 ‘진·선·인(真·善·忍)’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갈등과 마난 앞에서도 나는 ‘진·선·인’으로 화해해 나갈 수 있었다. 생명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희열과 기쁨은 필설로 다 형언하기 어려웠다. 마치 혼미하게 살아가던 한 생명이 단번에 희망과 목표를 본 것 같았고, 녹슬었던 전원 플러그가 갑자기 콘센트에 꽂혀 전기가 통하면서 환하게 밝아져 단번에 모든 것을 깨달은 듯한 기분이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대대로 기다려 온 끝에 마침내 얻은 것이 아니겠는가? 기쁜 마음에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고만 싶었다!
하지만 수련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처음 법을 얻었을 때의 그 수련 상태는 오랜 수련 과정 속에서 서서히 마모되어 갔다. 마비된 상태로 세 가지 일을 하고, 매일 기계적으로 세 가지 일을 반복했다. 그래서 지난 몇 년 동안은 처음 법을 얻었을 때와 같은 상태를 계속 유지하지 못했다. 그러다 얼마 전, 나는 업무 중에서 한 차례 갈등을 겪게 되었다. 갈등 속에서 다른 길은 없었고, 오직 수련인의 기준인 ‘진·선·인’으로 자신을 요구해야만 비로소 걸어 지나올 수 있었다. 이 고비를 넘기고 난 후, 나는 내가 처음 법을 얻었을 때의 그 수련 상태를 다시 찾았음을 놀랍고도 기쁘게 발견했다.
사연은 이러하다. 우리 측과 한 회사(이하 을이라 부른다)는 몇 년 전 업무상 협력 관계에 있었다. 을의 잔금 중 일부가 차일피일 미뤄지며 회수되지 않던 중, 우리 총회사가 업무상의 이유로 회사를 폐업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회사가 폐업하면 을은 잔금을 순조롭게 돌려받을 수 없게 되기에, 이로 인해 일련의 갈등과 마찰이 발생했다.
을에서 우리 측과 소통하던 담당자는 상인의 관점에서 볼 때 이른바 ‘대책 없는 사람’이었다. 말투가 험할 뿐만 아니라 막무가내였고, 오직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며 타인은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우리 측에서 처음에 그와 접촉했던 직원 두 명 모두 그와 사이가 틀어지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회사에서는 마지막으로 나에게 그를 상대하도록 했다.
처음 그를 대할 때 나 역시 그를 견디기 힘들었고, 한때 관계가 뻣뻣해지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아니지, 나는 수련인인데 내가 어떻게 속인과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단 말인가?’ 사부님께서 《호주 수련생 설법》에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지 않으셨는가? “대법제자가 속인과 갈등을 일으키면, 그것은 모두 대법제자의 잘못이며 백 퍼센트 잘못이다.” 그렇다면 나의 잘못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왜 그와 관계가 틀어졌는가? 그것은 내가 그의 말투, 그의 강압적인 태도, 그의 막무가내와 말이 통하지 않는 점 등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대법제자임을 생각하고, 내가 잘못했으며 갈등 속에서 자신을 닦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용납할 수 없다고 여겼던 그의 나쁜 버릇들이 사실은 내 몸에도 고스란히 있다는 것을 단번에 발견하게 되었다.
이때 사부님께서 《시카고 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신 내용이 떠올랐다. “수련 중에서 당신들이 좋은 일을 만나든 나쁜 일을 만나든, 모두 좋은 일인데, 그것은 당신들이 수련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등장과 그의 나쁜 버릇들이 내 눈에 보이고 내가 느끼게 하여 타인에게 주는 상처를 알게 한 것은, 바로 사부님께서 내게 타인의 부족함을 보게 하여 거꾸로 자신을 돌아보게 하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나는 그가 나에게 준 표면적인 상처만 느끼며 인간 세상의 옳고 그름에만 머물러 있었을 뿐, 법 위에서 인식해 올라오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그는 정말로 내가 수련하도록 돕고 있었으며, 나의 부족함을 보고 그것을 제거하여 제고해 올라오도록 돕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왜 기뻐하지 않겠는가? 나는 정말로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야 마땅했다.
첫 번째 갈등과 연마를 거친 후, 나는 기본적으로 수련인의 기점에 서서 그와 업무 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사태가 발전함에 따라 을과 우리 측의 갈등은 점차 고조되었다. 을은 우리 총회사와 이전에 자신과 접촉했던 우리 측 대표를 고소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나는 을과 우리 총회사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을의 강압적이고 과격하며 무례하고 심지어 협박조인 언사 속에서도, 나는 을을 도와 총회사 측에 굽히고 들어가 소통하며 가급적 을에게 편의와 이익을 도모해 주려 애썼다. 이 기나긴 소통 과정에서 나 역시 사람의 마음(人念)이 움직여, 을이 참 좋고 나쁨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자기가 나에게 일을 처리해 달라고 부탁하는 처지이면서, 고마워하기는커녕 도리어 강압적이고 막무가내로 구는구나’ 하고 말이다.
이러한 생각이 너무 강해져 억누르지 못하고 폭발하려 할 때, 나는 깜짝 놀라 깨어났다. ‘나는 왜 아직도 나에 대한 그의 무례함을 내려놓지 못하는가?’ 안으로 찾아보니, 나는 여전히 속인의 이치에 머물러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를 위해 일을 처리해 주고 있으니, 그가 나에게 고마워하고 존경해야 마땅하다고 여겼았다. 또 그가 회사의 다른 직원들을 협박할 때는 나에게까지 불이익이 미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알고 보니 나의 사유는 줄곧 사람의 이치에서 뛰어넘지 못한 채 사람의 이치 속에서만 맴돌고 있었기에 비로소 괴롭다고 느꼈고, 자신이 그렇게 많이 베풀었음에도 마땅한 보답을 받지 못해 불공평하다고 느꼈던 것이다.
나의 문제점이 갈등 속에서 자신을 진짜로 닦지 못하고 사물의 표상에 이끌린 데 있음을 인식했을 때, 나는 진심으로 사부님께 참회했다. ‘제자가 잘못했습니다! 제자는 사부님의 고심을 깨닫지 못하고, 오직 갈등과 표상 속에서 이끌려 다녔습니다. 모든 갈등과 번거로움이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닦아 놓으신 하늘로 올라가는 길이며, 그 속에서 닦아 나와 자신을 성취하는 것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내가 을의 마지막 보증금을 찾아 수수료와 함께 을의 계좌로 송금했을 때, 마음은 흐르는 물처럼 고요했으며 그 어떤 성취감이나 대가를 바라는 마음도 없었다. 마치 험난한 여정을 겪은 후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을에서 전례 없는 답장을 보내왔다. “감사합니다!”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연공을 마친 후 주방에 가 밥을 짓는데, 문득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홀가분함, 자신감, 희열, 그리고 정념(正念)이 가득한 느낌이 찾아왔다. 아! 그것은 바로 내가 처음 법을 얻었을 때의 그 느낌이었다. 대법을 수련하는 것이 정말 좋고, 아무런 근심 걱정도 없으며, 얽매임도 없고, 갈등도 번거로움도 없는 느낌이었다. 세상의 그 어떤 갈등과 번거로움, 마난도 나를 막을 수 없을 것 같았고, 풀 수 없어 보이던 문제도 대법 속에서 자신을 진짜로 닦으니 한순간에 해결되었다.
대법 안에서 수련하는 것은 정말 좋다! 내 마음은 기뻐서 푸른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다.
개인의 얕은 인식이며, 부족한 점은 동수들께서 자비롭게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원문위치 : https://www.zhengjian.org/node/303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