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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얕보는 것도 질투심이다

해외 대법제자

【정견망】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질투심 이 문제는 아주 엄중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직접 우리가 수련하여 원만에 이를 수 있는지 없는지 하는 문제에 연관되기 때문이다. 질투심을 버리지 못하면 사람이 수련한 모든 마음이 모두 아주 취약하게 변해 버린다. 여기에 한 가지 규정이 있다. ‘사람이 수련 중에서 질투심을 제거하지 못하면 정과(正果)를 얻지 못하는데, 절대로 정과를 얻지 못한다.’”

사부님께서는 《파룬궁》에서도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다.

“질투심은 연공에 극히 큰 장애이며, 연공인에 대한 영향이 아주 커서 연공인의 공력에 직접 영향을 끼치고 함께 도를 닦는 사람을 해치며, 우리가 위로 수련하는 것을 심하게 교란한다. 연공인으로서는 그것을 100퍼센트 제거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연공하여 일정한 층차에 도달해도, 질투심을 좀처럼 제거하지 못하는데, 제거하지 못할수록 질투심은 더욱 쉽게 커진다. 이런 반작용은 그로 하여금 이미 제고되었던 다른 心性(씬씽)도 아주 취약하게 변하게 한다.”

그리하여 나는 줄곧 자신의 질투심을 닦아 없애는 데 매우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나 나는 남을 업신여기는 것 역시 질투심이라는 것을 단 한 번도 의식한 적이 없었다.

어느 날 교류 중에서 한 동수가 이런 말을 했다. “남을 업신여기는 것 역시 질투심입니다.” 나는 당시 이 말을 듣고 매우 깜짝 놀랐다. 예전에 나는 늘 다른 사람이 무슨 이득을 얻었는데 자신이 얻지 못한 것이야말로 질투심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파룬궁》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질투심이 있는 사람은 남을 얕보고 남이 자기를 능가하는 것을 허용하지 못하며, 남이 자기보다 더 나은 것을 보면 그의 마음은 평형을 잃고 견디지 못하며 불복한다.”

최근에 나와 동수 A 사이에 어떤 갈등이 발생했는데, 이때 나는 하나의 의념(意念)이 들려오는 것을 들었다. ‘당신은 어째서 A만 못한가?’ 그것은 내가 A보다 수련을 더 잘한다는 의미였다. 그때 나는 단숨에 경각심이 들었다. ‘이 생각이 도대체 누구의 것인가, 내 자신인가?’ 이때의 나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신공표(申公豹)가 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가?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우리 옛이야기를 하나 하자. 『봉신연의(封神演義)』 중의 신공표(申公豹)가 강자아(姜子牙)를 보니, 늙고 또 능력도 없었다. 그러나 원시천존(元始天尊)은 강자아에게 봉신(封神)하게 했다. 신공표의 마음속은 곧 평형을 이루지 못했다. ‘어째서 그에게 봉신하게 하는가? 당신은 나 신공표가 얼마나 대단한지 보라. 내 머리는 베어도 다시 돌아와 붙는데, 어찌하여 나에게 봉신하게 하지 않는가?’”

이 대목의 법은 모두가 다 아는 바이고, 나 자신 역시 아주 익숙하게 읽었으나, 내가 이 글을 쓰면서 발견한 것은 아주 중요한 한 가지 점을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전에는 늘 신공표의 질투가 단지 원시천존이 강자아에게 봉신하게 하고 자신에게 봉신하게 하지 않은 데서만 비롯되었다고 여겼던 점이다. 그러나 나는 그 첫째만 보았지 그 둘째는 보지 못했다. ‘신공표는 어째서 질투했을까?’ 그것은 그가 강자아를 업신여겼기 때문이며, 그는 강자아가 늙고 또 재주도 없다고 여겼고, 자신이 강자아보다 뛰어나며 그보다 수련을 더 잘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다시 나 자신을 살펴보자. 나와 똑같은 문제가 있지 않은가? ‘누구누구는 수련을 잘 못 한다’고 여기고, ‘이 동수나 저 동수에게는 이러저러한 문제가 있다’고 여긴다. 이것이 남을 업신여기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질투심이 아닌가?

