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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의도협전(忠義道俠傳) 제2회 기근이 들판에 가득하니 붉은 옷 무리 넘쳐나고, 큰 역병이 사람을 죽이니 그 수가 헤아릴 수 없구나 (4)

북국촌로

【정견망】

이튿날 이른 아침, 황궁 내원(内苑)은 다시 한번 아수라장이 되었다.

궁녀와 태감들은 저마다 머리를 감싸 쥐거나 어깨를 비비며 겁에 질려 침궁 밖으로 뛰쳐나왔다.

컵, 사발, 바가지, 대야 등은 깨진 것은 깨지고 박살이 나 굴러다녔다.

태의들을 한 명씩 계속 불러들였으나, 완안수서는 모두 욕설을 퍼부으며 쫓아냈다.

뜰 안에서는 수시로 황제의 울부짖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잠시 후엔 “너희들 다시는 오지 마라. 짐은 이제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라고 외쳤고, 또 잠시 후엔 “짐을 죽이지 마라!”라고 소리쳤다.

태감과 궁녀들은 남몰래 금나라 황제가 미쳐서 이제 고칠 길이 없다고 수군거렸다. 한참 논의하던 중, 좌승상 완안새불(完颜赛不)이 뜰 밖에 도착했다. 그는 황제에게 병을 보겠다며 의원 한 명을 데려왔으나, 방 안의 고함 소리가 워낙 요란하고 왕후조차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으며, 물건들이 계속 밖으로 던져져 도저히 방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한참을 더 기다리자 완안수서의 “켁켁” 하는 마른기침 소리가 두 번 들리고, 이어 “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더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들 걱정되는 마음에 서둘러 방으로 들어갔는데, 안을 들여다보니 침궁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탁자는 뒤집히고 침상은 부서졌으며, 방 안은 대소변으로 범벅이었다. 오직 완안수서가 양손을 움켜쥔 채 방 한가운데 가로누워 천둥 같은 코골이를 하고 있었다. 한바탕 난리를 피운 끝에 지쳐 곯아떨어진 모양이었다. 의원은 그 모습을 보고 맥을 짚거나 침을 놓는 대신, 소매를 찢어 입과 코를 가리고 문과 창문을 활짝 열어젖힌 뒤 사람들을 모두 밖으로 밀어냈다.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왕후 도단씨(徒单氏)가 승상 완안새불에게 물었다.

“이 의원은 어찌 이리 진찰을 하는 것입니까?”

완안새불이 대답했다.

“일단 지켜봅시다.”

이 황제에게 진찰을 하러 온 의원이 누구인지 아는가? 바로 원호문, 백 사장과 함께 성 밖에서 백성들에게 식량을 나누어 주던 강호의 떠돌이 의원(遊醫) 이명지(李明之)였다.

앞서 말했듯이, 원호문과 이명지, 백 사장은 변경(汴京)성 안으로 들어왔다. 백 사장은 하인을 시켜 식량을 상당공 장개(張開)의 저택으로 보내고, 세 사람은 마행가(馬行街)를 따라 이동했다. 마행가는 변량성 동쪽, 남북으로 길게 뻗은 대로였다. 길 폭이 3장 3척 3촌(약 10미터)이나 되어 수레 네 대가 나란히 지나갈 수 있었고, 남쪽으로 조문대가를 지나 변하(汴河) 북안까지 이어지니 그 위용이 대단했다!

왜 ‘마행가’라고 불렸을까?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금나라 남경성(개봉)은 원래 북송의 동경 변량이었다. 당시 송 휘종의 어전 화가 장택단이 ‘청명상하도’라는 그림을 그렸는데, 전체 길이가 15척 8촌 4푼에 달했다. 변하의 동서, 성문과 누각, 사람과 가축, 장사꾼과 행인, 수레와 배, 가마 등을 천팔백 종류나 그려 넣었는데, 이는 당시 변량성의 번화한 풍경을 생생하게 담고 있었다. 이후 정강의 변 때 금나라 여진인들이 변량을 점령하고 황족과 고관대작들을 오국성으로 끌고 가 노비로 삼았다. 사람이 떠나자 도시는 비었고, 그 안에 있던 값나가는 물건들은 모두 가져갔는데, ‘청명상하도’도 그중 하나였다. 훗날 악비 장군이 수차례 북벌을 단행했으나 변량 옛 도성을 수복하지 못했다. 수십 년이 지난 후, 금나라 해릉왕 완안량이 변량성을 눈여겨보고 천도까지 하려 했다. 해릉왕이 천도를 생각한 이유도 바로 이 ‘청명상하도’를 보고 변경의 이점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 뒤 금나라는 중도 대흥부, 상경 회녕부, 북경 대정부, 동경 요양부, 서경 대동부, 그리고 이곳 남경 개봉부까지 다섯 개의 도성을 정했다.

