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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심을 버리고 신의 상태를 닦아내다

타이완 대법 제자

【정견망】

최근 법공부에서 “삼계 밖으로 벗어나고, 오행 중에 있지 않다(走出三界外,不在五行中)”라는 이 대목의 법을 공부할 때 몹시 감촉이 깊어, 동수들과 나의 약간의 체득을 공유하고자 한다.

대법 수련은 엄숙(嚴肅)하며, 표준은 엄격하다. 우리 수련인은 속인이 생각하는 것, 생각하는 것, 하는 것 일체를 모두 닦아내어 신의 상태를 닦아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상태에 도달할 것인가? 그것은 바로 수련 과정 중에서 부단히 사람의 관념을 닦아내고, 신념(神念)으로 인념(人念)을 대신해야 한다. 다음은 나의 약간의 체득이다.

1. 인정을 버리고 자비심을 닦아내다

속인은 정(情)을 위해 살아가며, 친지·부부·친구 등 정분(情份)을 중요시하고, 사람에 대해 친소원근(親疏遠近)의 구별이 있다. 반면 수련인은 속인의 이 정을 뛰쳐나와야 한다. 사부님께서 《2002년 워싱턴DC 법회설법》에서 일찍이 말씀하셨다.

“그의 일이 곧 너의 일이고, 너의 일이 곧 그의 일이다”

그리고 전통에 이런 말이 있다.

“나의 어른을 어른으로 여기고 나아가 남의 어른까지 미치며, 내 어린이를 어린이로 여기고 나아가 남의 어린이까지 미친다”

다른 사람의 친인을 나의 친인처럼 대하고, 다른 사람의 일을 내 일처럼 처리한다. 생각컨대 이렇게 하면 점차 인정이치를 뛰쳐나와, 더욱 자비로운 마음으로 생활 주변의 사람들을 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속인이 생활에서 추구하는 것은 어떻게 잘 살고, 어떻게 편하게 살며, 고생과 재앙과 죄업을 겪는 것을 피하는가이므로, 속인은 일을 고려할 때 흔히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이익 기점에 서서 고려한다. 반면 수련인이 문제를 보는 것은 도리어 그 반대여야 하며, 수련인은 일을 할 때 법의 입장에 서서 고려하고, 일의 시비를 결정해야 한다.

때로는 우리에게 이로운 일이, 법과 타인에게는 반드시 유리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예를 들어, 일전에 어떤 동수가 교류 중에서 반응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타이완에서는 현재 서점에서 대법 책을 파는 것을 보기 드물다. 왜냐하면 많은 신수련생이 들어와 9일반에 수강하면, 노(老)수련생이 열성적으로 신수련생을 도와 동수가 운영하는 이췬(益群) 서점에 가서 대법 책을 사주기 때문이며, 점차 일반 시중 서점에서는 점점 대법 책을 파는 것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사존께서 법에서 일찍이 말씀하셨다.

“사회상에서 우리 대법의 책을 서점에서 판매하게 하는 것이다. 나의 법신은 연분이 있는 사람에게 그 책을 사게 할 것이고 연분이 있는 사람이 보면 그는 와서 배울 것이다.” (《스위스 법회설법》)

신수련생이 법을 얻는 것의 일부분은 서점에서 책을 보고 오고 싶어져서 오는 것인데, 동수의 호의는 이 때문에 무의식 중에 사존의 안배를 흐트러뜨렸을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에, 동수가 당초 신수련생을 도와 대법 책을 사주기로 결정한 것은 호의에 기반한 것이고, 타인을 잘 대하고 싶어 한 데서 비롯된 것이며, 이때 동수는 자신의 각도에 서서 고려한 것이다. 동수에게 있어서 이것은 좋은 일을 하는 것이고 신수련생을 돕는 것이지만, 만약 밖으로 뛰어 나와 대법의 입장과 각도에서 본다면 이 결정은 반드시 좋은 일이 아닐 수 있으며, 이 때문에 미래 신수련생의 득법을 교란했을 수도 있다. 대법이 닦는 것은 타인을 먼저 하고 나중은 나이며, 무사무아(無私無我)이다. 수련에서 자기를 내려놓고, 사사건건 법의 입장에 서서 법으로 가늠해야 비로소 자신의 인정 교란을 더 잘 뛰어넘어 대법의 일을 잘할 수 있다.

