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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 인연이 없던 매(梅) 노인

원행(遠行)

【정견망】

어떤 이들은 마음씨가 매우 선량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선으로 도를 이룰 수 없다. 이는 그들이 비록 선행을 베풀더라도, 신(神)에 대한 진정한 바른 믿음(正信)에는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예는 고서에도 기록이 있다.

《계신록(稽神錄)》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예장(豫章)에 성이 매(梅) 씨인 여관 주인이 있었는데, 그는 왕래하는 나그네들을 자주 구제하고 보살펴 주었다. 승려나 도사가 와서 묵을 때면, 일절 돈을 받지 않았다.

옷차림이 남루한 도사 한 사람이 있었는데, 늘 매 씨의 여관에 와서 묵곤 하였고, 매 씨는 그를 맞이할 때마다 매우 후하게 대접하였다.

어느 날 도사가 매 씨에게 말했다. “내가 내일 재(齋)를 올리고자 하니, 그대에게 새 도자기 그릇 20개와 젓가락 7쌍을 빌리려 합니다. 당신도 마땅히 참석해야 하니, 그때가 되면 천보동(天宝洞) 앞에서 진사(陳師 진씨 성의 사부)를 찾아보시오.”

매 씨는 그 청을 수락했다. 도사는 그릇들을 들고 강을 건너 떠났다.

다음 날, 매 씨는 천보동 앞에 이르러 그곳 마을 사람들에게 물었으나, 아무도 그가 사는 곳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한참 동안 찾다가 돌아가려던 찰나, 우연히 작고 호젓한 오솔길을 발견했는데, 길이 매우 밝고 깨끗했다. 이에 시험 삼아 그 길을 따라 찾아 들어가 보니, 과연 저택 하나가 나타났다.

청의동자(青衣童子) 하나가 나와 문을 열어주었다. 매 씨가 물어보니, 과연 이곳이 바로 진사가 거처하는 곳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서 도사를 보았다. 이때 도사는 의관이 화려하고 단정하여, 앞서 옷차림이 남루했던 모습과는 완전히 딴사람 같았다. 도사는 매 씨를 안으로 청해 앉히고는 사람을 시켜 음식을 준비하게 했다.

잠시 후 음식이 상에 올라왔는데, 살펴보니 뜻밖에도 삶아 찐 아기였다. 매 씨는 크게 두렵고 겁이 나 감히 젓가락을 대지 못했다. 한참 뒤에 또 다른 음식이 올라왔는데, 이번에는 삶아 찐 강아지 한 마리였다. 매 씨는 여전히 먹으려 하지 않았다.

도사는 이 모습을 보고는 한참 탄식하더니, 사람을 시켜 전날 얻었던 그릇을 가져오게 하여 손님에게 주었다. 살펴보니 그 도자기 그릇들은 뜻밖에도 모두 금그릇으로 변해 있었다.

도사가 그에게 말했다. “그대는 선인(善人)이기는 하나, 신선이 될 수는 없소. 천년 된 인삼(人蔘)과 구기(枸杞)를 앞에 두고도 먹으려 하지 않았으니, 이 또한 연분에 한계가 있는한 탓이오!”

사과하고는 그를 돌려보냈다. 그 후로는 다시는 그 도사를 볼 수 없었다.

《서유기》 속의 당승(唐僧)이 처음 인삼과(人參果)를 보았을 때에도 이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면 도사는 왜 매 씨에게 이러한 겉보기에는 징그러운 음식들을 내놓은 것일까? 설마 신선이 정말로 사람을 먹는단 말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사실 도사는 매 씨가 신에 대해 얼마나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를 고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음식들은 인간의 이 시공간 속에서는 아기와 강아지의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다른 시공간 속에서는 천년 된 인삼과 구기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다만 하나의 가상(假相)일 뿐이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알려주셨다.

“사람이 수련한다 함은, 시작에서 마지막까지 깨달음 하나로 일관한다는 것인데, 미혹 속에서 닦는다. 서방에서는 믿음을 말하는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믿음을 말하며 믿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다. 당신이 믿기만 하면 그는 당신으로 하여금 감응(感應)하게 해준다. 어떤 사람은 예수의 상 앞에서 참회할 때, 머릿속으로 정말 예수가 듣고 있으며, 정말 어떤 사람이 그가 묻는 말에 대답하는 것처럼 느낀다.”(《전법륜 2권》 〈수련과정 중의 층차〉)

동양의 수련 문화에서는 ‘깨달음(悟)’를 말하고, 서양의 신앙 문화에서는 ‘믿음(信)’을 말하는데, 사실 이치는 서로 통한다. 사람은 미혹(迷) 속에 있어 사물의 진상을 보지 못하므로, 고험 앞에 직면했을 때 여전히 정신(正信)을 굳게 지킬 수 있는지가 아주 중요하다.

사실 인간의 전통문화 역시 ‘믿음’을 중시한다.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중의 마지막 글자가 바로 ‘신(信)’이다. 부부 사이, 부자 사이, 친구 사이, 심지어 군신(君臣) 사이를 막론하고 모두 신뢰가 떠날 수 없다. 일단 서로 간의 신뢰를 잃어버리면 진정으로 마음을 터놓기 어렵고, 서로의 교제 역시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수련인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매 씨가 화상과 도사를 선대(善待)한 것은 그의 마음이 선량하며 타인을 도울 의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선량이 곧 신을 향한 확고한 정신(正信)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눈앞에 고험이 닥쳤을 때, 그는 눈앞에 보이는 가상에 미혹되어 도사를 믿지 못했고, 사람의 관념을 돌파하지 못했기에 결국 신선이 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을 동양의 수련 문화에서는 ‘오성(悟性)이 좋지 않다’고 부르고, 서양의 신앙 문화에서는 정신(正信)의 부족이라 이해할 수 있다. 표현은 비록 다르지만 드러내는 이치는 서로 통한다. 선행을 베푸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수련인에게 있어서는 미혹(迷) 속에서 도(道)를 깨닫고 고험 속에서 신에 대한 정신(正信)을 굳게 지키는 것 역시 똑같이 극도로 중요하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8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