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흔(童欣)
【정견망】
제7집. 지선지미(至善至美)한 굴원과 《이소》
《이소》를 보면 한편으로는 이별의 근심을 노래하고 있다. 《이소》의 원문을 살펴보면 굴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몇 구절을 골라 설명하겠는데, 우선 굴원은 미(羋) 성을 가진 초나라의 귀족이다.
그의 시를 통해 이야기해 보자. 여러분도 《이소》에 대해 들어보았을 것이다. 원문은 오늘날 사람들이 읽고 이해하기에 다소 어려움이 있고 시간도 한정되어 있으니, 우선 번역문을 통해 대략적인 뜻을 파악한 뒤 원문과 대조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먼저 《이소》의 도입부인 제1단락이다.
“전욱제 고양(高陽)의 먼 후손인 나의 부친 함자는 백용(伯庸)이시지.
세성이 인(寅)에 머물던 해의 정월 경인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왔노라.
존경하는 선조께서 내가 갓 하계에 내려온 시각과 울음소리를 세심히 살피시고,
점을 쳐서 아름다운 이름을 내려주셨네.
본명은 정칙(正則)이요, 자(字)는 영균(靈均)이라네.”
帝高陽之苗裔兮, 朕皇考曰伯庸.
攝提貞於孟陬兮, 惟庚寅吾以降.
皇覽揆余初度兮,肇錫余以嘉名。
名余曰正則兮,字余曰靈均。
이것이 바로 《이소》의 첫 단락이다. 무슨 뜻을 담고 있을까?
이어지는 제2단락의 첫 구절은 이렇다. “하늘이 이미 나에게 이토록 많은 내면의 아름다운 자질을 부여하셨으니, 또한 나는 스스로 품성을 닦는 데 정성을 다했다네.” 이것이 《이소》의 앞부분 대다수를 차지하는 내용이다. 첫 단락에서 굴원은 자신이 하늘로부터 매우 많은 아름다움을 품부 받았음을 말하고 있다. 방금 읽은 구절에서 몇 가지 아름다움이 느껴지는가?
첫째, 나는 고대 전욱제(顓頊帝) 고양씨의 자손이라는 점이다. 고양씨는 황제의 손자인 전욱제로, 중화 문명을 창시한 시조인 삼황오제에서 두 번째 제왕이다. 즉 나의 조상은 고귀하다는 뜻이다. 백용은 굴원 부친의 빛나는 함자로, 초나라 왕실의 종친이었다. 당시에는 ‘공족(公族)’ 또는 ‘공실(公室)’이라 불렸으니 초왕(楚王)과의 관계가 아주 밀접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출신을 언급한 것이다. 문화대혁명 시기에도 출신을 따졌는데, 그때는 가난할수록 영광이라며 빈농을 고귀하게 여겼다. 그러나 여기서 굴원이 강조한 것은 자신의 고귀한 출신이다.
그의 《이소》는 대부분 초나라 왕과 귀족들에게 쓴 것이다. 사실 굴원은 죽는 순간까지도 초나라를 일깨우고 집권 대신들을 각성시키려 했다. 비록 최종적으로 그들을 일깨우지는 못했으나, 깨어나지 못하는 이들을 끝까지 일깨우려 했던 그 행위 자체가 굴원의 숭고함과 결백함, 그리고 완벽함을 진정으로 보여준다.
굴원은 모든 면에서 매우 완벽한 인물이었다. 옛사람들이 절검과 겸손을 강조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굴원은 일종 지선지미(至善至美)를 체현했으며 그의 아름다움은 양강하고 정대(陽剛正大)한 아름다움이다. 유가에서는 온(溫), 량(良), 공(恭), 검(儉), 양(讓)을 말하며 인내와 순종을 가르친다. 하지만 굴원의 말속에는 비굴한 겸손이나 무조건적인 인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매우 정대하고 양기(陽氣)가 넘치지 않는가? 굴원은 강직하며 매우 바른 ‘정대함’ 그 자체이다. 유가는 겸손을 강조하지만 굴원에게는 거짓된 겸손이 없다.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의 조상이 고귀함을 밝히며 자신감과 자부심에 차 있다. 그에게는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견문이 짧은 어리석은 권력자들을 훈계하고 교육하며 지도할 자격이 충분히 있었던 것이다.
