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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마음 지키기 2편

해외 대법제자 청계(淸溪)

【정견망】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사부님뿐만 아니라 동수에게도 마땅히 늘 겸손한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는 모두 사부님께서 지옥에서 건져 올린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그 동수가 겉보기에 얼마나 많은 결점을 가지고 있든, 그 역시 한때 위대한 생명이었고 또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고생을 겪었기에 대법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동수를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

동수가 어떤 방면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선의(善意)로 지적해 주되, 만약 그가 고치려 하지 않는다면 내 생각에 그것은 어쩌면 그 생명의 진짜 본의가 아닐 수도 있고, 어쩌면 모종의 요소가 그를 가로막고 있는 것일 수도 있으며, 또 어쩌면 어느 정도 시간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점오(漸悟)’와 ‘돈오(頓悟)’의 이치와 같다. 한 가지 이치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어떤 사람은 단숨에 깨달을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일정 기간이 지나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떠한 상황이든 우리는 모두 자비로운 마음으로 남을 대해야 한다.

만약 겸손한 마음을 유지할 수 없다면, 그것은 아마 자신을 옳다고 여기는 마음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그러므로 얼마나 많은 공능, 얼마나 큰 공능이 나왔든지, 신통이 얼마나 크게 나타났든지, 당신은 반드시 파악해야 한다.”

“어떤 정황이 나타나든 꼭 心性(씬씽)을 파악해야 하며, 오로지 대법(大法)에 따라 해야만 비로소 진정 정확한 것이다. 당신의 공능이든 당신의 개공이든 당신은 대법(大法) 수련 중에서 얻은 것이다. 만약 당신이 대법(大法)을 부차적인 위치에 놓고 당신의 신통을 중요한 위치에 놓거나 또는 개오한 사람이 당신 자신의 이런 인식 저런 인식이 옳다고 여기며, 심지어 당신 자신이 대단하여 대법(大法)을 능가한다고 여긴다면, 당신은 이미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곧 위험하며, 갈수록 더 잘못된다고 나는 말한다. 그때가 되면 당신은 정말로 번거로워지고 수련이 헛되는데, 잘못하면 떨어져 내려가서 수련이 헛되고 만다.”

수련인으로서 우리는 집착심을 버리지 않고서는 수련 성취할 수 없음을 다 알고 있다. 우리가 동수를 업신여길 때, 우리가 스스로 수련을 아주 잘한다고 여길 때, 우리가 동수의 권고를 귀담아듣지 않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자신을 잘 돌아보아야 하며, 자신에게 여전히 어떤 문제가 존재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북미 제1기법회설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의, 사람 마음을 중요시하는 수련이야말로 근본이다. ”

“당신의 수련에서 층차를 제고함이야말로 제1위이다.”

어떤 동수들은 내가 법을 공부하고, 발정념을 하고, 진상을 알리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러한 일들을 할 때 과연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는가? 어떤 기점에서 하는가? 진정한 수련인의 마음가짐으로 하는가? 아니면 사부님께 보여드리기 위해서 하는가? 마치 세 가지 일을 하기만 하면 사부님께서 당신을 부처로 만들어 주시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이미 아주 명백히 말씀해 주셨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석가모니는, 말법시기에 이르면 사원(寺院) 중의 승려마저도 자신을 제도하기가 아주 어렵다고 했는데, 하물며 거사(居士)는 더욱 관계할 사람이 없다. 당신이 스승을 모셨다고만 보지 말라. 이른바 그 스승 역시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그도 착실하게 수련하지 않으면 헛되며, 이 마음을 닦지 않으면 누구도 올라가지 못한다. 귀의(皈依)는 속인 중의 형식으로서 당신이 귀의했다고 해서 곧 불가(佛家)의 사람인가? 부처가 곧 당신을 책임지는가? 그런 일은 없다. 당신이 날마다 이마가 터지도록 절을 하고 향을 한 줌 한 줌 피운다 해도 역시 소용없다. 당신은 진정으로 당신의 그 마음을 착실하게 수련해야 한다.”

이 글을 쓸 때, 마침 일본의 한 동수가 쓴 엄정성명(嚴正聲明)을 보게 되었다. 그는 한동안 굽은 길을 걸었었는데, 그는 성명에서 이렇게 썼다.

“내심 깊은 곳의 근본 집착을 제거하지 않고, 본질과 뿌리가 대법에 있지 않다면, 아무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얼마나 정진하는 모습을 보여도 모두 헛수고일 뿐이며, 모두 집착을 분칠하고 은폐하는 것일 뿐이다.”

“수련인으로서 만약 수련이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조차 개의치 않고, 심지어 대다수의 중생이 그로 인해 구도되지 못하는 것조차 아랑곳하지 않는다면, 생명의 의미가 과연 어디에 있겠는가?”

그렇다! 만약 우리가 심지어 수련이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조차 개의치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진정한 수련인인가? 만약 우리가 노력을 다해 안으로 찾지 않고, 자신의 집착을 보려 하지 않으며, 그러한 집착들을 닦아버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진정한 수련인인가?

자신의 작은 인식을 적어 여러분과 함께 서로 격려하고자 한다. 층차에 한계가 있으니 부족한 점은 동수들의 비판과 시정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