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湖南) 대법제자
【정견망】
층층의 시험을 거치며 오늘날까지 걸어온 대법제자는 참으로 쉽지 않았으며, 사람에서 신(神)으로 나아가는 것은 더욱 쉽지 않다. 원만으로 나아가는 대법제자에 대한 표준은 높고 요구는 엄격하니, 우리는 이미 원만으로 나아가는 심사 고험 단계에 접어들었다. 과연 원만할 수 있는가? 과연 고험을 통과할 수 있는가? 어떠한 요행수를 품어서는 안 된다. 수련은 엄숙하고, 원만의 표준은 엄격한 것이다.
나는 대법에서 30년 동안 수련했다. 우리처럼 1999년 이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들은 대다수 70~80대에 접어들었다. 정법수련 중에서 이들 대법제자는 정진해왔고, 압력 속에서도 굳세게 진상을 알리며 대법을 실증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해왔다. 본래는 정법이 추진됨에 따라 수련이 점점 더 수월해지고 신체도 점점 더 편안해질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뜻밖에도 연세가 든 동수들은 끝에 이를수록 ‘병업(病業)’ 관을 넘는 동수가 점점 더 많아져서 몸이 이곳이 아프거나 저곳이 가렵곤 했다. 어떤 이는 조심하지 않아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걷지 못하며, 연공을 하지 못해 이 마음이 괴로워하며 수련과 법 실증에 심각한 영향을 받았다. 어떤 이는 관난(關難)이 아주 크다고 느껴 헤쳐나오지 못하고, 심지어 수련을 그만두고 불교를 배우기도 했다.
우리는 이러한 노동수들이 진정 안타까워 어떻게든 서로 이끌어주고 돕는 방법을 생각하여 이 동수들을 깨어나게 하기로 결정했다. 포기하면 후회할 것이며, 이번 기연(機緣)을 놓치면 잃어버리는 것은 영원히, 영원히 다시 얻을 수 없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다른 방법은 없고 오직 법에서 그들을 일깨워줄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수련에는 고험이 있기 마련이며 마난은 우연히 오는 것이 아니라 심성을 제고하기 위해 나타나는 것임을 상기시켰다. 사부님께 청하지만 사부님께서 당신의 마난을 거두어가지 않으신다면 그것은 당신의 심성이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사부님께서는 오직 법에서 도울 뿐 당신이 제고되기를 바라고 정진하기를 바라실 뿐이다. 당신 자신이 정신적으로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사부님께서도 도와주실 도리가 없다. 게다가 수련은 이미 최후의 집착을 내려놓아야 할 때에 이르렀으니, 생로병사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반드시 생로병사의 관념을 내려놓아야 한다.
나는 이미 77세로 나이가 많은 노년 동수에 속하는데, 자신에게 물었다.
“너는 이 ‘병업’ 가상의 고험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나는 좀 생각해보았고,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측면에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첫째로 관념을 바꿔야 한다. “진짜로 수련하는 사람은 병이 없다.”(《파룬따파의해》 <창춘파룬따파보도원을 위한 설법>) 마난의 출현은 노인들의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마음을 겨냥해 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체력과 정력이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 있지만, 정신적으로 자신을 노인이나 환자로 여겨서는 안 된다. 정신이 무너지지 않고 정념이 충만하다면 구세력이 틈을 타지 못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신체가 조금 불편한 것은 겉으로는 병이지만 본질적으로는 가상이며, 신체를 청리하면서 당신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는 것이다. 자신을 연공인으로 여기고 병이 있다거나 병원에 가겠다는 생각을 품지 말아야 한다.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전법륜》)는 것을 굳건히 실천해야 한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자신을 너그럽게 봐주어선 안 되고, 막 법을 얻었을 때와 같은 심성으로 자신을 요구해야 한다. 주변의 한 노동수는 다리가 아파 며칠 동안 결가부좌를 틀지 못하고 반가부좌를 하더니, 며칠 지나자 가부좌를 아예 틀지 못하게 되었다. 포륜(抱輪)을 할 때 한 시간이 힘들다고 반 시간으로 바꾸고, 시간이 지나자 반 시간도 힘들어했다… 자신을 인간 세상의 노인으로 여겨 자신을 양해하고, 조금 태만해도 괜찮다고 여긴다. 괜찮다고 여기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경계는 마음에서 일어나고, 형상은 마음에서 생겨나는 법이니, 어떤 마음가짐이냐가 곧 어떤 상태인지를 결정한다.
수련은 안으로 찾아야 한다. 구세력이 왜 당신에게 ‘병업’ 관난을 만들어주는가 하면 바로 이 마음을 겨냥한 것이다. 만약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자신을 연공인으로 여길 수 있다면, 법 위에서 생각하고 법 위에서 수련할 수 있다. 신체가 불편할 때 정념으로 생각하기를, 이는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 소업하고 신체를 정화해주시는 것이며, 공이 자라고 공능이 나오게 하시는 것이라 여겨야 한다… 정념을 가지고 수련 중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대하는 것은 수련하는 것이며, 나쁜 일이 좋은 일로 바뀔 것이다. 사람의 관념으로 자신은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하고, 늙었다고 생각하고, 병들었다고 생각하며, 사람 마음으로 생각하면 일은 나쁜 일로 변하게 된다. 생로병사의 관념을 내려놓아야만 사람 속에서 걸어 나와 신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수련의 길은 같지 않으나
모두 대법 가운데 있도다
만사에 집착이 없으면
눈앞에 길은 스스로 열리리라.“
(《홍음2》 <가로막지 못하리>)
다른 이들은 수련하면서 재난도 병도 없이 순풍에 돛 달린 듯 순조롭게 가는데 자신은 관난이 끊이지 않는다고 보고 대법을 의심하거나 사부님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바로 최후의 집착을 내려놓아야 할 때에 이르렀으니, 생로병사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반드시 생로병사의 관념을 내려놓아야 한다. 모든 마난의 출현은 업력으로 인한 것이며 모두 우리의 제고를 위해 나타나는 것이다. ‘병업’ 가상 앞에서 공황에 빠지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사부님이 계시고 대법이 있다. “제자가 정념이 족하면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홍음2》 <사도은>)
나는 닫힌 상태로 수련하여 내가 어떻게 수련되었는지 알지 못하며, 원만의 최후 표준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아는 것은, 자신을 원만시키고자 한다면 반드시 자아를 내려놓아야 하고 사(私)를 내려놓아야 하며, 고생을 두려워하고 안일을 구하며 향락을 누리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법을 많이 공부하고, 자신을 잘 수련하도록 힘쓰며, 법에 부합하지 않는 자신의 사유와 생각을 제때 바로잡아 사상에 어떠한 편차도 나타나지 않게 해야 한다. 사부님의 손을 굳게 잡고 원만하여 집에 돌아갈 때까지 나아갈 것이다.
작은 깨달음이니, 타당하지 않은 곳은 동수들이 자비로 바로잡아주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