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풍(唐風)
【정견망】
한 판의 바둑이 끝나갈 때 운명도 몇 번이나 다했는가,
신선과 범인의 시간은 서로 다르네
어찌 알랴 은하수의 1년 이별이
인간 세상의 하룻밤과 같지 않음을.
一局殘棋運幾終
仙凡甲子不相同
安知河漢經年別
不似人間一夕中
종성(鍾惺)은 명대(明代)의 문학가다. 자는 백경(伯敬), 호는 퇴곡(退谷)이며 호광(湖廣) 경릉(竟陵) 사람이다. 만력(萬曆) 38년(1610) 진사(進士)에 급제했다. 공부주사(工部主事)를 지냈으며, 만력 44년(1616)에 임고도(林古度)와 함께 태산(泰山)에 올랐다. 이후 관직이 복건제학첨사(福建提學僉事)에 이르렀다.
나중에 그는 관직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문을 닫고 책을 읽었으며, 만년에는 사찰에 들어갔다. 그는 같은 고향 사람인 담원춘(譚元春)과 함께 《당시귀(唐詩歸)》와 《고시귀(古詩歸)》를 공동으로 선별하여 한때 명성을 날렸고, ‘경릉파(竟陵派)’를 형성해 세상에서 ‘종담(鍾譚)’이라 일컬어졌다.
시인의 이 시 《칠석(七夕)》이 다른 시들과 다른 점은 발상이 참신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그런 친족 간의 정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시공간을 초월한 감각이 담겨 있다.
“한 판의 바둑이 끝나갈 때 운명도 몇 번이나 다했는가,
신선과 범인의 시간은 서로 다르네”
시인이 어떻게 칠석을 바둑이 끝나가는 운명과 연계시켰는지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시작하는 말에는 필연적으로 목적이 있기 마련이다. 사실 여기서 시인이 바둑판을 비유로 든 것은 아마도 일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한걸음 물러서서 보는 입장일 것이다. 한 왕조의 흥망성쇠, 한 사람의 운명이 신선의 눈에는 단지 한순간일 뿐임을 비유한 것이다.
보기에 한 왕조가 건립되어 멸망하기까지, 한 사람이 태어나 죽기까지는 매우 아득하고 긴 시간이다. 하지만 신선의 눈에는 그저 바둑 한 판을 두는 시간일 뿐이다.
“신선과 범인의 시간은 서로 다르네.”라는 말은 신계(神界)의 시간과 우리 쪽의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말한다. 중국인들이 흔히 “천상의 하루는 인간 세상의 1년이다.”라고 말하는데, 시인이 표현하고자 한 것이 바로 이러한 뜻일 것이다.
“어찌 알랴 은하수의 1년 이별이
인간 세상의 하룻밤과 같지 않음을.”
인간의 눈에는 견우와 직녀가 일 년에 단 한 번 만나는 것이지만, 인간 세상의 일 년이 하늘에서는 단지 하루에 불과하다는 것은 생각지 못한다. 그렇게 본다면, 견우와 직녀를 다시 바라볼 때 매일 만나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
시인의 안목은 이미 시간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인식을 초월했다. 시인이 이 시를 쓴 목적은 무엇인가? 단지 시공간의 초월을 쓰고 있는 것인가? 아마 아닐 것이다.
시인은 우리의 시야를 넓혀주어, 우리가 더 멀리, 심지어 아주 먼 과거와 미래까지 보게 하려는 것이다. 어쩌면 그렇다면 평소와 다른 자신, 세계, 그리고 인생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옛날 온갖 고초를 겪으며 인간 세상에 온 우리 자신, 그리고 무엇을 위해 왔는지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경문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에서 이미 우리의 유래와 목적을 알려주셨다. 우리는 머나먼 천국 세계에서 왔으며, 법을 얻기 위해 왔다.
하루빨리 깨어나고, 하루빨리 법을 얻으며, 하루빨리 원만(圓滿)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애초의 염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