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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은 말이 있다 : 예(禮)는 꽃 사이에 있다

장수객(長袖客)

【정견망】

길가에 마영단(馬纓丹) 한 무리가 자라 있는데, 또는 오색매(五色梅)라고 하는데 그닥 눈에 띄지 않는다.

몸을 낮추고 자세히 살펴보지 않는다면, 아마 이 작디작은 한 송이 꽃 무리 속에 이런 오묘함이 숨겨져 있을 줄은 거의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마영단의 꽃은 한꺼번에 피지 않는다.

송이송이 작은 꽃들이 바깥에서 안쪽으로 차례대로 핀다. 바깥쪽의 것은 이미 활짝 피어났고, 안쪽의 것은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어떤 것은 먼저 피고 어떤 것은 나중에 피어 각자 그 시기를 따른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색깔도 변한다. 노란색, 주황색, 분홍색이 짙고 옅음이 어우러져 생명의 서로 다른 단계의 흔적을 동일한 화서(花序) 속에 남겨둔다.

그것들은 동시에 피진 않지만 그렇다고 어지럽지도 않다.

저마다 자신의 자리가 있고 자신의 시기가 있다. 먼저 핀 것은 빼앗지 않고 나중에 핀 것은 조급해하지 않는다. 송이송이 이어지고 겹겹이 받쳐준다. 그것들은 서로 맞물리고 서로를 돋보이게 하며, 색깔이 다르고 개화 시기가 달라도 서로 조화를 이루어 마침내 눈앞의 이 온전한 오색매를 완성해 낸다.

알고 보니 생명의 아름다움은 오직 피어나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피어나는 순서에도 있다. 선후가 있고 안팎이 있으며 분수가 있고, 각자 제자리를 편안히 지키면서도 서로를 완전하게 해 준다.

옛사람은 “예(禮)란 천지의 질서”라고 했다.

예전에 ‘예’를 말할 때면 늘 인간 세상의 규범과 예절을 떠올리기 쉬웠다. 하지만 몸을 숙여 이 한 무리의 작은 꽃을 바라보니, 문득 예란 원래 인간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꽃에는 화서(花序)가 있고, 사계절에는 절도가 있으며, 해와 달에는 운행이 있다. 만물은 각자 그 도(道)를 따르고 또 서로 조화를 이룬다.

인간 세상의 예는 바로 옛사람이 천지를 우러러보고 만물을 굽어살핀 후에 이러한 천지의 질서를 깨닫고 준수한 것이다. 그리고 천지의 질서는 이미 소리 없이 생명 속에 쓰여 있다.

다만 평소에 우리는 너무 빨리 걸어간다. 한 무리의 작은 꽃은 길가의 한 점 색깔에 불과하여 눈앞을 스쳐 지나가기 쉽다.

하지만 당신이 기꺼이 몸을 낮추고 차분히 그것을 바라볼 때면, 그 꽃 무리는 더 이상 길가의 한 점 색깔이 아니라 마치 하나의 작은 세계를 열어젖힌 것 같다. 순서도 있고, 시간도 있으며, 변화도 있고, 또 그 자신만의 질서도 있다.

이렇게 보면 천지의 법칙은 결코 저 높은 곳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길가의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꽃 한 송이 속에 숨어서, 몸을 낮출 의향이 있는 사람이 그것을 보고, 탐구하며, 그것의 세계로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8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