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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은 말이 있다: 손오공 VS 가보옥 ——길은 달라도 같은 곳으로 돌아가

장수객(長袖客)

【정견망】

중국 고전 소설 속에 아주 재미있는 두 개의 돌이 있다.

하나는 동승신주(東勝神洲) 오래국(傲來國) 화과산(花果山)에 선, 천진(天眞)의 빼어난 기운과 일월의 정기를 받아 오랫동안 영통하다가, 어느 날 쪼개져 돌원숭이가 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원래 여와(女媧)가 하늘을 수선할 때 쓰려고 달구었던 돌인데, 하늘을 꿰맬 재주가 없어 청경봉(青埂峰) 아래에 버려졌다가 나중에 속인 마음이 움직여 “화려한 꽃과 버들이 만발한 번화한 땅이요, 부드럽고 따스한 부귀가 넘쳐나는 고향”을 한바탕 유람해보고 싶어 하는 바람에 일승일도(一僧一道)에게 이끌려 홍진으로 들어갔다.

돌 하나는 나중에 손오공(孫悟空)이 되었고, 다른 돌은 나중에 가보옥(賈寶玉)이 되었다.

그들은 겉보기에는 정말로 같은 부류로 보이지 않는다.

손오공은 강렬하고 용맹하여 한 자 여의금고봉으로 온갖 요마(妖魔)를 소탕하지만, 가보옥은 명문대가(鐘鳴鼎食) 집안에서 태어나 대관원의 화목(花木)과 시주(詩酒), 남녀 간의 진정한 정회(情懷) 사이를 배회한다.

한 사람은 십만 팔천 리 취경(取經)의 길을 걸었고, 한 사람은 온유하고 부귀한 홍루몽(紅樓夢)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한 사람은 길에서 끊임없이 겁난을 겪었고, 한 사람은 한평생 인연을 끝맺었다.

그러나 그들이 인간 세상에서 무엇을 겪었는지만 보지 말고, 그들이 어디서 왔으며 또 어디로 가는지 묻는다면, 이 두 부류 겉보기에는 완전히 다른 소설이 의외로 매우 비슷한 생명의 궤적을 품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모두 인간 세상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며, 인간 세상에서 끝난 것도 아니다.

하나의 돌은 겁난을 겪으러 왔다

손오공이 돌에서 튀어나온 후 원래 해결하고자 했던 것은 사실 생명의 귀숙처였다.

화과산에서는 자유롭고 유유자적했지만, 비록 오늘 왕이 된다 할지라도 언젠가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을 때 그는 바다를 건너 신선을 찾아 도를 구했으며, 그 목적은 바로 생사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단지 72가지 변화와 근두운 하나로 십만 팔천 리를 가는 법을 배운 후에 그는 비록 통천(通天)의 능력을 얻었지만, 생명 속에서 마땅히 겪어야 할 관문을 진정으로 뛰어넘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용궁에서 소란을 피우고, 저승에서 생사부를 고쳤으며, 천궁(天宮)에서 큰 소란을 피워놓고는 모든 제한을 깨는 것이 곧 자유라고 여겼으나, 오행산 아래에 갇히고 나서야 비로소 진정으로 또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오백 년 후, 관세음보살이 오행산 앞에 이르렀다. 오공은 당승(唐僧)이 서천으로 경을 가지러 가는 길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장생(長生)을 구하던 생명에서 반드시 책임을 짊어져야 하고 또한 끊임없이 자신을 닦아내야 하는 길로 걸어 들어갔다.

구구팔십일 난이 마침내 찾아왔다. 매 하나의 관(關)마다 요마(妖魔), 위험, 오해, 억울함이 이어졌다. 취경은 애초부터 신불(神佛)의 안배 속에 있었으며, 관음보살도 많은 결정적인 곳에 나타나 일깨워주고 돕긴 했지만, 자비 때문에 이러한 고난을 대신 가져가 주진 않았다.마땅히 겪어야 할 관은 여전히 스스로 지나야 했다.

그 돌 속에서 튀어나와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던 미후왕은 그렇게 난관을 하나하나 거치며 영산에 이르렀고, 마침내 공성원만하여 투전승불(鬥戰勝佛)로 봉해졌다.

하나의 돌은 인연을 매듭지으러 왔다

가보옥이 걸은 것은 또 다른 길이었다.

만약 오공이 마주한 것이 오행산과 구구팔십일 난이었다면, 가보옥이 걸어 들어간 곳은 하필이면 인간에게 가장 미련을 남기는 곳이었다. 특히 대관원으로 이사한 후 겪었던 정치하고 한가하며 부귀가 극에 달한 청춘의 삶은 더욱 그러했다.

《홍루몽》 서두에서는 또 다른 전세의 인연을 기록하고 있다. 서방 영하(靈河) 강변 삼생석(三生石) 가에서 강주선초(絳珠仙草)는 신영시자(神瑛侍者)가 감로수로 관개해 준 은혜를 입은 적이 있었다. 나중에 신영시자가 세상에 내려가 겁난을 겪을 때 강주선자도 그를 따라가 자신의 “평생의 모든 눈물로 그에게 빚을 갚으려” 했다.

그리하여 전세의 한 가닥 인(因)은 금생의 한 가닥 연(緣)이 되었다. 인간 세상에 이르러 가보옥과 임대옥이 된 것이다.

이렇게 보옥과 대옥의 정을 자세히 보면, 그것은 단지 우연히 발생한 한 차례의 애정이 아니다. 대옥은 눈물을 갚으러 왔고, 보옥 또한 반드시 직접 이 단락의 인연을 끝까지 걸어가야 했다. 그는 대관원에서 진정으로 정(情) 속으로 들어갔고, 사랑하고 소중히 여겼으며, 또한 대옥의 눈물이 한 방울씩 말라가는 것을 지켜보았으며, 영원히 머물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 사람과 일이 점차 흩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일승일도(一僧一道)는 애초부터 이 돌이 어디서 왔는지 알았고, 이 한 차례의 홍루몽이 결국 어디로 향할 것인지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경종을 울릴 수 있었고 일깨워줄 수 있었으나, 보옥이 이 한 차례의 정을 우회해 피해가게 하지는 않았다. 마땅히 겪어야 할 것을 겪고, 매듭지어야 할 것을 매듭지었을 때 꿈도 깨어날 때가 된 것이다.

난(難)이 다하고 인연이 다하다

이렇게 다시 두 개의 돌을 나란히 놓고 보면 《서유기》와 《홍루몽》은 하나는 신마(神魔)를 말하고 하나는 인정(人情)을 기록했으나 모두 생명을 하나의 커다란 원으로 그려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본래 온 곳에서 와서 인간 세상으로 들어가 자신이 반드시 겪어야 할 모든 것을 겪고, 마침내 완성해야 할 것을 완성했을 때 다시 귀로에 오르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두 고전 소설이 후세인들에게 남겨준 공동의 질문일지 모른다.

‘만약 생명이 진정으로 인간 세상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온 것인가? 이 길을 가는 동안 우리는 과연 신불(神佛)의 일깨움을 알아듣고, 결국에는 우리가 왔던 길을 알아볼 수 있는가?’

두 개의 돌은 완전히 다른 두 갈래의 인간 세상의 길을 걸었지만, 최종적으로 향한 곳은 오히려 같은 귀로였으니 바로 자신의 천향(天鄉·하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40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