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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은 말이 있다: 종이 한 장에 천년이 실려

장수객(長袖客)

【정견망】책상 위에 화선지 한 장이 펼쳐져 있다. 소박하고 고요하다. 창밖에서 바람이 불어와 종이 끝이 살짝 들추어지니, 마치 한 조각 얇은 구름 같다. 붓끝에 먹을 찍어 가그시 내려놓자, 그 먹색이 종이 위에서 부드럽게 번져나간다. 짙고 옅음이 서로 어우러지고 마름과 촉촉함이 조화를 이룬다. 순식간에 산천에는 원근이 생기고, 초목에는 기품이 깃들며, 사람의 마음도 머물 곳을 얻게 된다.

종이 한 장, 겉보기엔 깃털처럼 가벼워 보이지만 천년을 이어갈 수 있다. 당송(唐宋) 이래로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사람들의 시문과 서예, 그리고 회화는 모두 이 종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어왔다. 문인의 기개, 서예가의 뼈대, 화가의 흉중 구도, 머물러 주지 않는 무수한 세월들이 이 얇은 종이에 의해 조용히 받쳐져 왔다. 사람들은 종이 위의 먹빛을 늘 감탄하면서도, 정작 화선지 그 자체 역시 머나먼 생명의 역정을 거쳐왔다는 사실은 좀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원래 산야에서 태어났다. 푸른 단향나무는 숲속에서 비바람을 견디고, 모래밭의 벼 짚은 햇살 아래서 익어간다. 하나는 산중에서 자라고 하나들은 들판에서 자라 얼핏 보기엔 전혀 상관없어 보이지만, 제지공의 손에서 만나 또 다른 생명으로 나아간다.

진정한 화선지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단향나무 껍질을 벗겨낸 후에는 침전, 증자(蒸煮), 표백, 햇볕에 말리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단단한 나무껍질이 오랜 시간 물속에 잠겨 조금씩 펴지고, 불의 기운이 섬유질 깊숙이 스며들어 그 안의 불순물을 솎아낸다. 산속의 샘물이 거듭 흘러지나가며 남은 거친 입자들을 씻어낸다.

이 씻김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봄이 가고 가을이 오며 햇볕에 그슬리고 비바람을 맞으며, 섬유질은 물과 불 사이에서 서서히 변해간다. 색은 점차 엷어지고 풋풋함은 서서히 바래며, 원래 촘촘히 얽혀 있던 섬유질도 조금씩 풀어진다.

그러나 깨끗이 씻어내는 것만으로는 아직 부족하다. 증자와 표백을 거친 단향나무 껍질과 벼 짚은 다시 거듭 찧어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나무 방망이가 거듭 내리쳐지면서 원래의 온전한 형태는 부서지고, 굵고 긴 섬유질은 가늘디얇은 종이 재료로 찧어진다. 그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예전의 나무껍질도 아니고, 들판의 벼 짚도 아니다.

옛 형상은 온전히 사라지고, 새로운 탄생이 비로소 시작된다. 제지공은 종이 재료를 맑은 물에 넣고 거듭 골고루 젓는다. 수천만 개의 가늘디가늘은 섬유질이 물속에서 펼쳐지며 서로 교차하고 맞물린다. 초지틀이 가볍게 물속으로 파고들었다가 평평하게 들어 올려지면, 얇디얇은 종이죽이 틀 위에 남게 된다.

단지 가볍게 건져 올린 것처럼 보이지만, 그 뒷면에는 오랜 세월의 연단이 담겨 있다.개개의 섬유질은 가늘고 취약하지만, 수많은 섬유질이 함께 얽히면 유연한 화선지를 이루어낼 수 있다. 그것들은 저마다 출처가 다르지만 물속에서 본래의 형태를 내려놓고 다시 배열되어 각자의 자리를 잡으며, 마침내 새로운 전체가 된다.

이것은 단순한 가공이 아니라 일종의 재창조이다. 젖은 종이가 한 장씩 겹쳐지고 압착을 거쳐 수분이 제거된 뒤, 벽에 붙여져 서서히 건조된다. 불은 더 이상 맹렬하지 않고 오직 은은한 온기로 마지막 남은 물기를 거두어들인다. 종이가 벽에서 떼어져 나올 때 비로소 화선지 한 장이 온전히 완성된다.

그토록 오랜 침전, 거듭된 표백, 수없이 반복된 방망이질과 재교직은 이미 그 고운 결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것은 자신이 무엇을 겪었는지 더 이상 드러내지 않고, 모든 연단을 유연함과 온화함, 그리고 포용으로 바꾸어 놓을 뿐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책상 위에 펼쳐진다. 한 방울의 먹이 떨어지면 종이는 거부하지도 않고 집어삼키지도 않은 채, 오직 먹색이 자신의 결을 따라 자연스럽게 번져나가도록 내버려 둔다. 짙은 먹은 뼈대를 남기고 옅은 먹은 아지랑이를 피워낸다. 붓끝이 빠르게 달리면 기세를 볼 수 있고, 천천히 내려가면 여유를 볼 수 있다. 화선지는 붓과 먹의 빛남을 시기하지 않고 오히려 붓과 먹의 모든 변화를 완성해 준다. 붓과 먹, 그리고 종이는 각자의 성품이 있고 각자의 자리가 있으며 서로 조화를 이룬 뒤에야 비로소 종이 위의 수많은 기상이 생겨나는 것이다.

화선지 한 장은 애초부터 자신만을 위해 존재한 적이 없는 듯하다. 시 한 수를 품어 찰나의 마음을 세월 너머로 전하고, 그림 한 폭을 품어 눈앞의 산천을 후세에 남기며, 고전 한 질을 품어 선인의 지혜를 대대로 전승한다. 화선지는 예로부터 ‘종이의 수명이 천 년’이라는 명성을 지니고 있으며, 자신의 소박함을 붓과 먹에 내어주고 머나먼 세월을 소리 없는 결 속에 담아낸다.

진정으로 위대한 포용은 대개 소리 없는 법이다. 화선지의 유래를 알고 나면, 그것을 다시 볼 때 마음속에 한 층 더 경외심이 우러난다. 그 소박한 한 페이지는 더 이상 평범한 사물이 아니라, 산림, 들판, 햇살, 물줄기, 불의 기운과 사람의 인내가 함께 일궈낸 생명이다.

일만 번 씻고 일만 번 찧어 옛 형태를 완전히 지워야 비로소 한 장의 종이가 된다. 비록 옛 형상은 사라졌으나, 화선지의 진짜 생명은 그때부터 비로소 시작된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중국의 전통문화가 늘 만물 속에서 도를 깨우치기를 논하는 이유일 것이다. 화선지 한 장은 결코 우연히 오늘날의 모습이 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물과 불, 그리고 세월을 겪어낸 끝에 비로소 오늘날의 소박함과 유연함, 고요함을 지니게 된 것이다.

우리가 그것이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알게 될 때 비로소 그것을 단순히 평범한 종이로만 보지 않게 되며, 그것이 무엇을 겪어왔는지 알게 될 때 그것이 품어낸 한 획 한 획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될 것이다.

그것은 깃털처럼 가벼우면서도 자신만의 무게를 지니고 있고, 적막하고 소리 없으면서도 천년의 문맥을 묵묵히 받쳐 들고 있다.

천지는 말하지 않으나 만물을 통해 사람들에게 드러내고, 만물은 말하지 않으나 저마다 도(道)를 싣는다. 만물을 관찰하며 대도를 깨우치고, 조화를 목도하여 천공(하늘의 솜씨)을 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7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