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여(劉如)
【정견망】
장석순 이전에는 산약(山藥 참마)이 위기 상황에서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고, 당시의 중의사들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즉 아무도 이를 몰랐다.
《본초경》을 모르고 산약을 오해해 기이한 효과가 매몰
청대에 진수원(陳修園)이라는 위대한 의사는 자신의 저서인 《신농본초경독(神農本草經讀)》에서 산약의 약효를 설명하면서 “무릇 상품(上品)은 질병을 치료하는 약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썼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진수원은 전업 의사였음에도 《신농본초경》(이하 《본초경》)에서 산약을 ‘상품’으로 분류한 것은 단지 양생을 위해 늘 섭취하는 식재료일 뿐 병을 치료하는 약이 아니니 치료에는 쓸 곳이 별로 없다고 오해한 것이다. 이를 통해 본다면 장석순 이전에는 산약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약으로 간주하는 의사가 거의 없었으며, 심지어 위급한 상황에 처한 환자를 구하기 위해 감히 산약을 사용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일반적인 인식의 착오가 드러난다. 즉, 대다수 중의사는 본초경에서 약을 상품, 중품, 하품으로 분류한 것에 대해 실제로 의미 있게 읽지 않았고, 상품은 양생에 흔히 사용되는 음식과 같아서 병을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이러한 오해로 인해 산약이 생명을 구하고 위급 상황을 구하는 데 기이한 효과가 있음이 묻혀 버렸을 것이다. 장석순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상품으로서 산약의 신비와 의약의 조상인 신농(神農)의 본뜻이 밝혀졌다. 마치 예로부터 산약이 생명을 구하고 응급 상황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던 것만 같다.
그렇다면 장석순은 산약을 어떻게 사용해서 위급한 생명을 구했을까?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산약을 대량으로 사용했다는 점인데, 산약의 사용량은 놀라울 정도로 많아서 종종 산약 몇 냥(1냥은 37.5g)만으로 사람을 다시 살릴 수 있었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란 경우가 아주 많았다.
[참고 : 중의사는 일반적으로 생산약을 햇볕에 말려야 약효가 좋은 것으로 간주하는 반면 시장에서 식품으로 판매되는 것은 생마이며 햇볕에 말린 생마의 양이 장석순의 처방에 나오는 복용량이다.]
먼저 그의 실제 치료 사례를 살펴보자.
1. 산약 6냥으로 위급한 산모를 구하다
장석순은 한때 아이를 낳은 후 몸이 약해져 기운이 없는 부녀를 만났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하면 저절로 체력이 회복되지만 그녀는 호전될 기미가 없었다. 출산 십여 일이 지난 후 호흡이 크게 가빠지기 시작했고 동시에 끊임없이 땀을 흘렸는데 비오 듯이 많은 땀이 났고 몸에 열이 나면서 기침까지 했다. 가족들은 상황이 좋지 않다고 여겨 급히 의사를 불러왔다.
이렇게 청해 온 의사는 그녀가 방금 아이를 낳았다는 말을 듣고 이치상 당연히 일반적인 기혈(氣血) 부족으로 생각해 황기, 숙지황, 백작약 등 일반적으로 통용하는 기혈을 보하는 약물을 처방했다. 결과적으로 환자가 더 위독해지자 가족들이 당황해 급히 장석순을 모셔왔다. 그가 환자를 진찰한 후 여인의 맥박이 매우 약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환자가 위독한 상태라는 것을 알았다 일반적인 의사라면 “증상과 맥에 근거해 볼 때 치료할 수 없을 것 같다”고 간주했을 것이다. 즉, 이런 경우 의사는 환자를 살리는 것이 불가능하고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치료를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장석순은 “치료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글자를 사용해 모든 사람이 불치병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에도 환자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여전히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까지 읽으면 여러분들은 모두 대체 어떤 희귀하고 보기 드문 영단묘약(靈丹妙藥)을 사용했을까? 하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장석순은 이렇게 긴급한 상황에서 무슨 영단묘약을 처방하지 않고 환자 가족에게 서둘러 생산약 6냥, 즉 약 300그램에 달하는 엄청난 양을 사서 달인 후 천천히 환자더러 마시도록 했다. 다 마신 후 두 번째로 산약을 끓여 환자로 하여금 물 대신 산약탕을 하루 밤낮 계속 마시게 하라고 지시했다. 가족들은 전에 이런 치료법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놀랐지만 달리 방법이 없으니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시키는 대로 했다. 놀랍게도 이렇게 하자 환자의 상태는 점차 안정되었다. 그제야 산약이 생명을 구하는 기이한 효과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둘째 날과 셋째 날에도 장석순은 같은 용량인 6냥을 끓여 마시는 처방을 계속 사용했다. 이렇게 하자 환자의 모든 증상이 사라지고 완전히 회복되었다. 장석순은 “3일 후 모든 병이 나았다”라고 했다. 즉 오직 산약이란 한 가지 약만으로 중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뜻이다. 3일 후, 모든 질병이 다 사라지고 환자는 완전히 치유되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2. 온병으로 가래 천식이 나타는 처녀를 치료
장석순은 전에 미혼 처녀가 온병(溫病 열성 전염병)에 걸려 가래 천식으로 고통받는 것을 치료한 적이 있다. 온병이란 서양의학으로 정확히 대응해서 말하기 어려운 중의(中醫) 병명이다. 일반적인 표현은 감기처럼 발열이 나며 종종 가래가 많은 기침과 호흡 곤란이 동반되기도 한다. 처음에 장석순이 소청룡탕(小青龍湯)에 석고를 가한 처방에서 마황을 빼고 행인을 추가해서 쓰니 천식이 점차 가라앉았다. 그 당시 밤이 되었고 약을 마신 후 순조롭게 밤을 지냈다. 그러나 새벽에 갑자기 쌕쌕거림이 심해지고 맥이 어지럽게 흩어지면서 병이 갑자기 재발했다. 장석순은 깜짝 놀라 환자가 위독한 상태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것은 장차 쇼크가 올 징후다.”
