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천(尋泉)
【정견망】
머리말
인류는 문명의 발전 과정에서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과 관념을 다졌으며, 이를 통해 각종 사물을 마주할 때 상응하는 이해와 대처 방식을 지니게 되었고, 그리하여 인간이라는 이 생명 형태를 이루어냈다.
우주는 지극히 복잡하고 오묘하여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얕고 적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간의 사유는 완벽하고 일관성 있는 체계여서, 끝없는 미혹과 번잡함 속에서 드러나는 약간의 현상을 관찰한 후에도 반드시 명확한 인식을 구축해 느낌상 합리적이고 스스로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근대 학술 문화의 번영과 자신감에 따라 사람들은 이미 이 인식 체계를 매우 풍부한 정도까지 충실하게 채워 복잡하고 권위 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인간은 결국 미혹 속에 처해 있고 상천(上天) 역시 인간이 더 많이 아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에, 이 인식 체계는 구축 과정에서 스스로를 봉쇄하는 작용을 낳았으며, 이 미혹의 범위를 벗어나는 사상 인식을 주동적으로 억제했고, 사람이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인식의 경계를 형성하게 하여 자신을 기존 사상 속에 고정시킨 채 느낌상 이미 원만하다고 여기게 만들었다.
필자는 인간이 ‘랜덤’라는 개념에 대해 갖는 인식이 이러한 모형의 아주 대표적인 예시임을 발견했다. 인간의 이성적 사유는 확정적인 논리 과정으로, 한 걸음에서 다음 걸음을 유도해 내며 필연적인 것이다. 몇 번을 생각하든 똑같은 결론을 심화할 뿐이다. 반면 사람이 랜덤하다고 여기는 일들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인식 밖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면 수학은 인간의 이성적 사유가 이룩해낸 방법으로, 모두 절대적이고 단일한 논리 구조를 지니고 있다. 마치 “진실은 오직 하나뿐이다”라는 말처럼 말이다. 수중에 있는 어떤 수학 명제가 왜 성립하는지 물어보면, 유도를 거쳐 이미 오래전에 알고 있던 기본 공리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전체 수학 체계의 나무는 뿌리부터 잎까지 모두 이러한 형식이다. 필자는 어릴 때부터 수학을 공부하여 이미 이에 익숙해져 있었으나, ‘확률론’이라는 과목을 공부할 때 인식의 충격을 겪었다. 즉 ‘확률’이라는 개념이 마치 뿌리 없는 나무나 근원 없는 물처럼 본래 이미 익숙해 있던 지식 체계 속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랜덤과 확률이라는 개념의 유래는 수학이 미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지만, 확률론이라는 학문 전체는 모두 이에 기반하여 구성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이해하는 랜덤이란, 이미 알려진 조건 아래에서는 사건의 정확한 결과를 추측할 수 없고 다만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 및 일정한 법칙만을 아는 것을 가리킨다. 불확실한 일과 확정적인 인간의 사유는 ‘랜덤’이라는 개념을 통해 비로소 서로 연결된다. 비록 결과를 추측할 수는 없지만 유사한 일이 자주 발생하면 일정한 법칙을 찾아낼 수 있고, 이를 통해 ‘확률’의 인식 범주에 편입시켜 계속해서 논리로 분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각종 결과가 나타날 확률을 알 수 있는 식이다. 이렇게 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예측할 수 없었던 일들이 모두 랜덤 사건으로 불리며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지식 창고 속에 알맞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 이해되고 이용되었다. 이러한 자리는 공교롭게도 인간의 인식 경계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확률의 표현이 존재하기 때문에 완전한 ‘미지(未知)’로는 여겨지지 않아, 사람이 생각할 때 방향을 틀어 돌아오게 만들었고, 자신이 돌파하지 못한 경계를 점차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형성된 사유 습관은 마침내 스스로를 봉쇄하는 작용을 낳았다.