제8집. 완벽한 출생, 하늘에서 너울거리며 내려오다
굴원에 대해 말하자면 정말 지선지미하다. 그가 입는 옷, 사는 집, 좋아하는 것 하나하나가 모두 가장 완벽하다.
굴원은 자신의 고귀한 출신부터 말한다. 그는 오제 중 한 명인 전욱제의 후손이며, 부친 백용은 초나라 왕족의 종친이다. 즉 나의 바탕이 매우 고귀하다는 뜻이다. 굴원의 탄생 또한 완벽하다.
“세성이 인(寅)에 머물던 해의 정월 경인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왔노라.”
굴원은 자신이 하늘에서 왔다고 말한다. “그대 하늘에서 내려오니, 결백함이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하네”라는 말처럼, 사람들이 왜 눈을 찬미하는가? 하늘에서 내려온 고결하고 고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굴원의 가문은 귀족이었으며, 훗날 그가 맡은 삼려(三閭)대부라는 직책은 왕족의 세 가지 큰 성씨를 관리하는 종친의 수장이었으니 그 지위가 매우 높았다.
[역주: 초나라 왕성은 미(羋)성으로 여기서 3대 계파인 굴(屈), 경(景), 소(昭)씨 등이 나왔다. 즉 굴씨는 초나라 왕실에서 갈라져 나온 귀족 가문이다.]
또한 여기서 강조할 점은 첫째, 그가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사실이다.
둘째, 그는 언제 태어났는가? 인년(寅年) 인월(寅月) 인일(寅日)이다. 이는 매우 특수한 운명으로 호랑이해, 호랑이달, 호랑이날에 태어난 것이다. 초나라는 사천 지역을 아우르는데 사천은 파산촉수(巴山蜀水)라 불리며 잊 지역 선조들은 호랑이를 매우 숭배했다. 굴원이 호랑이해, 호랑이달, 호랑이날에 태어난 것은 매우 완벽하고 특별한 일이다. 고귀한 출신에 특별한 탄생 시각까지 갖추었으니 하늘이 그에게 부여한 사명이 있었던 것이다.
중국 전통문화에는 “하늘은 자(子)시에 열리고, 땅은 축(丑)시에 열리며, 사람은 인(寅)시에 태어난다”라는 개념이 있다. 이를 합쳐보면 굴원은 천지의 신성한 사명을 품부 받은 것이니 그의 근원과 출신, 탄생 모든 것이 완벽했다.
황람계여어초도혜(皇覽揆餘於初度兮), 조석여이가명(肇錫餘以嘉名).
“존경하는 선조께서 내가 갓 하계에 내려온 시각과 울음소리를 세심히 살피시고,
점을 쳐서 아름다운 이름을 내려주셨네.”
하늘에서 내려왔기에 탄생 시각 또한 인년 인월 인일로 고귀했고 울음소리 또한 우렁찼다. 그래서 점을 친 후 부친이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무엇이라 했는가?
“본명은 정칙(正則)이요, 자(字)는 영균(靈均)이라네.”
우리가 가장 많이 듣는 이름은 굴원(屈原)이다. 시선(詩仙) 이백은 굴원을 매우 숭배하여 “굴평(屈平)의 사부(辭賦)는 해와 달처럼 걸려 있고, 초왕의 누각은 빈 산언덕이 되었네(屈平詞賦懸日月,楚王台榭空山丘)”라고 읊었다. 여기서 굴원을 굴평(屈平)이라고도 불렀음을 알 수 있다.
굴원은 유배당한 사람으로, 오늘날로 치면 노동 교양이나 형을 선고받고 관직에서 쫓겨난 처지였다. 초왕은 왕이었으나 그 화려했던 누각과 즐거운 춤사위가 펼쳐지던 곳들은 역사의 씻김 속에 결국 빈 산언덕이 되었을 뿐이다. 누가 당시 초왕이 누구인지 기억하며 관심을 두겠는가? 그래서 “초왕의 누각은 빈 산언덕이 되었네”라고 한 것이다. 이백은 그런 부화뇌동하는 것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 사라진다고 말한다.
《홍루몽》에서도 “누추한 방 텅 빈 거실, 예전에는 홀(笏)이 침상에 가득했건만, 시든 풀과 마른 버드나무, 한때는 노래하고 춤추던 곳이었네”라고 했다. 그런 것들은 끊임없이 주인이 바뀐다. 아무리 좋은 누각을 지어도 결국 주인은 바뀌기 마련이다.
