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봄의 맑은 날을 틈타 춤추는 백로

섬섬(纖纖)

【정견망】

뻐꾸기 날아다니며 이른 농사 권하고,
백로는 봄의 맑은 날 틈타 파닥파닥 춤추네.
천 겹의 돌과 나무 사이로 길은 멀리 이어지고,
한 줄기 산비탈 논에서는 물 흐르는 소리 들리네.

布穀飛飛勸早耕
舂鋤撲撲趁春晴
千層石樹遙行路
一帶山田放水聲

요내(姚鼐)는 청대의 저명한 문장가로, 방포(方苞), 유대괴(劉大櫆)와 함께 ‘동성삼조(桐城三祖)’로 불린다. 자는 희전(姬傳) 또는 몽곡(夢谷)이며, 실명(室名)은 석포헌(惜抱軒)이라 하여 세상 사람들은 그를 석포선생(惜抱先生) 또는 요석포(姚惜抱)라 불렀다. 안휘성 동성(桐城) 사람이다.

건륭 28년에 진사에 급제하여 예부주사, 사고전서 찬수관 등을 역임했으나, 나이 겨우 마흔에 관직을 사임하고 남쪽으로 돌아왔다. 이후 양주의 매화(梅花), 강남의 자양(紫陽), 남경의 종산(鍾山) 등지의 서원에서 40여 년 동안 후학을 양성했다. 저서로는 《석포헌전집(惜抱軒全集)》 등이 있으며, 《고문사류찬(古文辭類纂)》을 편선했다.

시인은 비록 문인이었으나 관직에 올라 재물을 모으는 데 연연하지 않고, 학문과 교육에 몰두했다. 그는 일찍이 관직을 그만두고 글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으니, 그야말로 진정한 청류아사(清流雅士)라 할 수 있다. 그의 시 《산행·뻐꾸기 날아다니며 이른 농사 권하네(山行·布穀飛飛勸早耕)》는 겉으로는 사람들에게 이른 농사를 권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학생들에게 때를 놓치지 말고 일찍이 학문에 힘쓸 것을 권하는 시이다.

“뻐꾸기 날아다니며 이른 농사 권하고,
백로는 봄의 맑은 날 틈타 파닥파닥 춤추네.”

시인은 형상적인 비유를 통해 밭을 갈려면 일찍 해야 하며, 백로 역시 봄의 맑은 날을 틈타 날갯짓을 해야 함을 말한다. 이 두 구절의 비유는 사실에 매우 부합한다. 농부나 어린아이들 모두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심지어 동요와도 같은 느낌을 준다. 여기서 ‘용서(舂鋤)’는 백로를 가리킨다.

[역주: 용서(舂鋤)는 원래 절구와 호미를 뜻하는데 백로가 먹이를 쪼아먹는 모습이 마치 농부들이 절구질이나 호미질을 하는 것과 비슷한다는 의미에서 백로와 통한다.]

“천 겹의 돌과 나무 사이로 길은 멀리 이어지고,
한 줄기 산비탈 논에서는 물 흐르는 소리 들리네.”

산을 따라 길게 이어진 길가의 나무들은 산길과 함께 높은 곳으로 뻗어 나가며 위를 향해 배열되어 있다. 같은 수평면이나 같은 층에 있지 않기 때문에, 시인은 ‘천 겹(千層)’이라는 표현으로 첩첩이 겹쳐진 산세를 묘사했으며, 아울러 행로의 아득함과 산촌의 깊숙함을 그려냈다. 산비탈 논에 도랑을 열어 물을 대니, 논둑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가 봄농사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된다.

시인은 남방의 봄농사 풍경을 매우 생동감 있게 묘사했다. 뻐꾸기의 울음소리와 공중에서 날갯짓하는 백로의 모습,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산길을 바라보며 저 멀리 논에 물 대는 졸졸 소리를 듣는다. 새소리와 물소리가 서로 이어지니 시 전체가 살아 움직인다.

고인이 시를 쓸 때는 종종 한 폭의 풍경화를 제시하곤 했는데, 시인의 이 시는 소리가 있는 동적인 그림과 같다.

백성들에게 봄농사가 중요하다는 것은 시인이 굳이 깨우쳐 주지 않아도 아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 시의 진짜 의미는 농사짓는 백성을 독촉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들에게 일찍이 글을 읽으라고 재촉하는 데 있다. 사실 봄농사나 글공부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일은 모름지기 서둘러야 한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경문 《전법륜(권2)》 〈퇴직하여 다시 연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사람의 생명은 한계가 있는 것으로, 당신은 자신의 장래에 남아 있는 시간이 아직 충분하다고 생각하는가? 수련은 아이들 장난이 아니며 속인 중의 그 어떤 일보다도 더 엄숙한 것으로, 으레 그렇게 되려니 생각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일단 기회를 놓치면 육도(六道) 중에서 윤회하게 되는데, 어느 때에 다시 사람 몸을 얻겠는가! 기회와 인연은 오직 한 번뿐이며, 내려놓지 못하는 몽환(夢幻)이 지나가버리면 비로소 잃은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수련 역시 이와 같이 서둘러야 한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수련 원만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사회는 이미 막다른 길에 다다랐으며, 대법만이 유일한 출로이다. 인연 있는 이들이 하루빨리 수련에 들어서기를 바라며,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봄농사도 서둘러야 하고 학업도 서둘러야 하듯, 수련은 더더욱 서둘러야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