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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上士)의 대답 —— 도홍경 시 해독

청풍(淸風)

【정견망】

산속에 무엇이 있는가,
고갯마루에 흰구름이 많습니다.
오직 스스로 기뻐할 뿐,
임금께 가져다 선물할 수는 없네.

山中何所有,岭上多白云。
只可自怡悦,不堪持赠君。

도홍경(陶弘景 456~536년)은 자가 통명(通明)이며 단양(丹陽) 말릉(秣陵 지금의 남경) 사람이다. 스스로 화양은거(華陽隱居 화양에 은거하는 사람이란 뜻)라 호를 지었으며, 남조 제(齊)나라와 양(梁)나라 시기의 유명한 의학자, 연단가(煉丹家)이자 문장가였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산중 재상”이라 불렀다. 저서로는 《본초경집주(本草經集注)》, 《집금단황백방(集金丹黃白方)》 등이 있다.

도홍경은 재능이 아주 뛰어나 젊은 날에 이미 나중에 양나라를 건국하는 양무제(梁武帝) 소연(蕭衍)과 알았다. 소연이 제위에 오른 후, 모산(茅山) 화양동(華陽洞)에 은거하던 도홍경에게 거듭 벼슬길에 나와 관리가 될 것을 희망했으나 도홍경은 끝내 흔들리지 않았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양무제가 일찍이 조서를 내려 그에게 물었다.

“산중에 무엇이 있기에 벼슬길에 나와 산에서 내려오지 않는가?”

이에 도홍경의 이 시 《조문산중하소유부시이답(詔問山中何所有賦詩以答)–주상께서 산속에 무엇이 있는가 물으신 부시에 대한 답변》을 지어 황제의 물음에 답변하며 자신의 뜻을 밝혔다.

또 다른 설에 따르면, 이 시는 도홍경이 은거한 후에 제(齊) 고제(高帝) 소도성(蕭道成)의 조서에 답하기 위해 지은 것이라고도 한다. 두 가지 설 중 어느 것이 더욱 믿을 만한지는 오늘날에 와서 확실히 고증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시 속에 표현된 깊은 뜻을 이해하는 데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시 전문이 단 네 구절에 불과하고 문자도 평이해서 한눈에 척 보고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자세히 생각해보면 또 불가사의함을 느끼게 한다. 산속에 과연 흰구름이 있다지만 흰구름은 산중만의 전유물이 아님에도, 도홍경은 어째서 하필 “고갯마루에 흰구름이 많습니다”로 황제에게 대답했을까?

이로 미루어 볼 때, 시 속의 “흰구름”은 단순히 자연계 속의 구름만이 아니라, 세속을 초월한 마음의 경지와 수련이 도달한 경지를 상징한다.

사람들은 흔히 도홍경을 은사(隱士)라 부르지만, 오직 “은사”로만 그의 일생을 개괄하는 것은 그다지 정확하지 않다. 은거하는 이들이 모두 도를 닦는 것은 아니며, 도홍경의 경력과 저서로 미루어 볼 때 그는 벼슬길을 멀리했을 뿐만 아니라 진실로 도가의 수련에 들어섰고 의약과 양생, 단도(丹道)를 연구했다. 그의 은거는 단순히 세속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욱 높은 생명의 경지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노자는 말했다. “상사(上士)는 도를 들으면 부지런히 행하고, 중사(中士)는 도를 들으면 있는 듯 없는 듯하며, 하사(下士)는 도를 들으면 크게 웃는다.”라고 했다.

도홍경은 의심할 바 없이 “부지런히 행하는” 상사에 속한다. 황제의 거듭된 초빙 앞에서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했다. 왜냐하면 그는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벼슬길에 나아가 얻을 수 있는 것이란 기껏해야 속인사회에서의 공명(功名)과 이익에 불과하며, 이러한 것들이 아무리 대단할지라도 결국 찰나에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말이다. 그에 비하면 수련이 가져다주는 생명의 승화와 경지의 향상이야말로 그가 진정으로 소중히 여기는 것이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법 중에서 말씀하신 돌을 줍는 사례와 자뭇 흡사하다. 속인들은 흔히 명리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올바르고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 여긴다. 그러나 수련인의 눈에는 세상 사람들이 보배처럼 여기는 그러한 것들이 어쩌면 마땅히 내려놓아야 할 집착에 불과할 뿐이며, 일생을 허비해 가며 추구할 만한 가치는 전혀 없다. 사물을 가늠하는 표준이 다르니, 내리는 선택 역시 자연히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 시에는 또 다른 한 층의 의미가 담겨 있다. 양무제든 제고제든 비록 천자의 자리에 올랐다 할지라도 결국은 속인에 불과하다. 그들이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자연히 그에 상응하는 복분과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수련에 들어서지 못한 이상 여전히 명·리·정(名·利·情) 속에 머물러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도홍경이 어째서 세상 사람들이 꿈에 그리며 얻으려 하는 고관대작의 녹을 마다하고 차라리 산중에 남으려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기에 “산속에 무엇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도홍경은 이미 수련 속에서 생명의 대자재(大自在)를 체험했다. 마음속에 더욱 높은 추구가 생겼으니, 속인 사회의 명리가 어찌 그를 쉽게 움직일 수 있겠는가?

“오직 스스로 기뻐할 뿐,
임금께 가져다 선물할 수는 없네.“

이 두 구절이야말로 이 시에서 가장 깊이 있는 부분이다. 수련 경지의 향상 및 생명이 승화된 후에 체득한 자재와 기쁨은 손에 쥐고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수 있는 구체적인 물건 같은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경지의 생명은 세계에 대해 인식과 느낌이 서로 다르다. 수련인이 친히 실증해 얻은 모든 것은 오직 스스로 체험할 수 있을 뿐 언어로 온전히 표현할 순 없으며, 더욱이 아직 수련에 들어서지 않은 사람에게 직접 건네줄 수도 없다. 이것이 어쩌면 바로 “임금께 가져다 선물할 수는 없네”에 담긴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도홍경이 벼슬길을 거절했다고 해서 수련인들이 모두 사회를 멀리하고 책임을 거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속인 사회에는 다스릴 사람이 필요하며, 누가 관리가 되고 누가 군왕을 보좌할 것인가 하는 것 역시 저마다의 사명과 인연이 있다. 관리들 중에도 도를 구하는 이가 있을 수 있고, 수련인 역시 특정한 역사 시기에 군왕을 보좌하고 천하를 안정시키는 책임을 짊어질 수 있다. 예컨대 강자아(姜子牙)가 주 무왕을 보좌하고 구처기(丘處機)가 칭기스칸에게 간언한 것은 걷는 길이 도홍경과는 다르다.

그러므로 도홍경이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은 것은 표면적으로는 명리에 초연한 것이지만, 더 깊은 층면에서 바라보면 그가 자신의 사명이 조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수련, 저술, 그리고 의약 연구 속에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산림에 은거하고 어떤 이는 군왕을 보좌하며, 어떤 이는 세속을 멀리하고 어떤 이는 세상 속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도에 머문다. 비록 가는 길은 다를지라도 그 배후에는 아마도 모두 더 높은 차원의 안배가 있을 것이다.

산속에는 과연 무엇이 있는가? 속인의 눈에는 고갯마루의 몇 점 흰구름에 불과할 뿐이겠지만, 도홍경의 눈에는 명리를 벗어난 광활한 천지이자 생명이 승화된 후의 자재와 기쁨이다. 이와 같은 경지는 오직 친히 닦아 얻고 직접 체험할 수 있을 뿐, 남에게 선물로 건네줄 수는 없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6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