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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 두 황제의 공경을 받은 기승(異僧) 누도(婁道)

안단(顏丹)

【정견망】

송태종 황제가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강소(江蘇) 연수현(漣水縣)이 군(郡)으로 승격되었다. 그때 군에 누도(婁道)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용모가 범상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른손 중지도 보통 사람들과 달랐다. 일반 사람들은 모두 세 마디의 손가락뼈를 가지고 있지만, 그는 일곱 마디나 가지고 있었다. 부모는 그가 남다르게 태어난 것을 보고 속세를 벗어날 인연이 있다고 여겨, 그가 성장한 후에 현지의 문수원(文殊院)으로 보내 출가 수행하게 했다.

다른 스님들은 모두 선방에 살았으나, 그는 후원으로 와서 그곳에 있는 두 그루 소나무 사이의 사방 한 치 남짓한 좁은 땅을 골라 자신의 수행 및 거주지로 삼았다. 추우나 더우나, 바람이 불고 눈이 내려도 그는 비바람을 가릴 만한 가림막이 전혀 없는 노천의 풀잎 방석 위에 조용히 머물렀고, 그곳을 ‘약사암(藥師庵)’이라 이름 지었다. 그 풀잎 방석에 대해서는, 매번 낡아 빠질 대로 낡아진 후에야 비로소 새것으로 바꾸곤 했다. 겨울이 되면 그는 눈밭과 얼음물 속에 누웠고, 한여름이 되면 또 두꺼운 동물 털가죽을 껴입은 채 모닥불 곁에 앉았다.

그가 거주하는 후원에는 보통 사람이 찾아오는 일이 없었다. 안(顏) 씨 성을 가진 한 노인이 우연히 정원이 너무 황폐한 것을 발견하고는 자발적으로 와서 정리하고 손질해 주었다. 누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만 풀잎 방석 주변 10보 안쪽으로는 발을 들여놓지 말라고 요구했을 뿐이다.

매번 청소를 마칠 때마다 누도는 땅바닥의 벽돌 한 장을 가리키며 안 노인에게 말했다.

“저 아래에 있는 돈은 노인장께서 가져가셔도 됩니다.”

안 노인이 벽돌을 들어 올리면, 과연 그 아래에 돈이 있는 것이 보였다. 누도가 매번 가리키는 벽돌은 서로 달랐지만, 옌 노인이 매번 얻는 돈은 꼭 50문(文)이었다.

한번은 안 노인이 누도가 가리킨 대로 벽돌 한 장을 들어 올렸다가 그 아래에 돈이 아주 많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문득 탐심이 생겨 조금 더 가져가고 싶어졌다. 그는 두 손으로 힘껏 움켜쥐었으나, 집에 돌아와서 열어보니 여전히 50문이었다. 이와 같은 신기한 일이 여러 번 일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누도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리하여 명성을 듣고 찾아왔다. 하지만 누도는 남이 방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기어이 찾아와 만나기를 청하면, 누도는 그 사람이 사찰 문으로 들어선 직후에 그 사람이 저지른 은밀한 일을 큰소리로 낱낱이 읊어주었다. 그것은 좋지 못한 일이었기에 그 사람은 일찍이 남에게 말한 적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누도는 조금도 틀림없이 말해주었다. 그 사람은 그 말을 듣자마자 그것이 자신을 두고 하는 소리임을 알고는 부끄러워하며 쫓기듯 떠나갔고,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어떤 부인은 그를 몹시 만나고 싶어 하여 은전(銀錢)도 많이 가지고 찾아왔다. 누도는 멀리서 그녀를 보고는 큰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시어머니에게도 공경치 않으면서 또 나를 찾아와서는 무엇하려는가? 당신의 물건은 내가 받지 않을 것이니, 저 기둥에 가서 서 있으시오!”

부인은 이 말을 듣고 그것이 자신더러 기둥으로 가서 기다리라는 뜻인 줄로 알았다. 그러나 그녀가 기둥 곁으로 걸어가자마자 어떤 강력한 힘에 의해 낚아채이더니 기둥을 돌며 뱅뱅 돌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침부터 정오가 될 때까지 멈출 수가 없었고, 그녀와 함께 온 이웃은 어쩔 수 없이 누도에게 가서 사정해야 했다.

누도가 “당신은 돌아가시오”라고 한마디 하자 그녀는 멈추었다. 그 이웃은 사정을 알고 있었기에 부인에게 쏘아붙였다. “당신이 시어머니를 박대하여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맷돌을 돌리게 하더니, 오늘 이런 벌을 받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겠지!”

누도가 수행하는 곳은 사방 한 치 크기밖에 되지 않았으나, 그의 신통은 대단히 강력했다. 그의 신통에 관하여 민간에서는 줄곧 소문이 자욱하게 퍼져 있었다. 나중에는 태종 황제까지 그 소문을 알게 되어, 그를 궁궐로 모셨다. 황제가 불러 접견할 때 시종일관 그에게 예를 갖추어 공경했다. 작별할 때도 거친 삼베 승복 한 벌을 하사하고 사람을 파견하여 그를 사찰로 돌려보내 주었다.

태종의 뒤를 이은 진종(真宗) 황제가 재위할 때도 그를 불러 접견했다. 당시 장소는 개보사(開寶寺)로 정해졌는데, 황제는 당나라 명황(明皇 현종)이 장과로(張果老)를 시험하기 위해 그에게 술을 하사했던 일을 떠올리고는 명황을 본받아 누도와 그 곁에 서 있던 시종에게도 술 한 잔을 하사했다. 누도가 그것을 마시고도 안색 하나 변하지 않으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그 시종은 그 자리에서 벌써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누도가 다가가 그의 목을 만져보고는 세 번 툭툭 치자 그 사람이 깨어났다. 깨어날 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았다.

당시 인종(仁宗)은 아직 태자였고 나이가 아주 어렸다. 누도는 그를 보자 가볍게 그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말했다.

“이 이는 장차 42년간 재위할 태평천자로다!”

진종이 이 말을 듣고 매우 신기하게 여겼다. 그리하여 궁궐의 궁녀들을 전부 불러 모아 똑같은 옷을 입히고 차례대로 로도에게 가서 절을 하게 했다. 수십 명이 그의 앞에서 하나하나 지나쳐 갔으나 로도는 줄곧 눈을 감고 있었다. 유아(劉娥), 즉 나중에 장헌명숙황후(章獻明肅皇后 진종의 황후이자 인종 시기 태후로서 수렴청정하며 뛰어난 정치적 수완을 발휘)가 된 이가 그의 앞까지 걸어왔을 때야 비로소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 진종 황제에게 말했다.

“폐하께서는 이 사람을 잘 대우하소서. 그녀는 장차 폐하 집안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

진종이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길을 떠날 때 또 승복 두 벌과 금기(金器) 등의 물품을 하사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누도의 손바닥 한가운데에는 눈이 하나 있었다고 하는데, 태종과 진종 두 황제는 모두 친히 그것을 목격했으나 그 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 무렵 연수(漣水) 일대에는 자주 수해(水害)가 발생했다. 수해가 극심할 때면 조정에서부터 지방 아문에 이르기까지 모두 뾰족한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그러나 누도는 신통을 발휘하여 수해를 없애버렸다. 입적한 후에도 그는 여러 차례 영험을 드러내어 수해를 막아내고 백성들을 위난에서 구출해 주었다. 은혜를 입은 연수 사람들은 줄곧 누도에게 깊은 감사를 느꼈으며, ‘증인대사(證因大師)’라는 법호로 그를 불렀다.

참고자료: 《송패류초(宋稗類鈔)》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40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