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0년—1279년)
심연(心緣)
【정견망】
“오대(五代)”의 혼란은 단지 50여 년 동안 지속된 후, 또 하나의 통일 왕조가 중화 대지에 나타났다. 이는 300여 년 동안 분열이 지속되었던 남북조 시기와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아마도 번화한 성당(盛唐)을 경험한 후 대일통(大一統)의 사상이 이미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뿌리내렸기 때문에, 국가의 분열 상태가 오래 존재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송조(宋朝)는 960년 송 태조 조광윤(趙匡胤)이 진교(陳橋)병변을 일으켜 건국한 때부터 1279년 원조(元朝)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총 319년 동안 존재했으니, 당조가 지속된 시간보다 약간 길었으나 그 영향은 오히려 당조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시기는 당조에 이어 중국 문화와 과학기술 발전의 또 한 차례 휘황한 시기였다. 회화, 문학 등 방면에서 모두 새로운 높이에 도달했으며, 당대(唐代) 문화와 함께 이후 1,000년 동안의 중국에 영향을 미쳤다.
역사가들은 통상 송조를 북송(北宋)과 남송(南宋) 두 시기로 나누는데, 1127년 이전의 송조를 북송이라 하고, 1127년 이후의 송조를 남송이라 한다. 북송은 국가의 통일 대업을 기본적으로 완수하고 요(遼), 서하, 금(金)과 대치하던 시기였으며, 남송은 동남방 구석에 안주하다 쇠망한 시기였다. 남송 시기, 비록 통치자들은 연약하고 무능했으나 악비(岳飛), 문천상(文天祥) 등이 풀어낸 “충렬(忠烈)”의 노래는 천고에 아름다운 이름을 날려, 후인들에게 “충(忠)”의 참된 내함을 깨닫게 해주었다.
송조 건국에 관한 예언
송조의 건국에 관해서는 삼국 시기 제갈량이 예언한 《마전과(馬前課)》와 당조 이순풍 등이 지은 예언 《추배도(推背圖)》에서 일찌감치 언급된 바 있다.
《마전과》 제6과에서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오직 하늘이 물을 내리니,
하늘에 순응하고 사람에 응하도다.
안으로는 강하고 밖으로는 부드러우니,
흙에서 이에 금이 생겨나도다.”
惟天生水,順天應人;
剛中柔外,土乃生金。
그럼 실제 역사를 결합해 이 과를 해석해 보자.
역사상 조광윤은 960년 황포를 몸에 걸치고 오대를 끝낸 후 대송(大宋)을 건립했으며, 뒤를 이은 태종 조광의(趙匡義)는 979년 천하를 일통했다. 961년, 조광윤은 술자리에서 병권을 해제한 ‘배주석병권(杯酒釋兵權)’으로 병변의 근원을 제거했다. 대송은 창립 이래 이전 각 조대와 나라의 황제나 대신들을 살륙하지 않았고, 평민 백성들에게도 인정(仁政)을 펼쳐 휴양생식하고 부드럽게 품어 천하를 안정시켰다. 평민 백성들이 갈망하던 천하태평이 실현될 수 있었습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상천은 호생지덕(好生之德)이 있다”, “물의 성질은 지극히 부드럽다”고 했으므로 첫 구절이 “오직 하늘이 물을 내리니 하늘에 순응하고 사람에 응하도다”가 된 것이다. 천심(天心)과 민심(民心)이 모두 크게 기뻐했다.
수백 년 후에 등장한 또 다른 예언서인 《추배도》의 제15상과 제16상 역시 조광윤이 세상에 나와 천하를 통일하고 송조를 건립하는 역사적 사실을 예견했다.
제15상의 그림에는 나무 한 그루가 그려져 있고 그 아래 한 사람이 서서 손에 빗자루를 쥐고 있으니, 조광윤이 나와 천하를 쓸어버리고 송나라를 건립함을 암시한다.
참(讖)에 가로되:
하늘에는 일월이 있고
땅에는 산천이 있네
해내(海內)가 분분하니
아버지는 뒤에 있고 아들이 앞에 있도다
天有日月
地有山川
海內紛紛
父後子前
뜻인즉 대자연에는 정연한 질서가 있는데 인간 세상의 오대십국은 오히려 전란이 빈번하다는 것이다.
송(頌)에 가로되:
중원의 전사는 지금까지 쉬지 않으니
몇 사람이나 베개를 높이 베고 금과(金戈) 위에 누웠는가
천하에는 자고로 진정한 천자가 있으니
모든 요괴를 쓸어버리고 해를 보리라
戰事中原迄未休
幾人高枕臥金戈
寰中自有真天子
掃盡群妖見日頭
오대십국 이래 중원에 전란이 끊이지 않아 사람마다 갑옷을 입고 창을 베며 지내니 누군들 편히 쉴 수 있었겠는가만, 마침내 진명(真命) 천자 조광윤이 나와 전란을 평정하고 천하를 통일한다는 것이다.
제16상의 그림에는 한 사람이 가운데 앉아 서 있고 아래 몇 사람이 서 있으며, 또 다른 한 사람은 앉아 있는 사람을 위해 우산을 받치고 있다. 조광윤이 제위에 오르고 여러 신하들이 참배하는 것을 암시한다.
