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8년—907년)
심연(心緣)
【정견망】
시가(詩歌) 편
당시(唐詩)는 대당의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전당시(全唐詩)》의 첫 페이지를 펼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첫 번째 당시 구절인 “진천은 웅장한 황제의 저택이오 함곡관은 씩씩한 황제의 거처라(秦川雄帝宅,涵穀壯皇居)”는 당 태종의 작품이다. 당 태종은 대당 제국 3백 년 번성의 초석을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이전 조대 시사(詩詞)의 퇴폐적인 기운을 일소하고 웅혼하고 광활하면서도 강직한 기개를 갖추었으면서도, 정신세계는 지극히 자유롭고 고결한 당시(唐詩)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쉽고 이해하기 쉬운 “침상 앞 밝은 달빛(牀前明月光)”에서 시작하여 우정과 사랑, 전원과 산수, 대막(大漠)의 변방 관문, 삶과 죽음 및 이별, 그리고 전반 당조의 역사적 변천에 이르기까지 시구는 우아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완연히 사람 마음을 움직인다.
초당사걸(初唐四傑)
고종에서 무측천 초년에 이르기까지 시단이 흥성하기 시작했으며, “문장으로 천하에 이름을 함께한” 초당사걸이 있어 시도(詩道)의 시작을 열었다. 그들은 “나이는 어리나 재주가 높고, 벼슬은 낮아도 명성이 컸다.” 네 사람은 각각 왕발(王勃), 낙빈왕(駱賓王), 양형(楊炯) 및 노조린(盧照隣)이다.
왕발의 《등왕각서(滕王閣序)》 중 “떨어지는 노을은 외로운 오리와 함께 날아가고, 가을 물은 긴 하늘과 한 빛깔이로다(落霞與孤鶖齊飛,秋水共長天一色)”는 먼저 사람들을 그림처럼 아름다운 당시의 경지로 이끈다. 그의 송별시는 이별의 슬픈 상태를 뒤집어, “사해 안에 알아주는 지기가 있다면, 하늘가에 있어도 이웃과 같아라. 갈림길에 서서 아이나 여자처럼 함께 눈물 적시지 말지어다(海內存知己,天涯若比鄰,無爲在岐路,兒女共沾巾)”라 하여 감정이 진실하고 활달해 감동을 준다.
684년에 이르러 당 황실이 크게 어지러워지고 무측천이 권력을 찬탈했다. 이때 낙빈왕은 양주(揚州)에 있으면서 죽음으로 이씨의 황실에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고, 서경업(徐敬業 명장 이적의 손자)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나라를 구하고 왕을 도울 것을 도모하며 스스로 기세가 웅장한 《토무조격(討武曌檄)–무조를 토벌하는 격문》을 초안하여 천하 인민의 뜨거운 애국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글에서 낙빈왕은, 무측천이 충신 장손무기를 해친 것은 “사람과 신(神)이 함께 미워하고 하늘과 땅이 용납하지 않는 바”라고 했으며, “한 줌의 흙이 아직 마르지 않았거늘, 여섯 척 외로운 고아는 누구에게 의탁할 것인가(一盃之土未乾,六尺之孤何托)”라는 표현으로 무측천이 남편인 당 고종이 막 세상을 떠나 무덤 흙도 마르지 않았는데 아들인 중종을 폐위시킨 것을 묘사했다. 그리고 “청컨대 오늘날의 영역 안에서 결국 누구의 천하가 될 것인지 보라(請看今日之域中,竟是誰家天下)”로 끝을 맺으며, 천하가 반드시 이당(李唐)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결의를 가득 담았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이 격문이 도성에 전해지자 무측천이 보고 도리어 낙빈왕의 재주가 뛰어남을 크게 찬탄하며 그를 포용해 쓰지 못한 것을 탄식했다고 한다. 나중에 의군(義軍)이 패배하자 낙빈왕이 죽임을 당했다는 설도 있고,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성당(盛唐)의 소리
“앞으로는 옛사람을 보지 못하고,
뒤로는 올 사람을 보지 못하니,
하늘과 땅의 유유함을 생각하며
홀로 창연히 눈물을 흘리노라!”
