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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의도협전(忠義道俠傳) 제2회 기근이 들판에 가득하니 붉은 옷 무리 넘쳐나고, 큰 역병이 사람을 죽이니 그 수가 헤아릴 수 없구나 (5)

북국촌로

【정견망】

백량산은 갑자기 가슴 앞으로 세 줄기 강한 힘이 휙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속으로 ‘아차! 큰일 났다!’ 싶어 소름이 돋았다. 다급히 발뒤꿈치를 비틀고 몸을 돌려 “땅~ 땅~ 땅~” 소리를 내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마보를 딛고 허리를 곧게 펴고 왼팔을 가로질러 원호문과 이명지 두 사람을 막아섰다. 백량산이 가슴팍을 내려다보니 옷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비스듬히 세 개의 구멍이 칼로 벤 듯 깔끔하게 나 있었고, 옷 속의 솜이 삐져나와 있었다. 고개를 들어 자세히 보니 시커멓고 지저분한 주철 못 세 개가 길가의 나무 기둥에 단단히 박혀 있었고, 못 머리만 겨우 1촌 정도 밖으로 드러나 있었다.

만약 아까 반 걸음만 더 빨리 움직였더라면 이 철 못 세 개가 고스란히 몸에 박혔을 것이다. 원호문과 이명지는 강호의 떠돌이 의원이나 하급 관리였으니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거리 양옆에는 좌판을 벌인 사람들이 많았고, 서쪽으로 조금만 가면 황궁 대내(大内)가 있었다. 백량산 일행은 차치하고라도, 지나가던 행인 중 누구라도 맞았더라면 경성을 뒤흔들 살인 사건이 되었을 것이다. 더구나 이 힘은 나무를 뚫을 정도였으니 사람 몸에 닿았더라면 그 자리에서 즉사하여 길바닥에 시체가 굴렀을 것이다.

백량산은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말도 안 돼. 강호를 떠돌며 안 본 사람이 없는데, 오늘날 이런 수법을 가진 자가 손꼽아봐야 일곱, 여덟 명뿐이다. 도대체 어떤 놈들이기에 천자의 발치에서 대낮에 사람을 납치하고 해치려 하는가!’ 생각을 마칠 때쯤 사람 틈을 돌아보니, 웬일인지 땅딸막한 사내가 도사 앞에 고꾸라져 있었고, 말라깽이 대머리 사내도 도사에게 뒷덜미를 잡힌 채 무기를 떨어뜨리고 무릎을 꿇고 있었다.

도사는 양손을 뻗어 하품을 크게 하더니 백량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그의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보라색과 푸른색이 섞인 호연건(浩然巾)을 머리에 두르고, 검은색과 짙은 청색의 소매가 넓은 긴 도포를 입었으며, 안에는 두툼한 흰 솜을 덧댄 옷을 껴입었다. 허리에는 수운은문(水云银纹)이 새겨진 넓은 띠를 매고 있었는데, 그 띠에 매달린 붉은 비단 끈에는 정교하고 투명한 옥매미(玉知了) 장식이 달려 있었다. 네모난 얼굴에 입은 크고, 학의 눈에 검은 눈썹을 가진 팔 척 장신으로, 스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당당한 풍채였다. 이를 기리는 시가 있다.

기개가 남달라 눈썹은 위풍당당하고,
의를 행하고 협을 닦아 도의 오묘한 이치를 닦았네.
천진난만하여 속세의 찌든 때를 벗어났고,
금단(金丹)의 화로는 하늘의 비밀을 품었도다.
관가와 얽혀 우리 문중에 들어왔건만,
무투(武斗)의 집착은 꿰뚫어 보기 어렵구나.
형을 따라 유람하며 빈곤한 자를 구제하고,
문호를 넓게 열어 후대에 전하리라.

그 도사는 수염을 불고 눈을 부라리며 분하다는 듯 귀를 긁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발을 굴렀다.

“아야! 이 ‘백운권수(白雲卷袖)’가 ‘잔운권수(殘雲卷袖)’가 되었으니 정말 체면이 말이 아니구나! 사형이 알면 손속을 조절 못 한다고 또 꾸짖겠지.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으니 다행이야.”