생활 속의 인식
가장 전형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자면, 사람들은 흔히 동전을 던지는 방식을 통해 ‘공평한’ 안배를 만들어내곤 한다. 예를 들어 체육 경기 시 어느 쪽이 어느 쪽 진영에 설지, 두 사람 중 누구에게 기회를 줄지 등의 상황에서 사람들은 동전을 한 번 던져 그 랜덤으로 얻어진 결과로 일의 안배를 결정한다. 동전의 대칭적인 형태 때문에 앞면과 뒷면이 나올 가능성이 동일하며, 정확히 각각 절반의 확률이 된다. 사람의 관념은 이것이 양측의 조건이 대등하며 공평하다고 여긴다. 수학적 관점에서 볼 때, 그 표현은 동전 던지기 사건이 발생한 횟수가 무한대에 이를 때 앞면이 나온 횟수와 뒷면이 나온 횟수의 비율이 일 대 일에 수렴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아는 것은 오직 이 통계적 특성뿐이므로 규칙에 적용하는 것이며, 이렇게 하면 통계적으로 균등하게 분배되는 것에 수렴하여 공평에 대한 요구에 부합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러한 안배가 공평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데만 만족하지 않고, 최종 결과에 대해서도 여전히 생각하고 인식하려 한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팀을 대표하여 동전을 던지거나 제비를 뽑았는데 결과가 좋은 기회를 뽑지 못해 손실이 매우 컸다면, 다른 팀원들은 자연스럽게 그를 원망하고 탓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모두들 그 자신도 근본적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었고 결과도 통제할 수 없음을 알고 있기에 그를 탓하는 것도 합리적이지 않다. 그러나 사람들은 확실히 손실을 입었으니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어야 하는 것인가? 모른다. 물론 이성이 성숙한 사람이라면 이 문제에 집착하지 않고, 이러한 상황을 ‘운이 나쁘다’고 이해하며 일종의 우연한 요소이자 자연스러운 결과로 여긴다. 다시 말해 인간의 인식이 ‘운’이라는 개념에서 멈추어 서고 다시는 깊이 파고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람이 보기에 이런 부류의 일은 결과를 추측할 수도 없고 원인도 이해할 수 없으므로, 그저 여기에 그치는 것에 익숙해진 것이다.
이러한 이해 방식은 공교롭게도 앞서 언급한 인식 경계가 있는 곳에 위치한다. 그리고 ‘운’, ‘우연’ 등의 개념은 마치 찻길 앞에 세워진 표지판처럼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으며, 그 위에는 “이 길은 통하지 않는다”라고 적혀 있다. 만약 우주의 진상을 알고자 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이 표지판 뒤에 펼쳐진 광활한 천지를 습관적으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 물론 풍부한 인류 문명 속에는 진리에 대한 온갖 탐구와 추구가 부족하지 않으며, 그 인식 방식 또한 서로 판이하게 다르다.
과학에서 ‘랜덤’의 운용
현대 인류가 과학을 기초로 세운 세계관으로 탐구해 볼 때, ‘랜덤’ 개념 이면의 실질을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랜덤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사건의 결과를 추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의 이론은 물질이 운행하는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법칙을 찾아내어 온 세상 전체를 인간의 인식 모형 속에 편입시키는 것을 추구한다. 이 모형은 당연히 확정적인 논리이며, 일반적으로 랜덤 요소는 존재하지 않는다(여기서는 고전 물리학의 관점에서 논의하는 것이며 양자역학 등은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통상적으로 과학에서 랜덤 개념을 논하는 것은, 일종의 현상 위주의 도구를 사용하는 것과 같거나, 혹은 근사(近似)한 방법과 같다. 즉 비교적 어렵고 근본적인 메커니즘으로부터 착수하여 분석하기 불편한 문제에 대해 통계적인 법칙을 찾고, 확률의 방식을 통해 어느 정도 쓸 만한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평형 상태에 있는 이상 기체의 압력 문제이다. 정지해 안정을 이룬 상태의 기체는 그 안의 물체에 대해 일정하고 균등한 압력을 가하고 있다. 현실에서 이는 명백히 그러한데, 가령 지구 표면의 모든 물체가 거대한 대기압 속에 처해 있는 것과 같다. 