이곳은 수로와 육로가 사방으로 통했다. 성내에 필요한 물자는 동남 수문을 통해 배를 타고 변하를 거슬러 올라와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며 양안으로 전달되었다. 겨울에 강물이 얼어도 상관없었다. 성 북쪽 봉구문을 통해 수레와 말로 운송하여 마행가를 따라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동하며 골목골목 전달할 수 있었다. 이 성은 천혜의 요새가 없었기 때문에 매우 견고하게 지어졌다. 황성 밖에 내성이 있었고, 석축 성문 누각은 높이가 3장 6척(약 11미터)이었으며, 동서남북 12개의 성문은 개폐 시 모두 임금의 유지가 필요했다. 성 밖에는 다시 해자가 둘러져 있었고, 그 밖은 개봉부 외성이었다. 오장하를 지나면 다시 성벽이 있어, 그야말로 철통같이 견고했다! 이 금나라 개봉부 남경성은 천하 시장의 으뜸이라 불릴 만했다. 수레와 말, 배가 분주히 오가니 옛 북송 변량의 기운이 남아 있었고, 노점상의 외침과 행상들의 발걸음, 양옆으로 늘어선 상점들은 천하 각지의 진귀한 보물들로 가득해 사람의 눈을 현혹하기에 충분했다.

이 거리에는 약재상도 매우 많았는데, 이명지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주인에게 값을 물었다.

백 사장이 웃으며 물었다.

“동원 형님, 경성에는 자주 안 오시는군요?”

이명지가 대답했다.

“후생은 남경에 처음 와봅니다.”

백 사장이 말했다.

“하하하! 약도 사람을 살리는 것이고, 밥도 사람을 살리는 것이지요. 점심 내내 고생했으니, 우리 오장육부도 대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갑시다, 술 한잔할 곳을 찾은 뒤에 둘러봐도 늦지 않겠지요.”

원호문이 말했다.

“좋습니다. 앞쪽에 주막이 있으니 가서 쉬면서 이야기합시다.”

세 사람은 술집에 들어서 자리를 잡고 고량주 한 단지와 숙성된 쇠고기 반 근, 살찐 닭 한 마리, 그리고 몇 가지 밑반찬을 주문해 젓가락을 들었다. 원호문과 이명지는 술이 약해 백 사장이 차 한 주전자를 더 시켰다. 세 사람은 술잔을 기울이며 식량 조달과 약재 구입, 조정 상소 등에 대해 논의했다. 천하 대세부터 백성의 고통까지 이야기하다 보니 흥이 돋아 백 사장은 고량주 한 단지를 더 시켜 사발에 가득 부어 단숨에 들이켰다.

“통쾌하오!”

술기운이 몸에 퍼지자 추위가 가시고 몸이 따뜻해졌다. 백량산(柏亮山)은 열기가 오르자 옷깃을 헤쳤는데, 가슴팍에 희미한 문신이 보였고 소매 끝으로 팔꿈치에 새겨진 청룡 꼬리가 살짝 드러났다.

이명지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소생이 천하를 떠돌며 많은 장사꾼을 보았지만, 백 형님처럼 술을 드시는 분은 처음 봅니다.”

백 사장이 웃으며 답했다.

“하하하! 부끄럽소. 소인은 사실 거친 놈이라 장사 같은 건 모릅니다. 그저 심부름이나 좀 해서 술값이나 버는 처지지요. 이번에 경성에 온 것도 부탁을 받아서인데, 화물을 넘기고 바로 떠나려 했으나 지금 같은 혹한에 갈 곳 없는 유민들을 보니 우리 형제들도 어디든 정착해야겠다 싶더군요. 썩어빠진 관병들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턱대고 사람을 잡아들이니 통탄스러울 뿐입니다. 내 예전 같았으면….”

백량산은 다시 술 한 잔을 들이켜고 “흥흥흥” 세 번 웃더니 말을 아꼈다.

이명지는 무언가 깨달은 듯 원호문에게 말했다.

“음, 오늘 양산 형제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경성에는 안녕할 날이 없었을 것이오.”