백량산은 처음엔 그가 춤을 추듯 소란을 피우기에 미친 중이나 돌팔이 도사쯤으로 생각했다. 정체를 알 수 없어 방어 자세를 취했는데, 이명지와 원호문도 덩달아 뒤로 물러섰다. 그런데 도사가 두 걸음 다가와 웃으며 공손히 굽혀 절하고 예의를 갖춰 말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빈도가 여러 분께 사죄드립니다. 에휴, 저 철 못 세 개는 원래 튕겨나가 가게 간판에 박혔어야 했는데, 저 놈들의 기습을 막으려다 보니 빈도의 손이 빗나갔습니다! 놀라셨다면 부디 노여움을 거두어 주십시오.”

백량산은 경계를 풀지 않은 채 도사에게 답례하며 자연스럽게 자세를 잡았다. 손발에 은밀한 힘을 실으면서도 얼굴엔 웃음을 잃지 않았다.

“도장(道长)께 묻겠소. 저 두 사람과 무슨 원한이 있기에 이 번화가에서 대판 싸움을 벌이셨소?”

도사가 답했다.

“아, 선생들은 모르시겠지만, 저 두 놈은 악명 높은 음탕한 도적들입니다. 키 큰 놈은 ‘녕모금(宁摸金)’, 땅딸막한 놈은 ‘임합마(任蛤蟆)’라고 하죠. 무덤을 파헤치고 꽃을 꺾듯 부녀자를 납치하는 짓만 골라 합니다. 예전에 사형과 함께 손을 봐준 적이 있는데, 오늘 이곳에 왔다가 또 저 두 놈이 선량한 부녀자를 해치려 하는 것을 보고 뒤쫓아와 막아선 것입니다.”

백량산이 탄식했다.

“알고보니 그랬군요.”

“에잇! 썩은 도사 놈!”

녕모금은 다리에 힘이 빠져 있었지만 입은 쉬지 않았다. 그는 부녀자를 내려놓고는 분노하며 외쳤다.

“오늘 몸 상태가 안 좋아서 그렇지, 아니었으면 네가 감히 혈도를 짚고 위세를 부릴 수 있었겠느냐!”

도사가 웃으며 응수했다.

“헤헤, 소리를 지르든 욕을 하든 네 마음대로 해라. 도사님께서 위세를 좀 부린 게 뭐 어떠냐? 이 경성 사람들이 네가 꽃이나 꺾는 천한 도둑이라는 걸 다 알게 만들 테다. 관가에서 너를 잡아들이면 그때도 그렇게 오만할 수 있겠느냐?”

“좋소, 관가에 넘기는 것이 가장 타당하오.”

원호문과 이명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구경하던 사람들도 소매를 걷어붙이고 귀를 기울이며 서로 수군거렸다.

“무슨 일이요?”

“미친 도사가 와서 소란을 피우나 봐.”

“아니, 납치범 같은데? 저 두 사람을 봐, 대낮에 부녀자를 들쳐업고 다니는 놈들이 어디 있나.”

“맞아, 아까 싸우려던 거 아니었어?”

“몰라, 갑자기 ‘팍팍팍’ 소리가 나더니 ‘허억’ 소리와 함께 쓰러지더군.”

“저 키 큰 놈이랑 땅딸막한 놈이 아까 뻔뻔하게 떠들더구먼. 황성 한복판을 지나가는데 관병 하나 제지하는 놈이 없었지.”

그러자 누군가 대꾸했다.

“관병? 하하하, 그놈들은 관나리들 집이나 지키는 개들이지. 개봉부 황성 밑이라고 뭐 다르겠소? 요새는 사방에 먹을 게 없어서 남의 일에 참견할 겨를도 없소. 도둑질은 커녕 살인 사건이 나도 관가에선 신경도 안 써. 하지만 세금 내고 식량 거두고 집 뜯어내는 일에는 관병들이 귀신같이 나타나지.”

또 다른 이가 덧붙였다.

