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대법제자
【정견망】
1. 사부님의 점화와 표층 인식
과거에 갈등과 억울함에 부딪혔을 때, 나는 안으로 찾아야(向內找)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내심 늘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나는 스스로 단지 사실을 진술할 뿐이며 살을 붙이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부님께서는 여러 번 나에게 수구해야 한다고 점화해 주셨다. 그럼에도 나는 ‘왜 단순히 사실을 진술하는 것조차 수구하지 못하는 것에 속하는가?’라며 계속 이해하지 못했다.
이후 주변에서 유사한 언행으로 인해 일어난 풍파를 보고 나서야, 나는 수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나의 인식이 너무나 단편적이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그것이 단지 개인의 심성(心性) 문제이며 자신의 제고에만 영향을 줄 것이라 여겼다. 그리하여 이처럼 ‘객관적’으로 보이는 하소연이 실제로는 정체 환경에 교란과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완전히 간과하고 있었다.
2. 한 차례 풍파가 가져다준 충격
얼마 전, 어떤 동수가 타인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을 발표하면서 풍파가 일어났다. 많은 동수가 이끌려 부면(負面)적인 관념과 원망하는 마음을 낳았고, 심지어 전달하는 자료에도 불선(不善)한 요소가 섞여 들어가기도 했다. 이로 인해 당사자 동수는 오후 내내 집중적으로 발정념(發正念)을 해서 한번 청리(淸理)해야만 했다.
이 일은 나에게 매우 큰 충격을 주었다. 동수들이 사람의 마음(人心)에 이끌려 관념과 간격을 형성하고, 나아가 문제를 인식하는 데 있어 법에서 벗어나는 것을 보았다. 그 영향은 나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나는 과거에 제삼자에게 하소연하고 동수를 말했던 나의 언행을 다시금 엄숙히 돌아보게 되었으며, 수구하지 못하는 것이 ‘남을 해치고 자신을 해친다’는 실질적인 의미를 더욱 깊이 체득하게 되었다.
3. 수구하지 못하는 실질에 대한 깊은 분석
마음을 가라앉히고 반성해 보니, 동수의 부족함은 본래 자신이 안으로 찾을 기회였다. 설령 상대방이 정말로 법에 있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하더라도, 나는 먼저 자신을 찾아보고 그런 다음 자비롭고 솔직하게 소통했어야 했다. 만약 이와 반대로 사람의 마음을 품고 제삼자에게 말한다면, 일의 성질은 완전히 변해버린다.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면, 나는 단순히 ‘사실을 진술’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늘 생각해 왔다. 사실 이는 겉보기에 무의식적인 배설 같지만, 정작 나 자신의 많은 상태가 ‘진·선·인(真·善·忍)’에 부합하지 않음을 드러내고 있었음을 인지하지 못했다.
스스로 사실을 말한다고 여겼으나, 실제로는 개인의 관념과 편견, 그리고 집착이 섞여 있었으니 마음이 생겨난 순간부터 이미 ‘진(真)’이 아니었다.
동수에 대해 불만과 원망, 심지어 한탄을 품고 자비롭게 포용하지 못했으니 이는 ‘선(善)’이 아니다.
동수의 부족함을 보면 타인에게 말하여 동조를 구하려 했으니 이는 ‘인(忍)’이 아니다.
이러한 관념이 섞인 말이 타인에게 전달될 때, 듣는 이가 법에서 인식하지 못하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구절을 행하지 못한다면 문제가 생긴다.
“제삼자도 ‘나 자신은 어디에 잘못이 있는지, 왜 나에게 보게 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미국동부법회설법》)
오히려 그 말에 따라 동수에 대해 불만과 선입견을 품고 사람의 관념으로 동수를 가늠한다면, 그것은 실질적으로 파도를 부추기고 부면 물질을 전파하는 꼴이 된다.
이 부면 물질이 동수들 사이에 퍼져나감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사람 마음에 이끌려 집단적인 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 이러한 영향 아래에서 관련 동수에 대해 편향된 인식을 갖기 쉽고, 동수들끼리 편을 가르게 만든다. 어떤 이는 무의식적으로 한쪽 말만 믿고 다른 쪽을 배척하며, 심지어 일정 범위 내에서 동조하고 부화뇌동하게 만든다. 겉으로는 문제를 토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어느샌가 패거리를 짓고 다른 견해를 배척하는 상태로 빠져들게 된다. 그리하여 본래 개인 수련 중의 심성관(心性關)이어야 할 것을 집단의 관념과 간격으로 변질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수련인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구세력(舊勢力)에게 틈을 타 이용당하기 매우 쉽다.
