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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두터운 복을 지니게 된 현세 원인

주정도(走正道)

【정견망】

인간이 세상에서 복이 있는지 없는지는 자신의 전생에 쌍흔 공덕과 업의 비율이 크고 작음과 관계가 있다. 전생에 덕을 많이 쌓고 업을 적게 지으면, 다시 인간으로 태어났을 때 복이 크고; 반대로 전생에 나쁜 짓을 많이 하고 업이 크면, 금생에 업을 갚는 일이 많아지고 고난이 많으며 재난이 많고 복이 작아진다.

사람에게는 덕을 쌓는다는 말이 있으므로, 만약 이번 생에 인간으로 태어나 큰 선을 행하고 큰 덕을 쌓는 일을 한다면, 마찬가지로 운명을 바꿀 수 있고 사람에게 큰복을 가져다줄 수 있다.

청대(淸代) 학자 왕도정(汪道鼎)은 《좌화지과(坐花志果)》의 첫머리에서 서로 다른 세 가정이 현세(現世)에 두터운 복을 얻은 이야기를 하였는데,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큰 깨우침을 준다.

강서(江西)의 어떤 선비는 풍수를 잘 보았는데, 그가 호남(湖南) 도주(道州)에서 노닐 때 아주 좋은 풍수를 지닌 땅을 발견했다. 그가 한창 이 땅을 보고 있을 때 두 사람이 왔는데, 그중 한 사람은 옷을 화려하게 입었고, 다른 한 사람은 손에 나반(羅盤 풍수사들이 사용하는 전통 나침반)을 들고 이리저리 둘러보며 말했다. “이 땅은 좋지 않소.” 선비는 그가 헛소리를 한다고 속으로 비웃으며, 곧 그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고향과 성씨를 물었다.

알고 보니 옷을 화려하게 입은 사람은 성 안 어느 부자의 아들이었고, 나반을 손에 든 이는 전문적으로 남을 위해 풍수를 봐주는 사람이었다. 풍수사는 선비가 강서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는 말했다. “강서에서 많은 유명한 풍수사들이 배출되었으니, 선생께서도 틀림없이 아주 명민하실 것입니다.” 선비는 겸손하게 한바탕 사양하고는 실력을 살짝 드러내 보였다. 풍수사는 크게 탄복하며 부자의 아들에게 아뢰고, 선비를 초대하여 그들과 함께 돌아가자고 했다. 선비는 부자의 집에 머물게 되었고, 원래는 지난번에 보았던 그 명당의 상황을 부자의 아들에게 알려주려 하였으나, 마음속으로 저 땅은 풍수가 너무 좋아 큰 덕을 갖춘 사람이 아니면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 짐작했고, 이 부자의 집에 머무는 동안 그들의 소행이 복을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기에 이에 대해서는 비밀로 부치고 알리지 않았다.

마침 이때 이 부자의 사돈인 소공(蕭公)이 부모를 안장하려 하면서 풍수사를 청하러 왔고, 선비는 이에 응해 함께 가게 되었다. 소공은 평소 충후(忠厚)한 사람이었고 베풀기를 좋아하여 향리 사람들이 모두 그를 대선인(大善人)으로 여겼다. 선비는 이 사람이 아마도 지난번에 점찍어 둔 그 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 명당을 소공에게 소개했다. 그리하여 소공은 많은 돈을 들여 그 땅을 샀고, 선비는 날을 잡아 그를 대신해 묘혈을 파주었다. 장사 지낸 지 며칠이 지나자, 선비가 사공에게 말했다.

