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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오천년〗 삼대 성세천조(盛世天朝)의 하나 당조(唐朝) (15)

(618년—907년)

심연(心緣)

【정견망】

석각(石刻)과 조각 예술

대족(大足)석각 예술

중경시 대족(大足)현 경내에는 당송(唐宋) 이래 석각 조각상 100여 곳, 6만 여 존(尊)이 있는데 이를 통칭 대족석각이라 부른다. 그중 전국 중점문물보호단위인 북산(北山)과 보정산(寶頂山) 마애조각상이 규모가 가장 크고 가장 집중되어 있어 가장 장관이다.

북산마애조각상은 현성(縣城) 서북쪽 1킬로미터에 위치하며, 만당(晩唐) 시기에 시작하여 오대(五代)와 양송(兩宋)을 거치며 여러 부처와 보살 등을 조각했으니 조각상이 만 존에 가까워 정교하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전아함으로 세상에 이름이 높다. 당대 인물 형상은 단정하고 풍만하며 기질이 웅혼하고, 조각 기술이 정교해서 사람과 신(神)이 하나로 합쳐졌다.

용문석굴 조소(彫塑)

용문석굴의 조소는 북위와 당대에 대규모로 개착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감실(龕室)이 2천 1백 여 개, 불탑이 40여 좌, 비석 제기(題記)가 3천 6백 개 정도이며, 전 산의 조각상이 10만 여 구에 달한다.

봉선사(奉先寺) 대노사나상(大盧舍那像)의 감실은 기세가 웅장하고 조각이 정교해, 당 고종 상원(上元) 2년(675년)에 완성되었으며 용문 당대(唐代) 석굴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예술미가 뛰어나 대표성을 지닌 중요한 석굴이다. 주상(主像)인 노사나대불은 전체 높이가 17.14미터로, 얼굴이 풍만하고 수려하며 두 눈은 고요하고 입가에는 미소가 살짝 감돈다. 양옆에 선 가섭은 엄숙하고 무거우며, 아난은 온순하고 경건하며, 보살은 단정하면서도 장엄하다. 천왕(天王)은 눈살을 찌푸리고 눈을 부릅떴으며, 역사(力士)는 웅강(雄强)하고 위무(威武)가 있다. 봉선사 여러 상들의 배치, 생생한 표정 묘사는 모두 형신(形神)을 겸비한 효과에 도달해 당대 조각 예술의 높은 성취를 드러낸다.

만불동(萬佛洞)은 당 고종 영륭(永隆) 원년(680년)에 완성되었다. 동굴 안의 남북 벽 위에 작은 부처가 가득 조각되어 약 1만 5천 여 구에 달하므로 만불동이라 부른다. 정면 벽의 불상은 잘록한 허리 모양의 8각 연화좌 위에 단정히 앉아 있다. 뒷벽에는 54가지 연꽃을 조각했으니, 연꽃마다 보살이나 공양인이 앉아 있어 남다른 운치가 있다. 남북 벽 기단에는 기악인을 조각했으니, 춤추는 이는 옷띠가 펄럭이고 예쁘고 다채로우며 연주하는 이는 손에 악기를 들고 형상이 생동하다. 동굴 밖 남벽의 관세음보살은 왼손에 정병(淨甁)을 들고 오른손에 주미(麈尾 먼지 털이)를 들었으니, 비율과 대칭이 적당하고 몸짓이 모두 자연스럽게 묘사되었다.

목탑은 높고 큰 대좌 위에 건조되었으니 대좌 높이가 4미터가 넘으며 상하 두 층으로 나뉜다. 위층 대좌와 월대 각 모퉁이에는 각석(角石)이 있는데, 각석 위에 돌출된 사자로 볼 때 조각 풍격이 질박하여 요대(遼代)의 유물일 것이다. 목탑의 전체 높이는 67.31미터로 그중 탑찰(塔刹 탑 상단 장식) 높이가 약 10미터이다. 탑의 평면은 팔각형으로 바닥층 지름이 30.27미터이다. 탑에는 다섯 개의 명층(明層 겉으로 드러나는 층)이 있고 각 층 사이에 다시 암층(暗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감춰진 층)이 끼워져 있어 실제로는 9층이다. 바닥층은 이중 처마에 회랑이 있어 탑의 외관은 6층 처마로 보인다. 탑의 전체 비율이 적당하고 외형도 안정되어 장엄하게 보인다.