이 단계에 이르면 수구하지 못하는 것은 이미 정체를 교란하는 파괴적인 요소로 변하게 된다. 그것은 자신의 심성 제고를 방해할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변 동수들의 사람 마음을 부추겨 심지어 동수의 층차를 떨어뜨리게 만든다. 동시에 간격을 만들어 정체가 사람을 구하는 환경을 파괴한다.
이때 이르러서야 나는 수구하지 못하는 것이 결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몇 마디 한 것 정도로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참으로 체득했다. 그것은 개인의 수련과도 관계가 있고 정체적인 환경과도 관계가 있으므로, 결코 가벼운 문제로 보아서는 안 된다.
4. 다른 공간에서의 전개: 직접 경험한 ‘검은 벽’
수련은 극도로 엄숙한 것이다. 입을 닦지 않아 형성된 부면적인 요소는 다른 공간에서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재하는 파괴적인 물질이다. 이에 대해 나는 한 차례 깊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2년 전, 나는 한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었다. 정보의 비대칭과 수구하지 못한 부실한 소문들로 인해 주변의 일부 동수들이 나에 대해 부면적인 관념을 품게 되었다. 그 좋지 않은 관념과 물질이 나의 공간장(空間場)으로 직접 압박해 들어왔고, 다른 공간에서 약 2센티미터 두께에 수 평방미터 크기의 검은 장애물을 형성했다. 이 때문에 나는 발정념조차 할 수 없었다. 결국 동수들의 자비로운 도움으로 우리는 함께 나흘 동안 집중적으로 발정념을 하여 청리했고, 그제야 이 마난(魔難)의 상태가 점차 완화되었다.
이 일은 나에게 입을 닦지 않아 형성된 부면 요소가 단지 언어적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다. 배후에서 논란, 원망, 관념이 다른 공간에 형성한 물질은 수련인의 정념과 수행을 직접 교란하며, 정체의 협조 환경을 파괴하고 사람을 구하는 효과에까지 영향을 준다. 수련에는 농담이 없다. 우리가 무심코 뱉은 한마디 불평이 어쩌면 동수의 몸을 누르는 거대한 바위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5. 제고 후의 착실한 수련 체현
내가 법에서 수구하지 못하는 것이 동수와 정체에 미치는 심각한 위해를 진정으로 인식한 후, 나는 구체적인 환경 속에서 나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기 시작했다. 아래는 최근 법에서 바로잡은 두 가지 실제 사례이다.
사례 1: 동수의 진아(真我)와 가아(假我)를 구분하고, 부면적인 정보에 이끌리지 않으며, 구세력의 배치를 따르지 않음
이전에 사부님께서는 자비롭게 나에게 점화해 주시며, 동수의 ‘참된 나(真我)’와 ‘가짜 나(假我)’를 구분하고 동수에 대한 관념을 버려야 한다고 하셨다. 동수의 참된 나는 우주의 ‘진·선·인’ 특성에 완전히 동화된 위대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반면 법에 있지 않은 모습들은 설령 과거에 나에게 상처를 주었을지라도 동수의 진정한 자신이 아니며, 후천적인 관념과 집착, 그리고 구우주 요소의 교란 아래 나타난 가상일 뿐이다.
또한 사부님께서는 동수에게 부족함이 있을지라도 반드시 사부님의 자비로운 인도 아래 법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바로잡을 것임을 믿으라고 점화해 주셨다.
따라서 다른 동수가 나에게 타인에 대해 부면적인 소식을 전하려 할 때, 나는 즉시 스스로에게 경고했다. 표면적인 시비와 옳고 그름에 빠지지 않고 동수의 참된 나와 가짜 나를 구분하며, 정념으로 동수를 바라보는 기점을 지켜 스스로가 부면적인 물질이 확산되는 통로가 되지 않도록 했다.
심성을 지키자 유사한 상황이 다시 나타났을 때 법리가 자연스레 머릿속에 드러났고, 나에게 깨닫게 해주었다. 그 일의 갈등은 서로의 공간장 속에 있는 ‘대립’과 ‘자비롭지 못함’에서 기인한 것이며, 내가 본 것 역시 내 자신의 사람 마음과 집착이 투영된 결과라는 점이다. 눈앞의 모든 것은 그저 나의 집착을 겨냥해 나타난 가상일 뿐이며, 사부님께서 이를 빌려 나에게 안으로 찾고 심성을 제고하라고 점화해 주신 기회였다.