즉 인체 오장육부와 혈맥을 운행하는 인체 정기(正氣)가 인체를 떠나 생명이 순환하는 기기(氣機)가 멈추고 환자는 즉시 사망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사람이 죽으면 기가 끊어졌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기(氣)는 공기가 아니라 인체의 경락에 흐르는 에너지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우주와 소통하며 인체라는 이 소우주에서 생명과 생리 활동을 주도하는 것이다. 이는 시시각각 절대로 멈출 수 없으며 멈추면 곧 죽는 것이다.
고명(高明)한 의사는 진맥할 때 기의 방향과 강약 상태를 느낄 수 있다. 물론 수련해서 도(道)를 얻은 편작이나 화타와 같은 신의(神醫)들은 천목(天目 제3의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다. 장석순이 이런 능력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감히 말할 수 없지만 그의 책에서 그 역시 중의에서 경락 침술을 배우려면 도가(道家) 수련 경서를 참고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따라서 그 역시 이시진처럼 수도자였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그는 맥상에 근거하거나 또는 천목으로 직접 보았을 수 있는데, 인체 정기가 이 여성에게서 빠져 나가려고 하고 생명이 위험한 상황이었다. 이 마지막 호흡을 지키지 못하면 사람이 끝장날 것이다.
다급한 마음에 그는 약재를 가지러 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함을 보고, 그들의 집에 아직 생산약(참마)이 한 냥 넘게 있다는 것을 알고는 급히 사람을 시켜 즙을 달여 마시게 했다. 그 결과 효과가 즉시 나타났다. 비록 앞서 소개했던 산모를 구조할 때의 용량인 6냥에 비하면 아주 작은 용량이었지만, 그래도 호흡이 조금 진정되고 맥이 약간 수렴되었으며 맥박도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 그리하여 간신히 숨을 이어가며 약을 구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장석순은 정식으로 처방을 내리면서 “처방에 여전히 산약을 많이 써서 병이 나을 수 있었다.”라고 했다. 다시 말해, 시간을 벌어다 준 뒤 정식으로 사용한 처방은 비록 산약 단방(單方)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처방 속에서는 여전히 산약을 중용했다는 뜻이다. 장석순이 적어도 산약이 병을 치료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앞서 산모와 이 미혼 여성을 응급 치료한 사례는 바로 《의학중중참서록》의 처방 중 ‘일미서여음(一味薯蕷飲 역주: 서여는 산약을 의미하니 산약 한 가지 약물만 달인 처방이란 의미)’에 기록되어 있다.
이 서여(薯蕷)는 바로 산약의 옛말이며, 《신농본초경》 때부터 존재하던 이름이다. 일미(一味)란 오직 산약이라는 이 한 가지 약재만을 사용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처방 이름이 ‘일미서여음’인데 장석순이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의안(醫案)에 이 처방이 실려 있다는 것은, 산약의 응급 구제와 질병 치료 작용이 얼마나 핵심적이고 막대한지를 사람들에게 분명히 알려주는 셈이다.
바로 이 ‘일미서여음’ 처방 소개에서 장석순은 분명하게 다음과 같이 적었다.
“진수원은, ‘산약은 평상시에 먹는 음식일 뿐이 큰 병을 치료할 수 없다’고 하였으나, 이는 틀렸다. 만약 정말 큰 병을 치료하지 못한다면, 어찌하여 《금궤요략》이 노채(勞瘵 역주: 오늘날의 폐결핵 등 소모성 질환)를 치료하는 처방에 서여환(薯蕷丸)을 두었겠는가?”
이를 통해 보건대 그 역시 《본초경》을 숙독하였고, 산약이 병을 치료할 수 없다는 진수원의 오해를 발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신농이 어째서 산약을 상품(上品)의 약물로 올렸는지 그 이유를 진정으로 읽어낸 것이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많은 사람이 《본초경》을 보면서도 진상을 알지 못하고 흔히 성인(聖人)의 뜻을 왜곡해 약을 제대로 알고 쓰지 못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조상인 신농의 지혜를 따르고, 한대(漢代) 장중경의 《금궤요략》에 기록된 서여환으로부터 실증과 영감을 얻어 산약이 병을 치료하는 데 기이한 효과가 있다는 진상을 발견한 것이다. 이로부터 겉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많은 약물과 심지어 식재료까지도 그에게 운용되면 뛰어난 효과를 발휘하게 되었다. 이렇게 평범하고 별로 특별해 보이지 않던 산약이 그의 손에서 수많은 환자를 구제하는 영단(靈丹)으로 변모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가 산약에 각별한 애정을 품고 있어 대다수의 방제에서 산약을 중용하기를 즐긴다고 말하는데, 이 말이 과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의학을 모르는 우리 평범한 백성들은 비록 남에게 진료를 하고 처방을 내려줄 수는 없지만, 그로부터 영감을 얻어 늘 산약으로 양생을 하고 이를 끓여 음식으로 자주 먹는다면 더욱 자각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산약은 어째서 이토록 신기한 것일까? 그것은 장석순의 손에서 또 어떻게 그 기량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다음 편에서 이야기해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