돈황석굴 조각

막고굴에 현존하는 492개 석굴 중, 당조 시기에 건조된 것이 247개 동에 달한다.

수당(隋唐)은 막고굴의 전성기로 특히 당조가 더욱 그렀다. 불교가 전성시기에 도달했고 석굴의 개착 역시 전성기에 진입했다. 수대(隋代) 100굴의 양식은 북조의 중앙탑식에서 중심불단으로 바뀌었으며, 조각상의 조합은 남북조와 같았다. 당대(唐代)에 이르러 일불(一佛), 이제자(二弟子), 이천왕(二天王) 또는 이역사(二力士)의 조합이 출현했다. 불상 역시 초기 ‘수골청수(瘦骨清秀 뼈대가 야위어 맑고 빼어난 모습)’ 조형에서 다시 ‘풍만하고 튼실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굴 안의 벽화는 주로 큰 장면의 설법도와 간단한 경변도(經變圖)다. 막고굴에서 가장 큰 조각상은 모두 당대에 만들어졌으니 제96굴 대불(大佛)이 모고굴에서 가장 큰 조각상이다. 당대 벽화는 다양한 경변도로 그 규모가 극히 웅대하여 천국의 장엄하면서도 화려한 풍경을 표현했다.

낙산대불(樂山大佛)

세간에서는 “아미산을 유람하려면 반드시 대불을 알현해야 한다”고 말한다. 낙산대불은 사천성 낙산시 성동쪽에 민강, 청의강, 대도하(大渡河) 세 강이 모이는 지점인 능운산(凌雲山) 위에 위치하며, 능운산이 강과 접하는 전체 석벽을 온전히 인력으로 깎아 오목하게 돌을 파내 만든 좌불상이다. 높이 71미터, 머리 높이 14.7미터, 귀 길이 6.72미터, 코 길이 5.33미터, 어깨 넓이 24미터, 손가락 길이 8.3미터, 발등은 폭 9미터에 길이 11미터로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석각 불상이다.

이 대불상은 두 손으로 무릎을 누르고 엄숙한 표정으로 멀리 큰 강을 바라보고 있다. 단지 체형만 거대한 것이 아니라 조각 기술이 뛰어나고 구조가 균형적이고 비율이 적당하며 선이 매끄럽다. 머리와 몸 위에는 교묘하게 배수 시스템이 감춰져 있어 물길의 충격을 피하고 풍화를 감쇄시킨다. 불굴 왼쪽 암벽 위에는 대불과 동시에 개착된 험준한 잔도(棧道)가 있으니 그 굽이친 모습이 아홉 번을 돌았으므로 ‘구곡잔도(九曲棧道)’라 부른다. 잔도를 통해 대불의 발밑까지 내려갈 수 있다.

낙산대불은 당 현종 개원 초년(713년)에 개착하기 시작해 90년의 세월이 흘러 비로소 준공되었다. 당시 능운사의 명승 해통(海通)이 세 강이 모이는 지점에서 매번 홍수 계절만 되면 물난리가 끊이지 않는 것을 보고, 마침내 대불을 건립할 마음을 내어 이것으로 물 요괴를 누르고자 했다. 이에 그는 온갖 고초를 겪으며 사방에서 시주를 얻어 20년 동안 자금을 모았다. 해통은 대불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나중에 검남천서(劍南川西)절도사 위고(韋皐)를 거쳐 계속해서 완공했다. 현재 능운산 정상의 해사동(海師洞)은 해통이 수련하던 곳이라 전해지는데 동굴 안에는 해통의 조각상이 있다. 높이 2미터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알이 담긴 소반을 손에 들고 있는데 표정이 너무 굳세고 강해 위엄을 범하기 어렵다.

낙산대불은 미륵불상(彌勒佛像)이다. 천백 년 동안 사람들은 이곳을 가리켜 “산이 하나의 부처요, 부처가 하나의 산이다”라고 말했으니, 하나는 좌불(坐佛)의 거대함을 말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불교 문화가 짙게 물든 것을 가리킨다. 매우 기묘하게도 대불 근처 강가에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아주 비슷한 모습의 누워자는 듯한 부처가 있으니, 그 머리와 손, 발이 각각 오우산(烏尤山), 능운산, 구성산(龜城山) 세 산이 어깨를 견주어 형성되었고, 유명한 낙산대불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딱 거대한 와불의 가슴 부위 위치에 단정히 앉아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