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대륙 종합 소식을 볼 때마다, 게다가 나 역시 박해를 받은 적이 있기에, 두려운 마음(怕心)의 부추김 속에서 나는 점차 시간에 대한 집착을 생겨나게 했다. 때로는 동수들의 글에 적힌 꿈에서 본 것들이나 천목(天目)으로 본 최후의 시각, 혹은 막차 등에 관한 내용을 볼 때면 시간에 대한 집착이 자신도 모르게 솟구치곤 했다. 지금 천상(天象)은 부단히 변하고 있고, 속인 사회의 정세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으며, 최근 몇 년간은 매번 설을 지낼 때마다 이런 생각 이 솟아나곤 했다. ‘혹시 올해로 끝나는 것이 아닐까, 그런가?’ 이처럼 이 집착은 수시로 대뇌 속에서 반응해 오곤 했다.
최근 한동안 법공부를 통해 나는 또 다른 층차의 함의를 체득하게 되었다. 시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사실 사존을 공경하고 법을 공경하지 않는 표현의 일종이다.
사존께서는 《전법륜》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우리 많은 사람이 진정으로 득도(得道)하려는 마음을 품는데, 그것은 당연히 수련의 목적이다. 수련의 최종 목적은 바로 득도ㆍ원만(圓滿)이다. 그러나 일부 사람은 그의 남은 생의 나이가 이미 아주 한정되어 있어 모자랄지도 모르는데, 우리 法輪大法(파룬따파)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여 연공 노정을 단축하게 할 수 있다. 동시에 또한 성명쌍수 공법이므로 당신이 끊임없이 수련할 때 끊임없이 당신의 생명을 연장해 줄 것이다. 당신이 끊임없이 연마(煉)하면 끊임없이 연장해 주어 근기(根基)는 좋은데 나이가 많은 사람, 당신의 연공 시간 또한 넉넉해진다. 그러나 한 가지 표준이 있는바, 당신이 하늘에서 정한 원래의 생명노정을 지나 나중에 이어온 생명은 전적으로 당신에게 연공하는 데 쓰라고 준 것이므로, 당신이 사상적으로 조금이라도 편차(偏差)가 생기면 생명에 위험을 가져올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생명노정은 이미 지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예전에 이 대목의 법을 읽을 때마다 잠재의식 속에서는 늘 이렇게 느꼈다.
‘아, 이건 나이가 비교적 많은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구나.’
자신의 수련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늘 깨닫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연장(延長)이라고?’ 그렇다, 지금의 시간은 바로 사존께서 엄청난 감당으로 중생을 위해 연장해 오신 것이 아닌가? 한편으로는, 만약 사존께서 법을 전하지 않으셨더라면 인류의 역사는 2000년에 곧 끝났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존께서는 일찍이 우리를 위해 법을 전하는 것이 10년, 정법 10년이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지금은 이미 그것을 깨뜨렸으며 또 이렇게 긴 시간을 연장하셨다. 이것은 곧 지금은 비단 나이가 많은 제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대법제자, 나아가 온 인류와 우주 속의 모든 중생의 생명이 모두 사존께서 연장해 오신 것이며, 창세주의 각별한 은사(恩賜)임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사존의 그 엄청난 감당에 대해 말하자면, 내 생각엔 인간의 언어로 묘사할 수 없고 인간의 사유로도 상상할 수 없으며 감당할 수도 없다. 교류 문장에 비록 여러 차례 언급되긴 했지만 그것은 기껏해야 실제의 천만 분의 일, 억만 분의 일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다면 창세주께서는 왜 자신의 엄청난 감당으로 시간을 연장하셨을까? 아직 성숙하지 못한 대법제자가 너무나 많고, 아직 구도받지 못한 중생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대법제자가 성숙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중생을 구도하며, 어떻게 역사적 사명을 완수하고 사전(史前)의 서약을 이행할 수 있겠는가? 대법제자가 조속히 성숙해지고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아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세 가지 일을 잘 해낼 수 있고, 굽은 길을 줄이며, 구세력에게 틈을 덜 잡히고, 전반적인 박해 정세를 줄일 수 있으며, 불필요한 손실을 줄이고, 사존의 정법에 가져다주는 교란과 방해를 줄일 수 있다.
이것은 창세주의 무량한 자비의 전개이자, 천지개벽 이래 만고에도 만나기 힘든 기연이다.
제자의 입장으로 말하자면, 지금의 매 1분 1초는 모두 우리가 배로 소중히 여겨야 하고 마음속으로 깊이 감사해야 마땅하거늘, 어찌 도리어 마음속으로 집착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창세주께서 치르신 심혈을 사람은 볼 수 없지만 신(神)은 볼 수 있다. 그와 동시에 대법제자의 일사일념(一思一念) 역시 신은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비할 바 없이 소중한 시간을 마주하여 만약 대법제자가 소중히 여길 줄 모르고 창세주의 감당을 아랑곳하지 않으며, 시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고 그저 조급히 결속하기만을 바란다면, 신의 눈에 이것은 창세주에 대한 불경이 아니겠는가? 구세력의 눈에는 또 박해당할 구실이 되지 않겠는가?
사존께서는 일전에 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예전에 나는, 정법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며 아주 짧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당신들이 재빨리 성숙해지고 재빨리 이지적으로 되어 이 일을 아주 짧은 시간 내에 종결하게 되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만약 대법제자가 모두 이지적이지 못하고, 모두 성숙하지 못하여 늘 일을 하는 데에서 사람 마음이 그처럼 강렬하게 표현된다면 이 일이 어찌 끝날 수 있겠는가? 어찌 대법제자들이 잘 수련되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각지 설법 9》<2009년 워싱턴DC 국제법회설법>)
나는 이 설법을 반복하여 공부하며 마치 사존의 그 자비하신 기대를 더 느낀 듯했다. 더는 어느 시간에 끝나기를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착실한 수련에 더 많은 마음을 써야 하며 자신을 더욱 성숙하게 만들고 더욱 이성적이 되게 하며, 마지막 길을 잘 걷고 바르게 걸어 사부님 은혜를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이상 내용은 단지 현재 층차에서 개인의 깨달음이니, 법에 맞지 않는 곳이 있다면 자비로 바로잡아 주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