2.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사상을 구속하고 속인의 마음을 닦아내다

속인은 명리를 중시하고, 돈과 향락을 중시하며, 수련인에게 있어서는 우리가 추구하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수련인은 속인 중에서 속인의 정상적인 생활을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한 한 가지는 속인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해내려면 ‘하되 구하지 않고, 있어도 마음에 두지 않으며’, 속인 중의 일체 오물(糞土)로 보아야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을 해내려면, 우리로 하여금 수시로 신의 시각, 수련인의 이치(理)로 주변의 사람·사물·사건을 대하고, 우리가 부딪히는 일체를 대하게 요구한다.

‘좌회부란(坐懷不亂: 품에 앉혀도 란(亂)하지 않음)’이라는 말이 있다. 미녀가 우리의 무릎에 앉아도 우리는 그녀를 나무토막으로 여기고 동요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비록 속인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을지라도 내면의 상태는 속인과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밥을 먹을 때, 속인은 맛있는 것을 중시하고 향락을 중시하지만, 신에게 있어서 속인의 음식은 혐오스러운 것이며, 수련인에게 있어서 색(色)과 미(味)에 대한 집착은 닦아내야 하는 것이다. 사존의 《홍음》 〈도중(道中)〉:

“마음에 두지 않으니
세상과 다툴 것 없도다
보아도 보지 못한 듯이 하니
미혹되지 않는도다
들어도 듣지 못한 듯이 하니
그 마음 혼란하지 않도다
먹어도 음미하지 않으니
입의 집착 없도다
하여도 구하지 않으니
늘 도(道) 중에 있도다
고요하되 생각지 않으니
현묘함을 알 수 있도다”

을 보라.

“먹어도 음미하지 않으니 입의 집착 없도다(食而不味 口斷執著)”,

생각해보라. 만약 우리가 신처럼 입에 진흙 한 덩어리를 씹고 있다면, 여전히 그 맛을 느낄 마음이 있겠는가? 만약 우리가 자신의 사상을 구속하지 않고 속인처럼 일상생활에서 생활을 즐기고, 맛있는 것을 즐기고, 일체를 즐긴다면, 아주 쉽게 자신의 인심에 이끌려 속인과 혼동될 것이다.

대법 수련은 느슨한 것 같지만 표준은 엄격하다. 외적인 구속이 없고, 오직 자신에게 의지해 자신을 요구해야 한다. 우리는 신으로 닦아내야 하며, 신의 표준으로, 수련인의 시각으로 생활에서 부딪히는 사람·사물·사건을 가늠해야 한다. 속인 중의 일체사물을 아주 담담하게 보며, 부단히 자신을 구속하고, 점차 상인의 사상 상태에서 벗어나 수련인의 표준에 도달해야 한다.

3. 사람의 관념을 돌파하고 속인의 온갖 집착·온갖 욕망을 버리다

속인은 삼계 내에 살아가며 속인의 육신이 있으므로 삼계의 이치에 제약을 받아, 추우면 안 되고, 더우면 안 되고, 피곤하면 안 되고, 배고파도 안 되며, 병이 나면 괴로워야 한다. 반면 신은 사람의 이 육신이 없고 삼계의 시공 제약을 받지 않으며, 삼계 내의 물질이 그를 교란할 수 없으므로 그는 속인과 같은 그런 사상 상태가 없다.

우리 수련인은 수련 중에서 부단히 속인의 이 육신과 삼계의 이치가 우리에게 가져다준 온갖 제한을 돌파하고, 점차 사람의 상태에서 벗어나 수련인 원만의 표준에 도달해야 한다.

