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正明)
【정견망】
내가 출퇴근할 때 역 외곽에 있는 흡연부스를 지나치면 마음속으로 구역질이 난다. 그 냄새를 맡으면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들며 토하고 싶어진다! 이것은 ‘담배귀신(煙鬼)’이 좋아하는 맛이다!
흡연자들이 역 안에서 걸어 나와 흡연 부스에 채 이르기도 전에 미리 담배를 꺼내 들고 서둘러 세 걸음을 두 걸음 삼아 불이 나듯 흡연 부스로 다가가 급히 담배에 불을 붙이고 정신없이 몇 모금 빨아들이는 것을 본다. 흡연자들은 담배 생각이 날 때면 견딜 수 없이 괴로워하다가 담배를 피우고 나면 마치 자신이 만족을 얻은 듯, 괴롭지 않고 마치 아주 행복한 듯 느낀다!
나는 관찰해 보았다. 흡연자들이 담배 생각이 날 때 스스로 견디기 힘들어할 때 도대체 누가 괴로워하는 것인가? 담배를 피워 만족을 얻었을 때 아주 좋고 아주 편안할 때 대체 도대체 누가 좋고 누가 편안해진 것인가?
민간에서 백성들은 “너 이 담배귀신아”라고 말하는데 어째서 담배귀신이라 부르는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진정 그 배후에 하나의 담배귀신이 있고, 게다가 그것은 사람을 통제할 수 있는 살아있는 생명이다. 흡연자들은 어느 것이 진정한 자신인지 알지 못한 채 피동적으로 담배를 피우며 담배귀신의 수요를 만족시켜 주면서도 자신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자신이 담배를 피워 편안한 줄로만 안다!
실제로 만족을 얻는 것은 담배귀신이지 자신이 편안한 것이 아니다. 만족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아 담배귀신은 또 괴로워하고 또 만족을 얻어야 하므로, 다시 이 생명을 통제하여 담배를 피우게 하고, 담배귀신이 또 만족을 얻기를 반복하며, 해를 거듭하고 날을 거듭하여 죽음의 순환을 형성한다. 담배귀신은 키울수록 점점 더 커지고, 키울수록 점점 더 살쪄서, 마침내 이 생명은 완전히 담배귀신에게 조종당하여 평생 동안 담배를 피우게 된다! 죽을 때가 되어도 담배귀신의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리벙벙하게 일생을 마감한다!
사실, 사람의 어떤 집착이든 모두 똑같다!
어떤 사람은 색욕을 좋아하니 사람들이 그를 ‘색귀(色鬼)’라 부르고, 어떤 사람은 술 마시기를 좋아하니 사람들이 그를 ‘주귀(酒鬼)’라 부르며, 어떤 사람은 잠 자기기를 좋아하여 특별히 ‘게으른 귀신(懶鬼)’이라 부르고, 어떤 사람은 특별히 추위를 타서 ‘동사귀(凍死鬼 얼어 죽은 귀신)’라 하며, 어떤 사람은 특별히 잘 먹어서 ‘아귀(餓死鬼)’라고 한다.
사람은 서로 다른 생명들에게 통제당하고 있는데, 누가 진정 자신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사람은 후천적으로 양성된 각종 집착, 각종 욕망, 온갖 관념들에 좌우되면서도 자신은 그것을 알지 못하니, 얼마나 비참한가!
이 모든 것은 사람이라는 이 층의 생명에게 제공된 감수일 뿐이니, 이는 사람이 이른바 말하는 즐거움이지, 수련인이 마땅히 그 안에서 감수해야 할 것이 아니다. 오직 대법을 배우고, 오직 수련인만이 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으며, 이 모든 것을 초탈할 수 있고, 철저히 마음속에서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벗어날 수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애초에 담배 피우는 습관이 없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면, 그는 담배 그 자체가 도대체 무슨 브랜드인지, 담배가 얼마인지에 대해 집착하지 않는다. 그리고 담배 자체의 맛에 대해서도 그러한데, 왜냐하면 그는 애초에 어떠한 감각도 없고, 배후에 담배귀신이 통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담배라도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다른 집착들도 마찬가지다!
마치 어떤 사람이 애초에 색심(色心)이 전혀 없다면 아무리 잘생긴 남자를 보든, 아무리 예쁜 여자를 보든, 어떤 유형이든 간에 전혀 마음이 동하지 않는 것과 같다! 어떠한 감각도 없다!
만약 당신이 애초에 술을 마시지 않고 어떠한 술 중독도 없다면, 아무리 좋은 술이 당신 앞에 놓여 있더라도 당신은 전혀 마음이 동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만약 이 마음이 없다면 물질 그 자체는 작용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집착심이든 막론하고, 오직 법(法) 속에서 그것을 똑똑히 보고 꿰뚫어 본다면, 그것을 제거하기가 아마도 더욱 수월해질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2004년 미국뉴욕국제법회설법》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집착에 관해 말하자면, 사부가 오늘 당신한테 이걸 버리고 저걸 버리라고 알려주면 그것은 강제적이며 당신의 내심에서 우러나와 버리려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길어지고 사부가 많이 말하여 당신이 참을 수 없을 때 당신은 원망이 생길 것이다. 당신은 내가 왜 이렇게 해야 하는가? 라고 생각할 것이다. 당신 자신이 법리를 통하여 인식했고, 당신이 이렇게 했을 때, 당신 생명에 대한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무엇인가를 알았을 때, 그것이야말로 당신이 진정으로 제고한 것이며 당신이 진정으로 해낼 수 있다. 외재적인 어떠한 제약이든지 모두 당신이 스스로 원해서 나온 것이 아니며 당신의 진정한 제고가 아니다. 제약과 강제는 영원히 사람으로 하여금 개변시키거나 제고시키지 못할 것이며, 이 제약을 떠나면 사람은 또다시 원래와 같을 것인데, 그러면 모두 안 된다.”
우리가 대법을 잘 배우고, 진아(真我)가 어디에 있는지 찾으며, 집착의 배후에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집착이 수련인에게 미치는 해로움을 똑똑히 보며, 우리가 진정으로 마음속에서 이 집착심을 버리고 싶어 할 때, 자신이 집착을 버리지 못해 근심하고 있을 때, 이때 사부님께서 우리를 도와 집착을 거두어 주시면, 우리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와 사부님께 감사하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것을 자신으로 여겨 버리고 싶어하지 않고, 품에 안고 놓지 않는데 사부님께서 당신을 위해 집착을 거두어 주신다면, 당신은 사부님과 모순이 생길 것이고, 당신은 원치 않을 것인데, 왜냐하면 당신은 그것을 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우리가 그것을 똑똑히 분별하고, 꿰뚫어 보며, 그것을 원치 않을 때, 진정으로 확고해진다면, 그때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거두어 주실 때 한 줄기 맑은 바람처럼 아주 좋아서, 당신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와 사부님께 감격하게 될 것이다!
개인 층차의 깨달음이니, 법에 부합하지 않는 곳이 있다면 동수들이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허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