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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연소 전기】 백수사에서 곤경에 처하다

앙악

【정견뉴스】

양연소전기 – 백수사에서 곤경에 처하다. (샤충펀/에포크타임스)

말하자면, 이전에 양업의 유골과 금도를 이용해 혈제를 지내려던 계획이 실패한 후, 백천조는 기세를 회복하기 위해 사파(邪派)의 스승을 청해왔다. 이 사람의 이름은 안동빈(顏洞賓)으로, 말솜씨가 뛰어나고 사술(邪術)로 사람의 마음을 미혹시키는 데 능했다. 그는 스스로 신선 여동빈(呂洞賓)의 화신이라 자처하며 소태후 앞에서 기이한 사술을 선보였고, 송나라를 멸망시킬 계책을 내놓아 소태후의 신임을 얻어 군사(軍師)로 봉해졌다.

안동빈의 계획에 따라 태후는 특사를 파견하여 서역의 흑수(黑水), 서하(西夏) 등 여러 나라와 연락해 대규모 병마를 빌려왔으며, 송나라를 물리친 뒤 천하를 나누기로 약속했다. 또한 백천조, 한창, 소천좌(蕭天佐)를 삼관 북쪽의 구룡곡(九龍谷)에 집결시켜 여러 나라의 50만 대군과 함께 전설로만 전해지던 천문진(天門陣)을 펼쳤다. 이 계획은 몇 달간의 준비 끝에 드디어 배치가 완료되었다. 총사령관 소천좌는 자신만만하게 삼관의 양연소에게 전령을 보내 도전장을 내밀었다. 만약 양연소가 이 진을 깨뜨리면 즉시 전쟁을 멈출 것이나, 감히 깨뜨리지 못한다면 땅을 떼어주고 신하를 자처하라는 내용이었다.

양연소는 이미 전방의 세작들로부터 요나라가 대군을 집결시켜 진을 쳤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번 전투가 예사롭지 않음을 직감했다. 그는 먼저 양팔매를 오대산으로 보내 진법에 능한 五郞을 청해 도움을 받기로 했고, 한편으로는 전보를 올려 진종 황제에게 삼관을 지원할 대군을 요청했다. 북송 조정의 원군은 팔현왕(八賢王)을 중심으로 대장 호연찬(呼延贊), 왕전절(王全節) 등 수십만 대군이 도착했으며, 사태군과 양가장의 여장수들도 함께 합류했다.

모두가 모이자 양연소는 세작들이 그린 진도(陣圖)를 내놓았다. 장수들은 진도를 보고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아무도 이런 진법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양오랑과 사태군도 연신 탄식하며, 아마 양업이 살아있다 해도 본 적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오랑이 제안했다. “지금은 진세(陣勢)가 불분명하나, 요군의 사령관 소천좌는 악룡(惡龍)이 환생한 자이니 마땅히 항룡목(降龍木)으로 제압해야 합니다. 제 주무기인 큰 도끼의 자루가 지난 전투에서 부서졌는데, 항룡목으로 자루를 만들어야만 복구할 수 있습니다. 이 물건은 목가채(穆柯寨)에 있다고 들었으니 사람을 보내 구해오도록 합시다.”

양연소는 즉시 초찬, 맹량 두 장수에게 군사를 거느리고 목가채에 가서 항룡목을 구해오라고 명하며 당부했다. “목가채의 병력은 적으나 채주 목우(穆羽)는 무관 세가 출신으로 능력이 뛰어나고, 그의 딸 목계영(穆桂英)은 부친보다 더 뛰어나다고 들었다. 조정에서 여러 번 토벌과 회유를 시도했으나 결말이 나지 않았으니, 너희 둘은 절대 적을 가벼이 여기지 마라.”

초찬과 맹량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우리 형제는 수년 간 전장을 누비며 수만 요군 속을 돌파해 적장의 머리를 베어오기를 주머니 속 물건 꺼내듯 했습니다. 그런데 고작 작은 산채 하나를 제압하지 못하겠습니까?” 말을 마친 두 사람은 장수와 군사들을 데리고 출발했다.