그러나 굴원은 다르다. 그는 천고에 이름을 남겼고 중화민족은 명절을 만들어 그를 기념한다. 그래서 “굴원의 사부는 해와 달처럼 걸려 있다”라고 하는 것이다. 굴원의 고결한 정신은 해와 달처럼 후세의 인인지사(仁人志士)와 성현군자(聖賢君子)들을 비추고 있으며, 그의 사부는 시간을 뚫고 대지와 사람들의 영혼을 비추고 있다.
제9집. 굴원의 이름에 담긴 아름다운 함의
“본명은 정칙(正則)이요, 자(字)는 영균(靈均)이라네.”
굴평, 굴원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내면을 더 깊이 살펴보자. 굴원의 이름은 평(平)이고 자는 원(原)이다. ‘평’은 무엇인가? 평은 하늘의 상징이다. 하늘은 가장 공정하고 공평하다. 민간에서 “하늘이 가장 공평하다”라고 하듯, 굴평이라는 이름에는 하늘의 상징이 담겨 있다. 부모가 지어준 이름에는 이처럼 아름다운 함의가 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우리도 고귀함을 배우고 스스로 존귀해져야 한다. 어떤 이들은 진화론을 들먹이며 사람이 원숭이에서 변했다고 하는데, 이는 자신을 비하하는 것이다. 옛사람들은 그렇게 인식하지 않았다. 여와가 사람을 만들었다. 이백은 “군옥산 정상에서 본 게 아니라면, 요대 달 아래에서 만났으리”라고 했으며 소동파는 “바람을 타고 돌아가고 싶네”라고 하여 모두 자신이 하늘에서 왔다고 노래했다. 굴원의 고귀함은 또한 그의 내면적 품덕에서 드러난다.
앞서 제2단락을 말했듯이, 하늘은 굴원에게 수많은 내면의 아름다움을 주었지만 그는 스스로의 수양을 더 강화하려 했다. 이어지는 내용은 그가 어떻게 생활하며 인생 속에서 자신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었는지를 보여준다.
첫 단락은 주로 타고난 내면의 아름다움을 말한다. 우리의 신분인 염황자손(炎黃子孫)은 얼마나 고귀한가? 우리가 스스로를 염황자손이라 부를 때 우리는 고귀하지 않은가? 중국인 이름의 아름다움을 보자. 굴평에서 ‘평(平)’은 하늘의 표징이자 상징으로 공평과 공정을 뜻한다. 굴평이라 불린 것은 그에게 하늘의 요소, 하늘의 공정함, 하늘의 단정함이라는 올바른 법칙이 있기 때문이다.
굴원(屈原)에서 ‘원’은 평원(平原)을 뜻하며 평탄하고 넓은 곳을 말한다. 즉 굴원이라는 이름에는 대지의 두텁고 광대한 내면이 담겨 있다. 굴평과 굴원이라는 이름 속에는 평(平) 자 하나, 원(原) 자 하나에 이토록 광대하고 아름다운 뜻이 들어 있다.
왜 우리 중화 문화를 신전(神傳) 문화라고 하는가? 굴원, 굴평이라는 두 단어는 간단해 보이지만, 그의 부모와 선조들이 기원한 바가 담겨 있다. 하늘처럼 정직하고 공정하며 평화롭고, 대지처럼 두텁고 광활하라는 뜻이다. 옛사람들은 자강불식(自強不息)과 후덕재물(厚德載物)을 말했다. 사실 그의 부모는 이름을 통해 하늘의 아름다움과 땅의 아름다움을 주입했고, 여기에 그의 생일인 인(寅) 즉 사람의 아름다움까지 더해져 천지인 삼재(三才)의 모든 아름다움을 구비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굴원이며 굴평이다.
또한 정칙(正則)이라는 이름도 있다. 단정할 ‘정’과 법칙 ‘칙’을 쓴 정칙 또한 올바른 법칙이나 올바른 법을 뜻한다. 무엇이 가장 바른가? 하늘이 가장 바르니 하늘을 배워야 한다. 정칙은 바름을 원칙과 준칙으로 삼는다는 뜻이니, 그는 평생 바름을 원칙으로 삼아 인생의 표준으로 삼았다. 그가 왜 자결했겠는가? 이 모든 것이 원인을 말해준다. 그는 조금의 치우침도, 조금의 더러움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내면적 준칙이었고 천지와 조상이 내려준 아름다움이었기에 이를 저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호인 영균(靈均)에서 ‘영’은 신령함을 뜻한다. 과거의 영(靈)은 모두 신령한 존재를 의미했다. ‘균’은 평균과 고름을 뜻한다.