“이 땅은 큰 복덕을 지닌 사람이 아니면 감당하지 못합니다. 어르신께서 비록 충후한 어른이시지만 하늘의 뜻이 어떠할는지 어찌 아십니까? 하늘의 뜻을 어기면 큰 화가 닥칠 것이니, 노인장께서 어찌 묘 곁에서 하룻밤 주무시며 시험해 보지 않으십니까? 만약 당신께 속하지 않는 것이라면 마땅히 이상한 징조가 있을 것입니다.” 소공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날 밤 소공은 아들과 함께 골풀 자리를 깔고 묘 옆에서 잤다. 한밤중이 되자, 저 멀리서 길을 비키라는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소공이 자리 틈으로 몰래 내다보니, 깃발과 칼, 창을 든 일단의 시종들이 위풍당당한 남자가 말을 타고 오는 것을 호위하고 있었다. 소공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한밤중에 인적 드문 산골에 어찌 귀인이 지나간단 말인가?’

이상하게 여길 즈음, 이 무리들은 이미 묘 곁에 이르렀고 말을 탄 이가 말을 멈추고 시종들을 꾸짖으며 말했다.

“이것은 하(何) 효자의 땅이거늘, 소 모는 어떤 사람이기에 감히 차지하려 드는가? 속히 그를 끌어내어라!”

소공이 매우 두려워 땅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큰소리로 말했다.

“원래 제가 이 땅을 차지할 자격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해 마침내 하늘의 벌을 받게 될까 두려웠기에, 비로소 묘 곁에서 잠을 자며 시험해 보았던 것입니다. 진실로 가르침을 입었으니, 기꺼이 당장 묘를 옮기고 땅을 양보하겠습니다.”

곧이어 말 위의 사람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네가 평소 충후하고 정직하다는 것을 생각해 이번에는 일단 용서하노니, 만약 능히 하 효자를 위해 부모를 안장해 줄 수 있다면 장차 네게 따로 좋은 곳을 마련해 줄 것이다. 이 묘혈은 속히 묻어버려 기운이 새어나가지 않게 해야 하느니라.”

말이 끝나자마자 한바탕 바람처럼 사라졌고, 눈 깜짝할 사이에 사방이 예전처럼 고요해졌다.

이때는 이미 날이 환하게 밝아 있었다. 소공 부자는 돌아온 후 선비에게 묘를 옮기고 흙으로 덮어 봉인해 줄 것을 청했다. 동시에 함께 하 효자의 행방을 수소문했으나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하루는 선비가 혼자 교외로 산책을 나갔다. 조금 멀리 걷게 되어 어느 작은 마을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큰비가 내려 서둘러 어느 쌀가게 처마 밑으로 피했다. 이때는 날이 이미 저물어 가게에서 쌀을 찧던 일꾼들은 모두 쉬러 가고, 오직 젊은이 한 사람만이 계속해서 쌀을 찧고 있었다. 선비가 이상하게 여겨 그와 말을 건네자, 청년이 말했다.

“어머니 연세가 지긋하셔서 매 끼니마다 고기가 있어야 겨우 배를 채우실 수 있습니다. 제가 아침 일찍 일하고 늦게 들어가면 삯을 좀 더 받을 수 있어 어머니를 봉양할 수 있습니다.”

성이 무엇이냐고 묻자 대답했다.

“하(何)가입니다.”

선비는 속으로 이 사람이 바로 그 하 효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 효자가 어머니를 섬기는 것이 진실한지 더 알고 싶어 비가 오고 길도 멀다는 핑계를 대며 하 씨 집에서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했다. 하 씨가 허락했다. 선비가 은전 다섯 푼을 꺼내어 하 씨에게 저녁 식사를 준비해 달라고 부탁하자, 하 씨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찌 이렇게 많은 돈을 주십니까?”

선비가 말했다.

“남은 돈은 자네 어머님 잡수실 것 좀 사드리게!”

그러나 하 씨는 동의하지 않으며 말했다.

“저는 힘을 다해 어머니를 모시니 마음이 편안합니다. 공로 없이 남의 돈을 많이 받으면 도의상 말이 안 됩니다!”

선비가 억지로 주려 하였으나, 하 씨는 오직 한 푼만 취하여 손님을 위해 술과 고기를 샀다.