그 순간, 나는 표면적인 현상에 끌려가지 않을 수 있었고, 즉시 자신을 돌아보며 안으로 찾아 내 안의 대립과 자비롭지 못함을 닦아내었다.
사례 2: 사람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말을 전하지 않으며, 동수의 수련 환경을 수호
며칠 전, 나는 어떤 동수의 심성에 명백한 부족함이 있는 것을 보았다. 당시 나는 다른 동수에게 ‘선의의 일깨움’을 해준다는 핑계를 품고 관련 상황을 그에게 발송했다.
메시지를 보낸 후, 내 머릿속에 사부님의 《2004년 뉴욕국제법회설법》 중 “당신 자신을 실증하고 있는지, 아니면 법을 실증하고 있는지, 바로 이 문제이다.”이라는 설법이 스쳐 지나갔다. 이는 나로 하여금 최근 수구하지 못하는 심성의 숨은 화근에 대해 깊이 인식한 부분과 연관 짓게 했다. 나는 반성했다. 나의 이른바 ‘선의의 일깨움’은 온전히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었으며, 그 속에는 내가 명확히 보고 있다는 것을 실증하고 타인의 생각을 좌우하려는 사심(私心)이 섞여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법리적인 면에서 볼 때, 동수가 나에게 보여준 심성의 부족은 나로 하여금 안으로 찾고 스스로를 제고하게 하기 위함이지, 나보고 평가하거나 전파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그것은 사부님께서 그의 표현을 이용해 나의 제고를 도와주시는 것인데, 내가 어찌 사람의 생각으로 이 일을 대하며 간접적으로 그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야말로 스스로 사부님의 배치를 인정하지 않고, 100%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지(信師信法) 않는 표현이 아닌가?
그 순간 나는 깊이 깨달았다. 동수에 대해 관념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나에게 누락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생각을 움직였을 뿐만 아니라 제삼자에게 이야기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행위는 본래 개인 수련 중의 문제여야 했을 것을 억지로 더 많은 사람의 관념과 간격으로 변질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설령 당사자들 사이에 향후 갈등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들의 수련 중에서 마주하고 제고해야 할 부분이다. 어쩌면 다른 동수들은 이러한 집착이 없어서 아예 이런 모습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이러한 부면적인 소식을 전파하는 것은, 본래 화목하게 지내며 아무런 간격이 없었을 동수들에게 부면적인 관념을 심어주어 내 손으로 직접 간격을 만드는 격이니, 이 얼마나 자비롭지 못한 행동인가!
문제의 엄숙함을 인식하고, 상대방이 아직 읽지 않은 틈을 타 즉시 메시지를 회수하고 모든 내용을 삭제했다. 그리하여 근원에서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했다.
맺음말
과거에 나는 수구에 대해 단지 입을 조심하는 것 정도로 가볍게 여겼다. 이제 수구하지 못하는 심성의 숨은 화근을 깊이 파헤치면서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겉보기에 간단한 몇 마디 하소연일지라도 실질적으로는 부면적인 물질을 전파하고 구세력의 배치를 따르는 길이다. 수구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수련을 심각하게 교란할 뿐만 아니라, 무형 중에 동수들이 법에서 벗어나게 하고 동수의 층차를 떨어뜨리며, 동수들 사이에 간격을 만들고 정체의 수련과 사람을 구하는 환경을 파괴한다. 이를 통해 나는 오직 사람 마음을 닦아내고 정념과 자비로 정체를 수호하는 것만이 수련인으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신성한 책임임을 더욱 똑똑히 보게 되었다.
이제 다시 돌아보니, 동수들이 동일한 시기에 법을 얻어 수련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인연인지 더욱 깊이 다가온다. 모든 동수가 각자의 환경 속에서 압력과 시험을 견디고 있으며, 비틀거리면서도 ‘진·선·인’에 동화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동수들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선하게 대해야 한다. 동수의 부족함을 보면 먼저 자신을 닦고, 모순을 보면 먼저 안으로 찾으며, 자비와 선의로 교류하고, 선념(善念)으로 동수를 바라보며, 정념(正念)으로 정체를 수호해야 한다. 오직 이렇게 해야만 사부님의 자비로운 고도(苦度)에 보답할 수 있고, 동수들 사이의 이 소중한 성연(聖緣)을 저버리지 않을 수 있다.
이상은 내 현 단계의 얕은 인식이며, 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동수들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동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허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4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