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법제자
【정견망】
때는 바야흐로 2002년, 대법에 대한 박해가 가장 광적으로 자행되던 가장 어두운 시기 중 하나였다. 사악은 끊임없이 기승을 부렸고 박해는 한 걸음씩 광기를 향해 치달았으며, 주변 환경 전체가 유례없이 험악했다. 그러나 이처럼 험난한 환경일수록 동수들은 두려움에 꺾이지 않았다. 모두가 ‘어떻게 해야 더욱 지혜롭게 진상을 알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세인들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真善忍好)”를 보게 하고, 거짓말에 눈이 가린 이들이 진상을 알릴 기회를 얻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 무렵 명혜망에 한 동수의 교류 문장이 실렸는데, 대법 진상 현수막을 지혜롭게 내걸었던 방법을 소개하고 있었다. 글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소개되어 있었는데, 그중 얼음을 이용해 현수막을 고정하는 방법이 나의 큰 흥미를 끌었다.
나는 글을 꼼꼼히 읽은 후 생각했다. ‘이 방법은 정말 기발하구나! 현수막을 단단히 걸 수 있으면서도, 진상 알리기에 동참한 동수들이 안전하게 빠져나갈 소중한 시간을 벌 수 있겠어.’ 그래서 나는 곧바로 이 생각을 현지 협조인과 상의했고, 협조인도 이야기를 듣고는 크게 공감했다. 그 후 우리는 차례대로 대형 현수막들을 준비했다. 폭 1미터, 길이 8미터에 달하는 현수막에는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파룬따파 박해를 중단하라”, “파룬따파는 정법이다” 등 눈에 띄는 진상 문구가 적혀 있었다.
당시 우리 몇 명의 동수는 늘 함께 손발을 맞추었다.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차를 몰기도 하며, 미리 적당한 장소를 물색한 후 분업하고 서로를 돌보았다.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당시 우리 모두 엄청난 압력에 직면해 있었지만, 각자의 마음속은 대단히 굳건했다. 그 누구도 이 일을 평범한 일로 여기지 않았고, 모두가 자신이 마주한 대상이 거짓말에 눈이 가린 세상이며, 자신이 하는 일은 최선을 다해 진상을 세인들에게 전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한번은 우리 몇 명의 동수가 함께 나가 지역의 주요 교통로 근처의 눈에 띄는 장소에 대형 진상 현수막을 내걸었다. 커다란 현수막이 펼쳐지자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라는 커다란 글자가 바람을 맞으며 꼿꼿이 서서 멀리서도 똑똑히 보였다. 그 순간 내 마음속에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그토록 어두운 환경 속에서 이 글자들은 마치 한 줄기 빛처럼 불쑥 짙은 안개를 찢고 나아가는 듯했다.
사악이 일단 이를 발견하면 곧바로 행동에 나서곤 했다. 하지만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우리는 이미 그 자리를 떠난 뒤였다.
후에 동수들은 끊임없이 모색하고 서로 협력하며 더욱 기발하고 편리한 방법들을 생각해 냈다. 비교적 높은 곳에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눈에 띄는 자리에 현수막을 걸어, 지나가는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했다. 그때 우리들의 생각은 아주 단순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진상을 보게 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값진 것이다.’
또 한 번은 나와 몇 명의 동수가 차를 타고 나갔던 적이 있었다. 그날 밤은 짙은 안개가 특히 심하여 가시거리가 매우 짧고 주변의 모든 것이 몽환적이고 아스라하게 보였다. 우리 몇 사람은 상의 끝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계속 해나가기로 결정했다. 그날 밤 우리는 차를 몰고 길을 달리며 서로 호흡을 맞추어 수많은 현수막을 걸었다. 지금 돌이켜봐도 그것은 진정 사존의 자비로운 가호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토록 열악한 환경 속에서 우리에게는 지나치게 많은 생각을 하거나 개인의 득실을 따질 여유가 없었으며, 오직 자신이 짊어진 책임만을 알고 있었다. 길을 가는 동안 서로 호흡을 맞추고 서로를 격려했다. 비록 몸은 대단히 피곤했지만 마음만큼은 충만했다. 그 동수들 간의 순수한 협력, 무사한 헌신, 그리고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함께 애쓰던 그 상태는 수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다.
당시 나와 함께 이 일을 하던 동수들 중 두 분은 세상을 떠났다. 긴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들을 떠올리면 그 시절의 모습이 눈에 선하고, 그들이 하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당시 그들의 일거수일투족, 목소리와 미소가 여전히 내 기억 속 선명하게 남아 있다. 때때로 나는 생각하곤 한다. 만약 그때의 그런 경험이 없었더라면 나는 아마 진정한 의미의 ‘동수’가 무엇인지 영원히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가장 어려웠던 시절, 우리들은 개인의 득실을 따지지 않았고 자신이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생각하지 않았으며, 오직 어떻게 하면 진상을 세인들의 눈앞에 전달할 수 있을 지만 생각했다. 어려움을 만나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찾았고, 압력이 닥치면 서로를 격려했다.
그것은 아주 고생스러운 세월이었지만, 동시에 내 인생에서 영원히 잊지 못할 세월이기도 하다. 도시 곳곳에 내걸렸던 그 현수막들은 어쩌면 이미 오래전에 철거되었을 것이고,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던 그 동수들 중 일부는 이미 우리 곁을 떠났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과거에 일어났던 모든 일은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왜냐하면 그 하나하나의 뚜렷한 글자들이 과거에 수많은 이들이 바쁘게 스쳐 지나갈 때 진상을 보게 만들었기 때문이며, 그 평범해 보이는 현수막들 뒤에는 동수들이 어둠 속에서 지켜낸 정념과 거대한 압력 속에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굳건함, 그리고 수련인들이 중생을 향해 품었던 자비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수년이 지난 지금 되돌아보았을 때, 나는 갈수록 깊이 체감하게 된다. 진정으로 나를 잊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그 시절 얼마나 많은 현수막을 걸었는가 하는 점이 아니라, 바로 그 가장 힘겨웠던 세월 속에서 우리가 똑같은 하나의 소원을 품고 함께 길을 걸었다는 사실—더 많은 세인들이 진상을 알게 되기를, 거짓말 때문에 자신의 미래를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랐던 그 마음—그 자체였다는 것을.
그리고 이미 세상을 떠난 동수들은 영원히 내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그들이 과거에 걸어갔던 길, 쏟아부었던 심혈, 그리고 그 굳건했던 정념은 내 수련의 길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 될 것이다.
어둠은 언젠가 지나가고 진상은 결국 분명해질 것이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진실의 빛을 밝혀내던 그들의 모습은 영원히 내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