하지만 모든 방향으로 균등하기 때문에 오히려 힘의 작용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은 이 압력의 크기에 대한 법칙을 찾고 싶어 하지만, 미시적인 측면에서 보면 일은 매우 복잡해진다. 기체를 구성하는 수많은 분자가 공간 속에 드문드문 랜덤으로 분포해 있으며, 저마다 다른 위치, 운동 방향, 속도를 가지고 매우 흩어져 있다. 그것들은 자유 운동 속에서 끊임없이 물체 표면을 충격하고 반사함으로써 이러한 거시적인 기체 압력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분자들의 운동 과정은 모두 미시적으로 확정할 수 있는 물리 법칙에 따라 진행되지만, 그 극도로 방대한 수량 때문에 각 분자의 순간 상태가 제각각 달라서 실제 문제에서는 근본적으로 모든 분자의 운동을 낱낱이 연구할 수가 없다. 하지만 모두 동류의 분자들이 똑같은 환경에 처해 있으므로 단일 분자의 운동을 랜덤 과정으로 간주하고, 모든 분자의 통계적 법칙, 즉 그것들의 공통성을 논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단위 면적의 물체 표면이 기체 분자에 의해 충돌당하는 평균 빈도에다 평균적으로 매번 충돌 시 전달되는 충격량을 곱하기만 하면 압력의 크기를 얻을 수 있으며, 어느 분자가 어떻게 충돌했는지는 상관할 필요가 없다. 분명히 다른 조건이 일정할 때 용기 벽이 기체 분자에 부딪히는 빈도는 기체 분자의 밀도에 정비례하므로, 거시적인 법칙—기체의 압력은 기체의 밀도에 정비례한다—을 얻게 된다. 또한 거시적 실험 현상에 부합하는 다른 많은 결론들도 얻을 수 있다. 그중 충돌의 빈도, 매번 충돌 시 전달되는 충격량 등은 모두 통계적 평균값을 취한 것이며, 더 깊이 있는 법칙은 통계역학의 이론에 기반해야 얻을 수 있다.
이와 같이 통계적인 방식으로 복잡한 시스템을 처리하여 전체적으로 드러나는 간단한 법칙을 찾아내는 것은 과학 방법 중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이러한 부류의 문제에서 최종적으로 얻어지는 거시적 법칙은 통계적 평균의 방식을 통해 미시적인 랜덤 과정이 가진 불확실성을 상쇄해 버린다. 그러므로 비록 실질적으로는 능력이 한계에 부딪힌 타협이긴 하지만, 얻어진 결과는 종종 연구에서 주목하는 표현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러한 이론 모형 속에서 ‘랜덤’은 바로 그 복잡하고 분석해 낼 수 없는 부분을 대표한다.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거시적 랜덤성
그러나 자연과학의 이론 체계로 우리가 처한 세계를 인식해 보면, 많은 일이 방금 살펴본 기체 압력의 예와 같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수많은 거시적 현상이 비록 확정적인 미시적 진화 규칙을 가지고 있더라도, 거시적인 진화 결과는 국부의 세밀한 조건에 매우 민감하여 수학적으로 시스템 안의 미시적 요소가 가진 랜덤성을 평탄하게 지워버릴 수 없다. 그리하여 명확한 거시적 법칙을 찾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을 ‘혼돈 현상(chaos phenomenon)’이라고 부른다.
다시 기체를 예로 들어보자. 이번에는 기체를 흐르게 하여 기류가 물체 표면을 스쳐 지나가게 하면 일이 매우 골치 아파진다. 물체 부근의 기류는 그것의 저항을 받아 속도가 느려지며, 이는 더 먼 곳의 기류 유속과 차이를 발생시키게 된다. 이 차이가 그리 작지 않기만 하다면, 흐르는 기류 속의 랜덤인 미세한 교란은 거시적으로 소용돌이치는 난류(湍流)를 촉발하게 되며, 이를 ‘난류 현상’이라고 부른다. 특히 물체의 바람받이 반대편에서는 바람이 가로막혀 유속 차이가 매우 크므로 흐름이 대단히 혼란스러울 수 있다. 여러분이 강물 속에서 암초나 말뚝 등의 장애물을 지나간 뒤의 수면을 주의 깊게 본 적이 있다면, 목격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난류이다. 이 기류가 수학적으로 이상적인 절대 균형을 이룬 평온하고 연속적인 체여서 어떠한 교란도 포함하지 않고 물체 또한 매우 규칙적이지 않는 한, 영원히 반듯하고 순조로우며 균일하게 흘러가기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난류의 흐름 방식은 큰 랜덤성을 지니고 있어 거시적으로는 혼돈 상태를 드러낸다. 비록 확실한 유체 운동 방정식에 의해 묘사되기는 하지만, 거시적인 운동은 기류 속의 미세한 교란이 확대되어 발생한 것이다. 만약 마지막 흐름 방식을 완전히 확정하고 싶다면 이론적으로 미시적 분자 수준의 랜덤 운동 상황까지 거슬러 올라가야만 비로소 해낼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러한 난류의 랜덤성은 미시의 복잡한 운동 상태에서 비롯된 것으로, 과학은 거시적 정보만을 가지고는 그 행위를 확정적으로 추측할 수 없다.