함께 하 씨의 집에 돌아와 살펴보니 방이 겨우 두 칸이었다. 안방은 어머니가 거처하고, 바깥방의 앞 절반은 아궁이이며 나머지는 하 씨 부부가 거처하는 곳이었다. 공간이 좁고 습했으나 아주 깨끗했다.

하 씨는 먼저 어머니께 손님이 와서 하룻밤 묵어간다고 아뢰었고, 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차를 끓여 손님을 소홀히 대하지 말라고 일렀다.

하 씨는 손님을 안으로 모시고 와서 말했다.

“집이 가난하여 남는 방이 없고, 이미 부인에겐 어머니와 함께 자라고 청했으니, 선생께서 저와 같은 침상을 쓰시는 것을 꺼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손님이 앉기를 청한 뒤, 곧바로 차와 술, 반찬을 가져다 탁자 위에 놓고 말했다.

“선생을 모시지 못함을 용서하시고 스스로 드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몸을 돌려 방 안으로 들어갔다.

선비가 문틈으로 안을 훔쳐보니 탁자 위에 반찬과 작은 칼, 숟가락이 놓여 있었고, 부부는 어머니를 부축하여 상석에 앉혔으며, 어머니가 진지 잡수실 때는 두 사람이 곁에서 모시며 잠시 후에는 국을 떠다 주고 고기를 집어주며 화기애애했다. 어머니가 진지를 드시자 며느리가 그릇을 치웠고, 하 씨가 직접 어머니의 세수를 시중든 뒤에야 비로소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밥을 먹었는데, 반찬은 오직 소금에 절인 배추뿐이었다. 선비는 밥을 먹으며 지켜보다가 마음속으로 매우 탄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 씨가 나와서 손님이 식사를 마친 것을 보고는 다시 차를 가져와 손님에게 말했다. “이불과 베개는 모두 침상 위에 있습니다. 선생께서 먼길을 걸어오시느라 수고하셨으니, 먼저 주무시고 저를 기다리지 마십시오.”

선비가 고개를 끄덕여 동의하자, 하 씨는 곧바로 다시 안방으로 들어갔다. 선비는 여전히 문틈으로 안을 살펴보았다. 하 씨가 어머니 곁에 기대어 앉아 이웃에서 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주자 노인은 매우 기뻐하며 그것을 들었다. 잠시 후 하 씨의 어머니가 하품을 하며 졸려 하자, 하 씨는 직접 베개를 가지런히 하고 자리를 말끔히 닦은 뒤 어머니의 옷을 벗기고 볼일을 보게 도와주었다. 며느리도 곁에서 시중들며 조금도 싫증 내는 기색이 없었다. 어머니가 잠자리에 드신 것을 기다려, 하 씨는 또 어머니를 위해 등을 두드려주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다. 노인이 코고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서야 비로소 부부는 어머니를 깨울까 두렵다며 조심스럽게 방을 나섰다.

선비는 그의 효행에 매우 감탄하며 신이 하신 말씀이 과연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하 씨가 나오자, 선비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나 되었으며 이미 안장했는지 물었다. 하 씨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돌아가신 지 이미 사 년이 되었으나, 제가 품을 팔아 어머니를 모시느라 장사 지낼 힘이 없어 참으로 불효막심하게도 지금까지 아버님의 관을 문중 사당에 모셔두고 있습니다. 말할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선비는 그가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것을 보고 위로하며 말했다.

“당신은 슬퍼하지 마시오! 내가 소옹의 집에 머물고 있는데 그에게 명당자리가 있으니, 그에게 청하여 양보해 달라고 하여 당신 아버지를 장사 지내도록 하고, 장례 비용도 내가 전부 맡겠소.”

하 씨는 놀라며 말했다.

