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正明)
【정견망】
재난이 닥치기 전에 인간은 하늘의 경고를 들었는가?
옛사람들은 늘 이렇게 말했다. 천재(天災 하늘이 내리는 재앙) 전에는 대개 먼저 경고가 있기 마련이며, 큰 재난이 닥치기 전에는 아마도 이미 사람에게 선택할 기회가 남겨졌을 것이라고. 어떤 이들은 이것을 하늘의 뜻(天意)으로 믿고, 어떤 이들은 인과응보로 보며, 또 어떤 이들은 단지 수천 년 동안 전해 내려온 민간 이야기로 여긴다.
이를 어떻게 이해하든, 사람에겐 늘 한 가지 의문이 있다. 경고가 눈앞에 놓였을 때, 우리는 과연 믿고 관찰하며 사색할 것인가, 아니면 조롱하고 거부하는 것을 택할 것인가?
중국 민간에 전해지는 ‘붉은 눈의 돌사자(紅眼石獅)’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일을 다루고 있다.
이야기 속에서 한 마을의 사람들은 도덕이 타락했기 때문에 상천(上天)이 재난을 내리려 했다. 이에 한 신(神)이 거지의 모습으로 변신해 마을에 내려와 여전히 선한 마음을 지닌 사람을 찾고자 했다. 대다수의 사람은 그를 돕지 않았다. 오직 한 노파만이 자신이 가진 유일한 음식을 거지와 나누어 먹으려 했다.
노파가 선한 마음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거지는 떠날 때 그녀에게 일러주었다. 만약 언젠가 마을 어귀의 돌사자 눈이 붉게 변한다면, 그것은 큰 홍수가 곧 닥칠 것이라는 의미이니 서둘러 산으로 뛰어올라가라고 말이다.
노파는 이 소식을 마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사람들은 돌사자는 돌로 만들었는데 어떻게 눈이 붉어질 수 있겠느냐고 생각했다.
나중에 몇몇 젊은이들이 노파를 놀리기 위해 고의로 돌사자의 눈을 붉게 물들였다. 이를 본 노파는 재난이 온 줄로 알고 서둘러 사람들에게 소리치며 피난하라고 외쳤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를 믿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그녀를 비웃었다.
“당신 정말 돌사자 눈이 붉어진다고 믿는 것이오?”
결국 큰 홍수가 정말로 닥쳤다. 마을 전체가 홍수에 집어삼켜졌고, 노파는 미리 대피한 덕분에 믿음을 가진 몇몇 사람들과 함께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매우 깊이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원래 이야기에서 특별히 강조하는 점은 다음과 같다. 신이 직접 노파를 데려간 것이 아니라 단지 그녀에게 하나의 경고를 남겨주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에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는 전적으로 그녀 자신이 어떻게 판단하고 선택하는가에 달려 있었다.
가장 무서운 것은 경고가 없는 것이 아니라, 경고를 보고도 믿지 않는 것이다.
붉은 눈의 돌사자 이야기가 가장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지점은 “돌사자의 눈이 과연 붉어질 수 있는가 없는가?”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평범하지 않은 일이 발생했을 때, 사람이 진지하게 사색했는가 하는 점이다.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어떤 일이 “자신의 관념과 경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쉽게 그것을 직접 부정해 버리곤 한다.
“전에 발생하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믿지 않으니 분명 가짜일 것이다.”
“남들도 다 괜찮다고 하는데 내가 왜 걱정해야 하지?”
그러나 역사는 거듭해서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재난은 대개 사람들이 전혀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때 발생하며, 정작 사람을 구하는 일은 오히려 가장 이해하기 어렵게 보인다는 것을.
만약 ‘붉은 눈의 돌사자’를 오늘날로 가져와 이 오랜 이야기를 하나의 우언(寓言)로 삼는다면, 오늘날의 사람들 역시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역시 진지하게 사색해야 할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가 전쟁을 볼 때;
질병을 볼 때;
사회 속의 증오를 볼 때;
신앙인에 대한 박해를 볼 때;
거짓말과 진실 사이의 충돌을 볼 때;
우리 역시 이야기 속의 마을 사람들처럼 이렇게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사기야.”
“아무도 믿지 않아.”
“왜 하필 너를 믿어야 하지?”
그러나 붉은 눈의 돌사자가 진정으로 사람에게 알려주는 것은 “당신은 반드시 특정한 어떤 말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들이 모두 조롱한다고 해서 스스로 사색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파룬궁 관련 신앙과 진상 전파 속에서 ‘삼퇴(三退)’는 중국공산당, 공청단, 소년선봉대 등 조직에서 탈퇴하여 사악한 조직 및 그것이 대표하는 이념으로부터 멀어지겠다는 의사를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신앙을 믿는 이들에게 ‘삼퇴’는 단순한 이름상의 탈퇴가 아니라, 선악을 다시 선택하고 양지(良知)를 다시 선택하며 자신 인생의 방향을 다시 선택하는 정신적 표현이다. 어떤 이들은 이를 “삼퇴로 평안을 지키다(三退保平安)”라고 부른다. 이 신앙적 맥락 속에서 여기서 말하는 ‘평안’은 단순히 육신이 병들지 않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천도(天道)와 인과, 그리고 선악유보(善惡有報)에 대한 신념을 의미한다. 하지만 개개인의 신앙과 선택은 모두 스스로 이해하고 사색한 후에 결정해야 한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당신은 무엇을 믿기로 선택하는가?