이를 미루어 널리 생각해보면, 모든 혼돈 현상이 다 이와 같아서 극도로 복잡하고 추측할 수 없는 요소가 마지막 전체의 결과를 주재하기 때문에, 역시 랜덤 현상으로 간주된다. 이처럼 인간의 인식 범위를 벗어난 알 수 없는 인과를 대표하며 진실로 연구할 수 없는 ‘랜덤’이라는 요소가 당당하게 버티고 눈앞에 나타나며, 심지어 매우 중대한 사건들까지 주재하게 된다. 예를 들어 기상학에서 유명한 소위 ‘나비 효과’란 중대한 날씨 변화가 초기 교란에 매우 민감하여 심지어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만으로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날씨의 변화는 자연환경과 인류 사회에 거대한 영향을 가져올 수 있으며, 특히 극단적인 기상 재해는 인류의 물질문명에 파괴적인 충격을 줄 수 있다.
과학이 인류 문명의 역사를 인식하는 데 겪는 어려움
이렇게 되면 현대 과학의 인식상에서 볼 때, 모든 사람의 생명 행로와 경과, 그리고 자연계와 인류의 문명 역사는 모두 거대한 혼돈 과정에 의해 성취된 것이 되며, 근본적으로는 전부 랜덤적이고 인식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자연계의 현상이 이럴진대 사회적 사건은 더욱 말할 것도 없다. 예를 들어 한 명의 중요한 역사적 인물이 만약 어떤 험한 위기 속에서 살아서 나오지 못하고 불행히 사망했다면, 그 이후의 역사는 아마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이 모두 이러한 문제를 가지고 있으니, 이와 같이 역사 발전도 하나의 혼돈 과정에 해당하게 된다.
극단적인 예가 하나 있다. 소비에트 연방과 미국이 냉전 상태에 있던 기간 동안 양측은 상호 간에 연중 상시 고도의 군사적 경계 상태를 유지하며 대량의 핵무기를 배치해 놓았었다. 일단 양측이 우연한 요소로 인해 교전이 발생하여 어느 일방이 상대방을 공격할 경우 더 큰 보복을 당할 수 있었고, 결국에는 전면적인 핵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 기간 중에 아주 위험한 사건들이 몇 차례 발생했으나 다행히 당사자들의 주동적인 억제가 있었기에 국면이 위험한 상황으로 빠져드는 것을 면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쿠바 미사일 위기 기간 동안 고도로 긴장된 국면 속에서 며칠 사이에 매우 위험한 사건들이 여러 차례 발생했다. 그중 가장 심각했던 것은 소련의 잠수함 한 척이 미국 함정에 지속적으로 추적당하자 양측이 이미 전쟁을 시작했을지도 모른다고 오인하여, 한때 핵어뢰를 발사해 공격하는 것을 고려했던 일이다.
