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德惠)
【정견망】
필자는 어렸을 때 우리 중국 국가 이름에 ‘중(中)’과 ‘화(華)’ 두 글자가 들어 있음을 알았는데, 당시 학교 선생님의 설명은 이러했다. 중국 고대인들은 자신이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자신이 있는 나라를 중국이라 불렀고, ‘화(花)’와 ‘화(華)’는 서로 통용되는 것으로 고대인들은 아름다움을 좋아해 자신들의 부족을 화(華)라 불렀다는 것이다. 당시 필자는 이러한 설명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더 나은 의견을 내놓지도 못했다. 이제 필자는 다행히 파룬따파를 배우게 되었고 또 전통문화와 관련된 몇 가지 자료를 접하면서, ‘중’과 ‘화’ 두 글자에 대해 개인의 얕은 견해를 갖게 되었다. 이에 이를 써서 발표하여 보다 좋은 의견을 구하고자 하며, 이것이 세인을 구도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무엇을 ‘중(中)’이라 하는가? 《설문해자》의 설명을 찾아보면 중은 “내(內)이다. 구(口)와 곤(丨)을 따르니 상하로 통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중 ‘丨’은 발음이 여러 가지인데 여기서는 발음이 곤(gǔn)이며, 상하로 관통한다는 함의를 지닌다. 다시 말해 ‘중’ 자의 원시적 함의는 천상에서 지상과 지하에 이르기까지 여러 층을 관통하는 법(法)을 입으로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은 법을 말할 수 있는 자는 반드시 수련 성취된 각자(覺者)와 진인(眞人)일 것이다. “내(內)이다”라는 것은 법을 말하는 이가 법을 듣는 이들이 모두 그가 말한 법 속으로 걸어 들어가 수련하기를 바란다는 것을 설명하며, 또한 수련이란 내심으로, 내재적으로 닦는 것으로, 수련자의 내심과 내면에 본질적인 변화가 나타나게 하는 것, 즉 집착심을 버리고 신체를 고에너지 물질로 채우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덧붙여 ‘丨’은 음이 여러 가지인데 곤(gǔn)으로 읽을 때는 상하가 관통하고 상하가 서로 통한다는 뜻을 표현한다. 《설문해자》에서는 “상하가 통하는 것이며, 끌어올려 위로 행한다”라고 풀이했다. 획으로 쓰일 때는 ‘수(豎, shù)’로 읽는데 역시 수(豎)와 가차할 수 있다. 또 이(yī)로 읽을 때는 성씨로 사용되며, 다른 고대 문헌에는 투이(tuì 이때는 아래에서 위로 쓴다)로 읽는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함의는 바로 퇴출(退出), 후퇴(後退)이다.
그러므로 필자가 보기에 ‘중’의 원시적 함의는 바로 신이 설한 법(法)이자 신의 가르침이며 하늘의 뜻이다. 이러한 함의에 따라 점차 더 많은 함의가 파생되어 나왔다. 예컨대 《중용(中庸)》에서 “희노애락이 아직 발하지 않은 것을 중이라 이른다”라고 했는데, 여기서의 ‘중’은 수련인이 정(情)의 상태를 초월한 것을 가리킨다. 《설문해자》에서는 “점괘가 맞아야(中) 비로소 사용할 수 있다”라고 하였는데, ‘사용한다(用)’의 본래 뜻은 신에게 제사를 바치는 것이며, ‘사용’하기 전에 반드시 점을 쳐서 신의 허락을 얻어야 비로소 ‘사용’할 수 있다. 여기서 ‘중(中)’은 신의 동의를 가리키며, 오늘날에도 일부 방언 속에서 ‘중(中)’은 여전히 동의함, 가능함, 이치가 통한다는 함의를 가지고 있다.
《대대례기(大戴禮記)·오제덕(五帝德)》에 “제곡(帝嚳)은 누런 도끼와 불의(黻衣)을 입고, 중을 잡아(執中) 천하를 얻었다”라고 했다. 이 구절에서 ‘중을 잡음(執中)’이란 무슨 뜻인가?
한대의 대유학자 동중서(董仲舒)는 《춘추번로·여천지위(如天之爲)》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또한 남을 용서(恕)하고 하늘에 순종하며, 하늘과 사람의 도를 겸하여 거론하니, 이것을 중을 잡는다(執中)고 이른다.” 이로 보건대 ‘중을 잡음’이란 곧 천의와 민심에 순응한다는 뜻임을 알 수 있다.
유가 경전 《중용》에서 이 이름은 무슨 뜻이 있는가? 《설문해자》에서는 “용(庸)은 용(用)이다”라고 했으니, 그렇다면 ‘중용’이란 바로 ‘중’에 대해, 즉 신이 설한 법과 신의 가르침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이자 구체적인 응용이다.