양육랑, 홀로 위험을 무릅쓰다

양연소가 말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 어찌 호랑이 새끼를 잡겠는가. 세작이 전해온 진도가 아직 완벽하지 않으니, 내가 직접 구룡곡에 들어가 적군의 진세를 살펴야 지피지기(知彼知己)하여 백전불태(百戰不殆)할 수 있다.” 장수들이 모두 만류했으나 양연소는 직접 적정을 살피겠다고 고집했다.

“저도 아버님을 따라 전선에 가겠습니다!” 이 말을 한 이는 양연소의 아들 종보(宗保 양종보)였다. 그는 갓 성인이 되어 악승(岳勝)의 휘하에서 기초 병사로 단련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양연소는 아들이 아직 미숙하다며 거절하고, 영내에 남아 장수들을 따르며 계속 단련하라고 명했다.

양연소는 친위병 몇 명을 데리고 구룡곡으로 가서 적군의 진형 배치를 정탐했다. 며칠 뒤 진형의 배치와 병력 규모를 대략 파악했으나, 귀영하던 중 불행히 적에게 발각되었다. 병력 차이가 너무 커서 양연소 일행은 급히 달아났지만, 요군의 추격을 받아 산골짜기 막다른 곳에 갇히고 말았다. 이때 요군이 독초에 불을 붙여 대량의 연기를 내뿜자, 양연소는 필사적으로 포위망을 뚫고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독한 연기가 너무 짙어 그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다행히 백룡마가 영특해서 그를 태우고 요군의 포위망을 빠르게 탈출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말 위에서 깨어난 양연소는 자신이 백수사(白水寺)라는 이름의 황폐한 고찰에 와 있음을 알았다. 사방을 살피니 절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모두 피난을 간 듯했다. 배가 몹시 고팠으나 식량은 이미 떨어졌고, 요군이 근처에 있을지 모르며 독 연기도 다 가시지 않았기에 그는 잠시 절 안에 몸을 숨기기로 했다. 고립무원의 처지가 된 양연소는 대전에서 참배하며, 만약 무사히 이곳을 나간다면 반드시 돌아와 불사(佛寺)를 중수하겠다고 서원했다.

대전을 나오니 백룡마가 절 마당의 담장을 파헤치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담장이 흙과 쌀을 섞어 쌓은 것이었다. 양연소는 서둘러 그릇을 찾아 담장 흙을 물에 씻어 쌀을 골라냈고, 절 뒤편의 샘물을 떠다 나물을 뜯어 불을 피워 밥을 지어 먹으며 겨우 몇 끼를 버텼다. 시간이 날 때면 그는 절 마당에 돌을 놓아 적군의 진형을 재현하며 적을 물리칠 계책을 구상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 요군이 멀리 떠났다고 판단한 양연소는 백룡마를 타고 삼관으로 돌아갔다. 훗날 양연소가 천문진을 대파하고 승리한 뒤, 약속대로 돌아와 백수사를 중수했다.

그 후 백수사는 양연소와의 이런 인연 덕분에 향불이 끊이지 않았고, 몇 년 뒤 현지 백성들이 비용을 모아 이 고찰을 다시 중수했다. 전설에 따르면 어느 날 천신(天神)이 현현해 절 앞의 두 산 사이에 아름다운 무지개가 나타났는데, 당시 주지였던 경혜(敬惠) 스님이 무지개가 나타난 두 산 사이에 돌다리를 세웠고 이는 훗날 현지의 명승지가 되었다. 그러나 근대에 경원(京原) 철도를 건설하면서 이 석교는 파괴되어 지금은 그 아름다운 경관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양종보, 성모를 만나 병서를 전수받다

양연소가 구룡곡으로 정탐을 떠났을 때, 양종보도 몰래 말을 타고 뒤를 따랐다. 그러나 생각지 못하게 도중에 길을 잃었고, 날이 점차 어두워지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때 사찰처럼 생긴 큰 저택에 도착한 그는 서둘러 말에서 내려 문을 두드려 도움을 청했다. 시종이 문을 열어 종보를 안으로 들였는데, 대전의 보좌에 위엄 있는 여인이 앉아 있었고 주위에는 군복을 입은 무장들이 가득 서 있었다.

양종보는 직감적으로 허스하며 여인에게 절을 올렸다. 여인이 물었다.