어느 해 중정기념당의 글자 대형 행렬(排字) 활동 중에 날씨가 아주 더웠는데, 나는 도중에 물을 사러 갔다가 자리로 돌아올 때 사람들이 머리를 들고 하늘의 태양을 바라보는 것을 보았다. 나도 호기심에 따라 보았으나 잠시 후 너무 눈이 부셔 보지 않았다. 활동이 끝날 때 낯선 동수가 나를 가로막고 방금 태양 쪽에 사부님이 계신 것을 보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천목(天目)이 없어 볼 수 없다고 답했다. 동수는 자신도 천목이 없으며, 단지 계속 태양을 꼿꼿이 바라보았고 처음에는 몹시 눈이 부셨지만 계속 보았더니 멀지 않아 햇빛이 점차 눈부시지 않고 태양이 차가워지는 느낌이 들었으며, 그런 우리를 바라보는 사부님을 태양 쪽에서 보았다고 했다. 나는 동수가 태양 빛이 사람 눈을 상하게 한다는 속인이 가진 그런 관념이 없었기에 사람이라는 이 껍질(殼)의 제한을 돌파하고 사부님을 보았다고 깨달았다.

4. 속인의 관념이 없으면 속인 관념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내 이해는, 속인의 각도, 속인의 사상 층차에 서서 일을 보고 문제를 생각하면 곧 사람의 리에 제약을 받으며 영원히 속인일 뿐이다. 우리 수련인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은 공(功)이며, 고에너지 물질이므로 삼계 내의 물질은 수련인에 영향을 미치거나 교란할 수 없다. 사부님께서는 이미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일체를 주셨으니, 오직 우리가 어떻게 돌파하느냐에 달렸다. 오직 더 높은 각도에 서서 수련인, 신의 사상 층차로 일을 바라보고 자신을 요구해야만 사람의 관념을 돌파하고 사람이라는 이 껍질이 우리에게 가하는 제한을 돌파하며 더 높은 층차로 승화할 수 있다.

어느 날 저녁무렵 즈음 공원을 지날 때, 어둑어둑한 곳에서 사람인 듯하면서도 사람 같지 않은 그림자가 앞쪽 벤치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처음에는 무엇을 보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고, 이 사람 같지 않은 그림자가 앞쪽에 앉아 무언가를 먹으며 아주 큰 소리로 식사 소리를 내는 느낌이 들었다.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와 보니 아는 동수가 그곳에 앉아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그 시기 나는 마침 음식에 대한 나의 욕망을 닦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었으나 계속 반복되고 의지가 굳지 않아 사부님이 동수를 빌려 나를 일깨워준 것이라고 느꼈다.

신은 사람을 동류로 보지 않으며, 신으로 향해 걸어가는 수련인에 있어서 속인의 모든 관념과 행위는 모두 닦아내야 하는 것이다. 병업과 마찬가지로, 병이 든 생각과 증상이 나타날 때 우리 수련인은 가상(假相)인 줄 알며, 사상과 행동 중에서 이러한 교란을 부정하고 배제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수련인에게 있어서 속인의 ‘구복지욕(口腹之欲: 입과 배의 욕심)’ 역시 닦아내야 하는 관념과 집착이다.

사존께서 광주 9일반 설법에서 일찍이 언급하신 바를 기억한다—밥을 먹고 싶어 하는 것 역시 일종의 집착이다(원문 아님). 신은 사람처럼 음식에 대한 구복지욕이 없는데, 마치 우리가 소가 풀을 뜯는 것을 볼 때 우리도 먹고 싶다는 그런 욕망을 생기기 어려운 것과 같다. 수련은 고생을 겪는 것이며, 사람의 관념을 돌파하는 과정 중에서 사회에서 각종 유혹, 인심의 교란에 부딪힐 때 몹시 괴롭지만, 괴로움은 죄업을 소멸할 수 있다. 상인의 리, 상인의 관념을 뛰어탈(뛰쳐나올) 때 비로소 신으로 향할 수 있고 원만으로 향할 수 있다.

이상은 나의 층차에서의 약간의 체득이니, 법 위에 있지 않다면 동수들께서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4333