다시 붉은 눈의 돌사자로 돌아가 보자.
노파는 왜 마지막에 홍수를 피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그녀가 다른 사람보다 영리했기 때문이 아니다. 홍수가 언제 닥칠지 미리 알았기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그녀가 경고를 믿으려 했고, 결정적인 순간에 행동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왜 대피하지 않았는가? 그들은 “돌사자 눈이 어떻게 붉어질 수 있겠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붉은 눈을 보고도 여전히 노파가 바보짓을 한다고 여겼다. 마침내 홍수가 정말로 닥쳤을 때, 후회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이것이 바로 이야기의 가장 심각한 부분인데 기회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믿을 것인가 말 것인가는 각자 자신의 선택이다. 어떤 이는 하늘의 뜻을 믿고, 어떤 이는 인과응보를 믿으며, 어떤 이는 선악유보를 믿는다. 또 어떤 이는 오직 과학과 자신이 검증할 수 있는 사실만을 믿는다. 이러한 서로 다른 관점은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무엇을 믿든 간에, 반드시 유지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있으니 바로 양심(良知)이다.
다른 사람이 박해를 받는다고 해서 따라 비웃지 말라.
사람이 신앙이 다르다고 해서 그를 증오하지 말라.
권력이 강대하다고 해서 권력이 반드시 옳다고 여기지 말라.
다수가 침묵한다고 해서 침묵이 곧 정의라고 여기지 말라.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판단을 포기하지도 말라.
만약 ‘삼퇴하면 평안을 지킬 수 있음’을 하나의 신앙적 표현으로 삼는다면, 그것이 표현하는 핵심은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거짓말을 간파하고, 사실을 알아차리며, 증오와 거짓말을 멀리하고, 선량을 선택하며, 양심을 지키는 것이다.
진정으로 사람이 추구할 가치가 있는 평안은 단지 한 차례의 재난을 피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재난이 닥쳐올 때 신불(神佛)과 함께 서는 것을 선택하여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게 하는 것이요, 선악에 직면했을 때 감히 자신의 양심을 고수하는 것이며, 다른 사람이 고통받을 때 냉담하거나 곤경에 빠진 이를 외면하지 않는 것이고, 중대한 선택에 직면했을 때 맹종하거나 부화뇌동하지 않는 것이다.
붉은 눈의 돌사자는 영원히 정말로 붉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인생에 ‘붉은 눈의 돌사자’와 같은 경고가 나타났을 때 우리가 멈춰 서서 사색했는가 하는 점이다. 겉모습만 보아서는 안 된다. 한 정당의 강대함이 영원히 쇠락하지 않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역사적인 역병 사례들이 우리에게 말해주듯, 재난은 극히 짧은 시간 안에 사회 전체를 뒤바꿀 수 있다. 붉은 눈의 돌사자가 우리에게 알려주듯, 경고가 나타난 이후에도 여전히 개개인은 스스로 선택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삼퇴’를 믿는 이들에게 있어, 삼퇴는 자신이 양심과 신앙 앞에서 내린 선택이다.
비록 우리는 미래에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어떤 누구도 단 하나의 이야기만으로 다음 재난이 어떻게 닥칠지 증명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는 결정할 수 있다.
만약 천도(天道)를 믿는다면 하늘을 공경하고 신을 공경하라.
만약 인과(因果)를 믿는다면 선행을 많이 베풀라.
만약 진선인(真·善·忍)을 믿는다면 진선인의 요구에 따라 자신을 다스리려 노력하라.
만약 다른 이가 박해받는 것을 본다면 두려움 때문에 양심을 잃지 말라.
만약 중요한 정보에 직면한다면 진지하게 알아보며 독립적으로 사색하라.
왜냐하면 진정으로 한 사람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외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뿐만 아니라,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재난이 닥쳐올 때,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가?
마귀의 음모를 간파하라
붉은 눈의 돌사자 이야기가 마지막에 남긴 것은 비단 홍수만이 아니다.
그것이 남긴 것은 올바른 선택이다.
믿을 것인가, 아니면 조롱할 것인가?
깨어날 것인가, 아니면 마비될 것인가?
선량함인가, 아니면 냉담함인가?
양심을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부화뇌동할 것인가?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그 누구도 당신을 대신해 대답해 줄 수 없다.
사자의 눈이 붉어질 것을 믿고 산으로 뛰어올라가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대법제자가 당신에게 알려준 ‘삼퇴하면 평안을 지킬 수 있음’을 믿는다면 당신 역시 재난을 피해 평안을 지킬 수 있으니, 생사는 한 생각에 달렸고 믿으면 구원을 얻으며 믿지 않으면 도태될 뿐이다!
그러나 당신의 선택은 영원히 당신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