또 하나 매우 유명한 사례는 1983년에 소련의 인공위성 조기 경보 시스템이 느닷없이 경보를 울리며 미국이 미사일을 발사해 공격해 오고 있음을 탐지해 낸 사건이다. 당직 장교가 주관적으로 이를 시스템 오류로 간주하여 상부에 보고하지 않기로 결정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군부가 즉시 핵미사일을 발사해 반격하기로 결정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결과적으로는 확실히 오보였으며, 나중에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구름이 햇빛을 반사해 발생한 특수한 정황이었다. 이러한 사건들의 향방은 외견상 극도로 랜덤하고 우발적인 돌발 상황과 개인의 결정에 달려 있었지만, 핵전쟁 발생 여부라는 그토록 막대하고 거대한 결과와 연결되어 있었으니 가히 놀랍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의 사상이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의사결정을 내리는가 하는 이 문제는 대단히 심오하며, 과학의 인식 또한 매우 제한적이다. 현대 생물학은 일반적으로 의념 활동이란 생물의 복잡한 신경계가 일한 결과라고 여긴다. 하지만 방대한 대뇌가 어떻게 간명하고 추상적인 사상적 결정을 정리하고 요약해 내는지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아직까지 명확히 연구해 내지 못했으며, 아마도 정확하게 분석하기 어려운 랜덤성이 매우 강한 과정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주관에 의해 결정되는 이러한 중대한 사건들에 대해 사람들은 더욱더 온갖 ‘만약에’만을 상상할 뿐, 근본적인 인과 법칙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과학적인 방식으로 인식할 때, 단 한 번의 동전 던지기 실패가 누구의 책임인지 말할 수 없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이 세계 전체를 깊이 파고들수록 의미를 찾을 수 없으며, 더 특정한 일일수록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기초 과학은 이 물질 공간의 확정적인 기본 법칙과 운행 메커니즘을 찾아냈지만, 반면에 인간이 자신의 문화와 생명 속에서 진정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에 대해서는 어떠한 해답이나 인식도 제공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사람들도 발견하게 되었다. 비록 현대 과학이 매우 발달했으나 그것은 사람에게 완벽한 세계관과 가치관을 세워줄 수 없으며, 현대인들이 만들어낸 각종 관념은 실질적으로 과학이 아니라 오직 과학과 기술 발전의 영향 하에 인류 문화 속에서 생겨난 심리일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과학에 대한 미신 속에서 과학이 현대인들에게 성숙한 인식 체계를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착각하고, 이로 인해 정신문명의 천박함과 공허함 속에 빠져들면서도 그 원인을 알지 못하고 있다.
‘랜덤’ 개념의 근원
물론 과학이 비록 현대 사회의 문화를 주도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 역시 인류 문화 중의 아주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인류 문명이 존재하는 한, 우주의 진리를 탐구하는 인물과 사상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고, 각양각색의 배경 속에서 인류의 사상사를 풍부하게 만들었으며, 인류 문명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깊고도 전면적인 문화 체계를 다지도록 했다. 비록 과학의 관점에서 볼 때 마치 근대에 이르러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비로소 사람들의 사상이 깨어나기 시작하고 활발해져서 몽매함을 벗어나 우리 이 물질 세계의 법칙과 규칙을 탐지하기 시작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과학이 인식한 하나의 단면일 뿐이다. 다른 방면에서는 과학이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성취와 휘황함을 알아차리지도 못한다.
‘랜덤’ 개념이 상응하는 문제에 대해, 아직 과학적 관념이 형성되지 않았던 옛사람들은 어떻게 이해했을까? 사실 ‘랜덤’라는 단어의 현대적 의미는 근대 과학 속에서 생겨난 것으로, 앞서 언급한 이 분석 방식이 사용하는 개념이다. 그 이전에는 이러한 개념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단어가 아예 없었으며, 사람들의 사상 속에는 명확한 이러한 인식도 없었다. 사람들은 ‘우연’, ‘마침’, ‘임의’ 등의 단어를 사용하여 이러한 부류의 상황을 묘사했을 뿐, 그 함의는 서로 달랐다. 이 단어들은 단지 당사자의 주관적 통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임을 가리킬 뿐이었으며, 낱낱이 분석하기 어려운 수학적 방법을 확률 통계로 대체한다는 뜻을 포함하지도 않았고, 예측할 수 없음을 나타내지도 않았다.