만약 동수에게 진정으로 문제가 있다면, 우리는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안으로 찾기

나는 어떤 문제에 부딪히든 모두 우연이 아니며, 혹시 내 자신에게 어떤 집착심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본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집착심(執著心)이란 연공인이 어떤 사물, 어떤 목표에 대해 내려놓지 못해 지나치게 추구하면서 초탈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몹시 고집을 부리면서 권고를 듣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파룬궁》)

“그러므로 연공인은 모든 물질적 이익을 담담하고도 담담하게 보아야 하며, 아무런 추구도 없이 순리를 따라야 한다. 이렇게 하면 집착심이 나타나는 것을 막을 수 있는데, 이것은 연공인의 心性(씬씽)이 어떠한가에 달렸다. 心性(씬씽)을 근본적으로 제고하지 않고, 그 어떤 집착심을 갖고서는, 모두 수련 성취할 수 없다.”(《파룬궁》)

“연공은 안으로 찾도록 하여 스스로 자신을 많이 수련하고 자신의 몸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자신이 어느 면에서 부족하면 스스로 제고하기에 노력해야 하며, 안으로 힘을 써야 한다. 사람이 밖으로만 힘을 쓴다면, 다른 사람은 모두 잘 수련하여 올라가는데, 오직 당신만 올라가지 못하니 당신은 헛수고를 한 것이 아닌가? 수련은 응당 자신이 해야 한다!” (《파룬궁》)

2. 권선(勸善)

사부님 법에서는 이미 우리에게 명시해 주셨다.

“당신이, 다른 사람이 잘하지 못하고 있음을 느낄 때, 당신의 마음에 걸릴 때, 당신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왜 내 마음에 걸리는가? 그에게 정말 문제가 있는가? 아니면 나의 마음에 문제가 있는가?’ 자세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만약 정말로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없고, 그가 한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이 확실하면 당신은 선의(善意)로 그에게 말할 수 있는바, 이렇게 되면 모순이 없을 것이다. 틀림없이 이러하다. 만약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문제고 당신은 말해 주었으면 그만이다.”(《미국서부법회설법》)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 대법제자 각자는 서로 다른 세계에서 왔기에, 생생세세로 남겨진 각종 요소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금생에 각자가 가정 배경, 지역, 문화상에서 지닌 다름도 있다. 이 모든 것은 분명히 인식상의 차이를 가져오기 마련이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권선(勸善)뿐이다. 그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그것은 그 자신의 선택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반드시 자신의 말을 듣도록 강요할 수 없다. 우리 자신의 친족조차도 우리는 강요할 수 없거늘, 하물며 동수이겠는가? 마치 우리가 속인에게 진상을 알릴 때 우리가 그를 강요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가 어떤 태도를 취하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역시 오직 권선뿐이다. 모든 생명은 그 자신의 선택이 있는 것이니, 우리는 그를 대신해 선택을 해줄 수 없다.

3. 구세력의 참여 인식

최근에 나는 사부님께서 《푸왠선(副元神) 관련 문장이 일으킨 파동에 관해》에서 하신 말씀을 외웠다. “사실 대법과 대법제자의 정념에 부합되지 않는 일체 것들은 모두 구세력이 참여하여 조성한 것으로, 자신의 바르지 않은 일체 요소를 포함하는데, 이것이 바로 왜 내가 발정념을 대법제자의 세 가지 큰 일 중의 하나로 했는가 하는 이유이다.”

예전에 나는 이를 읽은 적이 있었지만 사부님의 뜻을 체득할 수 없었다. 지금 나는 이 대법에 대해 한 걸음 더 나아간 깊은 이해를 얻게 되었다.

사실 나 역시 예전에 곤혹스러워한 적이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늘 우리에게 구세력의 안배를 부정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도대체 어떻게 부정해야 하는가? 지금 나는 깨달았다. 일사일념(一思一念)마다 모두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이 생각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이 생각이 진정으로 나 자신의 생각인가? 이 생각이 법(法)에 부합하는가? 진정한 자신인지 아니면 구세력이 강요해 주입한 것인지를 분별해낼 수 있어야만 비로소 우리는 구세력의 안배를 부정할 수 있고, 구세력의 안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상은 현재 층차에서 나의 인식이니, 부족한 점이 있다면 자비로 바로잡아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7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