前不見古人,後不見來者,
念天地之悠悠,獨愴然而涕下!
이런 천고(千古)의 절창을 누가 지었을까? 바로 진자앙(陳子昂)이다! 한 수의 《등유주대가(登幽州臺歌)》는 성당 시단의 첫 번째 나팔을 불어, 시공간을 아득히 먼 홍황(洪荒)으로 밀어 넣었으니, 그 태어날 때부터 가져온 고독과 비창(悲愴)은 사람으로 하여금 호한한 우주 속에서 생명의 보잘것없음을 느끼게 하며, 끝없는 적막은 홍진(紅塵)에 묻힌 수많은 이들의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하는 슬픔을 건드렸다.
시선(詩仙)과 시성(詩聖)의 탄생
이백(李白)과 두보(杜甫)의 탄생은 마치 수레바퀴처럼 거대한 두 개의 별이 당시(唐詩)의 밤하늘에 눈부신 빛을 발산하는 것과 같았다. 시선(詩仙) 이백은 평생 풍류와 뛰어난 재주로 유랑하면서 틀에 매이지 않는 삶을 살았으니, 형문(荊門)의 황금대(黃金臺)와 천모(天姥)의 명월궁(明月宮)을 모두 정신으로 거닐었고, 미인과 좋은 술, 금과(金戈)와 철마가 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없었으며, 그의 시작(試作)은 넓고 풍부해 황하의 물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듯, 세상을 놀라게 한 명구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와 사람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산은 평야를 따라 다하고,
강은 대황으로 흘러 들어가네.
달은 내려와 날아가는 거울이 되고,
구름은 생겨나 바다의 누각을 맺도다.
山隨平野盡,江入大荒流。
月下飛天鏡,雲生結海樓。
(《도형문송별》)
“소왕의 백골은 덩굴풀에 얽혀 있으니,
그 누가 다시 황금대를 쓸어줄까?
갈 길이 어려우니 돌아가리로다!“
昭王白骨縈蔓草,誰人更掃黃金台?
行路難,歸去來!
(《행로난 2》)
“무지개로 옷을 삼고 바람으로 말을 삼아,
구름의 임금님이 떼 지어 내려오시네.
호랑이는 거문고를 타고 난새는 수레를 돌리며,
신선 같은 이들이 삼삼오오 줄지어 있도다…”
霓爲衣兮風爲馬,
雲之君兮紛紛而來下,
虎鼓瑟兮鸞回車,
仙之人兮列如麻…
(《몽유천모음류별》)
“…잔을 들어 밝은 달을 맞이하니,
그림자를 마주하고 세 사람이 되었구나.
…내가 노래하면 달은 배회하고,
내가 춤추면 그림자는 어지럽도다.
깨어 있을 때는 함께 즐기고,
취한 뒤에는 각자 헤어지네.“
…舉杯邀明月,對影成三人。
……我歌月徘徊,我舞影零亂;
醒時同交歡,醉後各分散。
(《월하독작》)
“오화마와 천금의 털
아이 불러 내어 좋은 술과 바꾸게 하여,
그대와 함께 만고의 시름을 녹여 보리라.”
五花馬,千金裘,
呼兒將出換美酒,
與爾同消萬古愁。
(《장진주(將進酒)》)
“바람 타 굵은 파도 헤칠 날 반드시 있으리니,
바로 구름 같은 돛을 달고 푸른 바다를 건너리라.”
長風破浪會有時,直掛雲帆濟滄海。
(《행로난 1》)
“백 번 싸운 모래밭에 철갑옷은 부서졌고,
성 남쪽엔 이미 몇 겹의 포위가 둘러쌌네.
진지를 돌파하여 특출나게 호연 장수를 베고,
홀로 잔여 병사 천 기를 이끌고 돌아오도다.“
百戰沙場碎鐵衣
城南已合數重圍
突營特殺呼延將
獨領殘兵千騎歸。
(《종군행(從軍行)》)
“나를 버리고 떠난 어제의 날은 머물게 할 수 없고,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오늘의 날은 근심이 많도다.
…칼을 뽑아 물을 잘라도 물은 다시 흐르고,
잔을 들어 근심을 없애려 해도 근심은 더욱 깊어지네.