“저는 선생과 평소 서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인데 어찌 감히 이러한 은혜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땅에는 이미 주인이 있으니, 비록 다행히 선생께서 불쌍히 여겨주신다 해도 말한 소용이 없을까 두렵습니다!”

선비가 말했다.

“그것은 그대가 걱정할 바가 아니오! 나는 소옹이 평소 마음이 너그럽고 베풀기를 좋아하며 남 돕기를 즐긴다는 것을 아오. 그대가 이토록 효성스럽다는 것을 안다면 인색하게 굴지 않을 것이오. 사흘 후에 나와 소옹이 그대를 찾아올 테니, 그때 아무 데도 가지 말고 기다리기 바라오.”

하 씨는 눈물을 머금으며 말했다.

“만약 정말로 선생의 말씀대로 될 수만 있다면, 평생토록 선생의 큰 은덕을 잊지 않겠습니다.”

선비는 몇 마디 위로의 말을 하고는 잠에 빠져들었다. 날이 아직 밝지 않았는데 선비가 깨어보니 하 씨는 보이지 않았다. 해가 떠오를 무렵, 하 씨가 그릇을 들고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물어보니 어머니가 탕원(湯圓 새알심 같은 음식)를 잡수시고 싶다 하여 하 씨가 새벽 4경에 성 안에 들어가 사온 것이며, 왕복 거리가 20리가 넘었다. 선비는 크게 감탄했다.

돌아온 후 소옹은 자세한 상황을 모두 전해 듣고 기뻐하며 말했다.

“이는 하늘의 뜻입니다! 이제 마땅히 하 효자를 찾았으니 내가 어찌 인색하게 굴겠소?”

사흘이 지나, 그는 선비와 함께 땅문서를 가지고 하 씨의 집으로 갔다. 하 씨의 집 문에 이르자 하 씨 부부가 슬프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려 두 사람은 크게 놀랐다. 안으로 들어가 자초지종을 묻고서야 하 씨의 어머니가 삼일 전 선비가 작별한 후 갑자기 급병에 걸려 치료를 해도 소용이 없어 하루 지나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 씨는 소옹 등을 보자 땅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통곡을 멈추지 않았다. 소옹은 하 씨를 불쌍히 여겨 관을 마련할 비용을 대주었고, 앞서 보아두었던 길지의 땅문서를 주었다. 선비는 하 씨 집안을 위해 날을 잡아 장사를 지내고 장례 비용을 부담했다. 장례를 다 치른 후 하 씨 부부는 함께 찾아와 사례하며, 동시에 소옹의 집에서 일하며 신세진 빚을 갚겠다고 청했다.

소옹이 놀라며 말했다.

“이 모든 것은 그대가 효도하여 하늘을 감동시켰기에 신의 가호를 받은 것이니, 내가 어찌 공을 탐할 수 있겠소?”

그리고는 앞서 일어났던 일을 하 씨 부부에게 들려주며 말했다.

“그대같은 효자와 서로 친구로 지낸다면 나의 영광이거늘, 어찌 감히 그대를 하인으로 부리겠는가? 우리 집에 빈방이 많으니 만약 싫지 않는다면 온 가족이 함께 우리 집에 들어와서 살지 않겠소? 절대 땔나무와 쌀 때문에 걱정하게 만들지 않게 하리다.”

하 씨는 거절하며 감히 그럴 수 없다고 거듭 사양했으나, 소옹이 강권하자 결국 하 씨 부부는 소옹의 집에 머물며 장부 관리하는 것을 도왔다.

한 달여가 지난 후 소옹이 선비에게 말했다.

“앞서 신이 길지를 하 효자에게 양보해 준 뒤에 보답으로 다른 곳을 마련해 줄 것이라 약속했는데, 지금 보니 신의 말씀은 거짓이 아니니 선생께서 유의하여 살펴보아 주시오!”

선비가 대답했다.