백량산이 말을 이었다.

“과찬이오. 나도 밑천을 좀 쓴 것뿐이오. 우리 같은 장사꾼은 화기애애하게 돈을 버는 것이 중요하지만, ‘의(義)’라는 글자는 원래 ‘리(利)’보다 앞서야 하는 법이지요.”

원호문이 감탄했다.

“좋소! ‘의’가 ‘리’보다 앞선다니! 양산 형제, 백성을 대신해 감사하오.”

선비인지라 강호인들과 섞이는 것을 꺼렸던 원호문은 그 말에 큰 감명을 받아 그간의 선입견을 버리고 절을 하려 했으나 이명지와 백량산이 만류했다.

백 사장이 다급히 말했다.

“선생, 왜 이러십니까? 소인이 무안해지지 않습니까!”

이명지가 거들었다.

“원 형님, 어서 앉으시오. 당신이 관병들을 꾸짖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어찌 만나 술잔을 기울이겠소?”

술은 친구를 만나면 천 잔도 모자란다고 했던가. 성품과 나이, 경험은 다르지만 세 사람의 마음은 하나로 통했다. 백량산이 다시 술을 채우며 말했다.

“남북을 떠돌았지만 오늘 두 분을 알게 된 것이 참으로 다행입니다.”

세 사람은 잔을 비웠다. 그 한 잔에 세 사람의 호기는 더욱 넘쳐 흘렀다.

한창 흥이 올랐을 때 술집 밖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어찌 또 너 같은 썩은 도사를 마주친단 말이냐, 참으로 재수 없군!”

“헤헤! 왜, 도사님을 못 알아보겠느냐? 참으로 건망증도 심하구나!”

소리를 따라 밖을 보니 길 한복판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

땅딸막하고 불룩한 뺨의 음울한 사내 하나의 허리에는 굽은 아미자(峨眉刺) 두 자루가 꽂혀 있었다. 말라깽이 대머리 사내 하나는 숨을 헐떡이며 정강 낙양산精鋼洛陽鏟을 들고 어깨엔 잠든 부인을 메고 있었다. 다른 도사 하나는 검은 도포에 짚신을 신고 신선 같은 풍채를 지녔는데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대머리 사내가 말했다.

“썩은 도사, 이제 막 이곳에 와서 계집 하나 데리고 즐기려는데 무슨 상관이냐? 왜 자꾸 좋은 일을 방해하느냐?”

땅딸막한 사내가 말했다. “형님, 쓸데없는 소리 마시오. 갈 길이 바쁘니 빨리 끝냅시다.” 그가 눈짓을 보내자 한 손은 옷주머니로, 다른 한 손은 허리로 향했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겁에 질려 물러나고 큰 공간이 생겼다. 도사는 겁먹지 않고 맨손으로 두 괴인과 맞섰다.

백 사장은 눈치를 채고 생각했다.

‘저 한 쌍은 어디서 본 듯한데 기억이 안 나는군. 도사에게 독수를 쓰려는 모양인데, 강호의 은원은 복잡하니 함부로 끼어들 수 없다. 하지만 싸움이 안으로 번지면 두 선생이 다칠 수도 있다.’

그는 술값을 치르고 두 사람에게 말했다.

“상당공 댁에 가서 마저 이야기합시다. 여기는 오래 있을 곳이 못 됩니다.”

그는 원호문의 옷깃을 잡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남쪽으로 빠른 걸음을 옮겼다.

원호문은 술을 마시다 말고 왜 그리 서두르나 의아해하며 따라갔다. 이명지는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도사는 여전히 실실 웃고 있었다.

대머리 사내가 외쳤다.

“흥! 웃을 때 웃어둬라, 비명 지를 시간도 없을 테니까!”

말이 끝나자 땅딸막한 자가 앞으로 튀어 나가더니 입을 불리고 발을 구르며 “슈우웅~” 소리를 내며 표창 세 개를 던졌다. 겉보기엔 그저 표창 같지만, 아까 주머니를 만진 것은 암기를 꺼내기 위함이었다. 대머리 사내는 도사의 정신을 분산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땅딸막한 자가 다시 다가오면 굽은 아미자로 치명상을 입힐 계획이었다.

도사는 놀랍게도 피하지 않았다. 오른쪽 발을 뒤로 빼며 몸을 옆으로 비틀고 왼손으로 소매를 휘둘렀다.

“팍! 팍! 팍!”

소리와 함께 표창이 모두 튕겨 나갔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49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