세상에 태어나 뜻대로 되지 않으니,
내일 아침 머리를 풀어 헤치고 작은 배를 띄우리라.”
棄我去者昨日之日不可留;
亂我心者今日之日多煩憂。
……
抽刀斷水水更流,舉杯消愁愁更愁。
人生在世不稱意,明朝散發弄扁舟。
(《선주사조루전별교서숙운(宣州謝朓樓餞別校書叔雲)》)
이러한 천고의 명편과 명구들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입에 쩍쩍 붙어 사람들에게 무궁한 회한을 준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백은 하늘의 태백성(太白星)이 전세(轉世 세상에 태어남)한 것이라 하며, 이백 스스로도 자신을 ‘적선(謫仙 쫓겨난 신선)’이라 불렀다.
시성 두보는 평생 병란과 혼란, 집안의 파멸과 가족의 죽음이라는 뼈아픈 아픔을 겪었고, 백성들이 정처 없이 떠돌며 골육을 서로 잡아먹는 처절한 참상을 목도했으며, 모든 불우한 처지와 시대에 대한 탄식과 슬픔이 시인의 가슴속에서 터져 나와 강산을 뒤흔드는 함성을 토해냈다.
“나라는 부서져도 산하만 남아 있고,
성 안의 봄에는 풀과 나무만 무성하구나.“
國破山河在,城春草木深。
(《춘망(春望)》)
“수레소리 덜컹거리고 말소리 히히힝,
길가는 이들 허리에는 각기 활과 화살을 찼네.
부모와 처자식들 달려와 배웅하니,
먼지가 자욱하여 함양교가 보이지 않네.
옷자락을 잡고 발을 구르며 길을 막고 울부짖으니,
울음소리 곧장 위를 향햐 구름 위에 닿도다…”
車轔轔,馬蕭蕭,行人弓箭各在腰。
耶娘妻子走相送,塵埃不見鹹陽橋。
牽衣頓足攔道哭,哭聲直上幹雲霄…
(《병거행(兵車行)》)
“…사람을 죽이는 것도 한계가 있고,
나라를 세움에는 절로 강함이 있나니,
진정 침략과 능멸을 막을 수 있다면
어찌 많이 죽이고 상해함에 있겠는가?”
…殺人亦有限,立國自有強,
苟能制侵陵,豈在多殺傷?
(《전출새(前出塞) 9수》)
“붉은 문 안에는 술과 고기 썩어 나가는데,
길가에는 얼어 죽은 해골이 있도다!”
朱門酒肉臭,路有凍死骨!
(《자경부봉선현영회오백자(自京赴奉先縣詠懷五百字)》)
“출사하여 승리를 거두기도 전에 몸이 먼저 죽으니,
장차 영웅들로 하여금 눈물 가슴에 가득하게 하도다.”
出師未捷身先死,長使英雄淚滿襟。
(《촉상(蜀相)》)
“자귀나무도 오히려 때를 알 줄 알고,
원앙은 홀로 자지 않거늘,
단지 새 사람의 웃음만 보일 뿐,
어찌 옛 사람의 눈물 소리를 듣겠는가?”
合昏尚知時,鴛鴦不獨宿;
但見新人笑,那聞舊人哭?
(《가인》)
두보의 시를 읽으면 하늘을 슬퍼하고 사람을 가련히 여기는 감정이 가슴속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난다.
아름다우면서도 비장한 변새시(邊塞詩)
“대막의 외로운 연기는 곧게 오르고, 긴 강의 낙일은 둥글구나”
大漠孤煙直,長河落日圓
“연산의 눈은 자릿만하여, 조각조각 헌원대에 불어 떨어지네”
燕山之雪大如席,片片吹落軒轅台
“회락봉 앞의 모래는 눈과 같고, 수강성 밖의 달은 서리 같도다”
回樂峰前沙似雪,受降城外月如霜
이러한 호방하고 아름다운 시구들은 우리를 저 아득한 변방으로 데려가니, 하늘가에 지는 해는 핏빛 같고, 봉우리 끝의 백설은 맑고 깨끗하며, 발밑의 황사는 만 리요, 밤에 오는 달빛은 서리 같다. 뜻밖에 이 물 같은 달빛 속에서 “어디서 불어오는 날라리 소리인지 알 수 없나니, 하룻밤 사이에 원정 온 군사들이 모두 고향을 바라보도다.(不知何處吹蘆管,一夜征人盡望鄉)”
중원(中原)의 시가 주로 아름다운 전원 풍경을 묘사했다면, 변새시(邊塞詩)는 비장한 생이별과 죽음을 듬뿍 담고 있다.