“지금 세상이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소. 나라를 좀먹는 놈들은 어디서나 돈을 벌고, 일을 똑바로 하려는 사람들은 밀려나지. 남의 아내를 욕보이는 놈들은 버젓이 살고, 충효를 지키는 사람들은 박해를 받소. 납치하고 갈취하는 놈들은 떵떵거리고, 성실한 사람들은 매일 고통 속에 살지. 겉으로는 착한 척하는 놈들은 무덤까지 파헤치고 말이야. 시비가 뒤바뀐 세상에서 도대체 어찌 살란 말이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관병 한 무리가 지나갔다. 관리 몇 명이 좌판 주인에게 재물을 요구했는데, 이는 이 동네 은어로 ‘수분자(随份子, 상납금)’라 불렸다. 여기서 장사하려면 반드시 내야 하는 돈이었다. 내지 않으면 반드시 귀찮게 굴었다. 평소엔 그럭저럭 넘어가지만, 뼛속까지 시린 겨울에 장사하기도 힘든데 거리엔 구경꾼뿐이니 벌이가 변변찮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주머니에서 구리 몇 푼을 꺼내 기름기 흐르는 말로 흥정하며 넘기고, 관병들 틈에서 겨우 굶어 죽지 않을 만큼만 건져내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런데 세상이 어디 뜻대로 되던가? 관병들은 상납금이 적다며 화를 냈다. 칼자루를 휘두르며 상점을 뒤엎고 발로 차고 돈과 물건을 뺏었다. 그러고도 모자라 과일을 집어 먹고는 껍질을 장수 머리에 던지며 위세를 부렸다.

장수는 맞고도 항의하지 못한 채 창백한 얼굴로 울먹이며 “돈 돌려주시오”라고 매달렸다. 몸이 허약한 건지 관병이 계속 때리자 그는 계속 구토를 했고, 관병은 더러운 게 묻었다며 더 때렸다. 결국 그 구토물이 관병들 몸에 온통 튀어버렸다.

백성들은 익숙한 일이라며 무시했다. 그 관병 중에는 여진족에게 징용된 한족들도 섞여 있었는데, 관복을 입고 몽둥이를 들었다고 스스로 특별한 계급이라도 된 양 굴었다. 오늘은 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도리어 더러운 것만 뒤집어썼으니, 해가 저물어가는 추위에 사람들은 관병이 쫓아내기도 전에 코를 막고 흩어졌다. 하지만 원호문은 참지 못하고 꾸짖었다.

“대낮에 사람을 납치하고 해치는 도적들은 내버려 두면서, 어찌 애꿎은 상인을 괴롭히느냐?”

관병들은 그를 칼끝으로 가리키며 욕설을 퍼부었다.

“가난한 서생 놈이 죽고 싶으냐? 감히 관나리의 일에 참견하려 드느냐!”

백량산이 웃으며 달랬다.

“관나리, 다 같은 사람끼리 왜 이러시오. 이 선생도 조정 일을 돕는 분이오.”

하지만 관병들은 그들의 초라한 옷차림을 보고 경멸하며 무시했다. 이명지가 나섰다.

“관병 형님, 방금 이곳에서 싸움이 있었습니다. 바닥에 있는 저 두 놈이 부녀자를 납치한 범인이니 잡아주시오.”

반장이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

“납치? 정말인가?”

관병들은 엎드려 있는 녕모금과 임합마 주위를 어슬렁거리더니 시시껄렁하게 말했다.

“음, 죽은 사람이 없으니 살인 사건은 아니군. 사건도 아니니 그냥 가라.”

하지만 녕모금은 교활한 꾀를 냈다.

“관나리, 저 놈들 말을 믿지 마시오. 저 여자는 내 아내고 저놈은 사형이오. 우리는 선량한 시민인데, 미친 도사가 아내의 미모를 탐내고 우리를 공격한 것이오!”

그 말을 들은 반장은 눈동자를 굴리며 부녀자를 살펴보았다. 꾀죄죄한 옷차림 속에도 옥 같은 살결과 수려한 얼굴이 드러나 있었다. 그는 욕심이 동했는지

“이 사건엔 중대한 내막이 있는 듯하니 모두 관가로 가서 조사하자”고 했다. 그는 부하를 시켜 여자를 짊어지게 하고 도사에게 수갑을 채웠다. 원호문은 도사를 위해 몇마디 변명하려 했으나 덩달아 수갑을 차게 되었다.