하늘이 한 물을 내리니
타고난 자질이 거룩하고 무용이 있도다
하늘에 순응하고 사람에 부응하니
예나 지금이나 없도다
天一生水
姿稟聖武
順天應人
無今無古
송 태조 조광윤은 천운(天運)에 응해 태어났고 송조 역시 천의에 순응하여 건립되었다는 뜻이다.
송(頌)에 가로되:
땅을 바친 성씨가 전(錢)씨와 이(李)씨요
나머지도 차례로 천자를 알현하네
하늘이 장차 통일을 진인(真人)에게 맡기니
인민을 죽이지 않고 후사를 온전케 하도다
納土姓錢並姓李
其餘相次朝天子
天將一統付真人
不殺人民更全嗣
앞의 두 구절은 남당(南唐) 후주 이욱과 오월왕 전숙이 송조에 투항하고 다른 남방의 소국들도 하나하나 귀순하여 송 태조를 조현(朝見)한 것을 말한다. 세 번째 구절에서 진인은 송 태조를 가리키니 그가 진명천자(真命天子)을 말한다. 네 번째 구절은 송 태조가 투항한 신하들을 죽이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송조(宋朝)의 건립
*송 태조 조광윤의 내력과 기이한 현상
조광윤은 탁군(涿郡 지금의 북경 서남부) 사람이다. 927년 낙양에서 태어났다.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그가 태어날 때 “붉은 빛이 방을 둘렀고 기이한 향기가 밤새도록 사라지지 않았으며 몸에 금색이 있어 3일 동안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란 후 용맹하고 위엄이 있으며 기도가 넓고 활달해,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고 여겼다.
조광윤은 일찍이 기마와 활쏘기를 배웠는데 기예가 아주 뛰어났다. 한번은 길들여지지 않은 사나운 말을 시험 삼아 탄 적이 있는데 안장을 사용하지 않았다. 말을 몰아 성 위 비탈길로 달려갈 때 머리가 문상방에 부딪혀 땅에 떨어졌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가 반드시 죽었을 것이라 여겼으나, 뜻밖에도 조광윤이 일어나 말을 쫓아가 다시 말 위에 올랐으며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두 기이하게 여겼다.
후한 초년, 조광윤이 외지를 유람할 때 양양(襄陽)에서 한 노승을 만났다. 노승이 그에게 말하기를 “북쪽으로 가면 만남이 있으리라”라고 했다. 이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광윤은 모집에 응하여 주 태조 곽위(郭威)의 막하로 들어갔으며, 차츰 승진해서 슬주부지휘(滑州副指揮)가 되었다. 주 세종(世宗) 때는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워 금군을 지휘하는 전전도점검으로 승진했다.
* 송조의 건국
주 세종이 죽은 후 황위는 일곱 살 난 아들 채종훈, 즉 주 공제에게 전해졌습니다. 공제가 어린 나이였으므로 조정의 정사를 관장할 수 없었습니다.
960년 봄, 금군 통수(統帥) 조광윤이 군사를 이끌고 북상해 요나라로 진공하는 시기를 이용해, 지금의 개봉 동북쪽 진교역에서 병변을 일으켰다. 조광윤의 동생 조광의 등이 장수들에게 암시해 황포(黃袍 황제가 입는 곤룡포)를 조광윤의 몸에 입히고 그를 추대해 황제로 삼았다. 이어 조광윤은 군사를 이끌고 도성인 개봉으로 회군해 후주 정권을 빼앗고 국호를 “송(宋)”이라 정했으니 역사상 이를 “북송”이라 부른다. 조광윤이 바로 송 태조다.
*북송 왕조의 통일 전쟁
북송이 건립되었을 때, 북방에는 여전히 강대한 요나라와 북한이 있었고, 남방에는 남당, 오월, 후촉, 남한, 남평 등의 할거 정권이 있었다. 송 태조 조광윤은 먼저 남쪽을 치고 뒤에 북쪽을 치며, 먼저 쉬운 곳을 치고 뒤에 어려운 곳을 치는 통일 전략을 채택했으므로, 송·요 국경선에서는 수세를 취하고 우세한 병력을 집중해 남방의 경제가 풍부하지만 실력이 비교적 약소한 할거 정권들을 통일해 나갔다.
963년, 북송은 먼저 출병해 형남(荊南)을 멸했고, 이어 차례로 후촉, 남한, 남당을 멸했다. 강대한 군사적, 정치적 압력 아래 978년 장주(漳州)와 천주(泉州) 2주를 할거하던 진홍진(陳洪進)과 오월의 전숙(錢俶)이 잇따라 귀부함으로써 남방의 할거 정권이 모두 소멸되었다. 979년, 송 태종이 친히 대군을 이끌고 북한(北漢)을 친정하여 “십국” 중 마지막 국가를 멸하고 오대십국의 분립 할거 국면을 끝내어 새로운 통일 국면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요나라에 점령된 유운(幽雲) 16주는 끝내 회복하지 못해 우환을 남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