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뉴스】
정법시기 대법제자는 많은 경우 세상 사람들, 심지어 일반적인 수련인들과도 다르다. 정법시기의 대법제자는 단순한 개인 수련을 위해서가 아니라, 조사정법(助師正法)하고, 법을 실증하며,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똑같이 ‘내려놓음[放下]’이라도 여전히 차이가 있다.
가장 간단한 예를 들어보겠다. 똑같은 병이라도 정법시기의 대법제자가 내려놓을 것, 수련인이 내려놓을 것, 그리고 세상 사람도 내려놓을 수 있지만 그 경지가 다르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경문 《각지 설법 11》〈2010년 뉴욕법회 설법〉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구세력은 당신의 마음을 제거하기 위해, 당신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고험하려고 할 때, 그것은 여전히 당신에게 원래 병이 있던 부위에 병이 있는 아픈 감각을 있게 하거나, 혹은 병이 있는 반응에 이어 증상까지도 똑같게 해서, 당신이 대법을 믿는지 믿지 않는지를 본다.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사람과 신의 일념(一念)이라. 당신이 정념을 움직였다면, 당신은 이 모든 것이 가상(假相)이고 구세력의 교란이라고 하며, 내가 이처럼 여러 해 수련했는데, 이 정황이 나타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당신이 정말로 내심에서 우러나온 일념이라면, 즉시 아무것도 없다. ”
대법제자가 내려놓으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대법제자에게는 애초에 병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대법제자에게 있어서 병의 상태란 사실 하나의 가상(假相)일 뿐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수련인의 경우라면 상황이 어떠할지는 꼭 그렇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법문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실례를 들자면, 바로 원만(圓滿)을 구하는 것이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경문 《북미순회설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개인원만은 당신들로 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역사상 당신들은 여러 차례 수련을 해 왔고 많은 시기에 모두 이러한 길을 걸어왔다. 현재 당신들이 개인적으로 원만의 표준에 이르는 데 대한 고험은 전혀 아무것도 아니며, 그것은 대법제자가 법을 파악한 정도를 가늠하는 표준이다.”
내가 이해하기에, 정법시기 대법제자에게 있어서 개인 원만은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대법제자의 책임은 조사정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원만을 구하는 마음을 내려놓을 때, 개인 원만은 이미 끝난 것이다. 다시 말해 내려놓은 후에 바로 원만해진다. 물론 대법제자가 진정으로 구하는 것은 대원만(大圓滿)이다. 자신이 마땅히 구도해야 할 이들을 모두 구도하고, 정체적으로 원만 회귀하는 것이다. 정법이 시작되면서 대법제자의 개인 수련은 이미 기본적으로 끝났으며, 개인의 원만은 더 이상 고려할 필요가 없는 문제가 되었다.
반면 일반적인 수련에 있어서는, 원만을 구하는 마음을 내려놓는데 마땅히 원만해야 할 사람은 원만하고,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여전히 원만할 수 없다. 여기에서 원만을 구하는 것은 단지 그중 한 가지 사람 마음(人心)일 뿐, 전부가 아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에게 원만을 제기하는 것은 우스갯소리에 불과하며 아무런 의미도 없다.
정법시기의 대법제자는 행운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직접 창세주(創世主)를 따르고 정법과 함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만고에 만나기 힘든 기연(機緣)이므로 반드시 소중히 여겨야 한다. 생명 중에서 가장 행운이고 가장 기쁜 대사(大事)이다.
똑같이 내려놓음을 말할지라도 경지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며 결말도 다르다. 하지만 내려놓음 자체는 분명 좋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