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개인적으로 보기에, 법리에 대한 인식과 체득은 얕은 데서 깊은 데로 나아가고, 수련은 낮은 데서 높은 데로 올라간다. 개인적으로 수련 과정에서 ‘신(信)’에 대한 깨달음 역시 특별히 많고도 다양한 체득이 있었다.
처음에 수련하려 했을 때는 일반적인 종교 신도들처럼 신(神)을 숭배하고 존경했으며, 부처를 경배하고 신을 경배하는 것 역시 자신의 각종 집착과 관념을 위해 경배하러 갔던 것이다. 만약 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자신이 소위 믿는다고 했던 것 역시 자신이 좋은 것을 얻기를 바라는 믿음이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만약 좋은 결과가 있으면 더 믿고, 만약 좋은 결과가 없으면 반신반의하거나 심지어 그다지 믿지 않게 되기도 한다. 표면상으로는 인간 세상의 관념과이치에 따라 한 가지 일이나 사람의 옳고 그름과 선악을 평가하거나, 어떤 일이 실행 가능한지 아닌지를 평가하려는 경향이 더 강해진다. 비록 광적인 신도처럼 십 년을 하루같이 경건하게 부처를 경배하고 신을 경배한다고 할지라도, 그 역시 자신의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좋은 결과를 얻기를 바라며 경배할 뿐이며,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할 뿐이다.
진정한 수련인의 믿음은 어떠한가? 사부님께서 하신 매 한 마디 말씀, 매 단락의 법을 믿는다. 비록 소위 현실 세계와는 다를지라도 곧 법에 따라 행한다. 예를 들어 우리 자신에게 혹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다 좋은 일이다. 우리는 진정으로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것이 정말로 좋은 일이라고 여기는가? 아니면 억지로 자신을 몰아세워 그것들을 모두 좋은 일로 여기게 하는 것인가? 이것은 같지 않은 것이다! 마치 일반 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서 “정말 맛있다!”라고 느끼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우리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이든 간에 마치 저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처럼 진정으로 좋은 일로 여기는가? 게다가 도대체 무엇이 좋은 일인가? 사고(思考) 속에서, 수련 속에서 나는 자신이 마땅히 알아야 할 진정한 믿음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도대체 진정한 믿음이란 무엇인지를 체득했다.
믿음에 이토록 깊은 내함(內涵)이 있을 줄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아울러 진정으로 수련하려 하고, 진정으로 가장 큰 공을 들여 수련해야만 비로소 체득할 가능성이 있다. 생각하는 것은 한 가지 일이고, 끝까지 이렇게 여기는 것을 견지하며 줄곧 법에 따라 해나가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하지만 진정으로 수련하고자 한다면 달리 할 말이 없고, 그냥 견지하며 법에 따라 완전히 해내는 것뿐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믿음(真信)의 한 가지 내함이다.
믿음에는 더욱 깊고 더욱 넓은 내함이 또 있다. 줄곧 부단히 서로 다른 체득이 있게 된다. 마치 어떤 동수가 썼던 것처럼, 믿음의 내함을 체득하는 과정 속에서 무려 1년이라는 시간을 겪기도 했다. 오늘 한 시간 동안 ‘믿음’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리고 나서 날마다 틈 날 때마다 ‘믿음’이 무엇인지 잠시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법공부를 하는 것 외에도, 자신이 체득한 믿음을 줄곧 생각하고 또 실천하여 스스로 잘 해내는 것이다. 깨달은 바가 있으면 조금 해내고, 그 ‘해냄’이라는 것은 한두 가지 일에서 해내는 것이 아니라, 24시간 내내 언제나 해낼 수 있도록 분발하며, 마음속으로 해내고, 행동으로 해내며, 마지막에는 반드시 완전히 해내야 하고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말하자면, 만약 매일 하는 일이 삐걱거리며 온전치 못하고, 잠깐 동안은 해내다가 잠시 동안은 해내지 못한다면, 대개 결국에는 다 해내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역시 도대체 무엇이 진정한 믿음인지 체득할 수 없게 된다. 집착을 버리는 것 역시 이와 같은 것 같다. 끝까지 줄곧 해내기를 견지하지 못한다면, 이 집착을 기꺼이 완전히 제거해 버려야겠다는 확고함이 없다면, 그 집착을 완전히 제거해 버렸을 때 어떤 느낌인지, 어떤 체득이 있게 될지 체득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명리정(名利情)을 완전히 제거해 버렸을 때 무슨 느낌인지, 삼계를 벗어날 때는 어떤 경지이며 어떤 느낌인지, 도대체 무엇이 여래(如來)인지? 등등.
진정으로 그 경지에 도달했는데 조금의 느낌과 체득도 없겠는가? 심성이 불안정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도달해 보아야만 비로소 알 수 있을 것이다. 대법은 끝이 없고, 진정으로 믿고, 법에 따른다면, 수련에는 우리 자신이 스스로 잘 수련해야 할 무수한 경지가 여전히 남아 있다. 오직 대법에 따라 수련하는 이 한 갈래 길뿐이다! 자신이 체득한 작은 이치(理)는 법과 비교할 수 없다. 진정으로 수련하는 대법제자는 모두 알다시피, 자신이 깨달은 것이 아무리 높은 이치일지라도, 조금 제고하고 나면 방금 깨달은 이치가 그렇게 옳은 것은 아님을 발견하게 된다. 제고함에 따라 더욱더 그런 일이 아님을 알게 되기에, 그러므로 자신이 깨달은 고만한 것을 꽉 쥐고 놓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냥 법에 따라 하는 것이다. 법 속에는 더욱 깊은 내함이 있으니, 줄곧 수련하고, 더욱 잘 해내며, 그냥 법에 따라 행하고, 자신을 수련하는 것이다. 사실 믿음이란, 마땅히 수련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이 스스로 가서 체득하고 수련해야 하는 것이다.
개인의 작은 인식을 서로 교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