“당연히 그리해야지요. 저는 본래 풍수로 생계를 꾸리는 사람이 아니니, 소옹의 일이 마무리되지 않았더라면 어찌 제가 이곳에 오래 머물렀겠습니까? 신(神)이 이미 약속하셨으니 반드시 길지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지금까지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조금 더 기다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때부터 선비는 매일 들판과 산골짜기 사이를 오가며 살펴보고, 영혈(靈穴)을 찾고 용맥(龍脈)을 탐사했다. 한 달여가 지나자 안색이 수척해지고 아무 소득이 없었다. 하루는 그가 하 씨의 묘지 길을 지나며 서성이다 멀리 바라보니, 문득 수장(數丈) 바깥에 용맥의 기상이 아스라이 드러나는 것이 보였다. 그 길을 좇아가 살펴보니 과연 진짜 용맥을 찾았고, 자세히 보니 원래 하 씨의 집안과 뿌리가 같은 곳에서 나온 것이었다.

귀한 정도는 조금 못 미치나 부유함은 백만 금에 이를 만했다. 이에 소옹에게 이 보배와 같은 장소를 사들이도록 청하고, 날을 잡아 조상의 유골을 안장했다. 큰일이 끝나자 선비는 작별을 고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였고, 소옹은 천금(千金)을 주며 보답하려 했다.

선비는 끝까지 사양하며 말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저는 풍수로 생계를 꾸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소옹께서 이 돈을 가난한 이를 구제하는 데 써주시기를 바랍니다.”

소옹은 선비의 청을 이기지 못해 결국 잔치를 베풀어 전송했다. 하 씨 부부도 와서 눈물을 흘리며 절을 올렸다.

선비는 집에 돌아간 후 과거 시험에 연달아 합격하여 진사에 급제했다. 소옹은 조상을 장사 지낸 이후로 가업이 날로 번창하여 군(郡)에서 가장 부유해졌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아 그의 아들이 과거에 급제해 한림원에 들어갔고, 벼슬은 번사(藩司 포정사 등 지방 행정 책임자)에 이르렀다. 한편 하 효자의 손자 하릉한(何凌漢)은 을축년에 탐화(探花 과거 3위)에 올랐고, 관직은 예부상서에 봉해져 한 시대의 이학명신(理學名臣)이 되었다. 그의 아들 하소기(何紹基)는 또 을미년에 해원(解元 향시 장원)에 급제하였고, 연이어 한림관에 들어가 여러 차례 과거를 관리하는 주고관(主考官)을 지냈다. 하 씨와 소 씨 두 집안의 귀함과 부유함은 마치 솟아오르는 아침 해처럼 날로 번창하였다.

이 글에서 선비는 의리를 중시하고 재물을 가볍게 여겼고, 소옹은 인후하고 선 베풀기를 좋아했으며, 하 효자의 순정한 효행은 그들이 현세의 두터운 복을 얻게 된 진정한 원인이며, 선념과 선행이 가져다준 복보(福報)이다.

오늘날의 중국 대륙에서, 파룬궁 수련자들이 진상을 전하러 찾아가는 것은 사실상 복보를 전하러 가는 것이다. 사람이 파룬궁 수련자를 선하게 대하고, 진상을 알며, 삼퇴(중공의 당·단·대 조직 탈퇴) 성명을 하고, 친지들과 친구들에게 진상을 알리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려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큰 덕을 쌓을 수 있는 선행이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사람이 만나보지 못한 아주 큰 좋은 일을 오늘날의 사람들은 만났다. 자신이 구도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큰 덕을 쌓아 생명을 위해 아름다운 미래를 개창(開創)할 수 있다. 두려운 것이란 오직 중국인들이 중공의 거짓말을 꽉 쥐고 놓지 않으며 여전히 중공의 거짓말에 코가 꿰여 끌려다니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오직 지옥의 심연으로 끌려가 생명의 훼멸을 향해 걸어갈 수밖에 없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40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