사실 다시 말해 전통문화 속에는 현대 과학의 이러한 ‘랜덤’ 개념이 없었으며, 우연한 사건의 불가지성(不可知性)과 통계적 규칙성을 전적으로 가리키는 말도 없었다. 반면 ‘랜덤’이라는 중국어 단어 수기(隨機)의 원래 뜻은 ‘기(機)’를 따른다는 것, 즉 당시의 기연(機緣), 기제(機制 메커니즘) 등에 부합하고 순응한다는 뜻을 가리키는 것으로, 현대에 추론할 수 없음을 나타내는 의미와는 정반대였다. 하지만 만약 연구 대상인 과학 문제 속에서 랜덤으로 간주되는 결과를 우주 자연의 기제가 성취한 것으로 본다면, 사람이 수학 모형 속에서 이러한 요소를 고려하는 것 역시 마침내 이 기전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것이 어찌 ‘랜덤’의 뜻과 정확히 상응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사실 파고들어 보면 ‘랜덤’이 근본적으로 대표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확정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이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의 기회에 따르는 것이다.
전통적인 인식 방식
과거 사람들의 사상은 더 소박하여 현대적인 ‘랜덤’ 개념이 없었으므로 인식의 경계에 바깥으로 나가는 길을 가로막는 그토록 강력한 장애물이 없었다. 그래서 이러한 우연한 사건들 이면에 있는 기전이 무엇인지 더 자유롭게 사유하기가 수월했다. 앞서 언급한 과학적 인식상에서 마지막에 공허함으로 치닫게 되는 현상 또한 인식이 정확히 이 경계 내에 한정되어 있고 이 층차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더 깊은 문제를 포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분명 인류는 우주 속의 이 거시적인 수많은 사건을 결코 우연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인간의 사유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면 반드시 과학의 방법과 인식 범위를 초월해야만 한다.
이 우주의 거시적 표현에는 마땅히 그 나름의 규칙과 법칙이 존재해야 하며 이해할 수 있는 기제가 있어야 할진대, 이러한 규칙은 결코 과학이 인식하는 층차에 있을 리가 없으며, 그래야만 비로소 이 도처에 존재하는 혼돈의 미지를 초월하여 이 모든 것을 논리적 인과 속에 편입시킬 수 있다. 전통문화 속에서 사람들은 많은 일들의 발생이 안배된 정수(定數)를 가지고 있다고 보편적으로 여겼으며, 설령 표면상으로 매우 우연한 사건이라 할지라도 특정한 안배와 운명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만약 그렇다면 사물의 운행 법칙은 필연코 과학이 이미 알고 있는 것만큼 그렇게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과학은 오직 기본 물질이 간결하고도 명확한 물리 법칙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을 기초로 복잡한 우주를 구축해 냈다는 것만을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사실 기초에서 복잡함으로, 미시에서 거시로 나아감에 따라 서로 다른 층차마다 모두 명확한 규칙이 존재하며, 각 층차마다 모두 그 나름의 법(法)의 존재가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가령 불교에서는 업력윤보(業力輪報)를 말한다. 사람이 선한 일이나 악한 일을 하면 상응하는 선보(善報)나 악보(惡報)를 받게 되며, 득과 실의 균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한 인연 관계를 말하는데, 과거의 연분이 현재의 운명 안배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혹은 괴이한 일을 만나더라도 ‘행운’, ‘재수 없음’ 또는 ‘기이함’에 집착하지 않고 슬픔과 기쁨(悲喜), 놀람과 공포(驚恐)를 내려놓은 채, 이러한 표면상 우연한 일들을 빚어낸 인과 기연(機緣)을 냉정하게 사고할 수 있다.
서양 종교 속에서는 개인의 운명이나 큰 사건들이 모두 신(神)의 안배이며 신성한 요소를 품고 있다고 말하므로, 모든 일을 성실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진지하게 대한다. 또 예를 들면 유가는 ‘천명(天命)’의 개념을 강조한다. 《논어》에는 “천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라 할 수 없다(不知命,無以為君子也)”라는 말이 있고, 《중용》 첫 구절은 “하늘이 명하신 것을 성이라 한다(天命之謂性)”이며, “사람의 일을 다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盡人事,聽天命)”와 같은 수많은 명구들이 있다. ‘명(命)’이라는 개념은 하늘이 사람에게 부여한 본성과 책임, 그리고 인생의 운명에 대한 인식을 포괄하고 있다. 이러한 사상 인식은 사람이 더 이상 방황하고 몽매하지 않도록 만들어 주며, 정신적 측면에서 자신의 생명이 지닌 의미와 목표를 이성적으로 인식하게 해 준다.
