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국촌로(北国野叟)
【정견망 2021년 1월 3일】
이 태화산(太華山, 화산)은 과연 천고의 기이하고 험준함으로 이름난 곳이라, 예로부터 기인(奇人)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이 산은 북쪽으로는 황하를 내려다보고, 남쪽으로는 진령(秦嶺)과 이어지며, 서쪽으로는 위하(渭河)와 낙수(洛水)에 임해 있다. 산기슭 아래의 화음현(華陰縣) 읍은 영흥군로(永興軍路)에 속하며, 예로부터 반드시 차지해야 할 요충지였다. 선인들이 후인을 위해 험준한 절벽 위에 정상으로 통하는 돌계단을 깎아 만들었으나, 예부터 산을 오르는 길은 하나뿐이었고 올라갈수록 더욱 험난했다.
처음에는 산들바람이 불어와 소나무와 노송, 푸른 잣나무와 산의 빛깔, 돌의 색을 감상하며 걷기에 쉬운 듯했다. 한참을 오르자 돌계단이 조금씩 줄어들며 마음이 맑고 편안해졌고, 여우와 원숭이, 사슴과 각종 진귀한 새들도 보였으니 이상한 점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다시 한참을 더 가니 계단은 한 치 정도 더 짧아졌고, 가끔 서너 명의 문인 선비들이 글을 남기고 시를 읊으며 술을 마시는 등 매우 즐거운 모습도 보였다. 그러다 나중에는 어느새 계단이 절반이나 줄어들고 구름과 안개가 발밑을 스쳐 지나갔으며, 바위 틈에서 솟아난 소나무와 잣나무들 사이로 놀러온 객은 보이지 않고 오직 약초를 캐는 농부나 산촌 사람들만 남게 되었다.
바로 이러했다:
‘해는 세 장대 높이로 솟아 바람과 이슬은 사라지고,
장대(章臺)에서 말을 달리니 모자 챙이 기울어지네.’
스승과 두 제자는 앞서 산골짜기에서 지체한 시간이 적지 않아 지금 서둘러 산꼭대기로 가야 했다. 그리하여 힘껏 다리를 움직여 동북쪽 산길로 샛길을 내어 오르니, 멀리서 보면 ‘홍, 남, 회색’의 세 점이 세상에서 가장 험준한 산과 바위 숲 사이를 이리저리 누비는 것 같아 험하고도 험한 듯했다.
구름과 봉우리 사이로 황새와 꾀꼬리가 울어대고 산은 그윽한데 새소리가 들리니 참으로 평안하고 자유로웠다.
그런데 어디선가 희미하게 사람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욕심이 없으면 그 묘함을 관찰하고…… 욕심이 있으면 그 나타남을 관찰하니…… 둘은 이름만 다를 뿐 같은 것을 일컬어 현묘하다 하니, 현묘하고 또 현묘하여 모든 묘함의 문이로다……” 그렇다, 동자들이 경문을 읊고 있는 것이었다.
“……큰 완성은 모자란 듯하나 그 쓰임은 다함이 없고, 큰 가득함은 비어 있는 듯하나 그 쓰임은 끝이 없도다…… 고요함은 조급함을 이기고, 차가움은 뜨거움을 이기니, 청정(淸靜)은 천하의 바름이 되느니라……”
잠시 귀를 기울이니 이는 곧 노자(李耳)가 남긴 《도덕경》의 대도(大道)에 관한 말씀이었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전쟁의 말을 거두어 밭을 갈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전쟁의 말이 들판에서 태어나느니라.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큰 화가 없고, 얻으려는 욕심보다 큰 허물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만족할 줄 아는 만족은 항상 넉넉하니라……”
방금 이 경문 구절들을 읊은 것은 붉은 옷과 파란 옷을 입은 두 도동이었다. 스승과 제자 세 사람은 산 정상으로 가려 했고, 도인은 앞서 걸으며 속도를 좀 냈으나 제자들에게 경문을 외우게 한 만큼 두 제자를 보살펴야 했다. 도중에 잘못된 부분을 들으면 멈추어 가르쳐 주거나 큰 소리로 교정해 주었고, 가끔 걸음을 멈추고 잠시 쉬면서 본인도 한두 구절씩 외웠다. 이를테면 이런 구절이었다.
“……백성이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윗사람들이 삶을 두텁게 구하기 때문이니, 이 때문에 죽음을 가볍게 여긴다. 오직 삶에 집착하지 않는 자만이 삶을 귀하게 여기는 자보다 현명하니라.”
아마도 이 구절이 마음 깊이 와닿았는지, 도인은 흥이 나서 두 번을 더 읊었다.
잠시 후, 누군지 모를 이가 뒤이어 구절을 받았다.
“……백성이 위엄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큰 위엄이 닥치느니라…… 백성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어찌 죽음으로 그들을 위협할 수 있겠는가……”
그 목소리는 웅장하고 단전의 기운이 충만했으며, 산과 골짜기를 지나 한참이나 메아리쳤다. 홀로 우는 기러기와 원숭이 울음소리를 불러일으켜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노도와 아이들은 뜻밖의 상황에 놀랐다. 세 사람이 걷는 길은 북쪽 산길이었고 때마침 정오가 가까워져 평소 유락객이 드문 곳이었기 때문이다. 험준하기 짝이 없는 길 위에서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니, 잔도(棧道) 모퉁이에 역시 세 사람이 있었다. 가운데 한 사내는 거친 삼베옷을 입고 짧은 몽둥이를 든 채 앞에 서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4, 50대쯤 되어 보이는데 그 옆에 비단옷을 입고 붉은 예복에 높은 관을 썼으며, 턱수염이 덥수룩하여 글을 읽는 선비 같지는 않았다. 마지막에는 짧은 호미를 든 농부가 서 있었다.
