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源馨)
【정견망】
“너는 짐을 지고, 나는 말을 끌네(你挑著擔,我牽著馬)”라는 이 가사는 중국 드라마 《서유기(西游记)》의 오프닝 곡에 나오는 것으로, 많은 중국인들의 어린 시절 추억이었으며, 듣기만 해도 머릿속에 손오공이 앞에서 말을 끌고 사오정이 뒤에서 짐을 지며 사도(師徒) 네 사람이 서천(西天)으로 불경을 구하러 가는 화면이 떠오르곤 한다.
사실 원작에서 짐을 지는 주력은 사오정이 아니라 저팔계였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당시 드라마를 촬영할 때 저팔계를 연기한 배우의 분장이 무거웠고, 여기에 또 짐 지는 지렛대까지 짊어지면 더욱 무거워지므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런 수정은 원작을 읽지 않으면 정말 알아채기 어렵다. 아마도 극 외의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 모르지만, 극 중 인물 자체에게는 이것이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서유기》 원작 제100회에서, 여래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저오능(猪悟能), 너는 본래 천하의 수신(水神)인 천봉원수(天蓬元帥)였으나, 네가 반도회(蟠桃會)에서 술에 취해 선녀를 희롱했기에 너를 하계로 내쳐 축생과 같은 몸으로 태어나게 했다. 다행히 네가 사람의 몸임을 기억하고, 복릉산(福陵山) 운잔동(云棧洞)에서 업을 짓다가 기꺼이 큰 가르침에 귀의하여 나의 사문(沙門)에 들어왔다. 성승(聖僧)을 보좌하여 길을 가면서도 오히려 또 완심(頑心)이 있어 색정(色情)이 없어지지 않았으나, 네가 짐을 짊어진 공로가 있으므로 너의 직분을 정과(正果)로 승진시켜 정단사자(淨壇使者)로 삼노라.”
이를 통해 팔계에게 있어 이 짐을 짊어진 것이 바로 그의 주요 공로임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이 짐은 결코 쉽게 짊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제23회에는 이 짐이 얼마나 무거운지 다룬 대목이 하나 있다. 삼장이 날이 저문 것을 보고 어디서 쉬어야 할지 묻자, 손오공은 출가한 사람이 바람을 맞으며 이슬을 맞고 자는 것은 매우 정상이라고 대답했다. 이때 팔계는 손오공에게 이 짐이 얼마나 무거운지 불평하며, 이렇게 멀리 걸었으니 마땅히 사람 사는 집을 찾아 편히 쉬어야 한다고 했다.
팔계는 짐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누런 등나무 껍질 네 조각에,
길고 짧은 밧줄이 여덟 개,
또 비를 대비한 담요 뭉치가 서너 층이고,
멜대가 미끄러질까 염려해 양쪽 끝에 못을 박았다네.
구리로 상감하고 쇠로 두들겨 만든 구환장(九環杖)에,
대껍질에 등나무로 친친 감은 큰 덮개(斗篷) 걸렸네.”
짐 상자에 비를 대비한 방습 재료까지 더해진 것만 보아도 얼마나 무거울지 상상할 수 있으며, 그중에서 가장 무거운 것은 아마도 이 구환장일 것이다. 동시에 측면에서도 이러한 행장(行李)들이 확실히 매우 중요하며, 모두 꼼꼼하게 싸여 잘 보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약간의 생활용품과 노자 외에, 그 안에는 주로 어떤 중요한 물품들이 들어 있었을까? 먼저 부처님이 하사하신 삼보(三寶) 중 두 가지인 ‘금란이보가사(錦襕異寶袈裟)’와 ‘구환석장(九環錫杖)’이 있었을 것이다.
부처님이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굳은 마음으로 이곳에 온다면 나의 가사(袈裟)를 입고 윤회에 떨어짐을 면할 것이며, 나의 석장(錫杖)을 지니고 독해(毒害)를 입지 않을 것이다.”
또 당왕(唐王 당 태종)이 하사한 ‘통관문첩(通관文牒)’과 ‘자금발(紫金鉢)’이 있다. 마지막으로 삼장은 또 경전 몇 권을 직접 지니고 다녔는데, 제36회 오계국(烏雞國) 그 대목에서 삼장은 꿈속에서 해를 입은 오계국 국왕을 보았는데, 그때 그는 바로 오소선사(烏巢禪師)가 그에게 전해 준 《심경(心經)》을 다 외운 후에 잠이 들었던 것이다.
이 몇 가지 물품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다면 짐을 지는 일은 어째서 주로 팔계에게 맡겼던 것일까?
앞서 팔계는 삼장이 탄 백룡마(白龍馬)가 저토록 크고 살쪘다고 불평하며, “노화상 한 사람만 태우고, 그에게 짐 몇 개를 메게 하는 것도 형제로서의 정이거늘”이라고 했다.
하지만 당시 손오공은 “이것은 모두 각자의 공과(功果)이니 너는 그와 비교하지 마라”고 대답하면서 또 이렇게 말했다. “노손(老孫)은 오직 사부님의 안위만을 맡고, 너와 사승(沙僧)은 오로지 행장과 말을 전담하라. 만약 조금이라도 태만하다면 정강이뼈에 먼저 굵은 몽둥이질이 한차례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그들 스승과 제자 몇 사람은 모두 각자 완성해야 할 업무 분담과 사명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능(悟能)’이라는 명호는 원래 보살이 하사한 것으로, ‘능(能)’은 능력 혹은 공능을 가리킨다. 즉 보살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줄 때 그의 신통을 가지(加持)하여, 그로 하여금 한평생 성승을 보좌해 서천으로 참된 경전을 구하러 갈 수 있는 재주를 갖추게 한 것이다. 이는 오능으로 하여금 자신의 능력이 사명을 지니고 있기 때문임을 삼가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삼장은 또 왜 ‘오능’을 ‘팔계(八戒)’라 불렀을까? 사실 이는 자신과 모든 취경인(取經人)에게 신불(神佛)이 부여한 능력은 결코 안일과 향락을 추구하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님을 거듭 일깨워주려는 것이다. ‘팔계’란 곧 욕망을 경계해 끊어버리는 것으로, 이렇게 해야만 비로소 능력을 발휘해 사명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니,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영산(靈山)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절반 가기도 전에 벌써 요괴들에게 잡아먹혔을 것이다.
《대당대자은사삼장법사전(大唐大慈恩寺三藏法師傳)》에 따르면 삼장은 일찍이 “차라리 서쪽으로 한 걸음 가다 죽을지언정, 동쪽으로 돌아와 한 걸음 살지는 않으리라”라는 발원(發願)을 했으니, 이것이 바로 지향(志向)이다. 짊어진 짐 속에는 부처님의 가지와 당 황제의 기대가 담겨 있으며, 매 한 차례 통관(通關)할 때마다 일방(一方)의 중생이 구도되는 것이다. 이를 보면 짐은 책임에 대응하며, 지향과 하나라 떨어질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능력이 좀 더 크고 강해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에게 부여된 능력은 개인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정반대로, 사람이 만약 진정한 자신이 이 세상에 온 책임 및 사명을 기억할 수 있다면, 능력과 지혜는 자연히 열리게 되고 아울러 이로 인해 승화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