앞서 인류 역사의 혼돈 표현에 대해 논하면서 중요한 인물의 인생 노정이 지닌 랜덤성 문제를 언급했는데, 여기에 상응하는 구체적인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당태종은 나중에 무측천(武則天)이 황위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전해 듣고 이순풍(李淳風)을 불러 그 상황을 물었다. 이순풍은 그 사람이 이미 궁중에 있으며, 30년 안에 천하를 얻고 황실의 자손들을 주살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당태종이 만약 지금 그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먼저 죽여버리면 어떻겠냐고 묻자, 이순풍은 천명(天命)이 이미 정해져 있어 바꿀 수 없으며, 이렇게 하면 오히려 무고한 사람까지 해치게 된다고 답했다. 설령 정말로 이 사람을 죽인다 하더라도 그녀는 여전히 윤회하여 환생할 것이며, 장차 젊을 때 제왕이 되어 더욱 독랄해질 것이고, 복수하기 위해 황실의 자손들을 씨를 마르게 할 것이라고 했다. 오히려 지금 이대로 놔두는 편이 결과가 훨씬 더 나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당태종은 이 일을 간섭하려는 생각을 포기했다.
이순풍의 대답을 통해 이해해 보면, 신분이 아직 평범했던 젊은 무측천이 만약 사망한다 하더라도 상식적으로 인식되는 바와 같이 이후의 변고를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 수는 없었으며, 여전히 운명의 안배에 따라 제왕이 되어야 하되, 다만 이러한 변고로 인해 약간의 제한적인 변화가 생길 뿐이었다. 다시 말해 천명의 안배 하에서 상식 속에서는 혼돈스럽게 표현되던 일들이 사실 전체적으로 볼 때 혼돈스럽지 않고 명확한 인과 규칙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만약 인류의 전체 상태 내지 매 사람의 운명이 모두 상천에 의해 안배되고 통제되는 것이며, 인간이 알지 못하는 층차 속에서 우주의 법칙이 선악유보(善惡有報)의 규칙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러한 우연한 일들은 근본적으로 과학적 의미의 랜덤이 아니라 논리가 명확하지만 사람에게는 드러내 보일 수 없는 천기(天機)의 운행에 의해 성취된 것이다. 비록 사람이 진정으로 탐지할 수 없기 때문에 영원히 미혹은 존재하겠지만, 인류 사회란 대개 이러한 것이어서 과학 연구처럼 모든 것을 다 낱낱이 밝혀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인식한다면 인간은 이성적으로 완비된 세계관을 구축하여 정신의 허무함과 퇴폐함으로 빠져드는 것을 면할 수 있고, 자신의 생명이 지닌 가치와 목적을 찾아낼 수 있다.
맺음말
요컨대 ‘랜덤’에 대한 인간의 인식은 실질적으로 일종의 고정된 사유 모형으로, 사상을 통상적인 인식 범위 안에 한정시켜 버리고 미지의 요소를 무시하는 것이다. 과학의 관점에서 세밀하게 분석해 볼 때 ‘랜덤’이라는 개념은 예측할 수 없는 요소를 지칭하는 데 쓰이며, 수학적 방법 속에서 과학적 문제를 처리하는 것을 돕는 데 쓰인다. 하지만 이 분석으로부터 혼돈 현상이 상응하는 거시적 미지성은 근본적으로 세계를 이성적으로 인식할 수 없게 만들며, 사건의 인과와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게 함을 발견한다. 사실 예로부터 인류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이미 풍부한 이성적 인식들을 가지고 있었으나, 현대 과학은 국한성을 지니고 있어 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입증할 수 없었기에 현대인들로 하여금 과학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그것을 배척하는 심리를 지니게 만들었다.
인류 문화가 완비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이러한 스스로를 봉쇄하는 특성은 과학에 대한 집착과 의지에 따라 정신문명의 구속과 퇴보 속으로 빠져들게 될 것인데, ‘랜덤’이라는 개념이 상응하는 문제가 바로 그 두드러진 표현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만약 우주와 생명 등 심오한 개념에 대해 건전하고 이성적이며 적극적인 인식을 갖고자 한다면, 사상적으로 이러한 국한성을 초월하여 과학을 이성적으로 바라보고 그것에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