제10집. 만물을 고르게 기르니 대지보다 신령한 것이 없네
정칙(正則)은 굴원의 부모가 그로 하여금 하늘의 공정함과 바름을 본받게 하려 한 것이다.
오늘날 과학을 통해 우리는 지구와 달이 운행하는 궤도가 있음을 안다. 9대 행성마다 궤도가 있는데, 만약 목성이 1도만 비껴나도 장차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우리 지구도 1분만 편차를 보여도 어디로 굴러갈지 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어 ‘바름(正)’은 매우 중요하다. 오늘날 우리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사실 바름은 지극히 중요하다. 지구가 그렇게 돌아야만 정해진 시간에 그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 만약 지구가 일 년을 조금 길게 혹은 짧게, 혹은 빠르거나 느리게, 혹은 조금 비껴가고 싶어 한다면 몇 년 후에는 어디에 있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하늘에는 바른 법칙이 필요하며 이 바름은 매우 중요하다. 성체(星體)의 운행은 반드시 올바라야 하며 궤도를 이탈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위성을 발사할 때 궤도에 진입하면 성공이라 하지만 조금만 비껴가도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버리는 것과 같다. 하늘의 법칙은 바로 ‘바름’이다. ‘칙(則)’에는 본받고 배운다는 뜻이 있으니, 그러한 바른 것을 배우라는 의미이다.
영균(靈均)에 대해 고대에는 “만물을 고르게 기르니 대지보다 신령한 것이 없네(養物均調, 莫神於地)”라고 했다. 대지는 공평하여 모든 만물에게 똑같이 베푼다. 작은 풀에게 물을 얼마나 줄지, 큰 나무에게 얼마나 줄지 대지는 가장 잘 알며 균형을 맞춘다. 하늘이 비를 내리는 것도 공평하고 균일하다. 어디에 내리든 마찬가지다. 하늘은 공정하고 땅은 공평하다. 큰 나무든 작은 풀이든 필요한 만큼 대지가 조화롭게 나누어 주니 이를 일컬어 “만물을 고르게 기르니 대지보다 신령한 것이 없네”라고 한다. 그래서 영균이라 한다. ‘균’은 평균이며 ‘영’은 신령함이니, 신비롭게 균형을 맞춘다는 뜻이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것과 같다. 과거 황제 시절에는 풍조우순(風調雨順 바람이 고르고 비가 순조롭다)이라 했으니 오늘날 일기가 고르지 못한 것은 사실 인간의 부조화 때문이다. 인간이 바른 준칙을 잃고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등 사람의 도리를 따르지 않으며 하늘의 바름과 땅의 후덕함을 배우지 않아 빗나갔기 때문이다. 천인합일(天人合一)이기에 비바람이 순조롭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이소》의 이 짧은 첫 단락은 모두 고귀함을 말하고 있다. 천생적인 고귀함, 그가 온 하늘이라는 곳, 그의 조상, 이름, 생일까지 모든 것이 가장 완벽하다.
굴원이 초왕에게 들려주기 위해 이 시를 쓴 의도를 이해하겠는가? 그는 “내가 부여받은 이 모든 것들은 가장 바르고 아름다우며 부정한 것이 하나도 없다. 나는 명예와 이익을 바라지 않고 관직이나 권력을 탐하지도 않으며, 오직 국가가 잘되고 임금인 당신을 위해서만 생각한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굴원을 기리며(頌屈原)
기꺼이 죽음으로써 하늘의 소리를 일깨우려 했건만,
어찌하여 혼군은 간신의 말만 믿었는가.
나라는 망하고 집안은 쓰러져 깊은 한만 남았으니,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고 초나라 하늘이 기울었네.
성패로 공과를 따지지 말고,
오직 덕행으로 세상사를 논하라.
굴원의 일생이 어찌 위대하지 않으랴,
천 년 이어온 단오에 그 뜻이 분명하도다.