“너는 누구이며 왜 이곳에 왔느냐?”

양종보는 아버지를 따라 적정을 정탐하려다 길을 잃은 사연을 사실대로 말했다.

여인은 미소를 지으며 시종에게 복숭아와 고기만두를 가져와 대접하게 했다. 양종보는 사양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먹었는데, 먹고 나니 기운이 솟구치고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이어 여인이 양종보에게 병서 한 권을 건네며 말했다.

“내가 이곳에 있은 지 400여 년이 되었으나 아무도 찾아온 적이 없었다. 네가 여기까지 온 것은 나와 숙연(夙緣)이 있기 때문이다. 어서 이 병서를 익히거라. 여기엔 진법을 깨뜨리는 방법이 적혀 있으니 모르는 것은 내가 가르쳐주마.”

양종보는 즉시 병서를 받아 공부하기 시작했고, 모르는 부분은 여인이 일일이 설명해주어 절반 정도를 이해하게 되었다.

여인이 이어 말했다. “절반만 가르쳐줄 것이니 나머지는 네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 너는 부친의 뜻을 이어 황제를 보좌하고 변방을 지키며 중원 문명을 수호할 운명이니, 이 사명을 명심하여 영웅의 자손으로서 부끄러움이 없도록 하라.”

양종보가 이 말을 듣고는 가르침에 감사하며 절을 올렸다. 여인이 시종에게 종보를 안내하게 하자 시종이 말했다. “앞으로 몇 리만 가면 큰 길이 나오고, 계속 북쪽으로 가면 구룡곡이다. 하지만 너는 남쪽으로 가서 삼관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쯤 네 부친도 정탐을 마치고 삼관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종보는 시종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지시대로 말을 달려 전진하니 과연 큰 길이 나타났고 옆에 마을도 있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물으니, “당신이 온 방향에 경천성모묘(擎天聖母廟)가 있는데 오래되어 황폐해졌다”고 알려주었다. 양종보는 자신이 경천성모를 만났음을 깨닫고 경이로움을 느꼈다.

그는 남쪽으로 길을 재촉해 삼관으로 돌아왔다. 부대에 도착하니 부친이 막 정탐을 마치고 돌아와 장수들을 소집해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양종보가 서둘러 회의에 참석하자 양연소는 아들을 크게 꾸짖었다. 종보가 사사로이 영내를 이탈한 사실이 이미 위병에게 발각되어 보고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양종보는 자신이 성모를 만나 병서를 전수받은 일을 고하며 말했다. “이것은 72천문진으로, 구룡곡 정북쪽에서 남서쪽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72개의 장대(將台)가 있고 진마다 최소 5천의 병마가 있으며, 진과 진이 서로 연결되어 중후방의 옥황전(玉皇殿) 주진 10여만 병력을 공고히 지키고 있습니다. 이 진은 깨뜨리기 어려우나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절반의 파진법을 익혔으니, 나머지는 모두의 힘을 모으면 난관을 돌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양연소가 듣고 말했다.

“하늘이 돕는구나! 이는 폐하의 홍복 덕분이니 우리 군에 승산이 있다!”

이때 위병이 들어와 초찬, 맹량 두 장수가 목가채에서 패배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양종보는 그 소식을 듣고 지원군을 이끌고 가 죄를 씻고 공을 세우게 해달라고 청했다.

양연소가 대답했다. “장수와 군사 2천을 줄 터이니 가서 구원하라. 이번에 군법을 어긴 일은 처분을 잠시 미룰 것이니, 네가 공을 세워 죄를 씻을 수 있는지 시험해 보겠다.”

양종보는 즉시 명을 받들어 군사를 이끌고 목가채로 향했다. 이 임무는 단순해 보였으나 송군이 천문진을 대파하는 핵심 고리가 되었으며, 양종보의 일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결과가 어찌 되었는지는 다음 편 ‘목계영과의 첫 만남’을 기대하기 바란다.

참고자료:
《楊六郎威鎮三關口》河北人民出版社1984年出版 趙福和李巨發等人搜集
《楊家將外傳》河北少年兒童出版社1986年出版 趙雲雁搜集整理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38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