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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옳고 그름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2026년 7월 11일】

인간 세상의 일들은 아마도 모두 옳거나 그르다는 인식이 존재할 것이다. 사람들은 이미 옳고 그름의 관점에서 문제를 보는 데 익숙해져 있는데, 이는 아마도 인간 사회에 정(正)과 부(負)가 함께 존재하는 이치(理)가 나타난 것일지도 모른다.

동료 수련생 A, B, C 세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는데, 현재는 화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발전했다. A와 B 수련생은 C 수련생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그녀의 많은 단점과 눈에 거슬리는 점들을 언급하며, 그녀가 잘못했고 그 단점들을 고치지 않는다면 다시는 함께 협력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이전에 서로 협력하여 진행하던 구인(救人)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그들은 그것이 C 수련생의 잘못 때문이라고 여겼다.

나는 사부님의 설법을 언급했다. ” 때 세간에서 한 수련인의 옳고 그름은 전혀 중요하지 않고, 사람 마음의 집착을 제거하는 것이 오히려 중요하며, 수련 중에서 당신이 어떻게 사람 마음의 집착을 제거하는지가 비로소 중요한 것이다. (박수) 아무리 큰 억울함에 직면해도 모두 아주 태연하게 대할 수 있고, 모두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수 있으며, 모두 자신을 위해 구실을 찾지 않는다면, 많은 일에서 당신은 논쟁할 필요조차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수련하는 이 길에는 어떠한 우연한 일도 없기 때문인데, 아마 서로 이야기하는 중에 당신을 건드리고 당신과 이해관계가 있는 모순을 발생시키는 이런 요소는 바로 사부가 마련해준 것일 것이다. 아마 그가 말한 그 한 마디가 당신에게는 매우 자극적이고, 당신의 아픈 곳을 건드렸기에, 당신은 자극을 받았다고 느낀다. 아마 당신은 정말로 억울하겠지만, 그러나 그 한 마디 말은 꼭 그가 말한 것이 아닐 수도 있으며, 아마 내가 말한 것일 수도 있다. (뭇사람 웃음) 그때 나는 당신이 이 일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려고 하는데, 그때 당신이 그를 들이받는다면 사실 당신은 나를 들이받고 있는 것과 같다.” (『각지설법10』 – <맨해튼설법>)

나는 우리가 사부님께서 설법하신 법을 사용하여 문제를 볼 수는 없을지 물었다. 상대방의 옳고 그름에 빠지지 말고, 그녀가 표현한 좋지 않은 면을 이용해 안으로 찾아 자신을 수련할 수는 없을지, 그리고 그녀의 표면적인 모습으로 동료 수련생을 가늠하지 않을 수는 없을지 말이다. 그녀가 드러낸 것은 그녀가 아직 수련하지 못한 부분일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다. 잠시라도 C 수련생의 단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며, 포용하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왜 그들이 사부님의 설법에 비추어 동료를 가늠하지 못하는지, 왜 그들은 꼭 일의 옳고 그름을 따져야만 하는지 생각했다. 아마도 그들이 동료 수련생의 부족함에 빠져 잠시 그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공간이며, 보이지 않는 공간이고, 환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환상 속에서 계속 동료 수련생의 부족함을 집착한다면 그 환상에서 벗어나기 매우 어렵고, 다른 집착심이 생겨 더욱 그 안에 갇히게 된다. 만약 집착을 내려놓고 법으로 동료를 가늠하고, 법으로 자신을 가늠하며, 법으로 마주한 일을 가늠할 수 있다면 환상을 깨뜨리고 진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왜 모순을 만났을 때 일의 옳고 그름을 보지 않고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아야 하는지 다시 깊이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심성(心性)이 제고되었는지 보는 것이다. 내가 깨달은 바로는, 한편으로 ‘옳고 그름’은 표면적으로 보면 반드시 사람의 이치로 가늠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으로 옳고 그름을 강조하는, 이 자체가 바로 틀린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속인의 이치로 당신 자신을 가늠하고 있고,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지설법10』 – <맨해튼설법>)라고 말씀하셨다.

다른 한편으로, 수련한 지 오래되었기에 우리 동료 수련생들 사이에는 경계(境界)의 차이가 있다. 다른 층차에서는 다른 표준으로 가늠하기에 일의 옳고 그름도 변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이 일을 9층에서 보면 맞는 일이지만, 10층에서 보면 틀린 일일 수도 있다. 따라서 일의 표면적인 옳고 그름을 절대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만약 9층의 사람이 잘못했더라도 그 일 속에서 심성을 제고했다면, 그는 다시 잘한 것이 된다. 10층의 사람이 그 일에서 잘했더라도, 9층 사람의 잘못에 대해 마음을 쓰고 용서하려 하지 않으며 그 부족함을 눈에 거슬려 한다면 그의 심성은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층차의 수련생들이 모순을 만났을 때, 표면적인 옳고 그름만 보지 말고 모두 안으로 찾으며, 그 일을 이용하여 심성을 제고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정오(正悟)이다.

만약 우리가 어떤 일을 만났을 때 표면적인 옳고 그름에서 벗어나 아주 높은 층차에서 문제를 볼 수 있다면, 상생상극(相生相剋)의 이치에 제약받지 않게 되지 않을까? 과연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우리는 진정한 연공인으로서 마땅히 아주 높은 층차에서 문제를 보아야 하며, 속인의 관점으로 문제를 보아서는 안된다.” (『전법륜』)를 진정으로 실천하는 것이 아닐까?

위의 내용은 착실히 수련(實修) 과정에서 법에 비추어 법을 인식한 깨달음으로,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