서로 바라보는 동안, 그 사내가 공손히 읍을 하며 천천히 다가와 노도에게 인사했다.
“도장(道長), 안녕하십니까.”
노도는 맞절로 답례하고, 아이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안심하라고 신호를 보냈다. 이어 물었다.
“방금 읊은 분이 형장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소인 재주가 없으나, 도장께서 제자들을 훈계하시는 말씀을 듣고 옛일이 떠올라 흥이 나서 몇 구절 따라 해 보았습니다. 마음속이 시원해지더군요. 혹 결례가 되었다면 부디 도장께서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
사내는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자세히 보니 과연 호랑이 같은 눈을 부릅뜨고 영기가 발랄하며, 허리와 어깨가 탄탄하여 소나무처럼 곧게 서 있었다.
“오? 허허허…… 이보시오, 이런 황량한 산에서 지음(知音)을 만나다니 귀한 일이군요. 실례지만 그대들도 산으로 오르는 길입니까?”
“……그렇습니다.” 사내는 곁에 선 수염 난 남자를 힐끗 본 뒤 대답했다.
노도가 어찌 그 속사정을 모르겠는가. 다만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모르겠지만, 이 길은 겉보기엔 한적하고 조용해 보여도 깎아지른 절벽이라 특히 험난하고 독사나 해충이 많소. 여러 분은 다른 날 북쪽의 완만한 경사면으로 오르는 것이 좋겠소. 거긴 천척당(千尺幢), 백척협(百尺峽)의 푸른 산이 겹겹이 쌓여 있고, 약왕동(藥王洞)과 모녀동(毛女洞) 같은 별천지가 있어 마음껏 구경하며 즐길 수 있을 것이오.”
사내는 웃으며 피하지 않고 대답했다. 자신은 성이 장(張) 씨고 산동 박주(博州) 사람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평소 곤봉 다루는 법을 조금 익혔다고 했다. 현재 시국이 어지럽고 병란이 끊이지 않아 처자식을 먹여 살리려 호위무사를 하고 있으며, 이번 행보는 뒤에 있는 수염 난 원외(員外, 지방의 부자)가 강도들에게 납치당하지 않도록 지키는 길이라고 말했다. 말을 하는 동안 곁의 수염 난 남자를 가리켰다. 원외는 그가 말이 많은 것을 보고 못마땅한 듯 옆으로 몸을 틀더니, 도인을 향해 읍을 하는 둥 마는 둥 콧방귀를 뀌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노도는 신경 쓰지 않고 장 씨 사내를 향해 말했다.
“이 산에는 영약이 있기는 하나 구하기 쉽지 않소. 여기서부터 정상까지는 천천히 가면 반나절, 빨라도 두세 시간은 걸릴 것이오. 이제 정오가 가까우니 지금 올라가면 산에서 밤을 지새워야 할 것이오. 태화 오봉을 다 둘러보려면 하루 이틀은 족히 걸릴 텐데, 빈도에게도 급한 일이 있으니 이렇게 합시다……”
그러면서 소매에서 등패(藤牌) 하나를 꺼내 장 씨에게 건네며 말을 이었다.
“그대와 나도 인연이 있구려. 운대봉 정상에 도관이 하나 있으니, 두 분께서 머물 곳이 필요하시면 이 물건을 보여주시오.”
장 씨는 정직한 사내라 극구 사양하려 했으나, 원외는 그 말을 듣고 몹시 기뻐하며 호위무장에게 얼른 받으라고 재촉했다. 장 씨는 그제야 두 손으로 등패를 받아 쥐고 도인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도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무슨 말씀을, 빈도는 먼저 가보겠소.”
그리하여 노도는 아이들을 데리고 앞서 나갔다. 조 원외와 몸을 스치며 지나갈 때, 그의 머리 위에 검은 기운이 서리고 인당에 바늘을 꽂은 듯한 흉한 기색을 본 노도는 속으로 혀를 찼다. ‘딱한 원외로구나, 안타깝도다, 안타까워……’
예로부터 이르기를:
‘남을 해칠 마음은 갖지 말아야 하나, 남을 방비할 마음은 없어서는 안 된다.
선한 마음으로 위하면 복을 얻지만, 사사로운 이익을 챙기면 승냥이와 이리에게 잡아먹힌다.
빚진 것은 있는대로 갚고, 은혜는 은혜대로 갚으니,
인과 윤회는 하나도 헛된 것이 없어, 인연의 시작과 끝이 모두 여기서 비롯되노라.’
그 수염 난 원외는 본래 성이 조(趙) 씨로 대흥부(大興府) 사람이다. 본래 비단과 포목 장사를 했으나, 근래 북쪽의 전란으로 인해 말을 팔고 안장과 고삐를 판매하는 사업으로 바꾸어 큰돈을 벌어 지역의 대지주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들이 없어 대를 잇지 못했기에, 자식을 얻어 후사를 이으려 특별히 이곳으로 약을 캐러 온 것이었다. 하지만 이 조 원외가 약을 구하지도 못한 채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던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도록 하겠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44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