甘心以死喚天聽,怎奈昏君信奸佞。
國破家亡遺恨重,生靈塗炭楚天傾。
不依成敗說功過,只以德行論世情。
屈子一生何偉大,千年端午見分明。
제11집. 세월로 나의 아름다운 마음을 빚으리
앞서 굴원은 “하늘이 이미 나에게 이토록 많은 내면의 아름다운 자질을 부여하셨으니, 또한 나는 스스로 품성을 닦는 데 정성을 다했다네”라고 말했다. 따라서 다음 단락은 굴원이 타고난 아름다움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를 닦는 데 얼마나 치중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굴원에게 배워야 한다. 우리의 이름 또한 고귀하고 아름다우며 우리는 염황의 자손으로서 고귀하고 아름다운 존재들이다. 그렇다면 선천적으로 혹은 천지가, 조상이 우리에게 준 것들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바로 그 존귀함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굴원이 행한 일이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다음 구절을 보자.
“나는 향기 나는 궁궁이와 백지를 둘렀고, 가을 난초를 엮어 노리개로 찼다네.
시간은 흐르는 물처럼 빨라 따라잡을 수 없으니 나를 기다려주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네
아침에는 산비탈에서 목란을 꺾고 저녁에는 물가 모래톱에서 숙망을 캤다네
해와 달은 한시도 멈추지 않고 봄과 가을은 끊임없이 돌며 이어진다네
초목이 시들어 떨어질 것을 생각하니 아름다운 분 늙어가시는 것이 염려스럽네”
扈江離與辟芷兮,紉秋蘭以爲佩;
汩餘若將不及兮,恐年歲之不吾與;
朝搴阰之木蘭兮,夕攬洲之宿莽;
日月忽其不淹兮,春與秋其代序;
惟草木之零落兮,恐美人之遲暮;
“나는 향기 나는 궁궁이와 백지를 둘렀고, 가을 난초를 엮어 노리개로 찼다네.”
여러분은 이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겠는가? 궁궁이, 백지, 가을 난초는 모두 향기로운 꽃이다. 그는 향기를 뿜어내는 궁궁이와 백지를 두르고 있고, 가을 난초를 엮어 허리에 찼으니 그의 옷차림은 모두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이다.
“시간은 흐르는 물처럼 빨라 따라잡을 수 없으니 나를 기다려주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네”
그는 매 순간을 자신을 완성하고 완벽하게 만드는 데 사용했다. 그렇다면 그는 당연히 아름다움을 얻어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날 사람들은 시간을 쪼개어 돈을 긁어모으고 더 편안해지려고만 하지만, 굴원은 달랐다. 그는 세월이 흘러가는 것을 아쉬워하며 자신의 아름다운 영혼을 빚는 데 전념했다. 이것이 바로 공자가 말하는 “배움에 싫증 내지 않고 사람을 가르치는 데 게으르지 않은(學而不厭, 誨人不倦)” 경지가 아니겠는가.
“아침에는 산비탈에서 목란을 꺾고 저녁에는 물가 모래톱에서 숙망을 캤다네”
그가 하는 일들을 생각해보라. 아침에는 생화를 꺾고 저녁에는 그 꽃들로 자신의 덕을 닦았다. 꽃을 보며 자신의 미덕을 대조해보고 미덕을 더하며 신체를 향기롭게, 영혼을 아름답게 만들었다. 이것이 《이소》의 아름다움이다.
“해와 달은 한시도 멈추지 않고 봄과 가을은 끊임없이 돌며 이어진다네”
시간은 무정하다. “그대 보지 못했는가, 고대광실 밝은 거울 앞에 백발을 슬퍼함을, 아침에 검은 머리 저녁에 눈처럼 하얗게 되었네”라고 이백은 읊었다. 이백이 이런 긴 시를 쓴 것은 굴원과 같은 감정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이백은 굴원을 매우 존경했다.
여러분이 보라, 이 시가 얼마나 훌륭한가.
“그대 보지 못했는가,
황하의 물 하늘에서 내려와 바다로 흘러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함을.
그대 보지 못했는가,
고대광실 밝은 거울 앞에 백발을 슬퍼함을, 아침에 검은 머리 저녁에 눈처럼 하얗게 되었네.”
여기서 “황하의 물 하늘에서 내려와”라는 구절은 굴원의 노래와 호응한다. 성현(聖賢)의 마음은 서로 통하는 법이다. “아침에 검은 머리 저녁에 눈처럼 하얗게 됨”은 인생이 순식간에 지나감을 뜻한다. 그렇다면 굴원이 조급해한 것은 무엇인가?
“초목이 시들어 떨어질 것을 생각하니 아름다운 분 늙어가시는 것이 염려스럽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