“투명한 야광배에 담긴 정결한 포도주,
마시려 하니 마상에서 비파 소리가 재촉하네.
모래밭에 취해 누워도 그대여 웃지 말라,
예로부터 전쟁터에서 몇 사람이나 돌아왔던가.”
葡萄美酒夜光杯,欲飲琵琶馬上催,
醉臥沙場君莫笑,古來征戰幾人回。
비록 시 전체에 ‘죽음(死)’이라는 글자는 하나도 없으나, 전쟁이 가져오는 필연적인 ‘생사와 존망’을 왕한(王翰)은 한마디로 파헤쳤다.
“황하는 북으로 올라가 백운 사이로 들어가고,
한 조각 외로운 성은 만 길 산에 둘러싸였네.
강적의 피리를 불며 어찌 버드나무를 원망하리,
봄바람은 옥문관을 넘지 못하거늘.”
黃河北上白雲間,一片孤城萬仞山。
羌笛何須怨楊柳,春風不度玉門關。
이는 모든 변새시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만당(晩唐) 시가 — 석양은 무한히 좋으나
“무성한 언덕 위의 풀은,
한 해에 한 번 시들고 한 번 무성해지네.
들불이 태워도 다하지 못하니,
봄바람 불면 다시 살아나도다“
離離原上草,一歲一枯榮。
野火燒不盡,春風吹又生。
만당의 백거이(白居易)는 재기가 넘쳐흘렀으니, 이 한 구절 시로 과거에 응시해 조정 안팎을 진동시켰다. 그는 곧은 말을 아끼지 않고 충정(忠貞)했기에, 결국 궁중의 권귀(權貴)들에게 죄를 얻어 강주(江洲)로 벼슬이 깎여 유배되었다.
그가 지방관으로 유배되었을 때 민생의 고통에 대해 더욱 깊이 체회했기에, 백성들을 위해 많은 좋은 일들을 했다. 그의 시가는 사용하는 단어가 질박하고 단순하여 이해하기 쉬웠으므로, 시 한 수 한 수가 널리 애창되었다.
예컨대:
“타고난 아름다운 품석 버리기 어려워,
하루아침에 뽑혀 군왕의 곁에 있게 되었네.
눈길 한 번 돌려 웃으면 백 가지 매혹이 생겨나니,
육궁의 미인들이 색을 잃었도다…
하늘에서는 원하여 비익조가 되고,
땅에서는 원하여 연리지 가지가 되리라.
천장지구도 때가 되면 다함이 있거늘,
이 한은 끊임없이 다함이 없으리로다.”
天生麗質難自棄,一朝選在君王側。
回眸一笑百媚生,六宮粉黛無顏色
……
在天願作比翼鳥,在地願爲連理枝。
天長地久有時盡,此恨綿綿無絕期。
이 《장한가》는 당 현종과 양귀비를 역사적 배경으로 삼는다.
“서로 같은 하늘가에 유랑하는 처지이니,
만났거늘 어찌 꼭 예전에 알던 사이여야 하리.
(同是天涯淪落人,相逢何必曾相識)”
(《비파행》)은 비파녀와 정직한 지식인의 불행을 표현했다.
이 두 수의 시는 백거이가 살아 있을 때 이미 천하에 명성을 떨쳤으니, ” 어린아이도 《장한가》 곡조를 읊을 줄 알고, 이민족 아이도 《비파》 편을 부를 줄 안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비록 대당의 국세는 날로 쇠퇴해 갔으나, 당시(唐詩)는 역사 속에서 이미 대체할 수 없는 위치를 얻어 오늘날까지 천고에 전해지며 읊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