그렇다면 ‘중(中)’자의 중간, 중앙이라는 함의는 어디서 유래된 것인가? 필자는 갑골문에서 그 답을 찾았다. 갑골문 속의 ‘중’자에는 두 가지 쓰임새가 있는데, 한 가지 쓰임새는 오늘날의 ‘중(中)’자와 유사하고, 다른 하나는 깃대 모양으로 위아래에 기와 휘장이 달려 있으며 깃대가 정중앙에 세워져 있는 형태이다. 또 어떤 ‘중’은 이 두 가지 ‘중’자의 결합으로, ‘구(口)’ 자 하나에 깃대와 휘장이 더해져 있다. 필자의 생각에 갑골문에서 휘장으로 쓰인 ‘중’은 휘장이 고대인들의 부족 거주지 중앙에 높이 펄럭이고 있음을 나타내며, 속인 사회에서 중간, 중앙이라는 함의를 대표하여 방위상으로 정중앙에 위치하고 핵심적인 자리에 거주한다는 일련의 함의로 발전했다. 오늘날의 ‘중’자와 유사한 다른 한 가지 중은 신과 관련된 초상(超常)적인 함의를 대표하는데, 갑골문에서는 이것이 나뉘어 있던 두 글자였으나 나중에 합쳐져 하나의 글자가 되었다. 이는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이다.
‘중’자에 대해 말을 했으니 이번에는 ‘화(華)’자에 대해 말해보자.
《설문해자》에서는 ‘화’의 본래 뜻을 영(榮)이라 풀이했으니, 곧 꽃이 피고 번성한다는 뜻이다. 《이아(爾雅)》에서는 “나무가 꽃 피는 것을 화(華)라 하고, 풀(草)이 꽃 피는 것을 영(榮)이라 한다”고 풀이했다. 목본식물의 꽃이 피는 것은 ‘화’라 하고 초본식물의 꽃이 피는 것은 영이라 하므로, 고대인은 줄곧 ‘화’를 ‘화(花)’자로 풀이하여 ‘화(花)’와 ‘화(華)’자가 서로 가차된다고 여겼다. 꽃에는 온갖 색깔이 있으므로 ‘화’는 또 ‘희끗희끗하다’는 함의도 지니며, 고대 시사 속에는 “고국을 신유(神遊)하노니, 다정함이여 나를 비웃으리니, 일찍이 흰머리가 생겼도다”라는 명구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풀이들로는 우리 조상들이 왜 줄곧 자신을 ‘화(華)’, ‘화인(華人)’이라 일컬어왔는지 여전히 설명할 수 없다.
파룬따파의 홍전은 이 수수께끼를 풀어주었다. 대법 경문 《매화시 후3단 해설(解梅花詩後三段)》에서는 “1999년 7월 20일 이전에 중국대륙에서는 곳곳에 法輪大法(파룬따파) 제자였다. 전국에 널리 퍼져 있으면서 모두 法輪功(파룬궁) 배지를 달고 있어, 곳곳에서 대법(大法) 法輪(파룬)도형을 볼 수 있었는데 모습이 마치 기묘한 꽃과 같았다.”라고 했다.
이 구절을 읽을 때 필자는 환하게 깨달았다. ‘화(華)’는 바로 꽃(花)이며, 우리 화인(華人)들이 세세생생 기다려온 것은 바로 이 대법 경문 속에서 언급된 “기이한 꽃과 같은” 파룬이며, 우리는 생생세세 모두 파룬따파의 구도를 얻기 위해 온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중(中)’과 ‘화(華)’를 함께 놓아 ‘중화(中華)’라는 이 단어를 구성하는데, 청조(淸朝) 이후 중국의 국호에는 ‘중화’라는 이 단어가 들어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중’의 원시적 함의는 대각자(大覺者)의 입으로 설한 하늘에서 땅에 이르는 여러 층차를 관통하는 법이며, ‘화’는 파룬을 비유하니, ‘중화’라는 이 단어는 파룬따파를 암시하는 것이다. 중국의 모든 것은 역사에서부터 문화에 이르기까지 모두 파룬따파를 위해 다져진 것이다. 그렇다면 공산당은 그 무신론의 사악한 본성에서 출발해 파룬따파에 대해 가한 박해는 단순히 일반적인 신앙에 대한 박해 문제가 아니라, 끝없는 큰 죄를 범하는 것으로, 가장 철저한 반화(反華) 죄행이고, 중국 역사문화에 대한 가장 철저한 범죄이며, 신의 안배를 파괴하는 것이다.
이토록 큰 죄를 범하였으니 공산당은 반드시 신의 청산을 면치 못할 것이며, 이 때문에 하늘이 중공을 멸망시킨다는 천멸중공(天滅中共)의 천상(天象)이 나타난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천상의 변화에 순응해 하늘을 찌르는 중공의 대죄에 연루되어 화를 입지 않도록, 기존에 중공의 당·단·대(黨·團·隊)에 가입한 적이 있는 모든 사람은 반드시 입장을 표명해 탈퇴해야만 미래에 평안을 보장받을 수 있다.
앞서 말한 ‘중’자의 그 세로 획(丨)을 아래에서 위로 쓸 때 투이(tuì)로 읽는데, 그 함의는 바로 퇴출(退出)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보라, 바로 입에서 중공 사당을 퇴출하는 법을 말하게 될 것이니, 알고 보니 오늘날의 당·단·대 ‘삼퇴(三退)’ 대조(大潮)는 이미 ‘중’자가 창조되었을 때부터 이미 안배되어 있었던 것이다. 중국은 바로 인민이 중공사당을 퇴출하는 나라란 뜻이다. 여기까지 말하니 세상 사람들이 하루 속히 중공사당의 일체 조직에서 탈퇴해 미래에 대법의 구도를 얻기를 바란다. 이는 또한 중화민족이 세세생생 갈구하고 기다려온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