이명지가 항의했지만 관병들은 “조사를 위해 필요한 조치다. 감히 도사를 편드는 너희도 의심스럽다!”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관병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골목길로 그들을 끌고 갔다.

백량산(柏亮山)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게 어딜 봐서 관아로 가서 조사를 받겠다는 건가? 분명 색욕에 눈이 멀어 흉한 마음과 탐욕을 품은 것이지! 지금은 전란으로 세상이 어지러운데, 누가 사람을 납치하거나 밀수하는 따위에 신경을 쓰겠는가? 이 관차(官差) 놈들은 오늘 상납금도 챙기지 못하고 도리어 더러운 꼴만 당했으니, 여기서 어떻게든 이득을 챙기려는 게 뻔하다. 마침 이렇게 좋은 먹잇감을 만났으니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있겠는가?’

우두머리 격인 차두(差頭)는 아마도 이 인적이 드문 곳에서 여자를 욕보인 뒤, 사람을 죽여 죄를 뒤집어씌우고 말을 맞출 속셈일 터였다. 원고든 피고든, 증인이든 뭐든 상관없이 일단 관아로 끌고 가 공을 세우고 상을 받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감옥에 가두고 인질로 삼아 거액의 뒷돈을 뜯어낼 테니 이보다 좋을 수가 있겠는가!

과연 예상대로였다. 몇몇은 남쪽으로 걸어갔는데, 각마시(殼馬市)를 지나 조문대가(曹門大街)를 거쳐 남식점(南食店) 길목으로 꺾어 들어갔다. 그런데 들어간 곳이 하필 막다른 골목이었다. 왜 하필 이런 곳을 찾았겠는가? 이 일대는 양옆으로 기루(妓館)가 많아 무슨 일이 벌어져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관차들이 평소 자주 드나드는 유흥가이기도 하니, 이곳에서 일을 벌인 뒤 나중에 “표객과 야도(野道)가 부녀자를 강간하다 길거리에서 서로 다투는 것을 우리가 잡았다”라고 둘러대면 그만이었다.

그제야 원호문(元好问)은 비로소 사태를 깨닫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 관차 놈들은 채화대도(采花大盗)보다 훨씬 더 저질스럽구나!’

바로 이런 것이었다.

아무리 잠시 흉포하게 굴지라도,
악인은 결국 악인에게 당하는 법.
갑작스러운 재앙과 전염병이 닥쳐오니,
업보는 결국 하늘이 거두어 가리라.

그 우두머리 포졸은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급히 병졸들을 발로 차서 쫓아내고는, 서둘러 허리띠를 풀며 그 여자에게 손을 대려 했다. 그때 등 뒤에서 “아이야야” 하는 비명 소리가 몇 차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키가 크고 작은 두 도둑이 이미 수갑을 벗어 던진 상태였고, 부하 관아 포졸들은 죽거나 흩어져 절반이나 쓰러져 있었다.

녕모금(宁摸金)은 두 팔을 활짝 벌려 자신의 낙양산을 허공에 휘둘러 우두머리 포졸의 얼굴에 피를 뿌리고 나서야 차갑게 말했다.

“사형, 이 개 같은 관아 놈은 먼저 맛보고 싶은 모양인데, 사형은 살려둘거요, 말거요?”

암합마(任蛤蟆)가 답했다.

“사제, 저 여자는 나중에 큰 쓸모가 있으니 당분간은 너도 나도 건드려선 안 된다. 저 개 같은 관아 놈을 살릴지 말지는 네 마음대로 해라. 나는 저 도사 놈과 매듭을 지어야겠다.”

말을 마친 그의 두 눈은 두꺼비처럼 차가운 광기를 띠며 가운데 포박되어 있는 도사를 쏘아보았다. 그는 왼쪽 발로 병졸의 옆구리를 걷어차고는 칼을 뽑아 들고, 두 발을 박차며 뛰어올라 도사의 머리를 향해 있는 힘껏 내리쳤다.

원호문(元好问)과 이명지(李明之)가 크게 외쳤다.

“안 돼! 도장님, 조심하세요!”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5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